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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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폭포를 찾았다! 몸을 담그면 왠지 신묘한 기운이 솟아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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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를 맞아야 하는데, 이 옷으로 들어가긴 좀 그런데.”
“아! 아직 걸레로 만들지 않은 누더기옷이 하나 있어요.”
세비스의 말대로 피크닉 가방을 뒤적여 보자 한때 그녀의 일상복이었던 누더기 흰 원피스가 나왔다.
“이게 왜 피크닉 가방에 있는 거지? 너 왜 이런 걸 보관해 놓은 거야?”
‘설마 얘….’
실비아는 위아래로 세비스를 훑어보았다. 그리곤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더기옷을 다시 봤다. 실비아의 못마땅한 표정에 그가 정색을 했다.
“혹시 몰라서 걸레로 쓰려고 가져온 거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아님 말지, 왜 정색을 하고 그러니….”
실비아는 나무 뒤편에 숨어 누더기옷으로 갈아입은 뒤 흰 머리띠까지 착용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폭포 속으로 걸어갔다. 온통 하얀 옷을 걸치니 흡사 도를 닦는 자연인처럼 보였다.
“물이 차가우니까 조심하세요.”
일행들은 커다란 나무에 걸터앉아 피크닉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 씹으며 실비아를 격려했다. 폭포 한가운데에는 앉기 좋은 편편한 바위가 있어 실비아는 그 위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폭포수를 맞았다. 황금 폭포를 맞은 그녀의 몸이 온통 금빛으로 빛났다.
그러기를 5분쯤 됐을까? 그녀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빵빠레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빠라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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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황금 폭포수의 효과로 <십중팔구 만독불침> 패시브 스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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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메시지를 확인한 실비아가 양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르자 육포를 씹고 있던 일행이 놀라서 폭포수를 맞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독불침이라…. 무슨 서양 판타지 배경에 무협소설 용어까지 나오고 난리지? 개발자 중에 무협 매니아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잠시 잡생각을 한 실비아는 짬뽕과 우동도 식당에서 나오는 판에 무협 용어가 나온 게 대수인가 싶어 고개를 저었다. 기쁜 마음으로 상태 창을 켠 그녀는 패시브 스킬의 상세설명 보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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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만독불침
- 세상의 모든 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만독불침의 신체가 되는 스킬이다. 그러나 올 누드로 폭포수를 맞지 않았기에 폭포수를 덜 흡수하여 십중팔구가 앞에 붙었다. 십중팔구란 것은 한두 번쯤은 해독에 실패할 수 있다는 소리.
그러나 이게 어딘가? 이제 어떤 독에 당하더라도 십중팔구는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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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누드로 폭포수를 맞아야 했다니…. 아쉽다. 스킬 앞에 붙은 십중팔구가 좀 찝찝하네…. 그래도 설명대로 이게 어디야? 엄청난 스킬이다!’
실비아가 신이 나서 첨벙첨벙 소릴 내며 물 밖으로 뛰쳐나오자 노엘이 타월을 가져와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실비아 님, 원하셨던 대로 모든 걸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으셨나 봐요.”
“그렇죠. 아참! 이참에 모두들 폭포수를 맞는 건 어떨까요?”
“그거 좋…….”
우르르, 쾅!
“어어?!”
노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리더니 폭포 위에서 커다란 바위들이 굴러떨어졌다. 순식간에 황금 폭포는 바위들로 메워져서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나 제대로 막힌 건지 처음과 달리 물줄기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도 황금폭포가 사라져 버렸네요.”
“아…. 안타깝네요. 다 같이 강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쉬웠지만 이미 사라진 폭포를 되돌릴 순 없었다. 실비아가 수풀 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저택으로 돌아갔던 외제마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노엘은 실비아가 받은 것과 비슷한 황금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놀랍게도 외제마가 귀신같이 알아듣고 먼 거리도 쏜살같이 달려온다고 했다.
“그럼 림보도 똑같이 열쇠 버튼만 누르면 멀리서도 달려오는 건가요?”
“같은 지역에서 약탈해 온 거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 약탈 아니고 강탈… 아, 아니 데려온 거죠.”
“오, 역시 돈만 있으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군요.”
노엘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외제마에 올라타자 실비아도 세비스를 뒤에 매달고 림보의 위에 올라탔다.
“터보 주행!”
잉, 이이이이이잉!
돌아가는 길엔 던전 공략이 완료된 덕에 폭주하는 외제마를 막을 방해물들이 없었다. 외제마들은 앞을 막는 바위를 뛰어넘고 표면장력으로 물을 건넜으며 모세의 기적을 일으켜 순식간에 저택으로 일행들을 데려갔다.
짐을 풀고 간단하게 몸을 씻은 그들은 오랜만에 산해진미로 가득 찬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노엘이 우아한 몸짓으로 스테이크를 자르며 실비아를 바라봤다.
“다음 주면 엘리셔스 제국의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인 성년의 날 축제가 시작되는군요. 생각보다 던전 공략이 빨리 끝났으니 축제 시작 전까지 여기서 쉬다 가시는 건 어떨까요.”
“와! …아….”
실비아는 쉰다는 말에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려다가 업보 시스템을 떠올리곤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정말 쉬고 싶다…. 하, 그런데 쉬면 업보가 쌓인다고….’
그리곤 힘없이 입을 열었다.
“쉬는 거 좋죠…. 좋은데…. 혹시 이 저택에 잡일꾼은 필요 없나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는데.”
“네?”
“그게…. 저는 팽팽 놀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라서요.”
실비아가 굳은 표정으로 노엘을 바라봤다. 그 표정은 그녀의 속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더없이 성실한 이의 올곧은 얼굴로 보였다.
노엘은 그녀의 엄청난 성실함에 다시 한 번 놀라 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루쯤은 쉴 법도 한데 일개미가 따로 없었다.
‘실비아 님은 항상 성실하시구나. 어릴 때부터 새벽 기도를 하며 성실하게 사제 교육을 받은 나조차도 고생했으니 며칠간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신이 선택한 영웅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걸까?
노엘은 경건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 것으로 보이는 - 실비아를 감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몸이 반응했기에 신탁의 내용대로 그녀가 저를 스스로 서게 하는 영웅이라고 생각했을 뿐, 어째서 신이 실비아를 선택한 건지 살짝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노엘은 저를 스스로 서게 하는 건 물론이요, 남다른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 실비아야말로 누구보다 훌륭한 영웅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실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든다면 실비아 님이 아닐까. 알면 알수록 정말 멋진 여자야. 더 가까워지고 싶어.’
노엘은 조만간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업보 시스템을 속으로 원망하며 쌍욕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그윽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식사 후 여독을 풀기 위해 반신욕을 하고 전신 마사지를 받은 실비아는 푹신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오랜만에 남신을 만나게 되었다.
‘어? 여기는?’
새하얗게 빛나는 빈 공간 속,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리니 훌륭한 근육질의 상반신이 바로 들어왔다. 놀란 맘을 다독이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보이는 나풀나풀한 실크 소재의 바지가 익숙했다.
‘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실비아가 근육질의 상반신을 구경한 뒤 고개를 들자 깎아 만든 것 같은 완벽한 턱선, 시원하게 찢어진 입매, 그 외엔 빛으로 가려져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 남신이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혹시나 뚫어져라 쳐다보면 얼굴이 보일까 싶어 눈을 찡그리고 있다가 그가 손을 눈앞에서 흔들자 민망해져서 얼굴을 뒤로 물렸다.
“안녕? 오랜만이네.”
“…왜 이렇게 가까이 있어요.”
‘고맙게시리….’
실비아가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신이 큭- 하고 조그맣게 웃더니 곧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고맙다니, 넌 여전히 솔직하구나?”
“뭐야, 제 속마음을 읽은 거예요? 너무해요!”
그녀의 경악한 표정에 남신이 배를 잡으며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굴려 침대 밖으로 나가더니 의자를 소환해 앉았다. 그가 멀어지자 실비아는 아쉬운 얼굴을 했고 그녀의 반응을 본 남신이 이젠 눈물을 닦는 제스처를 취하며 낮게 웃었다.
“크크큭…. 아, 그만 웃겨. 실비아, 오늘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칭찬을 해 주고 싶어서 왔어. 그동안 널 위에서 지켜봤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잘해 주고 있더라.”
“잘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죠. 사실은…. 놀고 싶어도 업보가 쌓이는 바람에 놀질 못했어요.”
“나태지옥을 가냐 마냐가 달려 있는데 놀 생각을 하면 어떡해? 자나 깨나 일해야지. 죽기 전에 많이 놀았잖아.”
“휴…. 그건 그렇죠.”
실비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을 데로록 굴렸다. 노는 건 아무리 많이 놀아도 부족한 법인데 죽기 전에 많이 놀았으니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라니. 정말 잔인한 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다, 내가 이런 썩어빠진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나태지옥 입주 후보가 된 거지…. 정신 차려야지.’
그녀가 이마를 손바닥으로 딱딱 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남신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수다는 이쯤 하고, 사실 칭찬하러 온 것도 있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왔어. 오늘 네가 공략한 신전은 사실 내 신전이었거든. 성공적으로 정화를 완료한 덕택에 힘이 조금 돌아왔어.”
“와! 정말요? 어쩐지 청소하고 싶더라니!”
“그리고 또 하나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마을 주민들에게 앞으로 그 신전을 잘 관리해 달라고 말해 줘. 정화가 완료됐다고 해도 신전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오염된 기운으로 뒤덮일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의 말에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신이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손가락을 딱 부딪쳤다. 그러자 허공에 상자 두 개가 두둥실 떠올랐다. 하나는 붉은색, 하나는 푸른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