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저 건방진 손을 공손히 모아 빌게 해주겠어.’
실비아가 앞으로 나가자 묶여있던 주민 중 한 명이 그녀를 발견하고 놀라 소리쳤다.
“어? 사람이다! 저희 좀 도와주세요! 터번은 절대 쓰기 싫어요.”
그가 소리치자 다른 주민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여길 나가야 해! 난 털 알레르기가 있어!!”
“에잉! 시끄러워!”
떼거리로 난리를 치자 뒤에 서 있던 여우들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위협했다. 여우의 서슬 퍼런 얼굴에 마지못해 입을 닫은 주민들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도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다.
“낄낄! 곧 금식 기간이니 우리 신도가 되면 3일간 하루 종일 쪼올-쫄 굶어야 할 거야! 크하하하.”
‘3일간 굶으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대신관 여우가 낄낄대며 하는 말에 실비아를 포함 일행들이 손을 입으로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뒤 보송보송한 앞발로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킬킬거리고 웃었다.
무대 위로 올라간 실비아는 비장한 얼굴로 뒤에 서 있는 일행들과 마을 주민들을 차례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 춤 한 번에 마을 주민들의 종교의 자유가 달려 있다…. 꼭 해내겠어.’
그러나 그녀가 무대로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춤 대결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기껏 올라간 실비아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무대 뒤쪽에 세워 놓더니 여우들이 개종식을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개짓거리지?’
실비아는 무대 위를 오르내리는 여우들에게 눈으로 의문을 표했으나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실비아를 무대 뒤에 세워 둔 채, 첫 번째로 커튼 같은 옷을 걸친 여우들이 웅장한 합창을 했고 뒤이어 대신관 여우의 신앙고백과 함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지겨운 설교가 한참을 이어졌다.
“읍읍!”
“우부붑!”
마을 주민들은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고 실비아는 바로 춤 대결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녀에게 올라오라고 한 대신관 여우의 비열함에 치를 떨었다.
‘사람을 올라오라고 했으면 바로 춤 대결이나 할 것이지 이게 뭐하는 짓이야.’
무대 뒤에 우두커니 세워 두기…. 이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사기를 떨어트리기 딱 좋은 수법이었다.
“이상, 대신관님의 3시간에 걸친 감동적인 설교였습니다. 아아! 이 어찌나 감동적인지.”
사회자 여우가 무대 왼편에 서서 감동한 표정으로 양손을 번쩍 들었지만 관객들은 조용했다. 다들 지겨운 설교로 장시간 귀 고문을 당한 덕분에 눈을 까뒤집은 것이 혼절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3시간? 씨발…. 대체 대결은 언제 하는 건데.’
계속 서 있어서 이젠 다리에 감각이 없을 지경일 찰나, 드디어 어제 강당에서 봤던 무대가 세팅되었다. 대신관 여우가 거들먹거리는 얼굴로 손가락만 까딱해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가 저린 다리 때문에 절뚝이며 무대 앞으로 걸어가자 그가 손톱인지 발톱인지를 손질하며 비웃었다.
‘저놈은 내 능력치가 간밤에 올랐단 걸 모르고 건방지게 굴고 있는 거다. 본때를 보여 준 뒤 저 재수 없는 수염을 다 뽑아버리겠어.’
대신관 여우의 옆에 서자 그가 고개를 까딱하더니 실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승부가 됐으면 좋겠군.”
‘좋은 승부 좋아하시네. 사람을 허수아비처럼 세워 두고…!’
실비아는 가까스로 분을 삭이고는 겉으로 방긋 웃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짓자 대신관 여우가 순간적으로 호오-? 하며 놀라워했다.
‘무대 뒤에 세워 놔서 화낼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감정조절이 능숙한 인간이로군.’
실비아는 방긋 웃으며 그의 보송보송한 앞발을 맞잡았다.
“이하동문이야.”
앞발을 잡은 채 힘을 주자 대신관 여우가 표정을 굳히더니 파드득 떨며 손을 뗐다. 여리여리하게 생겨서 보기보다 강한 실비아의 악력에 놀란 것이다. 놀란 그의 표정을 보며 실비아가 비소를 지었다.
‘이런 걸로 놀라긴, 춤을 보고 나면 놀라다 못해 까무러칠걸?’
잠시 손을 털며 끙끙거리던 대신관 여우는 그녀에게 곡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발을 옮겨가며 화살표를 누르니 천막의 화면이 이리저리 바뀌었다. 게임 모드까지 바닥의 화살표로 선택하는 게 오락실 게임이랑 시스템이 똑같았다.
‘역시 노점 게임…. 음악을 제 맘대로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서 게임조차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똑같이 베껴 왔어.’
분명히 음악은 물론이고 게임도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빙의 된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겼지만 잠시 개발자의 저작권 인식에 혀를 쯧쯧 찬 실비아는 무대 너머에 설치된 천막 위 화면을 보며 화살표를 눌러 신중하게 곡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화살표를 여러 번 눌러 게임 난이도를 높이자 대신관 여우가 휘이- 휘파람을 불며 감당하겠냐는 듯 혀를 내둘렀다. 반응하지 않고 화살표를 연속으로 눌러 설정한 모드는 나이트메어 모드. 즉, 이름만 들어도 미친 거 같은 크레이지 더블 모드로 2인용 발판을 한 명이 모두 사용하는 극악의 난이도였다.
화면을 보던 대신관 여우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봤다.
“이걸 그대가 할 수 있을까? 객기 부리지 말고 이지 모드를 선택하지 그래. 질 땐 지더라도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망신은 안 당해야 할 거 아냐.”
그의 말에 실비아가 앞머릴 숨을 불어 넘기곤 한쪽 볼을 혀로 굴렸다. 기선제압용 건방진 포즈였다.
“주둥이 다물고 구경이나 하시지.”
실비아의 말에 무대 밑에 있던 여우들이 야유를 보냈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음악은 그냥 어제 연습했던 베토벤 바이러스를 선택했다. 선택하고 나자 무대 밑에 있던 오케스트라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어차피 쟤들이 연주하는데 대체 화살표로 곡 선택하는 건 왜 있는 거야.’
미친 듯이 빠른 음악 속도를 어떻게 감당하는 건지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휘자 여우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정신없이 휘날렸다.
‘스킬이 효과가 좋아야 할 텐데.’
화살표가 화면에서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순간 실비아는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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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신체가 5분간 범인의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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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다다다다다다단-
미친 듯이 빠른 음악 속도와 함께 실비아의 춤, 아니 기행이 시작됐다.
왜 기행이냐고? 실비아는 그 순간만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냥 댄싱머신 그 자체였다. 화면에선 도저히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화살표가 올라가는데 실비아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에 따라 발과 손, 심지어 머리통까지 써서 미친 난이도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몸이 엄청 가볍다, 거기다가 스킬을 써서 그런가, 나 빼고 다들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데?’
심지어 소화해 내는 걸로 모자라서 화면을 보면서 춤을 추고, 남는 시간으론 관중들도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이건 정말 엄청난 스킬이었다. 실비아는 말 그대로 춤신춤왕 그 자체가 됐다.
물구나무, 브레이크댄스, 탭댄스, 팝핀…, 그것도 모자라 훌라댄스까지. 격하게 팔을 꺾다가 빠르게 발을 굴리다가 다시 물 흐르듯이 유연하게 몸을 휘두르며, 오만 춤이란 춤은 다 사용해서 화살표를 완벽하게 누르는 실비아의 모습에 무대 밑 사람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다.
“미쳤다!”
“훠우!!”
여우들도 마을 주민들이 흥분해 소리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리고 감탄만 연발할 뿐이었다.
“인간이 맞아? 연체동물 아닐까?”
“세상에나…. 머리털 나고 이런 건 처음 보는구만!”
종횡무진 더블 모드로 정신없이 스텝을 밟으며 동시에 현란한 춤사위를 구사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모두 다 혀를 내둘렀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대신관 여우도 대결 상대란 것을 잠시 잊은 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휘익!”
그는 실비아의 환상적인 춤사위를 보고 넋이 나가서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가 헙- 하고 놀라며 입을 닫았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 곡의 막바지가 왔다.
휘리릭. 휘릭.
실비아의 몸놀림이 얼마나 날쌘지 몸이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휙휙 들려왔다.
보는 이도 어지러울 정도의 현란한 춤 실력.
실비아는 윈드밀을 하다가 에어트랙까지 도는 등, 비보이 뺨싸다구 1천 대는 때릴 정도의 월드클라스 실력을 보여주었다. 만약 누군가 유튜X에 그녀의 춤 영상을 찍어 올렸다면 순식간에 1억 뷰를 찍었으리라.
마무리로 물구나무를 선 실비아가 화살표를 따라 머리통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이동하면서 헤드스핀 80바퀴, 거기다가 화살표도 하나도 빠짐없이 맞췄다. 정말 말이 안 나오는 경지였다. 80바퀴의 막바지엔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 덕택에 실비아는 팽이처럼 헤드스핀을 도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간에서 일어난 일로, 그 순간 실비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멍한 얼굴로 헤드스핀을 돌며 실비아는 사색에 잠겼다.
‘열반의 경지란 게 이런 걸까. 헤드스핀을 도는 이 순간…. 이 순간의 난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몸이 된 것 같아.’
결국 그녀는 성공적으로 헤드스핀 80바퀴를 마무리하고 쾅- 하고 마지막 화살표를 주먹으로 치는 것으로 크레이지 더블 모드를 완벽하게 클리어했다. 무대를 말 그대로 찢어 버렸다.
띠리리리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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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엡솔루트리 펄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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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가 올라가는 소리 후 웅장한 화면과 함께 ‘SSS’가 뜨고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약 2초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대신관 여우가 털썩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광장은 터질 듯한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