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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69화 (69/372)

69화

숙소로 돌아와 보니 림보는 한구석에서 유기농 당근을 씹고 있었고 세비스는 이부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다. 아직 시간은 이른 저녁. 원래라면 세비스가 잘 시간이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잘 시간은 아닌데…. 세비스! 자고 있어?”

깊이 잠든 건지 세비스는 대답이 없었다. 실비아는 순간적으로 둘의 모습을 본 게 세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세비스가 본 건가? 봤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잠시 뒤돌아있는 검은 머리를 쓰다듬은 그녀는 세비스의 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내일 생각한 아이템을 쓰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실비아는 세비스가 여전히 누워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어제 일찍 잠들었으니 일어날 법도 한데. 원래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애가 왜 아직도 자고 있을까.’

“세비스, 어디 아프니?”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보자 그가 끙- 하는 신음을 뱉더니 이불을 더 뒤집어썼다.

“…….”

“세비스?”

“…좀 더 자고 싶어요.”

‘낯선 곳에 와서 피곤한가. 그러고 보니 어제 던전 공략도 했고…. 계속 일찍 일어났으니 하루쯤은 푹 자고 싶을 수도 있겠네.’

아침부터 나가서 아이템을 쓰려고 했지만 피곤해하는 세비스랑 같이 가긴 무리로 보였다. 그녀가 쓰려는 아이템은 비밀상점에서 사은품으로 얻은 <던전 리젠권>. 춤 대결이니 민첩을 최대한 올릴 필요가 있었기에 오아시스 던전을 다시 살려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실비아는 뒤돌아 누워있는 세비스의 이불을 좀 더 끌어올려 준 뒤 토닥거렸다.

“그래? 춤 대결을 하기 전에 갈 곳이 있는데…. 노엘 님이랑 둘이서 갔다 와야겠네.”

실비아가 몸을 일으키자 가만히 있던 세비스가 갑자기 후다닥 뒤돌더니 떠나려는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뇨, 실비아 님! 괜찮아졌어요! 일어날래요.”

“더 자도 되는데…. 피곤하면 노엘 님이랑 둘이서 갔다 올게.”

“아니에요! 저도 같이 갈래요.”

어느새 쌩쌩해진 세비스가 순식간에 이부자릴 털고 일어나더니 과장되게 기지개를 켰다. 그의 퀭해진 눈가를 보고 실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따라오겠다면 말릴 건 없었다. 세비스와 노엘이 한두 대만 치게 하고 막타를 그녀가 다 먹어서 레벨 업을 할 생각이었으니 셋이서 가는 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가자.”

사막여우들을 피해 마을을 빠져나와 오아시스 던전에 도착한 실비아는 던전 리젠권을 사용하였다. 던전 리젠권은 말 그대로 던전을 다시 리젠하는 아이템. ‘아이템 사용’을 누르자 텅 비어있던 던전이 순식간에 재활성화가 됐다. 때려잡았던 오크들이 멀쩡히 던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 가자.”

퍽 퍽! 깡 깡! 쉑 쉑!

노엘과 세비스의 도움으로 그녀의 레벨이 빠르게 올라갔다.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하자 그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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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업! 34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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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과 세비스의 도움으로 막타만 주워 먹은 실비아는 금세 34레벨을 달성했다. 꼼수가 통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통했다.

‘실제 게임처럼 마지막 타격만 먹은 게 효과가 있었네.’

상태 창을 불러낸 실비아는 새로 생긴 분배 포인트 20을 모두 민첩에 투자해 민첩 150을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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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이잉? 실비아의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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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수상한 메시지와 함께 실비아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 축하 빵빠레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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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 150을 달성하여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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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새 스킬 획득이라니. 이거 엄청난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실비아는 얼른 상태 창을 열어 새로 생긴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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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눈보다 빠르다

- 스킬 사용 시 5분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빠르기로 움직일 수 있는 스킬. 주 무기 사용 시 명중률을 극도로 높여주며 도둑질, 도박을 할 때도 유용하지만 웬만하면 그런 목적으론 사용하지 말자.

*주의 : 자주 사용할 시에 상태 이상에 걸릴 수 있다. 또한 20 레벨 이상 차이나는 대상에게 사용 시 ‘간파’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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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스킬의 설명을 보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레벨 업 한 것만 해도 좋은데 이런 좋은 스킬까지 얻다니. 이 스킬이면 대장 사막여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춤 대결에서 혹시나 지더라도 이 스킬로 부메랑 망치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음, 우선은 대결을 하자고 했으니 망치를 쓸 일은 없겠지만….’

실비아가 시스템을 보며 생각에 빠져있는데 노엘이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정말 신기하네요. 다 물리쳤다고 생각했던 몬스터들이 다시 살아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실비아 님은 신의 뜻을 다 알고 계시겠죠?”

“네…. 아….”

‘게임 시스템을 설명하기는 좀 곤란한데, 어쩌지….’

실비아의 곤란한 낯빛을 본 노엘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당장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나중에 말하고 싶어질 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아…. 고마워요.”

‘역시 노엘 님은 배려심이 남달라…. 어쩜 얼굴도 사람 같지 않게 잘 생겼는데 속도 깊을까….’

역시 미남은 성격도 좋단 옛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실비아는 노엘의 배려심 깊은 성정에 감탄하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한편 뚱한 표정의 세비스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어제저녁 림보를 산책시키고 난 뒤 오아시스에 씻으러 갔다가 둘의 모습을 목격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늑대 왕국에서 제대로 성교육을 받기 전에 도망치는 바람에 남녀 간의 자세한 일을 모르는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능이란 게 있다. 뭘 모르는 그가 봐도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건 알 수 있었다.

오아시스에서 둘이 붙어있는 걸 목격하고 급하게 도망친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한동안 우울 모드를 유지하며 혼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했지만 노엘과 단둘이서 던전 공략을 가겠다는 실비아의 말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서 따라오고 말았다. 어제의 모습을 보고 난 후론 둘이 함께 서 있는 것만 봐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실비아 님이 누구랑 뭘 하든 집사인 내가 깊이 참견할 일이 아닌 건 알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야. 적어도 내 눈앞에서 둘이 저러는 꼴은 못 보겠어.’

기분이 저조해진 그는 마주 보고 있는 둘 사이에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애써 실비아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실비아 님, 이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은 다 공략한 거 같은데 숙소로 돌아갈까요? 챙겨 온 재료로 맛있는 스튜를 끓여 드릴게요!”

“그래!”

세비스는 옆에 서 있던 노엘을 힐끗 쳐다보고는 실비아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그녀가 자신이 한 요리를 무척 좋아한단 걸 알고 있기에 요리로 신경을 분산시켜 둘의 대화를 끊은 것이다.

세비스에게 손을 잡혀 질질 끌려가는 실비아를 바라보며 노엘이 황당한 듯 헛웃음을 쳤다.

‘…눈에 뻔히 보이는 질투를 하시네…. 실비아 님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야.’

현재는 노엘이 확실하게 우세하지만 세비스와 실비아가 같이 사는 한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실비아가 세비스를 마냥 애처럼 보고 있어도 - 그녀는 세비스가 성체가 되기만을 기도하고 있지만 노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세비스가 갑자기 성체가 되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건 절대 안 되지.’

노엘은 이번 던전 공략이 끝나면 그녀에게 꼭 같이 살자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굳힌 그가 둘의 뒤를 따라 걸음을 빨리했다.

세비스가 해 준 요리를 먹은 뒤 일행은 어제의 강당으로 갔다. 이제는 변장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할 필요가 없었다.

“어이, 따라들 와.”

강당으로 가니 졸개 여우가 그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얌전히 따라가니 너른 공터에 포박당한 마을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아이고! 이놈들아, 이 짐승 같은 놈들아. 아니 짐승들아!”

“집에 가고 싶어, 난 무교라고!”

“사막에선 살기 싫어, 하얀 피부가 다 탄단 말이야!”

다행히 주민들은 흑마법이 풀렸는지 제정신이었다. 그들이 단체로 절규하는 모습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실비아는 불쌍한 마을 주민들을 보며 손으로 입을 막곤 가까스로 침음을 삼켰다.

포박당한 마을 주민들은 뒤에 선 실비아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곧 다가올 강제 개종식을 두려워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실비아는 오늘 대결을 위해 활동성 좋은 바지와 간단한 셔츠를 걸쳤다. 머리도 포니테일로 질끈 묶었다.

‘이길 수 있다…. 난 이길 수 있어.’

그녀는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다독이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나름 아이템까지 써가며 민첩을 끌어 올렸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긴장으로 조그만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잠시 기다리자 광장에 마련된 단상으로 대신관 여우가 올라왔다. 그도 어제와는 달리 춤 대결에 제대로 임할 생각인지 긴 치마 같은 신관복 대신에 활동성 좋은 품 넓은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도 잠시, 실비아를 발견한 그가 말없이 손을 뒤집은 채 검지를 제 쪽으로 까딱였다. 단상 위로 올라오란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단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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