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말이 끝나자마자 대신관 여우가 재수 없게 웃으면서 대강당을 빠져나갔고 여우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사막여우 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강당엔 실비아 일행만 남았다. 그녀는 상태 창을 불러와 쓰지 않은 분배 포인트 50을 싹 다 민첩에 투자했다. 민첩은 한 번에 130이 되었다. 분배 포인트를 안 쓰고 모은 것이 의미가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포인트를 미리 다른 능력에 분배했다면 미니 게임에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비아는 허공에다가 주먹질을 해보았다. 쉭쉭- 민첩을 올리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스피드로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이 정도면 아까랑은 아예 다른 결과가 나오긴 하겠지만… 뭔가 부족해. 더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며 고민한 실비아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들을 훑어보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라면 대비할 수 있다. 대결은 저녁…. 그 전에 이 아이템을 써야겠어.’
아이템을 쓸 생각을 하니 실비아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녀가 발을 교차하며 빠르게 스텝을 밟고 있으려니 세비스가 곁으로 조용하게 다가와 속삭였다.
“실비아 님,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춤 실력이 무척 심각하시던데… 하루 연습한다고 달라질까요?”
세비스의 직설적인 말에 실비아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후후, 세비스, 내가 괜히 영웅이겠어? 나에게 다 방법이 있어. 두고 봐. 사막여우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어 줄 테니.”
노엘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신관 여우의 말이 참 무섭네요. 협회장님이 말씀하셨던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몬스터가 됐던 거 같습니다. 흠…. 도와주는 분이란 건 또 누굴까요? 오염된 기운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죠. 그가 누군지 밝혀내면 대륙을 오염시키는 세력의 정체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요.”
“사라진 마을 사람들처럼 되지 않게 대결에서 꼭 이겨야겠네요. 그리고 도와주는 분이라…. 그 자식이 누군지 몰라도 아주 아작을 내 버리고 말겠어요.”
실비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도와주는 분? 그놈이 아마도 최종 보스겠군. 최종 보스를 아작 내야 내가 천국으로 갈 수 있어.’
잠시 후 그들은 강당을 나와 오크 숙소로 돌아왔다. 혹시나 여우들이 기습할까 봐 걱정했지만 푹 쉬라는 대신관 여우의 말대로 숙소에는 쥐새끼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챙겨 온 요리 재료들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뒤 세비스는 림보의 성화에 말고삐를 쥐고 산책을 나갔다.
실비아는 숙소의 뒷마당으로 가서 시스템 창을 불러냈다. 기록 창을 보니 ‘미니 게임 연습하기’가 새롭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녀는 높아진 민첩을 시험할 겸 ‘연습하기’를 선택해 몇 번 스텝을 밟아보았다.
‘좋아, 많이 빨라졌군. 내일 대결 전에 그 아이템까지 쓰면 완벽하다.’
결과를 보며 흡족해하고 있기도 잠시. 온몸이 땀으로 절어서 찝찝해진 그녀는 몸을 씻으러 오아시스로 가기로 했다. 세면도구를 챙겨 숙소를 나서려는데 노엘이 그녀를 따라 나왔다.
“어디 가세요?”
“좀 씻고 싶어서요…. 오아시스로 가려구요.”
“같이 갈까요?”
“그래요.”
그들은 숙소 옆의 오아시스로 향했다. 신전을 감싸고 있는 작은 마을은 다행히 그들이 자그마치 150마리의 오크들을 도륙 냈기에 한산했다. 오아시스로 간 둘은 각자 풍성한 야자수로 가려진 별개의 공간에서 몸을 씻었다.
시원한 물로 씻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다 가셨다. 옷을 입고 가지고 온 수건으로 축축한 머리를 닦고 있는데 노엘도 다 씻었는지 촉촉해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귀뚜라미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오아시스와 사막이 어우러진 풍경은 무척 이국적이고 신비로웠다. 던전을 공략 중이란 상황만 뺀다면 해외여행을 온 거라고 착각할 만한 아름다운 경치였다.
밤하늘을 보며 잠시 감탄한 둘은 너른 바위 위에 함께 걸터앉았다. 머릴 말리는 실비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노엘이 부드럽게 입꼬릴 올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있던 그녀가 의문을 담아 노엘을 쳐다보았다.
“왜 웃으세요?”
“아뇨. 예전의 신전 우물가가 생각나서요.”
“아…. 헙….”
실비아는 그때의 망측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곤 얼굴을 붉혔다. 그녀 입장에선 흑역사였다. 지금에야 노엘이 넘어와서 다행이라지만, 그때의 자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물가에서의 미친 물 끼얹기에 이어 별 사이도 아닌데 옷을 대신 갈아입혀 달라고 하기까지. 변태지만 가끔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실비아로서는 민망한 과거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어. 물론 앞으로도 제정신이 아닌 일을 다른 공략 캐릭터들과 계속 해야겠지만 말이야….’
그녀가 흑역사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자 노엘이 부드럽게 웃더니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그녀와 콧잔등을 맞부딪히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부끄러워요?”
“부끄… 럽죠.”
노엘은 얼굴을 더 밑으로 내려 실비아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실비아 님, 정말 귀여워요.”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자 실비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녀는 입술을 가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여긴 누가 찾아올 수도 있는데….”
“입맞춤 정도야 뭐 어때요. 여기 살던 몬스터들은 어차피 저희가 다… 음, 어쨌든 한산하잖아요.”
노엘의 말대로 오아시스 근처는 그들이 전세 낸 것처럼 고요했다. 한산한 주변을 둘러보며 실비아가 마음을 굳혔다. 노엘과는 마지막 관계 이후 4일 내내 하지 않은지라 솔직히 말해서 정말 하고 싶었다.
‘키스 정도야 괜찮겠지?’
실비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노엘이 기다랗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감싸쥐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는 고개를 내려 조심스럽게 도톰한 입술을 머금었다.
“음….”
실비아의 입이 수줍은 듯 벌어지자 뜨거운 혀가 입술을 핥으며 느릿하게 들어왔다. 치열을 가볍게 훑은 촉촉한 혀는 그녀의 입안을 부드럽게 휘젓다가 작은 혀를 두드렸다.
두 혀가 얽히고 주고받는 숨결이 점점 뜨거워지며, 가볍게 시작됐던 두 남녀의 입맞춤은 점점 격해졌다. 날씬한 허리를 쥐고 있던 단단한 노엘의 손이 야릇한 손짓으로 가녀린 등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노엘의 위에 걸터앉게 된 실비아의 허벅지 사이로 흥분으로 부푼 남성이 적나라하게 닿아 왔다. 노엘은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다급하게 그녀의 등을 더듬다가 틈 하나 남기지 않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아…. 실비아 님, 안고 싶어요.”
“여기엔 할 만한 곳이 없는걸요. 조금만 참고 던전을 나간 뒤에 ….”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요.”
빈틈없이 그녀를 껴안은 노엘이 손을 내려 그녀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야릇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곤 곧 원피스 안으로 파고든 손이 속옷 위에 닿더니 은밀하게 아래를 어루만졌다. 실비아도 흥분한 상태라 그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손길을 즐겼다.
‘그래, 끝까지 할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스킨십은 괜찮지 않을까.’
노엘이 그녀의 아래를 더듬으면서 입술로 목과 쇄골 주변을 간지럽게 애무했다. 흔적이 남을까 조심하면서도 끈적한 스킨십이었다. 그가 양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더니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러자 뜨겁게 솟아있는 그의 것이 꺼덕거리며 실비아의 아래를 자극했다. 동시에 쇄골을 핥던 혀가 점차 내려와 봉긋하게 솟은 가슴골로 파고들었다.
입에서 신음이 나올 거 같은 느낌에 실비아가 저절로 몸을 틀자 노엘이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어 끌어당기며 집요하게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었다.
“으음….”
“하아…. 실비아 님의 몸은 정말 달콤해요.”
거칠게 한숨을 뱉은 노엘이 원피스를 양손으로 끌어내리자 그녀의 봉긋한 윗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얼굴을 내려 한쪽 가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쪽 가슴을 옷 위로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안 되겠는지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불쑥 그녀의 팬티 안으로 뜨거운 손을 집어넣었다.
은밀한 곳에 닿은 서늘한 손에 실비아의 몸이 기대감으로 움찔 떨렸다.
‘여기서 해도 되나? 돼… 안 돼… 돼…. 안 돼…!’
그녀는 속으로 갈팡질팡하다가 역시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순간에도 노엘의 손길이 너무 야릇했기에 입을 열자마자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흑, 잠깐…. 여기서 더는….”
파삭.
“??”
그때 수풀에서 난 인기척에 두 남녀의 행동이 멈췄다. 잠시 굳어 있던 그들은 고개를 빠르게 돌려 뒤를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누군가가 있는 기척을 느꼈던 실비아는 달아오른 몸이 팍 식는 걸 느꼈다.
“누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저만 들은 거 아니죠?”
“네, 저도 들었습니다. 몬스터일지도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몬스터였을까요? 다 죽은… 아니, 다 사라진 게 아니었나 봐요.”
‘설마 세비스는 아니겠지, 림보는 들켜도 상관없고.’
실비아는 찝찝했지만 이미 사라진 이를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 둘을 봤다고 생각하니 섹스 할 맛이 다 사라졌다. 관전플은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옷을 추스르자 노엘이 그녀의 가녀린 몸을 끌어안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어요.”
“에이, 아니에요, 저도 하고 싶었는걸요? 집으로 돌아가면.”
실비아는 촘촘한 눈썹을 내리깔고 미안해하는 노엘의 턱을 야릇하게 쓰다듬으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마음대로 해도 돼요.”
그녀의 이어지는 뒷말에 노엘이 숨을 격하게 들이쉬더니 입술을 다시 겹쳤다. 맞닿은 가슴으로 뜨거운 서로의 체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