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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67화 (67/372)

67화

어릴 때 봤던 만화들이 갑자기 뇌리에 스친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외치곤 망치를 집어 던졌다.

휘릭!

깡 깡!

건물 벽과 천장을 한 번씩 치고 지나간 부메랑 망치가 대신관 여우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어딜!”

“헉!”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몬스터 중 최초로 대신관 여우가 그녀의 망치를 손으로 잡아 버린 것이다.

“실비아 님!”

일행들이 놀라서 실비아를 부르며 달려왔다.

“아….”

망치를 잡다니. 심지어 새로 뽑은 무기라서 기존의 무기보다 강하다. 근데 아무렇지 않게 잡아 버리다니, 실비아는 절망감을 느끼며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레벨 차가 너무 컸나…. 여기서 게임 오버인가.’

실비아가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 ‘그동안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엔딩을 알리는 카페X네 노래가 흘렀다.

대신관 여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부메랑 망치를 잡곤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찰하더니 호-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꽤 괜찮은 무기로군. 그렇지만 그런 둔한 몸으론 날 이길 순 없지.”

“하아….”

실비아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뱉자 대신관 여우가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흐음, 보아하니… 당신들은 이 던전을 정화하러 온 사람들인가?”

“그렇다….”

실비아가 고개를 가까스로 들자 그가 망치를 가볍게 휙 던져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곤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실비아를 내려다봤다.

“이런 걸론 날 이길 수 없어. 그렇지만 기회를 주지. 내일 마을 주민들을 개종하는 개종식이 열린다. 그때 나와의 대결에서 이기면, 군말 없이 우리들을 정화할 수 있게 해 주겠다.”

“대신관님?”

당황한 사막여우들이 그를 쳐다봤다. 실비아를 포함 일행들도 그의 말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황당한 표정을 보면서도 대신관 여우는 팔짱을 낀 채 실비아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무슨?”

“난 요새 좀 심심하거든. 네가 날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면 얌전히 정화 당하겠단 소리야.”

그나마 다행인 소리였다. 이대로 게임이 오버 되나 싶었는데 먼저 대결 신청을 하다니,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실비아는 혹시나 그가 말을 무를까 봐 급하게 수락을 했다.

“좋아, 뭐든지 받아들일게.”

“푸하하, 뭘 줄 알고?”

대신관 여우가 붉게 물든 브릿지 앞머리를 넘기며 그녀를 비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턱을 추켜올리며 팔짱을 낀 채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결은… 춤으로 한다.”

‘저게 뭔 소리야!’

실비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신관 여우를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은 태연했다. 노엘, 세비스, 림보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경악한 일행들과 달리 다른 여우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과연, 춤이라면 대신관님을 이길 수 없지.”

“대신관님, 그건 저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인 거 같은데요? 대신관님의 춤 실력을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낄낄!”

“춤이라니, 무슨?”

실비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대신관 여우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부딪치더니 나머지 여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 맛보기로 한 번 보여 주지. 스테이지를 열거라, 음악 큐!”

뭐가 뭔지 몰라 실비아 일행이 벙쪄 있는 사이에 여우들이 수상한 무대를 구석에서 끌어왔다.

드르륵.

‘무슨 상황이지, 이건.’

무대가 갖춰지고 구석에 있던 오케스트라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실비아는 어딘지 많이 들어 본 음악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베토벤 바이러스?’

엉겁결에 대신관 여우를 따라 즉석으로 설치된 무대에 오른 실비아는 바닥에 화살표 버튼이 있는 걸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 화살푠데?’

그때 그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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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게임에 진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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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게임?’

앞을 바라보자 동네 오락실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화면이 천막에서 나왔다.

‘저건 빔 프로젝턴데?’

그리고 그녀가 밟고 있는 바닥의 화살표들 하나하나마다 밝게 불이 켜졌다. 가만 보니, 이건 딱 소싯적에 열심히 하던 오락실 게임 펌프였다.

‘이놈의 게임이 가지가지 하는구나. 펌프를 하라 이건가?’

펌프, 정확한 명칭은 펌프 잇 업은 그녀가 학창시절에 오락실에서 즐겨 하던 게임이었다.

천막에 나오는 게임 화면을 보니 다행히 이지 모드인 듯했다.

‘안 한 지 오래돼서 잘 되려나 모르겠지만…. 익숙한 게임이라서 다행이네!’

그녀는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천막에 뜨는 화살표대로 스텝을 하나하나 밟아갔다.

“엇, 어엇?”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그녀의 민첩이 너무 낮다는 것. 실비아의 생각과는 달리 스텝은 현란하게 밟아지지 않았고, 미스가 몇 개 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헛발질을 하는데 그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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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이 너무 낮아서 몸뚱어리가 생각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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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메시지와 함께 실비아의 몸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움직였다.

띠리리링. 점수를 집계한 시스템 창엔 결국 D등급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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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god! 이것밖에 못 하나요? 민첩이 너무 낮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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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뭣 같은…. 현생에서랑 달리 몸이 너무 느려. 민첩을 올렸어야 했는데.’

반면에 그녀와 달리 대신관 여우는 A등급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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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h! I know you can. 꽤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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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점수를 볼 것도 없이 나무토막 같은 실비아와 비교되게 솜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대신관 여우의 몸짓만 봐도 승부는 이미 명명백백한 셈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자 여우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다. 대신관 여우가 실비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완전 나무막대기가 따로 없군. 기회를 줄 때 도망치는 게 어떨까?”

‘저게 무슨 대신관이냐…. 춤꾼이지…. 후.’

고민하는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자 주변 여우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 춤 한번 더럽게 못 추네!”

“이제라도 도망쳐라, 인간!”

‘열 받네….’

그 비웃는 소리들을 듣다 보니 실비아의 가슴 속에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한창때 오락실에서 지겹도록 하던 게임인데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민첩을 올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서 도망칠 순 없지.’

실비아의 얼굴을 힐끗대던 대신관 여우가 붉은 브릿지 털을 옆으로 넘기며 주둥이 한쪽을 비열하게 올렸다.

“그 실력으로 이길 수 있겠어? 날 이긴다면 얌전히 네가 원하는 대로 따르겠지만, 진다면 내일 개종식에 너희들도 참여하는 거다. 어떤가?”

“개종식?”

“기껏 흑마법이 걸린 쪽지를 돌려서 마을 사람들을 신전으로 불러왔는데 좋은 말로 권유하니 신도가 되기를 거부하더군. 어쩔 수가 있나. 싫다면 강제로 개종시킬 수밖에!”

“뭐? 마을에서 봤던 쪽지는 역시 너희들이 뿌린 거였군.”

“그래, 쪽지에는 사탕을 붙여 두었지. 사탕을 먹은 주민들은 모두 흑마법에 걸려 신전까지 스스로 걸어들어온 거고 말이야! 하하하하!”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쪽지에 붙은 사탕을 먹은 주민들은 모두 홀린 듯이 제 발로 신전으로 걸어 들어갔고, 실비아 일행과 집사가 본 쪽지는 이미 누군가 사탕을 먹고 버린 쪽지들이었던 것이다. 공짜 사탕이 핵심이었지, 쪽지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쪽지는 대충 ‘우리 종교로 오세요.’ 같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공짜를 탐한 것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우편함에 공짜 사탕이 붙은 쪽지가 있다면 누구든 선뜻 그 사탕을 먹었을 것이다. 소수의 의심이 많은 사람들 빼곤 말이다.

‘사탕으로 주민들을 꼬시다니… 이런 비겁한.’

실비아가 입술을 깨물며 대신관 여우를 노려보았다. 그는 손톱을 손질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 광장에서 우릴 도와주는 분에게 받은 성수를 그들에게 뿌리고 터번을 씌우며 강제 개종식을 가질 예정이다. 세례를 받고 나면 초록오크가 되어 우릴 돕게 되지. 드디어 내일이면 우리 던전에도 인간 출신 몬스터들이 생겨나게 되겠군! 겁난다면 지금 도망쳐도 좋다, 난 관대하니까! 하하하!”

여우가 양손을 활짝 펼치더니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었다. 옆의 부하 여우들도 수염을 움찔거리며 같은 포즈로 웃자 실비아가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인간들을 몬스터로 바꿔 버린다니 정말 최악이네. 전투 신관 협회장이 말했던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아마도 몬스터로 변했던 거겠구나. 나도 변하지 않으려면 내일 대결에서 꼭 이겨야겠는걸.’

대결에서 져서 몬스터가 된다면, 죽은 건 아니나 세뇌를 당한 상태라서 네버엔딩 상태가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진다면 도망치거나 아니면 데드엔딩을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 되네….’

지금 당장은 승산이 없었지만, 실비아는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다음 주가 바로 성년의 날 축제였기에 지금 도망쳐 버린다면 스토리 진행이 꼬일 것 같단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갈 길이 구만리야. 루카도 공략해야 하고 세비스도 빨리 성체로 만들어야… 한다. 펌프는 나한테 익숙한 게임이니 민첩만 올리면 돼.’

“아니! 승부를 받아들이겠어. 그 대신 내가 이기면 얌전히 정화를 받는 거다. 그리고 지면 개종식에 참여하라고 했지? 그럼 나도 조건을 하나 더 걸겠어. 내가 이기면 마을 주민들도 풀어 주는 걸로 해. 어때?”

잠시 움찔한 대신관 여우는 3초 정도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비열하게 입꼬릴 올렸다.

“…그래, 좋다. 어차피 넌 못 이길 테니까! 하하하! 그럼 어차피 질 테니 푹 쉬어 둬. 곧 내 신도들이 될 텐데 체력 낭비를 하게 할 순 없지! 내일 저녁까지 몸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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