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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66화 (66/372)

66화

“히이잉….”

림보는 실비아의 집보다 후줄근한 숙소에 있어 불만이 있을 법도 했지만 눈치는 있었는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쩐지 일행의 눈치를 보는 듯도 해 안쓰러워진 실비아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왜 그러니 림보? 네 덕에 더 빨리 마을로 올 수 있었잖아.”

“히잉….”

“아니, 얘 왜 이래? 우리가 잡혀 온 것도 아니고 무사히 마을로 들어왔잖아? 오아시스에 있을 걸 그랬다고 한 말 때문에 이러나 보네. 그러게 누가 맘대로 열매를 주워 먹으래?”

시무룩.

림보가 세비스의 말에 풀이 죽어 고개를 조용히 숙이자 세비스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찌 됐든 마을로 무사히 들어왔으니까. 그래도 이번 일로 아무거나 주워 먹다간 큰일 날 수 있단 걸 배웠지? 앞으론 조심해서 음식을 주워 먹도록 해!”

끄덕.

림보가 그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세비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림보의 옆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말 녀석’거리더니 림보가 기가 죽은 모습이 은근히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두 짐승의 훈훈한 모습에 실비아가 살짝 미소 짓곤 힘없이 벽에 기댔다.

“별일이 다 있네, 세비스. 비슷하게 변장하긴 했다만 몬스터들이 우릴 자기네 동료로 인식하다니 말이야.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예상이 안 돼.”

“음, 해안 동굴과 갯벌의 경우엔 고위 몬스터가 없는 하급 던전이라서 쉽게 공략이 가능했지만 지능이 있는 고위 몬스터가 있는 던전의 경우엔…. 음, 저도 공략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신탁만… 믿는 수밖에 없겠어요. 실비아 님은 영웅이시잖아요.”

그의 말에 실비아가 어색하게 입꼬릴 올렸다. 영웅…. 오그라드는 단어였다. 자신은 사실 나태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게임에 빙의 한 플레이어일 뿐인데 말이다. 거기다가 영웅치곤 너무 변태였다. 남자한테 껄떡대다가 두 번이나 죽었으니깐. 세이브가 되지 않았다면 게임 빙의 하루 만에 나태지옥으로 갈 뻔했다.

‘다행인 건 이 게임은 남자한테 껄떡대면 댈수록 좋은 엔딩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지.’

역시 최선을 다해서 껄떡대야겠어…. 라고 생각하며 실비아가 미소 짓고 있는데 노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탁이라. 신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노엘과 세비스는 변태 같은 미소를 짓는 실비아를 눈치채지 못한 채 신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세비스가 받은 신탁 이야기를 들은 노엘은 그제야 둘이 살게 된 이유를 완벽하게 납득하게 되긴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실비아 님이 영웅이 될 거란 신탁을 들었어. 그리고… 깊은 관계가 됐지. 근데 왜 세비스만 같이 사는 건지, 이건 불합리한 것 아닌가.’

질투에 휩싸여 유치한 생각을 하던 노엘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에 눈을 번쩍 떴다.

‘아니지, 세비스 님도 같이 살고 있으니, 신탁을 받은 나도 같이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던전 공략이 있을 때마다 신전에 휴가를 내고 실비아 님을 옆에서 도우면 된다.’

즐거운 상상에 노엘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어두워져 있던 노엘의 낯빛이 갑자기 본 적 없이 밝아지자, 어두운 방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실비아는 갑작스럽게 눈알을 강타하는 강렬한 빛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크악….”

‘으아아, 이 빛은 뭐람, 노엘 님이 활짝 웃어서 그런 거구나…!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가 없는걸.’

제대로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는 노엘의 얼굴에선 형광등 1천 개를 켜놓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는 실비아만 느낀 게 아닌지 세비스도 림보도 눈을 가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이잉!”

“잠깐, 너무 밝아요. 자제 좀 해 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좋은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신이 나서 그만….”

노엘이 부러 제 낯빛을 살짝 어둡게 하자 후줄근한 방안을 눈부시게 밝히던 빛이 사라졌다. 신이 나서 실비아에게 당장 같이 살자고 말하려던 노엘은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이런 중요한 말은 이런 상황에서 할 게 아니지. 나중에 해야겠다.’

노엘은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려고 해 입을 가리곤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방 안이 밝아져서 일행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면 곤란할 테니 자제해야 했다.

계속 실없이 웃어대는 노엘을 보며 실비아는 고개를 조그맣게 저었다.

‘백작가의 영식으로 귀하게 커서 어릴 때부터 신관 교육을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랐을 테니 충격이 컸나 봐. 꼬질꼬질한 몬스터 숙소에서 밤을 보내야 한단 사실에 실성하신 건 아니겠지? 걱정된다….’

그녀의 생각을 모른 채 노엘은 계속 조그맣게 실실 웃었고 세비스와 림보도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젓곤 혀를 쯧쯧 찼다. 림보가 속닥… 하고 세비스에게 뭐라 귓속말을 시도하자 그가 귀를 털어 대며 질색을 했다.

“야, 나한테 말 걸려고 하지 마. 알아듣고 싶지 않거든?”

‘세비스, 쟨 또 왜 저럴까. 림보가 어떻게 말을 한단 건지…. 오크 숙소가 사람 여럿 망치는구나….’

노엘은 계속 실실 웃으며 벽에 몸을 기댔고, 림보는 뭐라 뭐라 세비스에게 말을 걸어 댔으며, 세비스는 귀를 털며 그런 림보를 외면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혼란 대파티였다.

실비아는 멍하니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오크 숙소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 * *

다음 날, 불안함에 잠을 설쳐 일찍 깬 그들은 숙소에 있는 괴상한 음식들을 보고 질색을 하며 가방에서 육포와 빵을 꺼내 허기를 달랬다. 어두울 땐 잘 몰랐는데 숙소 바깥으로 나와 보니 던전 안의 마을은 주민이 거의 없이 휑했다.

“실비아 님, 도저히 못 참겠어요. 멀쩡한 물을 좀 찾아보죠.”

“그래…. 나도 죽겠어.”

조금만 움직여도 옷 안으로 모래가 마구 들어오는 사막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몬스터를 잡았기에 그들은 무척 찝찝했다, 그러나 오크 숙소의 욕실에선 녹물밖에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지 못했었다. 일행들은 더 참지 못하고 씻을 곳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아 숙소 바로 옆에 조그만 오아시스가 있는 걸 발견했다.

몬스터에게 들킬세라 순서대로 오아시스에서 몸을 씻은 뒤, 그들은 다시 초록색 로션을 바르고 터번을 둘러썼다. 다행히 초록색으로 위장을 마친 후 대장 사막여우가 숙소로 찾아왔다.

“일어들 났나? 바쁘니까 빨랑빨랑 움직이자고.”

“예, 예….”

그를 따라 움직인 일행들은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확실히 오염된 기운으로 맛이 가긴 한 모양이야, 이렇게 허술한 변장을 했는데 밝은 대낮에도 의심 한 톨 하지 않다니.’

신전으로 들어가니 신관 옷을 입은 사막여우들이 몇 있었다. 다들 레벨 40이 넘어 보였기에 실비아는 만만해 보이면 망치를 꺼내서 바로 대가릴 후려치려고 했던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아-!”

대강당으로 따라가니 한 무리가 아-! 아-! 하면서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고, 구석에선 율동과 함께 노래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해 하던 실비아 일행도 엉겁결에 그 무리에 동참했다. 관찰을 해 보니 합창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행사길래 합창을 준비하는 거지?’

“모두들, 개종식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실비아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그는 터번 아래 보이는 앞머리, 아니 앞 털에 브릿지를 한 껄렁거리는 사막여우였다.

‘사막여우 중엔 가장 잘생겼지만, 사막여우는 사막여우일 뿐….’

실비아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잘생겼긴 하지만 인외 영역은 실비아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때 남자(?)들이 떼거리로 있어서 그런지 <동정 레이더>가 제멋대로 켜졌다. 삐삑, 소리와 함께 <동정 레이더>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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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이 아니라 공략 캐릭터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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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자동적으로 대강당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의 동정 여부가 순식간에 스캔이 됐다. 몬스터들은 그래도 인생 헛살진 않았는지 대부분 동정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강당 안을 스캔한 <동정 레이더>를 보며 실비아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 팔을 문질렀다.

‘몬스터도 공략 대상에 포함이 되긴 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사막여우는 좀 빼줘. 이건… 29금 섹슈얼 로맨스가 아니라고!’

잘생겼다곤 생각했지만 그건 진돗개를 보면서 고놈 참 잘생겼네, 하는 거랑 비슷한 감상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변태여도 직립보행을 할 줄 아는 잘생긴 사막여우를 공략하는 지경이 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도 동정이 아니라 공략 대상이 아니란 메시지가 떴기에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동정 레이더>가 반응했단 거 자체가 너무 끔찍하지만, 공략 캐릭터가 아니라 천만다행이군.’

실비아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그들을 데려온 대장 사막여우가 브릿지 사막여우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대신관님, 오셨군요.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간들은 뭐지?”

대신관이라고 불린 여우가 실비아 일행을 정확히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리자 대장 여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들이라뇨? 오크들이잖아요.”

“멍청하긴, 인간들이잖아!”

“예? 으어억!”

“세상에!”

대신관 여우의 말에 사막여우들이 깜짝 놀라더니 귀를 쫑긋대며 허둥지둥 실비아 일행을 피해서 흩어졌다.

‘이제야 알아채는 여우가 하나 생겼군. 제정신인 놈이 한 놈은 있었구나….’

대신관 여우가 일행들을 둘러보더니 실비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네가 대장이구나.”

“눈치가 빠르군.”

실비아는 인벤토리에서 부메랑 망치를 꺼내 들었다. 새 무기를 시험해 볼 기회였다.

‘부메랑처럼 던지면 되는 건가? 처음 써보니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라, 모르겠다!’

“가… 가랏, 사랑과 정의를 위해!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부메랑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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