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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60화 (60/372)

60화

“빨리요? 림보를 빨리 몰아본 적이 없는데.”

“훗…. 자, 열쇠를 들고 저를 따라 하시면 됩니다.”

노엘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열쇠의 버튼을 누르며 ‘터보 주행!’을 외치자 외제마가 부앙, 부앙, 부아아앙! 거리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앞으로 달려갔다. 실비아는 그 모습에 턱이 빠져라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고삐를 단단히 부여잡고 노엘을 따라 똑같이 외쳤다.

“터보 주행!”

부앙, 부앙, 부아아아아앙!!!

실비아의 말에 림보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쩍이더니 굉음과 함께 미친 듯이 빠르게 노엘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에 세비스는 놀라 실비아의 허리를 세게 잡았다. 거센 바람이 둘의 뺨따구를 사정없이 때리며 지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림보의 양옆에 가죽으로 매달려 있던 가방이 위로 솟아오를 정도였다.

쌔앵-!

“아이코야!”

쌔앵-!

“폭주마가 사람 치겠네!”

두 폭주마는 미친듯한 빠르기로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무법자가 따로 없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말이 순식간에 달려가자 길을 걷던 행인들이 물러나다가 어이쿠!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실비아를 뒤에서 꽉 잡고 있던 세비스는 입을 때리는 바람을 맞아가며 흥분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으부부부부, 엄청난 속도다. 미친 속도야!! 자유다! 무한한 자유가 느껴져요, 실비아 님!”

“으부부부부, 엄청나다. 림보 넌 최고의 말이야! 정말 죽여주는구나!”

미친 속도감으로 노엘의 외제마를 따라잡은 림보는 그 후 함께 속도를 맞춰 터보 주행을 했다.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난 고급 외제마들은 울창한 숲을 지나며 나무들을 쓰러트렸고, 얕은 강물도 중력을 이기는 속도로 가볍게 밟고 지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아 고풍스러운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끼이익!

터보 주행 덕택에 원래라면 하루는 꼬박 걸렸을 노엘의 별장을 3시간 만에 도착했다. 실비아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안장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부자들은 시간을 돈 주고 산다더니… 그 말이 이 말이었구만….’

“여러분, 도착했어요. 정신 차리셔야죠.”

노엘의 말에 실비아와 세비스는 바람을 맞아 수세미 머리가 된 채 말에서 비틀비틀 내려왔다. 순간이동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게임 속인데 이동 포털 이런 거 없어? 왜 굳이 말한테 터보 주행을 달아 놓은 건지….’

멍해져 있는 실비아의 얼굴 위로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미친 속도로 달리느라 몰랐는데 꽤 멀리 이동한 건지 대기 중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이 지역은 가을 날씨인 건가.’

북부지역으로 올라온 탓에 날씨가 약간 서늘해져 던전을 공략하면서 더위를 탈 일은 없을 듯했다.

터보 주행 때문에 정신없이 헝클어진 머리를 진정시킨 실비아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록달록한 단풍 옷을 차려입은 조그만 산이 저택을 뒤에서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의 정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터보 주행을 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커다란 개울과 그들이 건너왔을 대리석 다리가 보였다.

‘배산임수로구나. 역시 부잣집은 별장을 지어도 노른자 땅 위에 짓는단 건가.’

산과 개울에 둘러싸인 노엘의 별장은 그의 이미지와 걸맞게 우아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별장 앞에는 아늑하고 잘 꾸며진 정원이 있었고 조그만 분수대도 있었다.

별장관리인인 집사와 사용인들이 일행들을 반갑게 맞으며 안장에 메 놓은 짐들을 옮겨 들었다. 림보와 노엘의 말은 마부가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사용인들을 따라가니 식사 때에 맞춰 하얀 식탁보가 깔린 긴 테이블에 화려한 정찬이 차려져 있었다. 식기들도 하나같이 번쩍번쩍한 게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실비아는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조차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고급스러운 노엘의 저택을 둘러보며 그가 부잣집 아들임을 여실히 깨달았다.

‘노엘 님 집이 생각보다 더 부자구나. 루카도 부자고. 나만 빼고 게임 속 사람들이 다 부자인 거 같단 슬픈 생각이 드네. 아니다, 다행히 옆에 있는 세비스는 나랑 다를 것 없는 거지 신세지….’

실비아는 안심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세비스를 눈만 굴려 바라보곤 혼자 동질감을 느꼈다.

“??”

그녀의 시선에 세비스가 영문을 모른 채 미소 짓자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렸다.

식사를 하기 전 갑작스럽게 별장의 관리인인 중년의 집사가 노엘에게 찾아와 옆에 서서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고… 흑흑…. 도련님, 요새 잘 못 드십니까? 얼굴이 왜 이렇게 수척해지셨어요.”

실비아는 그의 말에 노엘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멀쩡해 보이는데 왜 저러지?

‘늘상 그렇듯이 성스럽고 아름답기만 하구만…. 아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처음보다 좀 낯빛이 안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요새 너무 무리를 시켰나.’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엘의 얼굴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잡티 하나 없던 백옥 같은 얼굴에 다크서클이 살짝 생성된 게 보였다. 평생을 잘 보전해 오던 정력을 요 며칠 내내 쭉쭉 빨렸으니 몸이 축날 만도 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 누르며 눈물을 훔치는 중년의 집사에게 노엘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집사님.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있어요. 뭐든지, 잔뜩 말이죠.”

그가 말을 마치곤 고개를 돌려 눈웃음을 치며 실비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모습에 왠지 실비아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에 급하게 포크를 집어 들곤 눈앞에 있는 샐러드를 떠 입에 넣었다.

‘설마, 잘 먹고 있단 게 나 말하는 거야? 어머머… 요망하긴…. 좋아죽겠네, 정말.’

실비아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시키려 노력했다. 옆에 세비스만 없었다면 집사를 물리고 당장 테이블의 음식을 바닥에 다 던져버린 다음에 노엘과 뒹굴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세비스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뒤 맛있게 식사를 시작했다. 노엘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식사 기도를 한 뒤 수저를 들었다.

즐겁게 식사를 마친 후 실비아 일행은 넓고 화려한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갓 구운 고급쿠키와 향긋한 허브 티를 마시며 티 타임을 즐기고 있자 실비아는 이제야 게임 빙의한 맛이 제대로 난다고 느꼈다.

‘게임 시작을 이런 저택에서 시작하면 좀 좋아? 1.5룸 림보 마구간보다 못한 그 거지 집 말고…. 참 좋다.’

실비아와 세비스가 쉴 틈 없이 쿠키를 집어 들어 입에 털어 넣자 노엘이 흐뭇한 표정으로 부족하면 더 가져오라고 할 테니 실컷 먹으라고 말했다. 그들이 저택의 쿠키를 다 아작 낼 기세로 섭취하는 사이, 노엘은 아까의 중년 집사를 불러 이 지역의 상황을 물어봤다.

“요새 이상한 일은 없나요?”

“음, 글쎄요…. 아, 맞다! 하녀 말로는 최근에 시장에서 망토를 뒤집어쓴 수상한 무리가 장을 보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답니다. 시장 상인의 말로는 얼굴색이 좀 이상했다고 했다던가?”

“흠…. 그 외에 다른 건 없었나요?”

“음… 그러고 보니! 뒷산 동물들이 줄었어요. 이상한 일이지요? 원래는 토끼랑 사슴, 멧돼지 같은 것들이 풀을 뜯다 보면 가끔 발견되곤 했는데 말이죠.”

“그렇군요….”

노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집사가 뭔가 기억난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 우편함에 이상한 쪽지가 꽂혀 있어요. 잠깐만요.”

집사가 하녀를 불러 쪽지들을 가져오게 시켰다. 쪽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처음 보는 언어들이 적혀 있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 버프로 게임 세계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실비아는 물론 노엘도 읽을 수 없는 언어였다.

“몬스터들의 언어일까요? 이 쪽지를 쓴 이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글쎄요….”

하녀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얹었다.

“도련님, 그거랑 비슷한 쪽지들이 마을 전역에 뿌려지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마을 사람들 말로는 꼭두새벽에 정체 모를 무리가 그 쪽지를 집집에 꽂아두고 간다고 하더라구요.”

노엘과 실비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끙- 하고 신음을 삼켰다. 이 일련의 행동들은 뭘 뜻하는 걸까?

하녀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요새 말없이 사라지는 마을주민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노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수도의 전투 신관 협회에 연락해서 조언을 구해 봐야겠어요.”

“전투 신관 협회요? 그건 대체 무슨 협회인가요.”

“수도나 국경지대에 가끔 오염된 몬스터가 나오는데, 그 몬스터들은 일반적인 힘으로 물리치기 어렵기에 그것들을 정화하기 위해서 전투 신관 협회가 존재합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엘베우스 신은 전쟁의 신이기에 저희 신전의 신관들은 모두 다 전투 신관이고, 다른 신전의 경우엔 제국의 요구에 따라 소수 인원으로 꾸려진 전투 신관들이 있지요. 우리가 갈 신전은 오랫동안 오염되어 있었기에 전투 경험이 많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합니다.”

“음…. 전투 신관들이 있는데, 왜 저희가 갈 신전은 정화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죠?”

“각개 신전의 전투 신관들을 모은 협회는… 황실 산하의 기관입니다. 말하자면 협회에 소속된 사람들 모두 황실 소속인 셈이죠. 평소엔 신관 일로 바쁘신 분들이기에 황제 폐하가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치되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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