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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57화 (57/372)

57화

실비아가 신경질을 내며 삽을 들어 팍팍 갯벌을 파내고 있으려니 세비스도 같은 기분인 듯 찌푸린 표정으로 그녀의 곁에 다가왔다.

“참 성가시네요? 효율성이 없어 보여요.”

그때 세비스가 뜬 삽에서 안에 숨어 있던 낙지가 튀어나왔다. 보라색 낙지는 한눈에 봐도 먹었다간 탈이 날 것 같았다.

[오염된 낙지]

실비아가 급히 꺼내 든 망치로 깡! 꿈틀거리는 낙지를 후려치니 그가 잠시 흐물흐물거리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안에서 구슬이 하나 튀어나왔다. 마치 곤히 자는 것처럼 보이는 낙지를 실비아는 영문을 모른 채 바라보았다.

‘어? 자는 건가…. 아니다! 아이템 때문이구나!’

낙지가 체액을 토하며 고꾸라지지 않은 것은 비밀상점에서 산 아이템 덕분이었다. 이제 <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의 효과로 몬스터를 처치해도 못 볼 꼴을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자는 것처럼 보이니까 마음은 편하네.’

실비아는 아이템의 효과가 맘에 들었다. 새 아이템은 던전에 같이 있는 동료에게도 효과가 있는 건지 세비스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낙지를 바라봤다.

“얘 왜 이러지? 갑자기 망치로 후려쳤더니 잠을 자네요?”

“그건… 죽은 거 맞아.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일 뿐…. 신이 주신 한 가지 능력을 더 깨달았다고나 할까. 자는 것처럼, …죽이기.”

실비아는 ‘죽이기’란 단어에서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세비스는 엎드려 자는 것 같은 낙지를 관찰하며 신기해했다.

“곤히 자는 거 같네. 흔들어 깨워 볼까.”

“죽은 거 맞으니까 그냥 계속 공략이나 하자.”

실비아의 말에 세비스는 호기심을 접곤 삽질에 집중했다. 몇 번 삽질을 해서 몬스터를 파내면 실비아가 망치로 후려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몇 번 반복하던 세비스가 성질내면서 삽을 집어 던지더니 급하게 해안가로 뛰어갔다.

“세비스, 어디 가?”

“변신할래요. 도저히 안 되겠네.”

갯벌을 빠져나가 황급히 바위 뒤로 숨은 세비스는 잠시 후 늑대로 변신해서 헥헥대며 돌아왔다. 가까이 온 세비스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발톱이 날카롭게 길어져 있었다.

“어휴, 답답해. 늑대로 변해서 그냥 한꺼번에 팔래요.”

“늑대? 너 늑대였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실비아가 깜짝 놀랐다. 그 모습에 세비스가 황당하단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셨어요? 저 늑대예요. 그동안 계속 늑대였는데요?”

늑대였다니, 세비스가 늑대였구나. 잠시 충격을 먹어 비틀거리던 실비아는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인벤토리 창을 열어보았다.

인벤토리에는 <늑대 왕국 입장권>이라는 아이템이 붉은 기를 띠며 한 칸에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히 늑대 왕국에서 왔다는 소릴 몇 번 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선입견이 무섭다.

‘아, 맞네. 늑대 왕국이라고 되어있네. 그러고 보니 계속 늑대라고 했던가? 워낙 귀엽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계속 강아지라고 인식하고 있었어.’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실망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개가 아니었어….”

“개라뇨! 이 늠름한 모습 어디가 개로 보여요? 저는 늑대라구요.”

실비아의 말을 듣자마자 세비스가 컹컹 짖어 대며 화를 냈다. 그가 앞발을 들며 성질을 내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그렇지만 성질내는 모습을 보니 귀엽다고 하면 자존심 상해할 것 같았기에 실비아는 속으로만 귀여워했다.

‘보면 볼수록 귀엽네. 늑대라고 해도 너무 복슬복슬하잖아. 깨물어 보고 싶다고 하면 화내겠지.’

실비아는 잠시 세비스의 복슬복슬한 검은 털을 만지고 싶은 욕구에 손을 꼼지락대다가 곧 정신을 차리곤 다시 갯벌을 바라봤다.

“실비아 님, 집중해서 빨리 해치우고 쉬자구요.”

“그래!”

세비스는 눈을 감곤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갯벌을 파헤쳤다.

샤샤샥.

그의 손톱인지 발톱인지 모를 손짓에 갯벌이 순식간에 초토화 나며 숨어있던 보랏빛 낙지들이 위로 올라왔다.

흐물흐물.

깡 깡 깡!

두더지잡기하듯 빠르게 몬스터에게 망치질을 하는 실비아와 쉭쉭! 날카로운 손톱으로 낙지를 작살 내는 세비스의 소리가 갯벌 위를 울려 퍼졌다. 세비스가 늑대화를 하자 공략 속도가 훨씬 빨라져서 순식간에 오염된 몬스터들을 다 해치울 수 있었다. 저번 해안 동굴보다 강한 몬스터를 해치워서 그런지 큰 구슬들이 제법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수확. 몬스터를 잡는 중 두 마리의 낙지가 아이템 <낙지 탕탕이>를 뱉어 냈다.

“헉헉….”

“아이고….”

“낙지 탕탕이… 집에서 오이랑 섞어서 맛있게 먹자.”

낙지를 다 잡고 나자 멀리서 망둥! 망둥! 하면서 대형 망둥어가 갯벌 위를 배로 점프해서 다가왔다.

[제대로 오염된 대형망둥어]

갯벌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실비아가 망치를 깡 깡 깡! 내려치며 정신없이 두들겨 패자 망둥이가 큰 구슬을 뱉어 내더니 눈을 감고 지느러미를 고이 접어 앉았다. 흡사 엎드려 자는 꼴이었다.

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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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를 넣은 민물매운탕>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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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만 볼 수 있는 메시지와 함께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하나 추가됐다. 한약재를 넣었다니 또 어떤 끔찍한 맛이 날까 두려웠지만 아마도 저번 인삼 넣은 킹크랩구이처럼 체력이 오르는 아이템일 듯했다.

레벨 업을 해서 그런지 보스 몬스터를 비롯한 몬스터들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지 갯벌 위를 돌아다니려니 활동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을 뿐. 세비스는 늑대화하고, 실비아는 장화를 신었는데도 불구하고 푹푹 발이 빠져서 금세 둘은 지쳐버렸다.

“푸훗…. 너 완전 구덩이에 빠진 강아지 같아.”

실비아가 세비스의 떠돌이 개 같은 꼴을 바라보며 웃어 댔다. 웃어 대다가 얼굴을 손으로 훑어 보니 실비아도 무슨 동냥 하는 거지처럼 온몸이 진흙 범벅이었다.

“키킥…. 실비아 님도 완전 거지꼴이 따로 없는데요?”

“갯벌에서 싸우니 힘들긴 한데 몸에는 좋겠다. 머드 팩을 한 거나 마찬가지니 피부가 좋아질 거 같아.”

“팩 살 돈도 없는데 우리 여기서 피부 관리나 해요.”

던전 공략을 끝낸 둘은 이미 거지꼴이었기에 자포자기하고 갯벌에 벌렁 대 자로 누웠다. 그리곤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갯벌 밭을 뒹굴었다. 한 바퀴 뒹굴고 나자 둘 다 시커메진 게, 꼴이 노숙자와 들개가 따로 없었다. 머드의 효과인지 기분이 좋아진 실비아가 하늘을 보곤 눈을 감으며 싱긋 미소 지었다.

“하아… 좋다. 갯벌이 시원해서 그런가, 기분 좋은걸.”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의 위로 아기 꽃게가 지나갔다. 간질간질한 그 느낌을 즐기고 있는데 잊고 있던 림보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히이잉!”

몸을 일으켜 바라보자 자기만 놔두고 둘이서 놀고 있는 것에 삐진 듯 림보가 신경질적으로 말발굽으로 땅을 두드려 댔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곤 세비스를 돌아보았다.

“림보가 섭섭한가 봐! 이제 일어나자. 근데 던전은 이게 끝이야?”

“음, 저는 수인이라 감각이 예민해서 기운을 남들보다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제 감으론 바다 안으로 쭉 가면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밀물이 들어오면 오도 가도 못 하고 익사할 수도 있어서요….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가지 말죠.”

그의 말에 실비아의 낯빛이 파래졌다. 욕심부려서 앞으로 갔다가 정말 익사한다면 큰일이었다. 물론 세이브 시스템이 있었지만 다시 산다고 해도 익사하는 고통을 느끼고 싶진 않았기에 함부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근데 앞으로 가면 던전이 더 있을 것 같다고? 언젠간 저 멀리 바다까지 나갈 수도 있는 걸까? 게임 세계에서 공략도 못 할 던전의 기운을 느낄 리가 없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실비아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쳐냈다. 그리고는 몸을 털고 일어나서 늑대 상태인 세비스의 몸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어차피 며칠 뒤에 노엘 님이 알려 준 잊혀진 신전을 가야 하니까. 거기서 아마 수확이 많을 거 같아.”

“그렇겠죠? 거기는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 오랫동안 오염되어 있던 곳엔 별개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거든요. 마치 변해 버린 저희 왕국처럼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저한테 말 안 하고 가셨다가 실비아 님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면 정말 슬펐을 거예요.”

“그, 그러게….”

실비아가 낯빛을 굳히자 세비스가 늑대의 모습으로 송곳니를 내어 싸늘하게 웃더니 다시 한 번 더 경고를 날렸다.

“어디 알 수 없는 곳을 갈 땐 꼭 저한테 말해 주셔야 해요.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실비아 님의 장례식을 여는 데 다 쓸 순 없잖아요. 지금 저희 전 재산으론… 실비아 님의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강가에 뿌리는 것밖에 못 한답니다…. 말하자면, 조문객들에게 수육 한 접시 제대로 대접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죽어도 돈은 더 모으고 죽어야 조문객 대접이라도 하겠죠.”

세비스가 일부러 유골, 장례식이라는 싸늘한 단어를 강조해 발음하자 실비아가 꿀꺽 침을 삼키더니 소름이 돋아오는 목을 매만졌다. 얘기를 듣다 보니 벌써 목이 날아간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응, 알겠어.”

둘이 거지꼴로 갯벌에서 나오자 림보가 땅을 다지던 말발굽을 멈추곤 화색을 띠며 쳐다봤다. 세비스는 몸을 닦을 수건을 꺼내려고 림보 옆에 놔둔 피크닉 가방을 입으로 물어 열다가 눈을 부릅뜨곤 림보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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