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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56화 (56/372)

56화

하나 같이 번쩍번쩍하는 게 물건들 값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다 공짜! 림보 유지비가 걱정이었는데 이제 홀스푸어가 될 걱정은 던 셈이었다. 그 와중에 에비X 생수를 본 세비스는 수돗물 끓여서 만든 보리차 마신다고 안 죽는데 말 녀석이 가리기도 더럽게 가린다고 잠시 투덜거렸다.

택배 상자 정리가 끝나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 실비아는 소파에 앉아 루카가 보낸 전서구를 읽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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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실비아, 정말 섭섭하다. 그런 중요한 얘기는 만나서 해야 하지 않겠어? 편지로 물어 보다니. 내 얼굴이 보기 싫은 거야? 그럴 리는 없을 테지만…! 이번 주말에 뭐해?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우리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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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가 보낸 편지는 전형적인 데이트 신청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피라미드 사업의 사장이며 얼마 전 통행세를 받던 양아치들의 보스라는 걸 알고 있는 실비아의 눈엔 그 편지가 마냥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다.

‘데이트 신청? 차 마시다가 또 독에 중독돼서 죽을 일 있냐고. 아니면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 놓고, 정신 차리고 보면 인신매매로 끌려가 있을 수도 있다. 독을 없애는 방법을 찾기 전에는 루카를 함부로 만나선 안 돼.’

유혹해봤자 결국 피를 토하고 죽을 뿐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공략 캐릭터가 먼저 접근해 오는데 계속 야멸차게 거절했다간 공략 루트가 아예 파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녀는 펜을 들고 답장을 적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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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이랑 다음 주는 제가 너무 바빠서요. 성년의 날 축제 때 만나도 될까요? 축제 기간은 기니까 그땐 만날 시간이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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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소릴 내는 참새의 다리에 편지를 묶자 그가 비틀대더니 곧 힘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빈곤한 처지라 전서구에게 말라비틀어진 옥수수 말곤 먹이를 주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전서구를 날리러 밖에 나갔던 실비아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자 세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누구랑 연락하시는 거예요?”

“응, 나 이제 신전 알바 관두기로 했거든. 저번에 일했던 그 옥장판… 알지? 그 업체 사장이 다른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연락하고 있었어.”

“네? 그분이랑 연락을 어떻게….”

옥장판 사장이란 말에 세비스의 낯빛이 굳어졌지만 실비아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다.

“얼마 전에 신전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성년의 날 축제 때 할 만한 일을 소개해 준다고 하더라.”

“아… 우연히 마주치셨다구요? 기가 막히게 질긴 인연이네요. 실비아 님, 그건 그렇고 신전 알바를 관두신 거예요?”

“응. 그건… 한 달 정도 해 주기로 한 거였으니까, 이제 관두고 딴 일 알아 봐야지.”

‘그럼 이제 노엘 님이랑 실비아 님이 만날 일은 없는 건가?’

세비스는 왠지 모르게 신나는 기분에 입꼬리가 실룩실룩 올라갔다.

저번에 만났을 때 느꼈지만 그가 실비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왠지 끈적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을 사준 건 좋았지만 그뿐으로, 세비스는 역시나 실비아의 예상대로 노엘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잘 생각하셨어요. 신전 일은 돈이 안 되니까요. 다른 일을 찾아야 하긴 할 거 같아요. 던전은 생각보다 자주 보이는 게 아니라서…. 세계를 구하기 전에 길바닥에 나앉을 순 없잖아요.”

던전 얘기에 실비아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노엘은 다음 주에 잊혀진 신전 공략을 단둘이 가자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세비스에게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까? 아무래도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을 갔다 올 건데,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지. 들켜서 사이가 어색해지는 것보다야 나을 거야.’

“던전 얘기하니까 말인데. 다음 주엔 노엘 님이랑 던전 공략을 하러 가게 될 거 같아.”

“노엘 님이랑 둘이서요?”

실비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세비스의 낯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제 볼 일이 없겠다 싶어서 좋아했더니 둘이서 던전 공략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응, 노엘 님이 알고 계신 곳이 하나 있는데, 오염된 몬스터들이 점령했다나 봐.”

“좀 큰 던전인가 보죠?”

“응, 한 삼사일 소요 될 거 같아.”

심지어 삼사일이라니. 삼사일 내내 두 남녀가 같이 있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고 세비스의 뇌 한구석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절대 안 되지!

세비스는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봤다.

“저도… 그럼 같이 가야겠네요.”

“아, 그건… 둘이서 가려고 했는데.”

실비아의 말에 잠시 눈을 도로록 한 바퀴 굴린 세비스가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입을 열었다.

“…둘이서 갔다가 생각보다 몬스터가 많으면요?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네….”

실비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의 말이 맞긴 했지만 노엘과 단둘이 가고 싶은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엘 님이 단둘이서만 가고 싶다고 했는데. 둘이서만 가야 이것저것… 야한 짓을 눈치 보지 않고 할 텐데 말이야….’

그녀가 머뭇거리자 세비스의 말이 급하게 다시 이어졌다.

“저는 위험할 땐 수인화를 할 수 있으니까, 저랑 같이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둘이서 갔다가 몬스터가 생각보다 강하면요?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답니다. 그런 안전불감증 같은 말은 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저랑 같이 가요.”

“뭐? …그, 그렇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다, 세비스.”

세비스의 말을 듣던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했다. 야한 짓에 눈이 멀어 위험할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네. 진짜 듣고 보니 그래. 둘이서 갔다가 거기서 몬스터한테 당해 비명횡사를 한다면 답도 없어. 맞아 죽거나, 최악의 경우엔 갈기갈기 찢겨 죽을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네.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도 그런 고통은 최대한 경험 안 하는 게 좋지…. 세비스 말이 맞아. 노엘 님도 설명을 제대로 하면 바로 이해하실 거야. 다음 주엔 세비스도 같이 가야겠다.’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비스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알겠어. 그럼 다음 주에 같이 가자, 세비스.”

“네! 알겠어요.”

세비스가 좋아하며 화사하게 웃자 실비아의 마음도 편해졌다.

‘거짓말 하지 않길 잘했어. 하마터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실비아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바닥의 상자를 정리하던 세비스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은 해안가 던전에 가는 거 아시죠? 갯벌 던전이니까 삽이랑 장화 등등…. 필요한 건 미리 준비해 놨어요. 근데 실비아 님, 뭘 하신 건지 기운이 좀 더 강해지신 거 같아요. 갯벌 던전은 무리 없이 공략할 수 있을 거 같으니, 공략 빨리하고 돗자리 펴고 놀아요.”

기운이 더 강해진 것은 노엘을 공략한 탓이었기에 실비아는 잠시 찔끔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보았다. 세비스가 알 수는 없으니 바로 표정을 풀고 활짝 웃었지만 말이다.

“좋아! 빨리 공략하고 놀아야지!”

* * *

다음날 무한 저장되는 피크닉 가방을 든 채 림보, 실비아, 세비스는 집을 나섰다. 한여름이 다가오는 것처럼 점점 날씨가 무더워졌기에 챙모자를 챙겨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비스는 말 자식이라고 하면서도 림보 몫의 챙모자도 같이 시장에서 사 왔다. 다행히 끈 달린 챙모자는 림보의 말머리에 딱 맞았다.

“세비스, 오늘은 변신 안 하네?”

그녀의 말에 세비스가 입술을 삐죽대면서 림보를 노려봤다.

“저 건방진 말 녀석 앞에서 계속 변신을 했다간 혹시라도 저를 같은 급으로 볼 수도 있어서요. 군기를 잡을 필요가 있어요. 오늘은 그냥 자제할래요.”

“풋, 그래. 림보랑 빨리 친해져야 할 텐데….”

실비아의 말에 림보와 세비스가 잠시 공중에서 눈싸움을 하더니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쯤 친해질진 알 수 없었으나 시간이 해결해 줄 터였다.

해안가에 도착해서 피크닉 가방 안에 있는 장화와 고무줄 옷으로 갈아입은 둘은 림보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갯벌에 말을 데려갈 순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림보가 갯벌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까.

“갯벌 던전은 바로 코앞이니까, 림보를 여기 바위에 묶어 두고 후딱 공략하고 오면 될 거예요.”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림보를 바윗가에 매어 둔 실비아는 삽을 들고 코앞에 있는 갯벌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던전 입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해안가 갯벌 던전]

갯벌 던전이라기에 뭔가 싶었더니, 말 그대로 갯벌에 숨어 있는 몬스터를 파내며 공략해야 하는… 성가시기로는 최고의 던전이었다.

‘살다 살다가 갯벌을 파내면서 던전 공략이라니. 이럴 땐 정말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 클릭이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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