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54화 (54/372)

54화

고개를 젓는 실비아를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던 노엘이 그녀의 갈색 머리를 넘겨 주며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뜨거운 숨이 귀에 닿자 간지러움과 긴장감에 그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몸을 씻어야 할 거 같은데… 제집에 들렀다 가세요. 이 상태로 가면 찝찝하실 거 같아요.”

노엘이 아주 진득한 손길로 그녀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집에 가자는 의도가 투명하게 보여 좋았다. 실비아는 검지로 입술을 훑곤 눈을 새초롬하게 떠 노엘을 바라봤다.

“흠…. 그럴까요?”

대담한 짓을 한 것 치곤 머쓱하게 눈치를 보며 카페를 나온 둘은 신전의 마구간에 매어놨던 림보를 데리곤 노엘의 집으로 향했다. 노엘은 원래 백작가 집안의 영식이라 집안의 지원도 많이 받았고, 신관으로 생활하면서 월급이 꽤 컸기에 혼자서 고급스러운 저택에 살고 있었다.

실비아는 림보를 노엘의 외제마 옆에 파킹을 했다. 노엘의 저택 마구간도 신전 못지않게 화려했기에 림보는 만족한 얼굴로 옆자리 외제마와 곧장 인사를 하곤 에비X 생수를 까며 담소를 나누기 여념이 없었다.

신전에서 봤던 이미지와 다르게 사용인들에게 깍듯한 인사를 받는 백작가 차남 노엘의 모습은 실비아에게 다소 낯설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집사는 노엘이 여자를 데려온 걸 보곤 잠시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으나 별다른 건 묻지 않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노엘 님이 여성분을 데려오신 건 처음 있는 일이네요. 환영합니다, 실비아 님.”

그는 눈치가 빠른 타입이었는지 실비아에게 인사를 한 뒤 노엘을 한 번 인자하게 바라보곤 재빠르게 사라졌다.

목욕 시중을 해 주겠다는 하녀들을 물리치고 커다란 욕조 안에서 여유롭게 반신욕을 즐긴 실비아는 갑자기 욕실로 들어온 노엘과 두 번 더 했다. 일곱 번을 했으면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노엘을 모시는 사용인들이 어딘가에 있을 저택에서 안기니 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노엘의 집에서 몸을 겹친 최초의 여자가 자신이라 생각하자 더 흥분됐다.

욕실에서의 정사는 특수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두 번의 관계 후 2개의 씨앗만 얻었다.

정사 후 저녁을 먹고 가라는 노엘의 권유를 웃으며 거절한 실비아는 아쉬운 얼굴의 노엘을 뒤로 하고 림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루카에게 전서구를 보내서 성년의 날 축제 때 할 만한 일이 뭔지 알아봐야겠다.’

그녀는 림보 위에 올라탄 채 인벤토리를 열어 획득한 씨앗을 확인했다.

‘오늘 획득한 씨앗은 총 9개네. 매번 색다른 장소에서 할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정말 수확이 좋아. 이대로면 다음 주에 던전 공략할 때면 엄청 많이 얻을 수 있을지도. 스킬 업을 생각보다 빨리 할 수도 있겠어.’

“어어?

그러다가 잠시 비틀대며 낙마할 뻔했으나 림보가 잽싸게 몸을 틀어 그녀를 보호했다. 운전 중 딴짓하기는 아무리 자율주행이라도 위험하다는 조그만 교훈을 얻은 하루였다.

집에 도착한 실비아는 림보의 말발굽을 닦아 주곤 문을 열어 에스코트했다. 오늘도 림보는 고상하게 콧방귀를 뀌며 침대 위로 가 앉았다.

‘림보…. 그러고 보니 목욕시켜야 하지 않을까? 저 좁아터진 욕실에 림보는 못 들어갈 텐데. 몸을 반씩 집어넣고 씻겨야 하나.’

림보를 목욕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걱정했으나 그의 털 냄새를 맡아 보니 다행히 향긋한 향기가 풍겨왔다. 아무래도 노엘의 집, 혹은 신전의 마구간에 맡겨 놨을 때 마부가 림보를 빡빡 씻겨 준 듯했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로 림보를 흘겨본 세비스가 그녀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오늘의 저녁 식사로 간단한 치킨샐러드와 후식으로 과일 푸딩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 맛있겠다. 이런 식사도 가끔 좋지.”

“푸딩은 림보 저 녀석이 어제 티라미수를 작살 내는 바람에 달달한 걸 먹고 싶어서 시장에서 샀어요.”

세비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나 기대에 찼던 세비스의 얼굴은 오래가지 못했다. 치킨샐러드를 먹고 난 뒤 싱크대에 올려 둔 푸딩을 가져오려고 일어나던 세비스의 몸이 못 볼 것을 본 듯 일시 정지했다.

싱크대 위엔 빈 접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느 틈에 말발굽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몰래 부엌으로 기어들어 온 림보가 빈 푸딩 그릇을 옆에 두고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악!”

머리를 쥐어뜯으며 스트레스를 표현한 세비스가 쿵쿵대며 림보에게 다가갔다.

“이놈의 말 자식! 진짜…. 티라미수에 이어 푸딩까지 작살을 냈네.”

세비스가 씩씩대면서 림보의 등을 손바닥으로 살짝 치자 림보가 화들짝 놀라면서 부엌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덩치 큰 림보가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듯 집안이 울리며 싱크대에 걸어 놨던 뒤집개, 국자 등 온갖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굉장히 놀란 듯 히이잉! 하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아니? 림보 이 자식, 살짝 두드렸을 뿐인데 왜 나동그라져. 네가 마차사기단이야?”

“히이잉!”

세비스가 어이없단 표정으로 림보의 입을 열어 씹고 있던 푸딩을 꺼내려고 하자 그가 후다닥 실비아의 뒤로 가선 숨었다.

실비아는 한숨을 푹 내쉬곤 림보의 등을 토닥여 주며 세비스를 바라봤다.

“세비스! 말이 뭘 안다고 그러니. 푸딩 냄새가 좋아서 한 입 먹고 싶었나 봐.”

“한 입이 아니잖아요. 접시에 여러 개가 있었는데 다 작살 내놓고…. 뱉어, 뱉어! 이 자식.”

“림보가 네가 등을 쳐서 많이 놀랐나 봐. 떠는 것 봐.”

림보가 바들바들 떨며 그녀의 목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녀가 말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돌린 사이, 림보가 세비스를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마치 메롱을 하는 듯했다. 세비스는 기가 막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림보를 그녀에게서 떼어 내려고 했다.

“저거 연기라구요. 전 수인이라서 알 수 있어요.”

“세비스, 그럼 림보가 아프지도 않은데 할리우드 액션이라도 했단 거니?”

“할리… 뭐요? 하여튼 진짜 안 돼. 입에 있는 거 다 뱉어!”

세비스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눈을 부릅뜨자 림보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갔고 그 뒤를 늑대로 변신한 세비스가 뒤쫓아 갔다. 개판… 말판이었다.

“아이고 머리야….”

실비아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같이 살려면 림보와 세비스의 사이가 좋아져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사실 이 모든 건 가난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림보가 실컷 먹고도 푸딩이 남았다면 세비스나 림보나 싸울 일 없이 평화로웠을 텐데. 가난이 뭔지.

변신한 상태로 림보의 주둥이를 깨물고 할퀴고 하던 세비스는 제풀에 지쳐 포기했다. 림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우물대더니 콧방귀를 뀌고 거실로 다그닥거리며 돌아갔다.

다시 변신을 풀고 씩씩대며 식탁에 앉은 세비스를 바라본 실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세비스, 신관님에게 말씀드려 봤더니 림보 유지비를 신전에서 일정 부담할 수 있게 말해 본다고 하셨어. 림보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면 네 음식을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에 세비스가 활짝 웃으면서 손뼉을 짝짝 쳤다.

“와! 정말 다행이네요! 그건 다행인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요! 말이 사람 먹는 걸 먹다니. 마치 일부러 먹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죠?”

“일부러 먹다니…. 저번에도 말했지만 기분 탓일 거야. 세비스, 이번 주에 던전 가서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잔뜩 먹자. 기분 풀어.”

그녀의 말에 세비스가 씩씩대다가 가까스로 진정했다. 그러나 거실에 앉아있어 꼬리만 보이는 림보를 노려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저 말 자식…. 다음에 본때를 보여 줄 테다.”

세비스가 노려보는 걸 느꼈는지 림보도 꼬리로 바닥을 위협적으로 탕탕- 치며 응수했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두 명의 동물… 늑대 수인과 말 사이에 껴서 실비아만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실비아는 일찍 일어나 루카의 명함에 적힌 둥지 주소로 전서구를 날렸다.

———————————————

[안녕하세요, 실비아입니다. 성년의 날 축제 때 할 만한 일이라! 어떤 일인지 궁금하네요. 근데 당장 제가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 전서구로 알려주실 순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

굳이 지금 루카를 만나 봤자 공략할 수 없기에 성년의 날 축제 때 어떤 일을 하는 건지만 알고 싶었다. 만날 시간이 없단 말이 루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거란 생각은 채 하지 못하고 한 행동이었다. 전서구를 보내고 림보 위에 올라탄 실비아는 여유롭게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에 가보니 기쁜 소식이 있었다. 노엘의 말을 들은 대사제님이 림보의 유지비를 부담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다달이 먹이와 기본 용품들을 배송받기로 한 데다, 림보의 일련번호를 전제국의 마구간에 등록해 주마비 무료, 세마비 무료 혜택까지 받았다.

오늘도 허리가 휘도록 봉사하는 신도들 틈에 껴서 설렁설렁 빗자루질을 하던 실비아에게 대사제가 찾아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