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림보 앞에 음식들을 내밀자, 그가 거만한 표정으로 말발굽을 들어 음식 하나를 콕 집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티라미수 케이크였다. 실비아는 잠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림보를 바라보았다.
‘말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나? 게임 속이니 뭐 상관없으려나.’
그녀가 스푼으로 조심스레 케이크를 떠 림보의 앞에 들이밀자 그는 찹찹거리며 잘 받아먹었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세비스는 소중한 티라미수가 림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 수건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실비아 님! 그건 마을 맛집에서 줄 서서 어렵게 사 온 케이큰데 말한테 먹이면 어떻게 해요.”
“미안해, 세비스….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티라미수는 잘 받아먹는걸? 옳지, 잘 먹는다.”
세비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림보를 쳐다봤다. 림보는 입에 티라미수 가루를 묻혀가며 냠냠 첩첩 맛있게 케이크를 섭취 중이었다. 그러다가 실비아가 바닥에 떨군 가루를 줍는 사이에 눈을 굴려 힐끗 세비스를 보더니 풋- 하고 비웃는 것이 아닌가.
“어, 이 자식 방금 비웃었어?”
“설마, 자의식 과잉이 심하다 세비스. 말이 어떻게 비웃니….”
“분명히 비웃었어요. 아, 내 케이크….”
“이번 주에 던전 가서 얻은 돈으로 케이크 많이 사 줄게. 림보는 고급 외제마라서 아무거나 못 먹나 봐.”
케이크 상자가 바닥을 드러내자 실비아는 옷장 안을 뒤져 실크 천을 가져와 림보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훔쳤다. 그 모습을 보는 세비스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침대를 차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비싼 것만 골라 쓰다니!
실비아는 잘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림보 때문에 세비스 옆에 간격을 두고 이부자리를 폈다. 세비스는 주객전도라고 툴툴대면서도 실비아가 이부자리를 펴는 걸 도와주었다.
불이 꺼지고 얼마 후 림보가 도로롱, 코 고는 소릴 조그맣게 냈다. 실비아는 어둠 속에서 뒤척거리는 세비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계속 옆에서 같이 자고 싶어 했는데, 림보 덕에 이렇게 자 보는구나. 그렇지만 찬 바닥에서 같이 자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한편 세비스는 실비아를 등지고 누운 채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기분이 왜 이렇지. 심장이 두근거려.’
그는 콩콩- 하면서 조금씩 뛰는 가슴을 누르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침대를 차지하고 단잠에 빠져든 림보와 천장을 보고 단정하게 누운 실비아,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쓴 채 발만 내놓고 자는 세비스까지. 몸집이 큰 식구가 생기니 안 그래도 조그만 안방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실비아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의식이 꿈나라 저편에 있는 치킨을 향해 날아가는데, 갑자기 든 생각에 그녀가 번쩍 눈을 떴다.
‘아, 맞다. 스읍….’
그녀는 입가를 흐르는 침을 소매로 닦으며 정신을 차렸다. 잠시 잠들 뻔했지만, 노엘을 공략해서 획득한 아이템들을 확인해야 한단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건데 까먹을 뻔했네.’
조용히 기록 창을 속으로 불러오자 지나간 메시지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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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공략으로 <프리허그 이용권>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라갔습니다. 포인트를 분배하세요.]
[<신관의 씨앗 조각> 총 12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신성계열 스킬 트리가 개방되었습니다.]
[노엘을 공략할 시 얻을 수 있는 숨겨진 혜택이 있습니다. 상세설명을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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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공략이 어려운 만큼 보상도 엄청났다. 보상이 없어도 공략할 판인데 보상까지 있다니 일석이조!
<프리허그 이용권>은 성년의 날 축제처럼 동정남들이 떼거리로 있을 때 프리허그를 하면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이벤트성 일회용 아이템이었다.
‘모 게임에서 약초를 100개 채집하면 경험치를 주는 것과 비슷한 걸까.’
노엘을 공략한 덕에 레벨은 총 5가 올라가 25레벨이 되었다. 엄청난 수확이었다. 어떤 능력치를 올릴지 망설이던 실비아는 우선 다음 던전 공략 전까지 포인트 분배를 미루기로 했다.
다음으로 씨앗 조각 12개를 보았다. 다섯 번 했는데 왜 12개나 받았을까? 기록 창을 보니 지나간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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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화끈하시군요. 기도실 안에서 하라는 기도는 안 하고 말이야! 배덕감 가산점으로 두 배의 씨앗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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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번은 배덕감 가산점으로 4개의 씨앗을 추가 획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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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실 안에서 기도를 하면서 섹스! 심지어 바깥엔 다른 사람을 놔두다니. 좀 노셨군요? 이런 섹스는 본 적 없었다. 배덕감 가산점으로 x3의 씨앗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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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면서 섹스를 한 노엘 덕에 얻은 가산점으로 x2, x3 해서 한 번에 6개의 씨앗을 추가 획득, 나머지 2개는 샤워실에서의 두 번으로 획득한 듯했다.
‘뭔 고스톱도 아니고 계속 배수가 더해져? 그건 그렇고 이런 식이면… 특별하게 할수록 더 많은 씨앗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실비아는 인벤토리의 씨앗 조각 상세설명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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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의 씨앗 조각
- 레몬 빛을 띠는 노엘의 씨앗 조각이다. 안싸를 하거나 입싸… 를 할 시에 얻을 수 있다. 굳이 삼키지 않아도 획득 가능하다. 얼싸의 경우엔 획득 불가능하니 주의할 것. 모든 씨앗은 공략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 섹스할 때의 상황에 따라 배수로 얻는 게 가능하다.
씨앗 조각을 모아 결정체를 만들 수 있으며 결정체를 만들지 않고 남은 조각으론 신성계열 스킬을 레벨 업 시키거나 다른 아이템과 교환하는 등 여러 가지 게임 내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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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찌 보면 다행이네. 한 번에 씨앗 조각 1개만 주는 거면 진짜 많이 해야 될 뻔했는데.’
물론 떡 한 번 치고 씨앗 조각 1개를 준다고 해도 나쁠 건 없었다. 실비아는 동정남 노엘에게 걸레남 키워드가 붙을 때까지 따먹을 생각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특수한 상황에서 배수 버프가 붙는다면 더욱 머리를 굴려 유혹을 할 필요가 있었다.
‘영롱하군.’
실비아는 씨앗 조각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레몬 빛 씨앗을 팔로 높이 뻗어 올려 잠시 감상할 찰나 가까운 거리에서 잠든 줄 알았던 림보가 손에 든 씨앗을 입으로 뺏어갔다.
“앗?”
“아그작….”
림보의 입안에서 나는 아그작 소리에 실비아의 낯이 하얗게 질렸다.
‘저걸… 저걸 먹다니.’
“세상에나… 림보! 안 돼. 뱉어!”
“꿀꺽.”
삐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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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조각 1개가 사라졌다. 노엘의 씨앗 조각은 총 11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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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표정이 굳은 실비아가 입맛을 다시며 침대 위에서 푸르르 몸을 털고 있는 림보를 쳐다봤다.
‘노엘 님의 씨앗을… 먹다니…. 물론 이건 아이템 화 돼서… 그… 정액은 아니지만….’
“이런… 그걸 먹다니… 림보…. 어쩔 수 없지.”
“…아함…. 실비아 님? 무슨 일이에요?”
세비스가 아닌 밤중의 소란에 잠이 깬 듯 하품을 하며 실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실비아는 허탈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 림보가…. 내가 가지고 있던 씨앗을 하나 먹어 버렸어….”
“씨앗요? 오, 해바라기 씨 같은 건가요? 저한테 좀 줘 봐요. 입 심심할 때 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는데. 먹고 싶다.”
세비스가 씨앗에 관심을 보이며 몸을 뒤척이자 실비아는 질색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마, 세비스…. 절대, 생각도, 말도 하지 마.”
“예?”
“아니야…. 잘 자, 세비스.”
세비스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눈을 감자 실비아는 허공에 시스템을 다시 불러냈다.
상태 창을 열어 밑으로 내려보자 스킬에 ‘NEW’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이 게임의 메인 목표인 오염된 기운을 정화할 수 있는 신성계열 스킬이 개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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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계열 스킬 <정화>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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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득.’
속으로 외치자 짜잔! 하는 효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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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계열 기본 스킬인 <정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주 무기인 <망치>로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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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을 속으로 외치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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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망치>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정화의 망치
- 망치로 <오염된 고렙 몬스터>의 뚝배기를 깨면 정화가 가능하다. 때에 따라 몬스터가 아닌 사람, 물체에도 사용 가능하다. 스킬 레벨 업을 할수록 더 넓은 범위의 정화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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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로 정화한단 건가. 뭔가 없어 보이지만… 채찍이나 회초리를 휘둘러서 정화하는 것보단 낫겠지.’
스킬창 밑에는 자물쇠로 잠긴 채 <??>만 떠 있는 스킬도 있었는데, 나중에 공략을 하다 보면 개방이 될 듯했다. 상세설명을 보자 [씨앗을 소모하여 개방 가능]이라 적혀 있었다.
‘안 그래도 노엘 님이 걸레 남주 키워드가 붙을 정도로 열심히 떡을 칠 생각이었는데, 보상까지 준다니 정말 일석이조로군.’
마지막으로 숨겨진 혜택이 있단 메시지를 본 실비아가 속으로 아하!하고 탄성을 뱉었다. 전에 노엘의 상태 창을 봤을 때 물음표가 떠 있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숨겨진 혜택은 아마도 그와 관련된 것인 듯했다.
기록 창의 메시지를 선택하자 숨겨진 혜택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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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과 섹스할 때마다 업보가 10 줄어든다. *레벨 업 가능한 혜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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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혜택이었다. 노엘과 할 때마다 업보가 10씩 줄어든다니. 거기다가 별표 옆의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말은 나중엔 업보가 10이 아니라 100 이상씩 줄어들 수도 있단 거였다. 놀라움과 반가움에 서둘러 상태 창을 살펴보니 벌써 업보가 50이 줄어들어 총 110의 업보만 남아있었다.
‘세상에나! 일석이조도 아니고 일석삼조구나. 앞으로, 노엘 님과 자주 떡을 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