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그래서 신관인데도 몸이 그렇게 훌륭했구나.’
팔 굽혀 펴기를 하던 그의 새하얀 등 근육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리던 땀을 떠올린 실비아는 순간 아찔해져 잠시 이마를 짚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아서였다.
‘동정과 관련된 신은 아니었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자그마치 동정 미남들을 공략하여 씨앗을 모으라는 다소 해괴망측한 목표를 제시하는 주제에 기본 세계관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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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10년 전 여러 왕국들과 있었던 ‘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한동안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시작된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염된 기운은 대륙 곳곳을 물들이더니 결국 제국까지 삼키려 들었다. 우리 엘베우스 신전과 함께 연합한 모든 신전들은 이를 정화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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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기운이 여기도 나오네. 대체 그건 무슨 기운일까. 해안 동굴에서 본 그 기운인가.’
오랜만에 책을 열심히 읽었더니 점점 눈이 시려왔다.
곧 효과음과 함께 성공적으로 퀘스트를 마쳤음을 알리는 알람이 뜨며 지력이 20 올랐지만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다. 이 게임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땡- 땡-. 실비아가 한참 책을 파고드는 동안 시간이 흘러 어느덧 도서관 폐관 시간이 되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실비아는 집에 가서 더 자세히 읽어보고픈 맘에 책을 대여하곤 도서관을 나섰다.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사제회의는 이제 끝났을 테고, 집에 가기 전에 노엘에게 추근거릴 일만 남았다.
‘아니면, 오늘 공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천벌도 사라졌겠다, 호감도도 거의 다 올렸겠다. 오늘이 딱 공략의 날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대여한 책을 들고 하이에나처럼 신전 안을 어슬렁거리며 먹이인 노엘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집무실에도 정원에도 노엘은 없었다. 대강당까지 훑어 봐도 기도 시간이 끝나 한산할 뿐 그는 보이질 않았다.
‘설마 신전 말고 다른 곳에 볼일을 보러 간 건가.’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뇌리에 유일하게 찾아보지 않은 한 장소가 번뜩 떠올랐다.
기도실, 첫날 노엘에게 히든 알바를 받았던 기도실이었다.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신전의 기도실은 주로 신도들이 이용했지만 신관들도 가끔 들어가서 기도를 드렸다. 노엘은 도서관에서도 기도를 못 참아 기도 대를 설치한 기도 중독자이기에 회의가 끝나자마자 기도실로 갔을지도 몰랐다.
실비아는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기도실 쪽으로 향했다. 기도실이 늘어서 있는 복도는 인적이 없이 휑했다. 예배 시간이 다 끝나 신도들도, 신관들도 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노엘이 만약 기도실에도 없다면 아쉽지만 실비아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흠, 이렇게 사람이 없을 때 공략해야 하는데 말이지…. 게임의 신이시여… 제발… 따먹게 도와주소서.’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책을 든 채 하나하나 문을 노크하고 열어보며 실망하길 여러 번, 그녀는 다섯 번째 기도실을 두드렸다.
똑똑.
“무슨 일이십니까?”
‘듣기만 해도 가버릴 거 같은 목소리!’
노엘이 기도실에 있었다! 실비아는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은 것처럼 흥겹게 내적댄스를 췄다. 반가워하기도 잠시,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한창 기도 중인 것 같은데 뭐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을까?
그 때 실비아의 곤란함을 알아차린 듯 오랜만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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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를 해보니 구석진 기도실에서 혼자 무방비하게 기도 중인 노엘! 당신의 선택은?
1. 저 실비아예요. 기도실에 계셨군요. 노엘 님과 섹스하고 싶어서 찾고 있었어요.
2. 두 유 워너 빌더 스노우 맨?
3. 아, 저 실비아예요. 도서관에서 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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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택지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실비아는 가장 자연스러운 3번 선택지를 골랐다.
그녀는 신난 티를 내지 않으려 크흠, 하며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아, 저 실비아예요. 도서관에서 신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 실비아 님, 들어오세요.”
마침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도 들고 있겠다, 퍼펙트 답안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기도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도실 안엔 조그만 책상과 일자로 된 실내벤치가 있어 원래는 1인용이지만 두 명이 같이 이용해도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노엘이 몸을 옮겨 자릴 내주자 실비아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옆에 앉았다.
그의 눈에 띄도록 책상 위에 <지상 최강 짱짱 센 우리 신전>을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단 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잠시 무슨 말을 할까 머릴 굴린 그녀는 책 속의 내용을 떠올려 급하게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노엘 님, 책을 보니까 전쟁의 신을 모시는 자들은 평소에 몸을 단련해서 유사시 전투에 대비한다고 적혀 있더라구요.”
“예.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다른 신전의 신관들이랑은 달리 몸을 단련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전 정말 신을 진심으로 섬기고 싶거든요. 그럼 평신도인 저도 몸을 단련해야 할까요?”
“심신을 단련하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죠. 엘베우스 신을 좀 더 진심으로 섬기고픈 마음에 몸을 단련하고 싶으신 거라면 신께서 무척 흡족해하실 겁니다.”
“아항, 그럼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이 없는 건가요? 혼자서 하든, 여러 명이서 모여서 하든?”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여럿이서 모여서 해도 되고 혼자서 해도 됩니다.”
떠오르는 대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물어보자 노엘이 화색을 띠며 열성적으로 대답을 했다. 수없이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 동안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지 바깥은 여전히 조용했다.
사실 실비아는 혹시나 남아있을 신도와 신관들이 모두 사라지기만을 노리고 계속 질문을 한 거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바깥의 소리를 들어보니 쥐죽은 듯 조용한 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녀는 오늘이 드디어 그와 섹스하는 날임을 직감했다. 온 우주의 기운이 몸 안으로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실비아의 썩은 생각을 모른 채 노엘은 진지한 표정으로 교리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집중하는 척 아하! 흠, 같은 추임새를 넣으면서 은근슬쩍 노엘의 두껍고 단단한 허벅지에 자신의 허벅지를 슬쩍 닿게 했다.
그 은근한 스킨십에 노엘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모른 척하면서 단단한 팔에 가슴을 기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짝 맞닿은 허벅지를 비비며 옆을 힐끗 바라보니 노엘의 새하얗던 얼굴이 달아올라 곧 귀까지 온통 빨개졌다. 알기 쉬운 남자였다.
‘흥분은 쉽게 하는 것 같은데 은근히 어려워. 여러 번 노골적으로 수작을 부렸건만, 얼굴을 붉히기만 하고 먼저 다가오질 않으니.’
조금만 건드려도 넘어오지만 몸에 독이 있는 루카랑은 확연히 다른 타입이었다. 아마도 신을 모시는 위치란 게 큰 장해물이 되는 듯했다. 그 탓에 노엘의 마지막 이성의 끈은 웬만해선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한 번만 떡을 치고 나면 그 후론 쉬울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처음이 힘들지, 그다음부턴 자동문 아니겠어?’
점점 거칠어져 가는 그의 호흡을 모른 체하며 단단하게 경직된 팔뚝에 아닌 척 가슴을 살짝 비볐다가 떼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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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은근한 스킨십으로 노엘의 호감도 5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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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는 이제 95다. 100까지는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천벌 루트가 사라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실비아가 손을 내려 노골적으로 단단한 허벅지를 어루만지자 노엘의 몸이 펄쩍 뛰었다. 그러나 좁은 기도실에선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녀를 지나가야만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실을 참 잘 만들어 놨어.’
“헉! 실비아 님?”
“몸을 단련하는 방법 말이에요. 어떤 분야든지 상관이 없는 건가요?”
“흣….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노엘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실비아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노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잖아요.”
“…잠깐, 그만….”
“그만하라뇨. 아까부터 여기가 서 있었으면서.”
손을 좀 더 깊숙이 아래로 미끄러트려 내리자 손가락 끝으로 제대로 서 있는 뜨거운 남성의 상징이 느껴졌다.
실비아는 저절로 아래가 젖어드는 느낌에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아슬아슬하게 그의 아래에 닿았던 손을 다시 위로 가져가 어깨에 살짝 올려놨다. 그리곤 처연한 표정을 꾸며 내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싫어요?”
실비아는 의자의 막다른 곳 벽까지 노엘을 몰아붙인 채 자신의 윗입술을 혀로 천천히 핥았다.
노엘은 얼굴을 붉힌 채 그녀의 입술을 홀린 듯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목울대가 거칠게 꿀렁였다.
“그게….”
노엘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뒷말을 흐렸다.
싫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 아래를 이렇게나 세우고 있는데 싫다는 거짓말은 할 수 없겠지.’
그때 메시지가 한 번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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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아슬아슬한 스킨십에 노엘은 풀 발기했다. 호감도 100.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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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가 100이라니!
그냥 공략해도 되겠지만 실비아는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화술 스킬을 써야겠어.’
<헛소리를 진지하게> 스킬을 시전 하자 그녀의 입에서 헛소리가 진지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신관님, 어째서 이 몸을 가지고 순수하게 운동만 하신 거죠? 신께서 주신 몸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건 크나큰 죄가 아닐까요?”
“그게 무슨….”
“다른 운동을 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이에요. 신관님이 이런 아름다운 몸을 가지시게 된 건 다 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