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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7화 (37/372)

37화

자기도 모르게 잠시 졸 뻔했던 실비아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리자 흰 수염을 덤블도X처럼 기른 신성력 만렙의 기운을 풍기는 대사제가 그녀를 온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엘이 정상적으로 사제과정을 밟으면 나중에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물론 노엘은 나랑 신나게 떡을 칠 테니 대사제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실비아는 곧 따먹을 노엘에게 잠시 죄책감이 들었지만 고개를 젓곤 순수하게 표정을 꾸며내며 대사제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보며 껄껄- 도사 같은 웃음소리를 내던 대사제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실비아 님 덕에 벌써 새 신도가 300명이 늘었습니다. 도중에 탈출한 신도들 빼고도 300명이나요! 정말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의 말 중간에 탈출이란 수상한 단어가 들어가 있었지만 실비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휴, 아닙니다. 저번에 받은 팔찌도 과분했는걸요.”

물론 그냥 하는 말이었다. 주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한 번은 맘에 없는 거절을 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대사제가 호오, 하면서 감탄했다.

“어쩜 이리 욕심이 없으실 수가 있을까요. 실비아 님은 다른 분들이 평생 해도 못 할 일을 한 달도 안 돼서 해낸 겁니다! 그 덕에 기도 시간 스케줄이 두 배로 늘었어요. 신도들이 많이 늘어난 덕분이지요.”

대사제의 말과 동시에 눈 밑이 시커먼 고위신관 몇이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했다.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보던 대사제가 수염을 어루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오시라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번 팔찌보다 더 좋은 걸 드리고 싶어섭니다. 사양 말고 받아 주셨으면 하네요.”

더 좋은 거라고? 어떤 보상을 받을까 기대감에 그녀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사제는 빙긋 미소를 짓더니 손을 들어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러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은빛으로 빛나는 손수레가 등장했다.

손수레 위엔 외국 영화에서 칠면조를 서빙할 때 쓰던 동그란 은색의 푸드 커버가 덮인 접시가 있었다. 실비아는 입맛을 다시며 은색 접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수고했다고 고급 요리라도 주려나? 능력치가 들어 있으면 좋으련만.’

대사제의 옆에서 손수레가 딱 멈추고, 그가 손수레 위에 얹어져 있던 접시 위 푸드 커버를 열어젖혔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비아의 자리에서 안을 들여다봤을 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는 뜻이었다.

다소 떨어진 거리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목을 위로 빼 멀리 내다 본 실비아는 접시 위에 놓인 조그만 열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접시 바닥에 조그만 금색 열쇠가 있네.’

“실비아 님, 이리로 오시죠.”

그의 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양손을 고이 가슴에 모은 실비아가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 장갑을 낀 후 금색 열쇠를 주워 올린 대사제는 실비아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입을 열었다.

“실비아 님이 매일 걸어서 출퇴근한다는 건 노엘 님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예…. 뭐 산책할 겸 부지런히 걸으면 금방 도착하는걸요, 뭘.”

‘에이… 설마!’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실비아의 몸속은 이미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폭죽을 터트리려고 오장육부들이 대기를 타는 듯했다. 뭘까? 대체 뭘까!

대화의 흐름상 걷지 않게 해 줄 뭔가를 줄 것 같았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받을 거 같은 기대감에 실비아의 심장은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까지 뛰고 있었다. 수작질 걸 때 빼곤 게임에 들어오고 이리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설명보다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더 좋겠죠? 너무 놀라진 마세요.”

대사제는 통 창 반대편 창문 쪽으로 손을 뻗은 뒤 엄지손가락으로 열쇠의 윗부분을 눌렀다. 가까이서 보니 열쇠에는 버튼이 달려 있었다.

히이잉! 그가 창문을 향해 버튼을 누르자 밖에서 기운찬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공석임을 잊고 후다닥 창문으로 뛰어간 실비아가 밖을 내다보았다. 윤기 나는 베이지색 갈기를 가진 말이 마구간에 매여 소릴 내고 있었다.

말목에는 붉은 리본이 매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달린 브로치와 버튼이 연결되어 있어 자고 있던 말을 깨운 듯했다. 실비아는 설마, 하는 기대를 안고 대사제를 돌아봤다.

“허어?! 설마 선물이 저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외국에서 건방진 이교도를 만나 약탈…, 아니 데려온 말인데요. 혈통이 좋아서 그런지 온순해서 승차감이 좋습니다. 달릴 땐 또 어찌나 빠른지 모릅니다. 몇 마리는 황제 폐하께 진상하기도 했지요. 고위신관들도 쉽게 살 수 없는 아주 귀한 말입니다. 실비아 님 그만 걸어 다니시라고 외제마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나! 맙소사! 말도 안 돼…. 외제마라니.”

실비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즐거움에 어쩔 줄을 모르자 대사제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창문가로 다가왔다. 그는 돈 있는 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실비아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자, 어서 받으시죠!”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받자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한 실비아가 천천히 몸을 떨더니 이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현생에서도 따릉이를 대여한 거 말곤 대중교통만 이용했던 그녀인데 게임에서 외제마를 받다니! 그것도 빙의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엄청난 영광이었다.

‘어제만 해도 거렁뱅이로 지내던 내가 외제마 주인이 되다니. 미쳤다 미쳤어!’

이놈의 게임은 도대체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실비아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며 대사제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세상에… 흑흑…. 너무 기뻐서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네요.”

“후후, 이게 다 신의 가호지요. 아! 근데 저 말을 누가 탄 적은 없지만 관리할 동안 저희가 지어 준 이름이 있어서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이름…. 저 귀염둥이의 이름이 뭔가요?”

실비아가 기대에 찬 얼굴로 대사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훗- 하는 표정을 짓더니 기품 있게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림보. 풀네임은 림보르기니입니다.”

세상에나! 림보르기니! 엄청난 이름이었다. 현생에서는 타 본 적도 없는 억 소리 나는 외제차와 이름이 비슷했다.

“림보! 림보르기니! 좀만 기다려. 퇴근 후에 엄마랑 같이 가자!”

창문 밖을 내다보며 실비아가 외치자 말이 히이잉! 하며 부드럽게 화답하는 듯했다.

‘와, 아직 이 신전이 어떤 신을 모시는지도 모르는데 외제마를 선물 받다니! 역시 신에 대해 공부해 봐야겠는걸?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외제마를 선물 받은 실비아의 가슴이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벅차올랐다.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메고 있던 조그만 크로스백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자 짜란!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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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마를 선물 받은 실비아의 가슴 속에 신앙심이 넘쳐흐른다.

신앙심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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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이라니, 엄청난 수치였다.

그와 함께 정말 반가운 메시지가 연거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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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는 모르지만 실비아는 신전이 모시는 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신이 하늘 위에서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데드엔딩 : 천벌 루트가 삭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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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돈이면 안 될 일이 없었다. 공략의 장해물이 되던 천벌 루트가 외제마 하나를 받음으로써 사라졌다. 안 그래도 신앙심을 충족하지 못해서 노엘을 공략하기가 뭣했는데, 이제 적극적으로 개수작만 부리면 될 듯했다.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더 이상 실비아는 그 회의에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자유 시간을 얻어 밖으로 나왔다.

‘퇴근은 아니고 자유 시간이네. 시급도 꽁으로 받고 좋지. 뭐하지?’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실비아는 자유 시간을 만끽했다.

그때 오랜만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창은 플레이어가 뭘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 드물게 떠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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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도서관에서 신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자.

성공보상 : 지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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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외제마도 받고 신앙심도 많이 찼겠다, 양심상 슬슬 신에 대해 공부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력까지 준다니, 이렇게 막 퍼 줘도 되는 건가.

실비아는 얼마 전에 뭔 놈의 게임이 이딴 식이냐고 한탄하던 걸 까맣게 잊고 히히 웃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노엘은 아직 회의에 참석 중이었기에 퀘스트를 하고 난 뒤 한 번 더 수작을 부리면 될 듯했다.

도서관에 도착한 그녀는 입구의 입식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현대에 만든 게임이기에 은근히 신식 문물이 많은 이 게임 세계는 판타지 요소도 적당히 섞어놔서 플레이어의 환상을 유지해 주었다. 그중 하나가 도서 검색대의 역할을 하는 수정구였다.

그녀가 수정구 앞에서 종교, 신전을 중얼거리자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신에 대한 도서가 광활하게 검색됐다.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눌러봤지만 적절한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대로는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한 검색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곤 조용히 사이비… 라고 중얼거리자 놀랍게도 관련 서적이 있는 서고 위치가 떴다.

서고를 뒤적여 몇 권의 책을 빼낸 실비아는 구석 자리에 앉아 열심히 독서를 시작했다. 그중 <지상 최강 짱짱 센 우리 신전>을 읽어 보니 대략적으로 이 신전의 신의 정체에 대해 알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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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 ‘엘베우스’를 모시는 우리 신전은 평화로울 땐 신이 내려 준 은혜로운 신성력으로 제국민들을 지킨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전투 신관이 되어 싸움에 참여하도록 평소에 신관 전원이 심신을 단련한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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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신전이 모시는 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신이었다.

거기다가 전쟁의 신이라니. 실비아는 신전에 처음 온 날 노엘이 열심히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던 걸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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