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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6화 (36/372)

36화

“네?!”

돌아누워 있던 세비스가 화들짝 놀라며 경기를 일으키듯이 대답했다.

잠시 꼼지락거리던 그는 이불을 팍 뒤집어쓰더니 눈만 빼꼼 내밀곤 실비아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이불에 파묻힌 채 붉은 눈만 번뜩이는 세비스는 마치 소라게 같았다. 눈이 붉으니 심해에 파묻힌 소라게 정도일까.

‘왜 저렇게 놀란담. 자고 있었나.’

자던 사람을 깨웠나 싶어 미안했던 실비아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이번 주는 어떻게 하지? 새 던전은 찾았어?”

“아! 걱정 마세요. 오늘 제가 해안가에 가서 새로운 던전을 찾았답니다.”

세비스의 말에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걱정은 없겠구나.”

“네, 근데 동굴은 아니구요. 갯벌이라서 삽을 좀 들고 가야 할 듯해요.”

“그래. 무한 저장되는 피크닉 가방에 넣어가자.”

대화를 끝낸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새 던전을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남은 일수 동안 신전에서 노엘을 계속 공략하고 쉬는 날엔 해안가의 갯벌 던전을 가면 될 듯했다.

다행히 신전 알바는 그녀의 성공적인 포교 활동으로 노예짓… 아니, 봉사하는 새 신도들이 넘쳐났기에 일하기가 쉬워졌으므로 그다지 피곤하지도 않았다.

‘뺀질거리고 싶은 본능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지.’

업보를 없앨 방법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비밀상점에 그런 아이템은 없었다. 업보만 제거할 수 있다면 쉬는 날 세비스랑 피크닉을 가거나 집에서 시체놀이를 하며 놀아도 되고 얼마나 좋을까.

실비아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시크릿이 다음에 오면 다른 아이템을 준비해 놓겠다고 했었다.

다음번에 가면 업보 제거 아이템을 살 수 있을까.

실비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침대에 누워 있는 한편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세비스가 조그맣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꼬물꼬물 몸을 돌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같이 자자고 안 물어 보시네…. 왠지 아쉽다.’

세비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을 감았다.

그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한탄했을 실비아지만 아무리 변태인 그녀라도 계속 거절하는데 수작질을 할 순 없었다.

세비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실비아는 눈을 감았고 곧 방안엔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왔다.

* * *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옷장에 있던 거렁뱅이 옷들을 가위로 잘라 걸레로 만든 뒤 세비스와 함께 청소를 한 실비아는 밖으로 나왔다.

샛노란 원피스는 비록 호텔 대여점에서 봤던 옷들과는 달리 화려한 보석이 박힌 건 아니었지만 고급 원단을 사용해 만들어 무척 화사했다.

마을을 지나가자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동네 상인들이 ‘어이, 실비아 좋은 아침.’ 이 지랄을 해댔다. 제국민1로 세간의 평가가 바뀐 탓이었다.

‘뭔 고루한 판타지 소설 아침 인사….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아. 크, 진짜 신분 상승한 기분이네.’

발걸음도 가볍게 신전에 도착한 실비아는 노신관에게 오늘은 노엘의 집무실 청소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실비아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노엘의 신이 내린 감미로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려던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식당에서 제대로 자극시켜 놓고 그냥 나왔지. 좀 민망하네. 나도 철면피는 아닌 모양이야.’

철면피였지만 강철 철면피가 아닐 뿐인 실비아는 조금 민망해지려는 기분을 무시하며 문을 활짝 열고 씩씩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노엘 님, 안녕하세요! 신관님이 오늘은 여길 청소해 달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아…. 실비아 님이시군요.”

노엘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다가 안으로 들어온 게 그녀임을 알고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곧 고개를 빠르게 옆으로 돌렸다.

그 때문에 드러난 노엘의 귀는 빨개져 있었다. 심지어 목까지 새빨갰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새 옷을 입으셨군요.”

“네. 노엘 님 덕에 이런 옷도 입어 보네요. 꼭! 이건 꼭 갚을게요.”

실비아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노엘이 멈칫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실비아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잘 어울려요.”

“고마워요.”

실비아가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얼굴을 붉힌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노엘이 잠시 머뭇하더니 입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옷값은 안 갚아도 됩니다.”

“에이, 어떻게 안 갚아요. 꼭 갚아야죠.”

“아닙니다. 그냥 제가 사 드리고 싶어서 사 드린 거니까요.”

수줍게 미소 지은 노엘이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초록색 눈이 호선을 그리며 아름답게 휘자 실비아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세상에, 봐도 또 봐도 눈웃음이 정말 끝내준단 말이지.’

상태 창을 다시 확인해 보니 노엘의 호감도는 90까지 올라가 있었다! 공략이 거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주 내에 공략을 할 수 있는 걸까. 기대하는 실비아의 몸이 뜨거워졌다. 수월한 공략을 위해서는 얼른 능력치를 더 올릴 필요가 있었다. 실비아는 늙은 신관이 부탁한 청소를 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노엘의 성격답게 깔끔한 집무실은 딱히 치울 게 없었다.

‘그래도 청소하라고 했으니 뭐라도 해야겠지.’

실비아는 빗자루로 괜히 반질반질한 바닥을 쓸며 싱글벙글 웃었다. 노엘이랑 한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서류 정리를 하던 노엘은 빗질을 하는 실비아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다가 얼굴을 다시 붉혔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원피스를 입은 실비아의 허리선을 지나 보기 좋게 솟아오른 엉덩이, 그리고 하얗고 쭉 뻗은 다리로 내려갔다. 그다지 몸에 붙는 원피스가 아니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실비아의 몸 선을 따라 벗은 몸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아, 이러다가 또… 서겠구나. 역시 실비아 님이 신탁의 영웅이 맞는 걸까. 날 스스로 서게 하는 분….’

노엘은 식당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실비아의 조그만 발이 그의 다리를 나긋나긋하게 쓰다듬던 그 감촉. 흥분 속에서도 그녀의 발이 더 위로 올라와 중심을 짓밟아 주길 원하지 않았던가.

정말 미친 것 같았지만 한 번 물꼬가 트인 생각은 멈출 줄을 몰랐다. 실비아를 만나기 전엔 자나 깨나 신을 모실 생각뿐이었건만, 이제는 머릿속이 온통 그녀로 꽉 차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대사제님은 내가 차기 교황이 되기만 기대하고 계시는데.’

제국의 신관은 원칙적으론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라는 성서의 규칙대로였다. 그렇지만 본능이란 게 어디 맘대로 되던가.

오늘날 뿌리부터 썩어가는 제국의 신전에는 남몰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몰래 여인들과 함께 사는 신관들이 꽤 있었다. 이성을 가까이해도 신성력이 사라지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황의 자리는 달랐다. 신을 대리하는 인물이기에 평생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생활을 제어해야 했다.

백작 가문의 영식이었던 노엘은 강한 신성력을 타고나서 어릴 때부터 신관 교육을 받았다. 백작가에선 영광인 일이었다. 일반 신관만 돼도 가문의 영광인데 아들이 젊은 나이에 고위신관까지 됐으니 집안이 잔치 분위기였다.

반년에 한 번씩 부모님을 뵈러 집에 방문하면 그들은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대하며 그를 맞이했다.

부모님께 굳이 차기 교황 후보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젊은 나이에 고위신관이 된 그가 혹시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기대를 저버릴 순 없지.’

노엘은 서류에 다시 집중하려 노력하며 고개를 내렸다. 그러나 집중은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어이가 없지만 스스로 서게 한단 말이 발기를 시키는 자를 뜻하는 거라면 실비아는 정말 신탁이 가리키는 영웅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신탁은 그녀와 자신이 이어질 거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어쩐지 착잡해진 기분에 노엘은 괜히 서류에다가 펜을 거칠게 휘둘렀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쓸데없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서류에다 칠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종이가 걸레짝이 다 되었다. 중요한 결재 서류였건만 다 망했다.

노엘이 넝마가 된 서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실비아가 다가와 그가 낙서하던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신관님, 이거 쓰레기예요? 버릴까요?”

“아, 아닙니다. 놔두세요.”

당황한 표정으로 서류를 버리려 하는 실비아를 만류한 노엘은 넝마가 된 서류를 골치 아픈 표정으로 바라보곤 겨우 복사본을 작성했다.

“휴….”

한숨을 내쉰 노엘은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 노력했고 실비아는 맡은 바대로 쓱싹쓱싹 빗자루질을 열심히 했다.

집무실 화분에 물도 주고 창틀에 쌓인 먼지도 열심히 털고 나니 어느새 사제회의 시간이 다가왔다.

노크를 하고 들어온 수습신관이 실비아와 노엘을 불렀다.

“노엘 신관님, 실비아 님, 사제회의 시간입니다. 두 분 다 참석하셔야 합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노엘과 공략을 앞둬서 뭘 하든 즐거운 실비아는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중앙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상석엔 대사제가, 그 양옆에는 고위신관과 평신관들이 앉아있었다.

노엘은 상석에서 네 번째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로 갔다. 특별 참석자인 실비아의 자리는 노엘의 바로 옆이었다.

“오늘의 사제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모이자 땡- 맑은 종소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됐다. 손을 모아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일반신관들이 업무 보고를 했다.

그 후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대사제의 경건한 설교가 이어졌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설교에 통창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등에 쬐던 실비아는 기도하는 자세로 눈을 스르르 감았다.

“…실비아 님. 실비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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