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4화 (34/372)

34화

“아직은 좀….”

1100골드를 내서 <최고급 낚싯대>와 <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만 구매한 실비아는 실망한 얼굴로 서 있는 시크릿에게 아직 게임 초창기니 돈을 더 모아서 오겠다고 말했다.

“그래요,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아직 게임을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셨군요. 상위 던전으로 가시게 된다면 다시 들러 주세요. 더 많은 아이템들을 보여 드릴게요.”

아이템 전시관을 나와 계산을 마친 실비아는 카운터 앞에 비치된 포션들을 보았다.

‘아, 까먹을 뻔했다. 포션도 혹시 모르니 구매해야겠어.’

카운터 앞엔 마나 포션, 체력 회복 포션, 그 외 잡템들이 널려있었다. 지금 당장 마나 포션은 구매할 필요가 없다. 마법스킬 따위 있지도 않고 말이다.

혹시 몰라서 하나당 300골드인 체력 회복 포션을 다섯 개를 집어 들자 시크릿이 잇몸이 보이게 활짝 웃었다. 포션까지 고르자 덕분에 2000골드 이상 구매 시 증정하는 던전 리젠권을 하나 받았다.

“1만 골드, 2만 골드, 3만 골드 이상 구매하시면 더 좋은 사은품을 드려요. 게임 50일 차 전엔 오셔야 사은품 빵빵하게 챙겨 드리니까 꼭 오셔야 해요.”

“아항…. 네.”

“영수증 지참해도 교환, 환불은 안 되시구요…. 여길 나가시면 끝입니다, 호구…, 아니 고객님. 그리고 300골드 더 내셔야 합니다.”

“왜요?”

카운터 앞에 서더니 시크릿의 말투가 묘하게 더 판매 직원스럽게 변했다.

“아까 드신 체력 회복 포션이 300골드세요, 고객님.”

“…공짜 아니었나요?”

“저는 그런 말은 한 적 없으세요, 고객님.”

“일방적으로 주신 건데….”

“그건 고객님이 마시기로 선택하신 거세요, 고객님.”

“허…. 여기 300골드요.”

‘이 아저씨 장사 잘하네….’

첫인상은 무인도 폐인이었던 시크릿은 이제 완전한 장사꾼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실비아는 인벤토리에 구매한 아이템들을 넣고 비밀상점을 나왔다. 비밀상점을 나서는 실비아를 향해 시크릿은 <게임 심의 준수>는 구매하자마자 적용되니 눈에 보이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조만간 바닷가에 가서 <최고급 낚싯대>를 사용해봐야겠어.’

실비아는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최고급 낚싯대>의 상세설명을 들여다봤다.

———————————————

[최고급 낚싯대

- <비루한 낚싯대>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좋은 낚싯대.

어떤 무게의 존재든 끌어올릴 수 있다. 상상도 못할 생물을 낚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마음의 준비 없이 낚싯대를 함부로 썼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

그녀는 비밀상점 안내도에 제대로 낚인 경험으로 <최고급 낚싯대>의 상세설명을 꼼꼼히 읽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문어괴물이라도 나오는 걸까.

‘설마…. 이건 19금이지, 29금이 아닌데. 섹슈얼 로맨스 카테고리로 넘어갈 셈은 아니겠지?’

잠시 망상을 한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던전 리젠권>의 상세설명으로 넘어갔다.

———————————————

[던전 리젠권

- 이미 클리어한 던전을 리젠시킨다.

(리젠 : 원래대로 복구함.)]

———————————————

‘참 고생시키는 게임이다, 걍 리젠해 주면 되지, 리젠권까지 팔고 앉았네.’

실비아는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는데 어떻게 CD 한 장에 이 모든 걸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 파는 아이템들과 게임의 스케일을 보아하니 원래는 온라인용 게임인 듯했다.

‘아마 캐시를 질렀다면 저 비싼 아이템들을 다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걸.’

온라인용 게임 같은데 왜 시디로 만든 걸까. 개발자는 좀 헛고생을 하는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뭐가 됐든 빙의 된 상황에서 게임 개발자 걱정이나 할 처지는 아니었다.

실비아는 훌훌 몸을 털고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뚱땅 뚱땅.

‘이게 무슨 소리지?’

골목길 한구석에서 수상한 망치질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분명히 올 때는 비밀상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조용했던 골목길이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뭐지? 비밀상점 말고 또 뭐가 있나?’

슬쩍 들여다보니 딱 봐도 수상한 회색 망토를 입은 무리가 이상한 설치물을 만들고 있었다.

‘굳이 아는 척해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잘생긴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켜 본 <동정 레이더>에는 아무도 걸려들지 않았다.

저녁밥이 빨리 먹고 싶었던 실비아는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상 무슨 피곤한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그녀는 망토무리에게 들키지 않게 깨금발을 들고 살금살금 골목길을 지나쳐갔다.

돌아갈 때도 벽에 부딪쳐야 되나 싶었으나 다행히도 그녀가 통과했던 벽에는 검은 게이트가 형성되어 있었다. 두 번이나 피 칠갑을 해야 했다면 정말 욕이 나왔을 것이다.

게이트를 통과해 식당으로 돌아와 보니 다행히 게임 세계의 시간은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테이블로 돌아가자 마침 그들이 주문했던 따끈한 짬뽕, 짜장면, 우동이 서빙 되던 참이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짬뽕은 오징어가 들어가 있는 게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누가 봐도 서양 판타지 배경 게임에서 현실 음식이 나오고 있었지만 잡탕밥 같은 이 세계에 적응된 실비아는, 이젠 결혼식장에서 한복을 입은 혼주가 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와, 맛있겠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실비아 님, 신관님!”

세비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실비아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가난이 죄지.’

그는 투덜대던 게 언제였냐는 듯 노엘을 선생님 모시듯 하고 있었다.

가난을 이길 자는 없다고 했던가. 고작 게임 13일 차였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린 세비스는 옷 몇 벌에 신관에 대한 경계심을 접었다.

이쁜 새 옷을 여러 벌 사줘 한순간에 세비스의 호감을 산 노엘은 짜장면도 마치 레스토랑에서 서빙된 파스타처럼 우아하게 먹었다.

그는 서로를 가족처럼 챙겨주며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세비스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실비아는 세비스를 완전히 동생처럼 챙기고 있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둘은 집사와 주인의 관계인 것 같았지만 그런 것 치곤 세비스는 존댓말을 하면서도 실비아에게 퍽 친근하게 굴었다. 실비아는 그런 그를 세심하게 챙겨 주면서 국수를 먹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같이 사니 친한 건 당연한 걸 텐데 기분이 별로 안 좋군. 어쩌다가 같이 살게 된 거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런 개인사를 물어볼 관계는 아니니….’

노엘의 속마음을 모른 채 실비아는 방긋 웃으며 반찬 그릇을 세비스 앞에 내밀었다.

“세비스, 여기 피클도 먹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동이랑 피클을 같이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둘이 무슨 남매 같네.’

어쩐지 살짝 안심이 되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같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 남녀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앞의 늑대 수인은 성체가 아니었다. 성체가 되면 몰라, 지금 입장에선 애 같은 그에게 실비아가 매력을 느낄 리는 없을 거라고 노엘은 생각했다.

‘아냐. 내가 또 무슨 생각을?’

노엘은 자각하지도 못한 새에 어느새 실비아를 한 명의 여자로 의식하며 같이 사는 세비스를 질투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그녀를 여자로 보면 안 된다. 거기다가 실비아 님은 세비스를 단지 귀여운 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노엘은 티 나지 않게 입술을 짓씹으며 자신이 했던 망상을 갈무리했다. 방금 전만 해도 비밀상점에서 성장 촉진제를 절실하게 사고 싶어 했던 실비아의 썩은 생각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음식을 몇 입 집어먹자 배가 좀 찬 실비아는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형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은 노엘의 신발 앞코가 실비아의 발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작을 더 걸어 볼까? 이건 내가 변태라서가 아냐. 호감도를 올려 하루빨리 천국을 가야 하기 때문이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변명을 한 실비아는 짬뽕 면을 대충 입에 넣으면서 수작질을 하려 머리를 굴렸다.

오늘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이제 은근한 스킨십이 계속 필요한 때였다. 어느새 호감도가 75가 된 노엘은 그녀의 스킨십을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테이블에는 식탁보가 길게 깔려 있어 밑에 있는 사람들의 발이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보를 잠시 쓰다듬던 실비아의 머릿속에 변태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실행하기에 앞서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우동을 먹고 있는 세비스에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공략이 절실한 플레이어의 냉정한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 했다.

스윽.

“컥!”

노엘은 짜장면을 우아하게 먹다가 사레가 들린 듯 짧게 기침을 했다. 실비아가 신발을 벗곤 양말만 신은 발로 노엘의 다리를 쓸었기 때문이다. 담 넘는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품이 넓은 슬랙스 안으로 들어간 발가락들이 피아노를 치듯이 올라가자 노엘이 새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세비스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노엘을 바라보았다.

“신관님, 괜찮으세요?”

세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걱정하자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노엘이 애써 웃어 보였다.

“괘… 괜찮…. 큭….”

실비아는 노엘의 슬랙스 안쪽에 숨어있던 축구선수 같은 섹시한 종아리의 옆태를 발바닥의 움푹 파인 부분으로 은근하게 문질렀다.

놀란 노엘이 덜컹하고 의자를 물렸으나, 벽 쪽에 앉아 있던 그가 물러날 곳은 없었다.

그는 당황한 듯이 테이블 아래를 잠시 쳐다봤다가 고개를 들어 발의 주인인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태연하게 음식을 입에 넣은 실비아는 눈꼬리를 둥글게 휘며 미소 지었다. 세비스가 음식을 먹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노엘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젓가락을 혀로 느리게 핥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너의 아래를 곧 이 젓가락처럼 핥아 주겠단 뜻이야. 이러면 안 꼴리곤 못 배기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