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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3화 (33/372)

33화

꽝!

“어어? 뭐야? 방금 무슨 소리야?”

지나가던 행인이 큰 소리에 놀라 골목길로 달려왔다. 그러나 피가 점점이 묻어 있는 휑한 벽만 보일 뿐 소리의 원인은 보이질 않았다.

“큰 소리가 났었는데? 잘못 들었나….”

* * *

“아으….”

실비아는 바닥을 한참 나뒹굴며 고통과 씨름했다. 드디어 통과한 것 같긴 한데 통과할 때도 벽과 제대로 딥키스 한 듯 온몸이 아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입을 벌려 치아들을 손으로 훑으며 흔들리는 이가 없는지 확인했다. 상태 창을 켜보니 체력은 또 20이 닳아있었다.

‘통과할 때 부딪히는 충격 때문에 체력 120 이상이라고 한 거군….’

게임이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개발자가 대체 누구야.’

잠시 속으로 개발자 욕을 한 실비아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정신을 차리는 시간을 가졌다.

고개를 젓는 동안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로 아까의 골목길이 다시 나타났다.

같은 골목길로 보였지만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분명히 낮이었는데 밤이 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암울한 유흥가 뒷골목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막혀 있던 벽 너머의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 보니 골목 끝자락에 영업 중으로 보이는 한 가게가 보였다.

‘저게 비밀상점인 듯하네.’

밖은 초여름인데 여기는 가을인 듯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길가엔 구겨진 전단지들이 휘날렸고 다른 가게들은 다 불이 꺼져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길을 걸어 골목 끝자락에 다다르자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화려한 가게가 실비아를 반겼다. 마치 현생에 있는 가게들을 연상시키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게임 세계에는 네온사인 같은 거 없었는데. 무슨 메이플 스토X도 아니고, 세계관이 다 섞여 있어.’

딸랑.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에 달린 종 모양의 풍경이 소리를 냈다.

실비아는 고개를 돌리며 내부를 둘러봤다. 가게 안은 잡화점처럼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앞 문방구 같았다.

“저기, 누구 없나요?”

물건들이 널려있어 미로 같은 가게의 내부를 겨우겨우 비집고 들어가며 실비아가 외치자 안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사람이에요?”

“네! 저 사람 맞아요.”

‘왜 저렇게 놀라지…. 내가 사람이지, 그럼 귀신이겠어?’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망토를 쓴 더벅머리의 중년 남자가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왔다.

남자는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앞머리를 추스르며 나오다가 그녀를 보곤 멍청하게 입을 떡 벌렸다. 꼬라지가 딱 캐스트 어웨X에 나오는 무인도에서 조난당한 주인공 같았다.

‘웬 거지꼴이야, 머리도 덥수룩하고 수염도 한 움큼이네.’

“이럴 수가! 진짜 사람이야!”

“예…. 비밀상점 안내도 보고 왔는데요.”

“여기에 드디어 사람이….”

더벅머리는 놀라서 허둥지둥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심호흡을 했다.

그는 양팔에 토시를 끼더니 진열대 여기저기를 뒤적거려 박카X 같이 생긴 병 하나를 따서 실비아에게 건넸다.

“오시면서 몸이 많이 상했죠? 이거 하나 들이켜요.”

“아, 괜찮습니다.”

“어허, 사양 말고. 손 아파요.”

그녀는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남자가 병뚜껑을 딴 채 재차 재촉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음료를 들이켰다. 루카랑은 달리 게임 속 비밀상점의 주인이니 뭐 이상한 걸 주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꿀꺽.

‘달콤하네, 진짜 피로회복제 같아.’

“체력 회복 포션이니 끝까지 들이켜요, 쭉.”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입안에 탈탈 털어 넣자 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몸을 괴롭히던 쓰라린 감각들이 씻은 듯이 사라져갔다.

얼굴을 훑어보니 생채기들이 다 사라져 말끔해져 있었고 상태 창을 확인해 보니 체력도 풀로 차 있었다. 정말로 체력 회복 포션이었다. 사기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비밀상점에 제대로 온 것이다. 실비아는 감격한 표정으로 제 몸을 더듬거렸다.

“와! 상처가 다 나았어요, 정말 포션이었군요!”

“속고만 사셨나. 효과 좋죠?”

남자는 처음이랑은 달리 제 본분을 다시 떠올린 듯 장사꾼의 말투로 으쓱거렸다.

그는 계산대 앞에 있는 수정구에 돋보기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화색을 띠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더니 맞네요. 드디어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군요. 플레이어 실비아 님 맞으시죠?”

수정구엔 아마도 컴퓨터처럼 자신의 신상명세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듯했다.

자신의 이름을 바로 맞춘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남자는 여기가 게임 속이란 걸 알고 있었다!

“여기가 게임 속인 걸 알고 있으신 건가요?!”

“예, 그러니 이공간에 저 혼자 떨어져 있는 거겠죠? 저는 비밀상점의 주인인 시크릿이라고 합니다. 한 번도 손님이 온 적이 없어서 실비아 님을 귀신인 줄 착각했네요.”

시크릿이라니,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실비아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귀신이라뇨, 사람입니다.”

“가끔 사람이 아닌 것들이 나타나서…. 아, 잡담이나 할 때가 아니죠. 저를 따라오세요. 플레이어를 위한 물건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실비아는 앞에 이상한 소릴 들은 것 같았으나 바쁘게 걸어가는 시크릿을 따라가느라 금방 잊어버렸다.

시크릿이 가게 뒤편의 쪽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별세계가 나타났다.

어두운 가게 안을 휘황찬란한 아이템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템마다 조그만 조명을 달아 놓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들처럼 보였다.

“아름답죠? 실비아 님은 이 아이템 전시관을 최초로 보신 플레이어십니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던 시크릿이 실비아에게 손짓을 했다.

“아이템을 가만히 바라보시면 상세설명이 떠오를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아이템들을 미술관에서 명화 감상하듯 뒷짐을 지고 하나하나 살폈다. 시크릿의 말대로 눈을 가늘게 뜬 채 아이템을 바라보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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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촉진제

- 누군가의 염원을 한껏 담은 성장 촉진제다. 자라길 바라는 모든 존재에게 쓸 수 있다. 생물에게 사용할 시에 흑채 뿌리듯이 머리통에다가 뿌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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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세비스를 위한 아이템이군.’

실비아는 화색을 띄며 아이템을 살피다가 밑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가격표를 보곤 비명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삼켰다.

‘100만 골드? 제정신이야?’

실비아의 소리 없는 경악을 알아챈 시크릿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누구한테 쓰고 싶은 건지 전 이미 알고 있지요. 좋은 아이템일수록 가격이 비싸답니다.”

힐끗 시크릿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 지은 실비아는 빠르게 벽에 걸린 아이템들을 훑어보았다.

<최고급 낚싯대>, <제국민 올 누드 모드>, <쇼 미 더 머니>, <아무도 모르게>, <게임 심의 준수> 같은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아이템들을 자세히 바라보며 상세설명을 읽었다.

<최고급 낚싯대>는 <비루한 낚싯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서 살 필요가 있었다.

‘저걸 사면 더 좋은 아이템을 낚게 될지도 몰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낚싯대를 보다가 다음 아이템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제국민 올 누드 모드>는 모든 남자들을 올 누드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템이지만 그 안에 털보 주인, 문신뚱땡이 같은 놈들도 포함할 거라 생각하니 굳이 사고 싶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딴 걸 좋아한다고 구비해 놓은 건지 실비아는 보기만 해도 영혼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가까스로 신음을 삼켰다.

‘취향이 특이한 플레이어라면 구입할지도 모르지만 나한텐 끔찍한 아이템이군.’

질색을 하며 옆으로 이동한 실비아는 다음 아이템의 상세설명을 들여다봤다. <쇼 미 더 머니>는 치트 키처럼 돈을 불릴 수 있는 아이템이었으나 1조 골드… 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표가 붙어 있어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애초부터 그냥 전시용 아이템인 듯했다.

‘살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이네. 이딴 건 애초부터 전시하지 말라고.’

속으로 툴툴대던 실비아는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아무도 모르게>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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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 다른 공략 캐한테 들키지 않게 은밀한 섹스를 즐길 수 있다. 집착성향이 있는 질투심 많은 공략 캐릭터한테 사용하면 좋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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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의 상세설명을 보던 실비아는 얼굴을 뒤로 물려 이중턱을 만들곤 혀를 찼다.

‘뭐야, 하다가 들킬 수도 있어? 들키면 뭔 일 나니까 이런 아이템이 있는 거겠지? 무슨 사랑과 전쟁도 아니고…. 이건 지금 당장은 아무 필요도 없어. 들키긴커녕 그 누구랑도 섹스를 못 하고 있는 불쌍한 처지니까….’

잠시 씁쓸한 마음에 입맛을 다신 실비아는 마지막으로 <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의 설명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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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심의 준수

- 상위 던전으로 갈수록 몬스터들의 척수와 뇌, 피를 보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아이템.

고지능 몬스터, 인간형 몬스터 등도 해당. 무찌르면 귀여운 별이 뜨며 곤히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꿀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굳이 흔들어 깨워보진 말자.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

*29금을 즐기고 싶다면 구입하지 않아도 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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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필요하겠다.’

저번의 해안 동굴의 경우엔 꽃게가 푸른 액을 흘리며 죽었기에 그나마 죄책감을 덜 수 있었지만 여러 가지 게임을 해 본 실비아는 사뭇 걱정을 하고 있었다.

상위 던전으로 갈수록 다크 엘프나 고블린 같은 고지능 몬스터가 튀어나올 텐데,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게임 빙의라지만 피를 보는 건 사양이야.’

실바아가 <게임 심의 준수> 아이템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자 시크릿이 손을 싹싹 비비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건 마음이 약한 플레이어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죠.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서 꼭 필요하니 저렴한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게임 심의 준수>의 가격은 100골드. 다른 아이템에 비해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마도 이건 개발자 입장에서도 플레이어가 꼭 가져가길 원해서 저렴하게 나온 아이템인 듯했다.

사실 성장 촉진제를 제일 사고 싶었으나 지금 가진 돈으론 턱도 없었다. 그나마 구입 가능한 게 1천 골드인 <최고급 낚싯대>와 <게임 심의 준수>였다.

“<최고급 낚싯대>와 <게임 심의 준수>를 살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다른 건 더 안 사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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