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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1화 (31/372)

31화

‘응? 제발 이제 싸게 해 달라고? 내 귀엔 그렇게 들리는데.’

노엘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침묵한 실비아는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았다.

지금 상황에 놓인 게 만약에 루카였다면 이미 뒹굴고도 남았을 텐데 노엘의 손은 여전히 수동모드였다. 실비아가 움직 여주지 않으면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입술을 세게 깨문 채 찌푸리고 있는 노엘의 얼굴을 보니 마지막 이성과 씨름 중인 듯했다.

‘<헛소리를 진지하게> 스킬을 써 봐?’

실비아는 잠시 고민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스킬 설명엔 한 캐릭터에게 여러 번 사용할 경우에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스킬을 썼다가 낭패를 봤던 피라미드 행사장 때를 기억한 실비아는 좀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제대로 따먹…, 공략하려면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겠어.’

실비아는 노엘의 질끈 감은 눈을 바라봤다. 그녀는 레몬 빛 속눈썹을 혀를 내어 핥으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여기까지는 어영부영 넘어왔지만 눈을 핥는 건 선을 넘는 거였다.

저 입술에서 쾌락에 젖은 신음이 새어 나온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한 그녀의 아래가 더욱 뜨거워졌다.

‘정상위로 거칠게 박히다가 흘러내린 땀방울이 내 몸에 뚝뚝 떨어진다면… 정말 죽여주겠지.’

여기서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가도 되지 않을까? 노엘의 자제심이 무너지는 꼴을 구경하고 싶었던 실비아는 그의 아래를 자극하던 발을 내렸다. 그리곤 노엘의 손을 잡아 속옷 안으로 넣으려던 그때였다.

끼익. 쿵. 도서관의 두꺼운 중앙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 사이의 묘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후다닥 책을 들곤 서고에 넣었다 끼웠다, 의미 없는 동작을 시작했다. 다행히 옷을 안 벗었기에 뒷수습 할 것은 없었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노신관이 책장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고! 실비아 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그만 가 보셔도 됩니다. 그리고 노엘 님, 내일 신관 회의 있는 거 알고 계시죠?”

“아, 예. 내일이었군요.”

허둥지둥 서고를 정리하는 척하던 노엘이 뒤도 돌지 않고 뻣뻣하게 대답하자 의아함을 느낀 노신관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실비아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 님도 내일 참석해 주시겠어요? 자매님의 괄목할 성과에 대한 포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실비아는 살짝 몸을 돌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곤 다시 서고 정리를 시작했다. 노엘이 얼굴을 붉히며 서고를 정리하는 와중에 혼자만 몸을 돌리기가 뭣해서였다.

노엘은 여전히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의미 없이 책장 위아래 칸으로 책을 넣었다 뺐다, 이미 정리가 끝난 책들의 라벨까지 살펴보는 등 열심인 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노신관이 긴 수염을 쓰다듬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두 분 다 서고 정리에 너무 진심이시군요. 그만 정리하고 퇴근하시라니깐.”

“이것만 하고 갈게요.”

실비아가 대답하자 노엘도 두 손을 모으며 혼잣말을 하듯이 기도했다.

“오, 신이시여. 어질러진 이 서재를 굽어살펴 주소서….”

“에고, 노엘 님, 신께서 서재까지 굽어살피다간 손발이 남아나시지 않을 겁니다. 크흠, 그럼 마저 하시고 들어가세요.”

뚜벅뚜벅하는 경쾌한 발소리 후 이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도서관엔 침묵이 찾아왔다.

노신관이 완전히 도서관에서 나간 것을 확인한 노엘과 실비아는 동시에 마주본 후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옷 사러 가실까요?”

“예…. 가… 갈까요?”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야릇한 분위기가 지나가자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

‘어휴, 맞다. 노엘 님도 같이 옷 사러 가기로 했었지, 좀 자제할 걸 그랬나. 민망하다 정말.’

실비아는 비록 변태긴 해도 상식이 있는 변태였기에 뒤늦게 이 상황이 민망했다.

아닌 척 힐끗 옆을 바라보니 노엘 역시 무거워진 표정으로 어색하게 걷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호감도나 아까의 태도를 보아하니 싫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도 이 상황을 민망해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무실에 들어갔던 노엘은 잠시 후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슬랙스를 입고 나타났다. 사제복을 입었을 땐 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는데 이건 이거대로 귀티가 났다.

모델 같은 자태에 감탄한 실비아는 여러 번 시스템한테 엿 먹었던 기억을 잠시 잊고 역시 빙의하길 잘했다며 침을 질질 흘렸다. 다시 생각해도 저런 완벽한 남자를 공략해야 하는 게임에 들어왔단 게 정말 행복했다.

‘복도에다 레드카펫만 깔면 월드클래스 배우가 따로 없겠어. 양복이라도 입었다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줄 알았을 듯.’

단순한 와이셔츠와 슬랙스 차림일 뿐인데 패션의 완성은 역시 얼굴이었다.

이런 옷은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어색하다 중얼거리며 노엘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만지작거리다 실비아를 바라봤다.

“사제복을 입으면 너무 눈에 띌 거 같아서요, 괜찮겠죠?”

“그럼요.”

‘어휴, 이미 얼굴부터가 300미터 뒤에 있어도 눈에 띄게 생겼구만, 뭘.’

미남을 옆에 두고 걸으니 심박수가 높아져 저혈압이 저절로 치료될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신을 놓고 걷다 보니 둘은 어느새 세비스와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마을 광장에 들어서니 분수대 앞에 모자를 쓰고 서 있던 세비스가 실비아를 보고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그녀의 옆에 있는 노엘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순식간에 표정이 어색해진 세비스의 얼굴을 보니 저번에 바람피운 남편처럼 추궁당했던 사건이 생각난 실비아가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세비스가 남자는 다 짐승이라고, 조심하라며 경고했었지. 오늘 만나 보면 좋은 분이란 걸 세비스도 알게 되겠지?’

남자는 다 짐승이니 조심하라니, 세비스의 말은 다시 생각해도 좀 웃겼다.

사실은 그녀야말로 이 게임 속에서 제일 위험한 인물인데 세비스는 뭘 몰라도 한참 몰랐다.

그리고 노엘이 알고 보니 타락한 사제고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지르고 다녔을지라도 실비아는 다 품어 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노엘의 얼굴에 진심이었다.

쓰레기 생각을 하다 보니 피라미드 행사장에서 제비 같이 굴며 사모님들을 후리던 루카가 잠시 떠올랐다. 동정이지만 싸가지 없고 입을 여기저기 헤프게 놀리고 다니는 그.

‘대체 독은 어떻게 제거하냐고. 사람인데 복어처럼 배를 딸 수도 없고.’

독만 없다면 진작 루카랑 신나게 이것저것… 했을 텐데. 아쉬움에 실비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오늘 비밀상점을 가기로 했잖아? 거기 가면 루카의 독을 제거하는 아이템이 있을 수도 있어.’

“저기, 자매님?”

“실비아 님!”

그러던 중 노엘과 세비스가 동시에 실비아를 불렀다. 생각에 빠져있던 실비아는 어색하게 서 있는 둘을 발견하고는 서로 인사시키는 걸 잊었단 걸 깨달았다.

노엘에겐 미리 말을 해 뒀지만 세비스는 모르고 만난 셈이니 어떻게 보면 매너가 아니었다.

‘흠, 딱 봐도 노엘 님을 싫어하는 티가 나는데 어떻게 설득한다?’

노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실비아는 세비스를 분수대 뒤편으로 데려갔다. 예상대로 그는 팔짱을 낀 채 입을 못마땅한 듯 내밀곤 투덜거렸다.

“실비아 님, 저 남자는 저번에 봤던 그 신관 아닌가요?”

“맞아. 미안해 세비스. 너한테 미리 말할 방법이 없었어….”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저희 둘이 만나기로 한 건데 왜 다른 사람을 데려와요?”

세비스가 속상한 표정으로 툴툴거리자 실비아는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렇긴 하지….”

“돌려보내요! 둘이서만 놀기로 했잖아요. 전 어색해요.”

“휴, 그럼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우리 둘이 옷 사러 가야겠네…. 노엘 님이 우리 옷을 사 주기로 하셨는데 말야….”

흘리듯이 내뱉은 그녀의 말에 세비스가 잠시 흠칫하더니 눈을 도로록 굴렸다. 그대로 멈춰 선 그는 바닥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실비아는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다. 이거면 세비스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구제 말고 새 옷으로, 네 옷까지 사주신댔는데 어쩔 수 없지…. 신관님 보내고 구제시장이나 가자….”

“새 옷이요…?”

새 옷이라는 말에 붉은 눈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나 덥석 말을 물리기엔 민망했는지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흔들리고 있군. 조금만 더하면….’

세비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 실비아는 말을 더 얹어 보기로 했다.

“뭐, 인형 눈알을 1만 개나 붙이는데 새 옷 하나 못 사겠어? 하루 인형 1천 개 목표로 열심히 붙여 보자! 좋아! 신관님한테 옷 안 사 주셔도 된다고 말하고 올게.”

실비아의 말을 듣자마자 세비스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네?! 1만 개라니요, 100개만 해도 눈이 시리던데….”

“세비스, 눈이 문제야? 붙이다 보면 나중엔 눈 감고도 작업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겠지. 우리 새 옷 한번 입어 보자. 자, 기다리고 있어. 신관님에게 말하고 올 테니까.”

“앗, 잠깐….”

실비아가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뒤돌아서자 세비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그녀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꾹 참고 비장한 표정으로 세비스를 돌아봤다.

“왜?”

“저, 실비아 님!”

실비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어깨 위에 올려진 세비스의 손을 떼어 냈다.

“세비스, 우린 갈 곳이 많아. 구제 옷 사고 나면 골무도 사러 가자. 인형 눈알 꿰매다 보면 손가락도 아플 테니까, 지문 닳는 거 방지용으로 한 100개들이 세트는 사야겠는걸.”

실비아가 가차 없이 다시 뒤돌려 하자 세비스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뇨! 생각해 보니 신관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처럼 호의를 베푸신 건데 말이죠! 저라면 정말 기분 나쁠 거 같아요, 제가 오늘은 참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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