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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8화 (28/372)

28화

말린다고 해서 안 갈 실비아가 아니니 옆에서 잘못되지 않게 따라갈 수밖에. 그런 결심을 하며 세비스는 인형 눈알을 열심히 꿰맸다.

눈알 꿰매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완성된 인형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렇게 50개가 넘어가니 어깨가 저려 오고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는 휴식 겸 잠시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했다.

장 봐온 채소들을 손질하고 닭을 토막 내 매콤한 조미료를 넣어 스튜를 만들고 있으니 실비아가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왔다.

3시간이 지나 상태 이상 비실비실이 풀린 것이다. 실비아는 10년 감수한 기분이었다.

“실비아 님 깨셨어요?”

“응, 아, 힘든 하루였어.”

메시지만 뜨지 않았다면 나쁘지 않은 하루가 될 법했는데, 결과적으로 오늘은 최악의 하루였다.

‘앞으로는 스킬을 생각 없이 사용하지 말자, 그리고 업보… 휴.’

업보는 좀 찝찝한 일을 행하거나 실비아가 게으름을 부릴 때 올라가는 듯했다.

피라미드 업장에서 한 명연설로 50이 추가된 탓에 실비아의 업보는 총 160이 되었다. 나태지옥에 안 가려면 자나 깨나 업보 조심을 해야 했다.

실비아는 냄비를 휘저으며 저녁을 준비하는 세비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비스가 날 데려온 건가?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람.’

중간에 기절해버려서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루카의 부축을 받고 호텔 입구까지 나온 후, 간간이 희미한 시야에 세비스의 얼굴이 들어왔고, 마차를 탄 뒤 깨어보니 지금이었다.

그래서 실비아는 본인도 모르는 새에 아까운 구경을 놓쳤다. 아마 실비아가 맨정신으로 두 남자의 대화를 들었다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뻐했겠지만 애석하게도 비실비실 상태였기에 기절한 채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 간간이 두 남자가 웅얼대며 대화를 나누던 두루뭉술한 기억만 존재할 뿐이었다.

실비아가 기억나지 않는 아까 전의 일을 애써 떠올리려 하는 동안 세비스는 냄비 뚜껑을 닫곤 불을 낮춘 후 앞치마를 벗으며 실비아를 돌아봤다.

“아직 저녁 먹을 때는 아닌데 인형 눈알만 계속 붙이려니 좀이 쑤셔서 미리 준비해 봤어요.”

“맛있겠다! 아 참, 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업체 사장이랑 싸우는 거 같던데.”

실비아의 업체 사장이란 언급에 세비스의 낯빛이 밝아졌다.

‘일방적으로 그 남자가 친한 척한 거구나.’

싱글벙글한 그의 얼굴을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봤다.

“별일 없었어요. 아! 그분이랑 연락 하셔야 되는 일이 있어요?”

“아니? 수당도 다 받았는걸.”

어차피 그녀가 맘만 먹으면 루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은 독이 든 루카랑 굳이 연락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오히려 괜히 연락을 이어가다가 연설을 한 번 더 부탁받으면 골치 아플 터였다.

세비스는 그녀의 말에 주머니 안의 명함을 꾸겨버리곤 활짝 웃었다.

실비아는 그의 뜻 모를 미소에 같이 미소 지은 뒤 안방으로 돌아가 눈이 없는 인형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카펫에 주저앉아 눈알 붙이기를 하자 주방에서 돌아온 세비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 몸으로 인형 눈알 붙이기 하실 수 있겠어요?”

“이제 멀쩡한걸? 저녁 먹기 전까지 열심히 붙여 보자.”

세비스는 실비아의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카펫에 걸터앉아 열심히 인형 눈알을 붙였다. 눈알을 붙이다가 힐끗 세비스를 바라본 실비아는 그의 옷이 해진 것을 발견하고 낯빛이 어두워졌다. 보풀이 다 일어난 게 정말 없어 보였다.

‘주인 잘못 만나서 귀여운 세비스가 누더기옷을 입고 다니다니…. 휴.’

실비아가 은근슬쩍 세비스에게 물었다.

“세비스, 이제 소지금도 1만 골드가 넘었는데 옷이나 사러 갈까?”

오늘 세비스가 구슬을 팔고 가져온 돈은 4천 골드가량이었다.

거기다 실비아가 신전 청소 알바와 길거리 전도를 하며 얻은 돈과 오늘 옥장판 판촉 알바를 하며 받은 1천 골드를 합하니 소지금이 1만 골드를 넘어갔다.

‘그러니 옷 한두 벌이야 사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실비아의 싱글거리던 얼굴은 이어지는 세비스의 말에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면 집은 언제 사요….”

“아…. 음식값을 아껴볼까? 난 풀만 먹어도 돼.”

그러자 세비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실비아 님, 풀이 더 비싸요….”

“그렇구나….”

세비스의 현실적인 말에 실비아의 어깨가 추욱 내려갔다.

하루 이틀 번다고 해서 거렁뱅이를 벗어날 수 없는 건 현실과 너무 똑같았다.

고작 소지금이 1만 골드를 넘었다고 갑자기 부자가 될 리는 없는 법. 루카가 파는 옥장판이 하나에 1만 골드 아니던가. 무슨 놈의 게임 세상이 빈부격차가 이리 심한가. 행사장의 호구들은 1만 골드가 싸다고 거저라며 아우성이었는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세비스가 한숨을 푹 내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옷이요…. 구제시장을 가 볼까요.”

“구제시장도 있구나….”

구제시장을 가자는 세비스의 말에 실비아가 어깨를 더욱 늘어트리며 세상 다 산 얼굴을 했다. 실비아의 풀죽은 표정에 세비스가 인형을 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새 옷을 살까요? 그 대신에 한동안은 스프만 먹어야….”

“아냐. 누더기옷보단 구제 옷이 낫지. 옷 사러 가자.”

‘거렁뱅이 언제 탈출하냐. 하, 우울하다.’

실비아는 게임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던전을 공략하다 보면 얻는 돈이 점점 커질지도 몰랐다. 원래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땐 100골드도 커 보이는데, 만 렙쯤 되면 100만 골드짜리 무기도 척척 사는 부자가 되지 않는가.

‘절실하게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서 세비스에게 원 없이 비싼 옷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럼 얼마나 기뻐할까.

실비아는 내일 신전 알바를 갔다가 세비스와 함께 구제시장에서 옷을 사기로 약속했다.

‘비밀상점도 가봐야겠어, 살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말야.’

잠시 우울해하던 둘은 다시 활짝 웃으며 내일 있을 나들이를 얘기했다.

* * *

아침이 되고 실비아는 출근을 위해 의미 없이 옷장을 뒤적거렸다.

‘똑같은 거렁뱅이 옷이지만 보풀이 좀 덜 일어난 걸로 갈아입자.’

오늘이면 이 누더기옷과도 안녕이다.

그녀는 틈이 생기면 잠시 비밀상점에도 가 볼 생각이었다. 막다른 벽을 향해 달려가야 한단 조건이 좀 걸렸지만 해봤자 코밖에 더 깨지겠는가.

거기다 비밀상점에 어떤 물건들이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됐다. 게임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이 있으면 당장은 못 사도 눈여겨 봐뒀다가 나중에 구입하면 될 것이다. 혹시 능력치에 도움이 되는 옷이 있다면 바로 구입해도 좋고.

아침을 먹고 문밖을 나서자 세비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실비아를 배웅했다.

“나중에 봐요, 실비아 님. 우리 구제시장 갔다가 노점에서 맛있는 것도 사 먹어요!”

“으앗! 생각만 해도 신난다. 나중에 봐!”

실비아는 세비스의 배웅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쉬는 날 분배 포인트를 민첩에도 투자했기에 발걸음이 새털같이 가벼워졌다. 신이 난 그녀는 산뜻하게 쓰리 투 차차차 스텝을 밟으며 신전을 향해 춤을 추듯 걸어갔다. 춤을 추며 걸었는데도 민첩이 올라가서 그런지 평소보다 일찍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전에 도착해서 노신관에게 서고 정리를 부탁받은 실비아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노엘 님은 어디에 있으려나.’

복도를 걷던 실비아는 잠시 후원으로 나가는 주발을 살포시 걷어 고개만 쏘옥 자라처럼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곤 머리를 돌려가며 그를 찾아봤으나 후원엔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여기 있나! …없네.’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다시 쏙 집어넣은 실비아는 뒷짐을 지고 걷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예고 없이 벌컥 첫 번째 기도실 문을 열었다.

‘여긴! 여기도 없어….’

혹시나 해서 복도에 있는 기도실을 다 열어봤지만 어느 곳에도 노엘은 없었다. 초조함에 실비아는 입이 저절로 말라붙었다.

노엘이 당장 유일하게 공략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오늘은 꼭 만나야 했다. 출장에서 돌아왔으니 신전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그동안 신앙심도 많이 올랐는데, 대체 어딜 간 건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신앙심이 얼마가 돼야 천벌을 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추근덕… 아니 공략을 해야 다음 파트로 나갈 텐데.

실비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서관에 들어선 실비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시 한번 노엘을 찾았다. 저번에 서고 정리를 같이 했으니 오늘도 도서관에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서고 뒤편 도서정리 대 앞에서 레몬 빛 금발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노엘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조금 피곤한 얼굴로 책을 분류하고 있었다. 간간이 한숨도 내쉬는 게 보였다. 잠을 못 잔 건지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옛말에 미인은 눈썹을 찡그려도 유행한다고 했던가. 남들은 없애려고 노력하는 다크서클도 잘생긴 얼굴에 얹어지니 그렇게 사연 있고 처연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다크서클도 액세서리로 만들어 버리는 저 얼굴….’

오늘의 노엘은 처연함이 더해져 우수에 젖은 미남의 자태를 연출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민첩이 올라간 지 얼마 안 돼서 몸이 하늘로 날아갈 듯 가벼웠기에 컨디션이 좋았다. 그녀는 노엘을 발견해 신난 마음에 숨죽여 살금살금 깨금발로 다가갔다. 등 뒤에 그녀가 설 때까지도 노엘은 정신을 어디다가 팔고 있는 건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속으로 키득대며 웃은 뒤 손끝을 모아 등을 톡 치며 소리를 질렀다.

“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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