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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6화 (26/372)

26화

그녀의 어깨를 루카가 단단한 손으로 감싸 안으며 자연스럽게 소파로 데려갔다. 얼떨결에 루카를 따라 소파에 앉게 된 실비아는 구석 자리를 힐끗 바라보았다.

벽 한 편엔 건강식품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거기다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같은 루카의 저 사악한 미소…. 실비아는 불길함을 느꼈다.

‘뭐야, 설마 식품을 잔뜩 구매해서 팔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할 일도 태산인데 피라미드 영업 사원이 될 순 없지.’

실비아는 벌떡 일어나서 루카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약속한 일당이나 주세요. 제 몫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요?”

“아, 잠깐만 앉아 봐. 진지하게 사업 관련 얘기 좀 하려고 했더니.”

“아니, 괜찮….”

“여기서 정식으로 일하면 하루에 1만 골드.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루카의 말에 실비아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1만… 1만 골드? 미친 일당이었다. 말하는 걸 보니 아마도 물건을 강매하려는 건 아닌 듯했다. 거기다 정식사원이 된다면 지금은 공략 불가한 루카를 계속 옆에서 지켜보며 눈요기를 할 수도 있었다.

“1만 골드요?”

“그래, 괜찮은 제안이지 않아? 아,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다른 평사원들처럼 물건을 살 필욘 없어. 네 말발이면 옥장판 100만 개 판매도 꿈은 아닐 거 같은데.”

“와, 그것참 괜찮은….”

실비아가 화색을 띠며 제안을 수락하려는 순간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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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수많은 사람을 피라미드의 세계로 이끌었다. 업보가 +50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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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할 틈도 없이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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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100명 이상의 청중 앞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였기에 <상태 이상 : 비실비실>이 3시간 동안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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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실비아의 코 밑이 축축해졌다. 무심코 코를 훑어 본 실비아의 손가락에 진득한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쌍코피였다. 실비아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본 루카가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실비아, 너 코피 나.”

“으으….”

코피가 끝이 아니었다. 온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루카가 당황하면서 티슈를 뜯어 그녀의 코를 막아 주었다.

스킬을 함부로 사용한 대가가 너무 혹독했다. 업보 50이라니…. 피라미드 정식사원이 됐다간 이 주도 안 되어 순식간에 나태지옥 행이었다. 거기다가 스킬을 광범위하게 사용해서 상태 이상 비실비실까지 추가됐다.

실비아는 비틀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루카가 부축해 주려 함께 일어났지만 그녀는 그 손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아무리 변태인 그녀지만 몸도 아프고 업보까지 추가된 상황인 지금 원인 제공자인 미남의 손길이 달갑지가 않았다.

“하… 괜찮아요. 일당이나 주세요.”

“그래. 계산은 확실하게 하도록 하지.”

루카가 덩치를 불러 1천 골드를 실비아에게 건네주었다.

돈을 받은 실비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실비아가 드레스룸 문을 열고 나오자 앞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루카가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정식사원 제안은 수락하는 거야?”

“아무래도 그건 좀 안 되겠네요.”

실비아가 제안을 거절하자 루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1만 골드면 보통사람은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이야.”

“저는 이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실비아는 어깨에 닿은 손을 떼어낸 뒤 다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몸이 으슬으슬한 게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아니다, 으. 집에 가면 인형 눈알도 붙여야 되는구나.’

아마도 먼저 집에 도착한 세비스가 한창 시린 눈을 비비며 인형 눈알을 열심히 붙이고 있을 테니 어서 가서 같이 일을 해야 했다.

띵해져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힘없이 걷는데 루카가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실비아는 비실거리며 고개를 들어 힘없이 루카를 바라봤다.

“정식사원 할 생각 없다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데려다주려고.”

“…괜찮아요.”

“걱정이 돼서 그래.”

‘걱정은 개뿔, 집 알아놨다가 옥장판이나 건강식품을 강제로 떠안기는 거 아냐?’

몸이 아프면 긍정적이고 음란한 생각은 저 멀리 물러나고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차는 법. 비실비실한 상태의 실비아는 미남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았다.

평소의 그녀라면 옆에 선 루카의 귀에 뜨거운 바람이라도 불어넣었을 텐데,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손을 뿌리치곤 비실대며 계단을 오르자 황급히 뒤따라 온 루카가 그녀를 부축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비실비실 상태의 실비아는 루카가 아직 정식사원 스카우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라고 판단했다.

‘몸에 힘도 없는데 그냥 부축해 주는 대로 받자.’

그녀는 계속 옆에서 얼쩡거리는 루카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놔뒀다.

루카는 비실대며 갈피를 못 잡는 가녀린 몸을 팔짱을 껴 부축했다. 부드럽게 안겨 오는 향긋한 여체에 루카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비아의 명연설을 본 후로 그의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이 여자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옥장판으로 세계제패도 꿈만은 아니다.

루카는 실비아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자신을 성공시켜 줄 여자, 아버지가 누누이 말하던 놓치면 안 될 일생의 단 한 명의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사랑스럽다,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전무후무한 판매기록을 세웠기 때문일까? 루카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는 아까부터 실비아와 몸이 닿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여자에 관심 없이 돈 버는 것에만 몰두하던 루카에겐 낯선 느낌이었다.

상태 이상 비실비실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단단한 팔에 몸을 의지했다. 온몸이 점점 뜨거워져 와 눈앞이 흐릿했다. 팔에 맞닿아 오는 부드러운 가슴의 촉감에 루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분명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인데 여러 번 깊이 얽힌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졌다. 실비아를 바라보는 금안이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었다.

실비아를 부축해 호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 루카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이랑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실비아, 집이 어디야?”

‘상태 이상으로 귀도 고장 난 걸까. 옥장판 백 개 산 귀부인한테 말 걸 때보다 더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리네.’

“흣, 이제 호텔로 들어가 보세요…. 전 어떻게든 혼자 갈 테니까…. 후….”

실비아는 루카에게 집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노엘이야 공략 캐릭터이고 정중한 성격이기에 함부로 집을 찾아오지 않겠지만, 루카는 집을 알려 주면 뭔 짓을 할지 몰랐다.

‘옥장판을 떠넘기거나, 덩치를 보내 직원이 돼라 협박할 수도 있다.’

딴 것보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당장 공략 가능한 노엘부터 어떻게 하고 난 뒤 루카를 공략하고 싶었다. 두 번이나 데드엔딩을 맞았는데 굳이 집을 알려줘서 곤란한 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독을 제거하는 방법도 아직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루카는 공략 캐릭터니까 게임의 인과법칙상 다시 만날 테고, 정 안 보이면 옥장판을 판매하는 곳을 찾으면 될 거였다.

실비아의 말에 루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 꼴로 어떻게 혼자서 집까지 간단 거야. 마차로 데려다줄게.”

“하… 괜찮다니까요….”

“난 아픈 여잘 버려두고 가는 나쁜 남자가 아닌데.”

루카가 아름다운 금안을 둥글게 휘며 그윽하게 실비아를 바라봤다. 실비아는 아픈 와중에도 흠칫하며 맛이 간 듯한 루카의 눈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왜 이러지, 뭐 잘못 먹었나?’

실비아는 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루카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건강한 상태의 실비아였다면 루카의 버터 바른 눈빛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지금의 실비아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당장 누워서 쉬고 싶었다.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느끼한 멘트를 쳐 버리곤 속으로 아차 했다.

‘너무 성급했나?’

루카는 입이 타는 느낌에 혀로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실비아의 몸을 부축하고 있으려니 점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아픈 사람을 상대로 이럼 안 되지만 숨소리도 거칠어져 갔다.

그는 지그시 실비아를 바라보며 침착한 척 웃었지만 속으론 몸의 반응에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쓰레기였나. 아픈 여잘 상대로 흥분하다니.’

사실 루카는 문어발처럼 손을 뻗어 온갖 불법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 암흑조직의 후계자였다.

그는 곧 아버지의 뒤를 이어 차기 보스가 될 몸이었으니 누구 못지않게 쓰레기다웠지만 적어도 이성에 관해선 몹쓸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입은 비록 사업 때문에 걸레가 다 되었지만 몸은 순결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아픈 실비아를 상대로 흥분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루카가 대답 없이 멍한 표정으로 기대어 있는 실비아의 앞머리를 넘겨 주려는 찰나, 누군가가 뛰어와서 거칠게 루카의 손을 붙잡았다.

“누구세요?”

검은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린 붉은 눈의 남자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그의 손을 실비아한테서 떼어 냈다.

‘소년? 아니, 남자에 더 가까운가.’

보아하니 실비아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눈빛이 맘에 안 드는군.’

루카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을 향해 능글맞게 웃으며 실비아의 허리를 다시 꽉 끌어안았다.

“넌 누군데 갑자기 껴들어.”

“실비아 님? 정신 차려요.”

세비스는 볼일을 끝내곤 실비아와 같이 집에 가려고 호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 엇갈릴까 봐 입구 근처를 천천히 배회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웬 장신의 남자의 몸에 착 안겨 나오는 게 아닌가.

남자는 한눈에 봐도 껄렁거리고 질이 안 좋아 보였다. 분명히 존댓말로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면부터 반말로 대꾸하질 않나, 턱을 치켜든 채 내리깔아 보는 거만한 표정과 오늘 처음 봤을 게 분명한 실비아의 허리를 아무렇지 않게 안고 있는 거까지. 세비스는 루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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