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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24화 (24/372)

24화

루카가 실비아를 떠올리며 고민에 빠진 사이 실비아는 아까 고른 심플한 원피스 말고 보석이 알알이 박힌 화려한 원피스를 골랐다. 자신에게 2번이나 데드엔딩을 안겨준 루카에게 대여비를 더 물리게 하고 싶은 심술에서였다.

가슴골이 살짝 보이는 브이넥 형의 푸른색 시폰 원피스는 가슴 주변에 조그만 진주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가운데엔 블루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 한눈에 봐도 비싸 보였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입어 보겠어.’

게임 빙의라길래 비싼 옷도 실컷 입고 하하 호호 연회장이나 돌아다닐 줄 알았지, 거렁뱅이가 돼서 망치로 꽃게 뚝배기나 깨고 다닐 줄은 몰랐다.

전신거울을 보며 자신의 자태를 잠시 감상한 실비아는 목이 허전하게 느껴져 세트로 되어있는 블루다이아몬드가 포인트인 푸른색 시폰 초커도 대여했다.

그녀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드레스룸 밖에 서 있던 루카가 직원에게 받은 계산서를 보며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 하하. 와, 오늘 날 잡으셨네?”

“예? 어차피 대여하는 거잖아요. 음, 루키? 루키 님 맞으시죠. 옷 꼬라지가 뭐냐고 하시길래, 제대로 된 옷을 입어야 될 줄 알았어요. 아! 자금 여력이 안 되세요? 그럼 다시 거렁뱅이 옷으로….”

실비아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리려 하자, 자존심이 상한 루카가 손을 휘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돈이야 넘쳐나게 많지. 어설프게 했다가 장사 망치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내 이름은 루키가 아니라 루카 디 아리센트다. 아리센트 가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겠지? 루키라고 말하다니, 기억력이 안 좋은가 본데.”

으득. 루카가 이를 살짝 악물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실비아는 아까의 복수를 하는 중이었다. 루카가 당장 대체자를 못 구하니 참고 받아 주는 게 훤히 보였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저 더러운 성질에, 더 건드렸다간 어찌 나올지 몰라.’

실비아는 싱긋 웃으며 성큼 다가가 루카의 팔짱을 꼈다. 그녀의 행동에 루카가 잠시 움찔하더니 귀를 붉혔다. 그녀는 그의 반응을 살피며 속으로 즐거워했다.

‘옷 위로 만지는 건 문제 없겠지. 먹지도 못하니 꼴리게 만들고 튀어야겠다.’

두 번이나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만지기 싫어야 정상이건만, 실비아는 도박중독자가 제 손모가질 자르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잘못하면 죽는단 걸 알면서도 손은 산해진미 같은 루카의 몸에 저절로 닿았다.

실비아는 루카의 붉어진 귀를 힐끗 보곤 입술을 핥으며 고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루카는 맞닿은 팔을 힐끗대더니 어색하게 눈을 돌리곤 당황했다.

“뭐, 뭐야. 왜 팔짱을 끼는 건데?”

루카가 말을 더듬자 실비아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왜요? 싫나요? 비싼 옷도 입었겠다, 행사장까지 가는 동안 잠시 기분 좀 내보려고 했는데.”

“허… 비싼 옷 처음 입는 티 내기는….”

그때 아까의 중년남성이 루카를 조용히 불렀다.

“사장님, 행사시간이 다 돼 갑니다.”

“아, 그래. 초대 손님들은 다 모이셨나?”

루카가 보석이 테두리에 촘촘히 박힌 명품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은근슬쩍 팔에 닿은 말랑한 가슴을 힐끗거리더니 꿀꺽 침을 삼켰다.

실비아는 못 먹을 감에 생채기를 제대로 내기로 결심하곤 루카의 단단한 팔에 맞닿은 가슴을 은근하게 꾹 눌렀다.

“허억!”

그 행동에 루카가 화들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실비아는 시치미를 떼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몸이 안 좋으세요? 얼굴이 죽을상이에요.”

“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

루카가 마른세수를 하며 실비아에게서 몸을 물리려 했다. 자신의 몸이 자꾸 반응을 해 곤혹스러운 듯했다. 그녀는 떨어지려는 루카의 팔에 다시 꾹 가슴을 누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그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시겠어요? 쓰러질 것 같아요. 좀 부축해 드릴게요.”

“흣…. 아, 아픈 거 아니라니깐.”

“그럼 왜 그러세요?”

“더워서 그래, 더워서. 휴, 호텔 안이 왜 이렇게 더워.”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몸을 물리는 루카의 모습을 바라보며 실비아는 아쉽지만 팔짱을 풀었다. 여기서 더하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어설프게 변명하는 루카를 속으로 비웃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밝게 웃었다.

그런 실비아를 보며 루카는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이상하게 실비아의 단순한 접촉에도 온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매력적인 이성을 많이 접했었지만 늘 장삿속으로만 대할 뿐, 어떤 유혹에도 심드렁했다. 그러나 실비아의 접촉에는 몸이 격한 반응을 했다. 마치 이 접촉의 다음을 몸이 기억하는 것 마냥.

루카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 노력하며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 보니 행사장 입구엔 아까완 달리 팸플릿을 나눠주며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덩치들이 있었다.

슬쩍 홀을 들여다보니 원형 테이블마다 초대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하나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흐르는 것이 돈깨나 만져 본 사장님, 사모님들로 보였다.

‘왜 이렇게 화려해? 이게 단순 옥장판 판촉 행사장이라고? 뭔가 수상한데.’

수상하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법.

실비아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루카를 따라 행사장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엔 실비아처럼 고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들과 하얀 제복, 혹은 고급스러운 양복을 걸친 남자들이 있었다.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외모들이 화려했다.

루카가 그들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이며 파이팅을 외쳤다.

“자, 자! 파이팅합시다.”

‘답지 않은 게 존나 수상하네.’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실비아가 눈을 가자미처럼 뜨는데, 이상한 대화들이 들려왔다. 루카가 붉은 루비를 착용한 남성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걸었다.

“아, 루비 팀장! 이번에 몇 명 모았지?”

“10명이요. 루카 님 말씀대로 했더니 아주 순조롭습니다.”

‘이상하다.’

실비아는 루카랑 악수하며 수상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 색의 브로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실비아는 사람들이 달고 있는 브로치를 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었다.

‘아, 사회 초년생 때 교대역에 끌려갔다가 본 광경과 비슷한데.’

실비아는 현생에서 뭣 모르던 순진한 20살 때 아는 언니를 따라 교대역에 끌려갔었다.

정체 모를 후줄근한 건물로 들어가니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의 사업 성공담을 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는 단상 밑에는 자신과 같이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과 순박하게 생긴 아줌마, 아저씨, 노인들이 보였다.

그녀를 건물로 데리고 온 언니는 대학 생활 해 봤자 뭐하냐고 같이 인생역전을 하자며 동태눈깔로 실비아를 바라봤었다.

얼떨떨한 그녀의 옆에 화려한 외모를 가진 실장이란 남자가 앉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설득했다. 결국 그녀는 연예인 뺨치는 실장의 외모를 바라보며 홀린 듯이 지갑에 손을 가져갔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4개월 할부로 건강식품을 잔뜩 구매한 상태. 한동안 잘생긴 실장의 손에 이끌려 단상 위에서 건강식품의 효과를 부르짖으며 건강 개선담을 풀어놓는 흑역사를 만들었다.

뒤늦게 점차 이거 사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불법 피라미드 영업답게 환불은 불가했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 다행히 그녀는 피라미드 영업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진 않았지만 건강식품은 환불 할 수 없었고, 비싼 음식들을 버릴 수도 없어 1년 동안 혼자 열심히 먹는 바람에 살만 쪘었다.

‘그 살을 빼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 피라미드 영업장에서도 저런 식으로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계급이 있었다.

‘설마 루카 저 나쁜 놈이 순진한 사람들 상대로 피라미드 사업을?’

실비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이게 피라미드 사업장이라면 실비아는 나쁜 일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아니, 일조하는 수준이 아니다. 판촉 알바를 모집하는 척 처음에만 돈을 주면서 결국엔 실비아를 피라미드의 구렁텅이에 빠트릴지도 몰랐다.

‘교대역 놈들도 잘생긴 실장과 맛있는 스테이크로 내 혼을 쏙 빼 놨었으니….’

실비아는 초조한 기분에 입술을 깨물며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단상 뒤편의 대기실 입구엔 지금 자신의 힘으론 상대도 안 될 듯한 흉흉한 기색의 덩치들이 한가득했다.

실비아가 입구를 힐끔거리자 덩치들이 매서운 눈길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덩치는 둘째 치고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강력하고 사악해 보이는 기운을 가진 루카가 제일 문제였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데다 그는 침만 뱉어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독이 든 남자였으니까.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 없으려나. 그냥 인형 눈알이나 붙일걸, 괜히 돈에 눈이 멀어서….’

실비아는 불안하게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가 한쪽 구석에서 5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는 루카와 눈을 마주쳤다.

프로 사기꾼답게 불안해하는 그녀의 기색을 눈치챈 건지 그의 눈빛이 싸늘하고 비열해 보였다. 다 죽어가는 영양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에 실비아가 몸을 살짝 떨었다.

지금이라도 일을 물리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낚아채 목을 물어뜯어 버릴 듯 매서웠기에 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초조해하고 있는 그녀에게 어느새 다가온 루카가, 부드럽게 어깨를 쓰다듬었다. 원래라면 그 손길에 짜릿함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실비아가 불안함에 떨자 루카가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왜 그래? 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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