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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7화 (17/372)

17화

노엘은 실비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옷을 내밀었다. 옷은 무척 품이 넉넉했는데 아마도 평소에 노엘이 운동할 때 입는 운동복 같았다.

“이 옷을 입으시면 됩니다.”

“감사해요.”

싱긋, 하고 웃으며 감사를 표한 그녀는 건네준 옷을 받아들다가 ‘아앗!’하고 짧게 외치며 옷을 떨구었다. 그러더니 손을 파르르 떨었다.

“왜 그러세요?”

“손이… 아, 손목이 삐었나 봐요. 옷을 못 갈아입겠어요. 어쩌죠?”

“네?”

노엘은 멍하니 잘게 떨리는 실비아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으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파악이 안 됐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왜 계속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아까부터 도저히 감당 불가한 상황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서재 정리를 할 때만 해도 그의 맘은 평온했으나 우물에서 젖은 그녀의 몸을 봤을 때부터가 문제였다.

젖어있는 하얀 원피스 너머로 적나라하게 보이는 속옷에 노엘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본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옷과 마찬가지로 하얀 속옷은 그 안의 은밀한 체모마저도 내보이는 듯했다.

시각적인 자극도 감당하기 힘든데

자꾸 몸이 닿는 상황이 연출 되어서 불가피하게 아래가 아까부터 계속 발기된 채였다.

기껏 집무실 옆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솟아올랐던 앞섶을 가라앉히고 왔건만 젖은 채로 제게 착 달라붙은 탓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비아의 몸을 보자 아래가 다시 뜨거워졌다.

노엘은 실비아와 처음 악수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손을 잡은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깨끗하고 묘한 기운이 느껴져 당황했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멍하니 서 있는 무례를 저질렀었다.

‘실비아 님에겐 알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느껴져. 그건 신탁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

그에게 내려진 신탁의 내용은 이랬다.

그대를 스스로 서게 하는 자가 이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리라.

스스로 서게 하는 자라. 신탁을 들었을 당시에는 스스로 선다는 게 자립심을 뜻하는 말인가 했다. 그래서 신관의 자질을 하나하나 다 가르쳐줬던 스승님이나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신관 학교의 동료들을 떠올렸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스승님은 훌륭하고 배울 게 많은 사람들은 맞았지만 영웅이 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 와중에 실비아를 만났고 그녀가 자신의 아래를 세웠다.

‘설마 날 세워 준 실비아 님이…. 오, 신이시여, 내가 무슨 생각을….’

노엘은 자신이 한 낯뜨거운 생각에 끙, 하고 신음을 삼켰다. 신께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실한 신관인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릴 리가 없었다.

‘나도 참, 아직 진정한 사제가 되려면 멀었구나. 이런 정신 나간 생각이나 하다니.’

그렇지만 다른 이들과 확연히 다른 실비아의 기운에 그는 실비아가 영웅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선단 게 꼭 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런 뜻이면 안 되지. 어찌 됐든 실비아 님께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진다. 실비아 님이 과연 영웅인 걸까. 그렇다면 <잊혀진 신전>을 다시 복구할 수도 있는 걸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실비아를 좀 더 옆에서 자세히 관찰해 봐야 알 수 있을 듯했다. 노엘은 눈앞의 순진무구해 보이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무 순진해.’

그는 실비아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라곤 평신도들이나 신앙심 깊은 성녀들밖에 본 적 없었던 그는 실비아가 너무 순진한 탓에 저도 모르게 남자를 자극하는 거라고 판단했다.

누더기옷을 입은 채 성실하게 청소 알바와 길거리 전도 알바를 하는 실비아의 머릿속이 음란할 거라고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기도 대에서 진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기에.

그에 더해 전혀 사심 없어 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신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신관이기 전에 노엘은 신체 건강한 남자인데 실비아는 그를 전혀 이성으로 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무의식중에 - 철저히 계획된 거였지만 노엘은 무의식중이라 판단했다. - 그를 자극했다.

이젠 심지어 손목이 아프다니, 맙소사, 실비아가 또 어떤 무자각한 말을 내뱉을지 그는 두려워졌다.

노엘이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자 실비아의 말이 이어졌다.

“손에 힘이 없어요…. 오늘 너무 일을 많이 했나 봐요. 손목이 좀체 낫질 않네요…. 저… 옷을… 옷을 갈아입혀 달라는 건 너무 무리한 부탁일까요? 휴.”

“예? 옷을…. 저보고 옷을 갈아입혀 달란 말씀이십니까?”

“네, 옷을 갈아입혀 주세요.”

실비아가 순진한 척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떨면서 말하는 그 순간. 우르르 쾅쾅! 하늘이 번쩍하면서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더니 천둥소리가 들렸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창문 밖으로 벼락이 무섭게 내려치는 게 보였다. 건물 전체를 울릴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다.

“으악!”

실비아는 갑작스러운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꺄악!”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신이시여!”

창문 너머로 천둥에 놀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의 비명이 한데 뒤섞여 시끄러운 와중에 곧 그녀의 눈앞에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삐-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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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신앙심이 너무 낮아 데드엔딩 : 천벌 루트로 진입합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

‘와, 이건 공략조건이 아니라 생존조건 아니냐. 신앙심을 올려야 천벌을 면하는 거였어.’

실비아가 앞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깨를 감싸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자 노엘이 무릎을 굽혀 실비아와 눈을 맞췄다.

“자매님, 괜찮으세요?”

노엘의 걱정하는 표정을 보자 실비아의 달아올랐던 몸이 차츰 식어갔다.

역시 너무 무리한 공략이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싶었더니 망할 놈의 게임이 순순히 실비아의 개수작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계속 진행하겠냐고 물어보는 건, 여기서 더 하지 않으면 천벌을 면할 수 있단 말일까.’

친절히 데드엔딩을 예고까지 해 주는데 벼락을 맞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실비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좀 놀라긴 했지만요.”

“자매님, 근데 방금 한 말씀은….”

“아니에요. 역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손목이 아파도 옷은 스스로 갈아입어 볼게요.”

실비아는 침착하게 다시 일어섰다.

개수작은 그만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손을 떠는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와서 손이 나았다고 하면 노엘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녀의 떨리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노엘이 또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불안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인 듯했다.

노엘은 머뭇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옷을 다시 주웠다.

“정말로 괜찮으세요?”

“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엘은 편히 옷을 갈아입으라며 그녀를 옆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떨고 있는 실비아의 손을 보곤 걱정이 됐는지 밖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 언제라도 자신을 부르라는 말을 남긴 후 방을 나섰다. 하지만 데드엔딩 메시지를 본 후 한없이 경건해진 마음을 갖게 된 실비아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젖은 원피스를 벗어 던진 실비아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옷도 젖어 있단 것을. 실비아는 노엘이 준 옷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헐렁한 옷이라도 노팬티야 그렇다 쳐도 브래지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실비아가 머뭇거리다 문을 살짝 열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노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기… 신관님.”

“…옷을 갈아입기 힘드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요. 죄송하지만 저, 속옷도 다 젖어서….”

“아….”

그녀의 말에 노엘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노엘은 뒤로 돌아선 상태에서도 속옷이 젖었단 실비아의 말에 또 서버렸다. 실비아는 노엘의 상태를 모른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아무리 그래도 속옷도 안 입고 신관님의 옷을 입을 순 없으니까요.”

“후… 그렇군요…. 속옷도 안 입고 제 옷을… 큭….”

쾅-! 노엘이 벽으로 몸을 돌리더니 갑자기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그 바람에 주먹질을 받은 벽에서 돌가루들이 휘날렸다. 실비아는 노엘의 영문 모를 행동에 움찔 몸을 떨었다.

‘뭐야, 왜 저래. 속옷도 안 입고 지 옷 입는다고 화났나? 깔끔떠는 스타일인가 봐?’

노엘은 벽을 친 상태 그대로 몸을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실비아가 재차 제 용건을 말했다.

“그… 죄송한데 여자 속옷은 당연히 없겠죠?”

“네! …당연히… 없습니다.”

“그럼 신관님 팬티라도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라도 입….”

쾅-! 한 번 더 벽을 치는 노엘의 모습에 데드엔딩을 맞을까 쫄아 버린 실비아는 그냥 속옷을 입지 않고 옷을 걸치기로 결심했다.

“아, 아니에요. 그럼 죄송하지만 속옷 안 입고 신관님 옷 좀 입을게요.”

“…큭! 괜찮 …후…. 괜찮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간 실비아는 서둘러 헐렁한 노엘의 옷을 대충 걸쳤다.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저 관대한 신관이 벽을 쾅쾅 치며 화를 표출하는 걸 보니 대충 입고 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았다.

근데 젖은 속옷의 처리가 또 문제였다. 이걸 맨손으로 들고 갈 순 없지 않은가. 인벤토리에 넣으려 해 봤지만 공략 관련 아이템이 아니라서 그런지 보관이 되질 않았다. 실비아는 문을 빼꼼 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노엘 님… 저…. 정말 죄송한데.”

“…뭐죠?”

실비아는 흘러내릴 거 같은 바지를 움켜쥔 채로 노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젖은 속옷을 든 손을 뒤돌아있는 노엘의 얼굴 앞에 디밀었다.

“이거 담아 갈 바구니 같은 건 없….”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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