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
그 바람에 원피스 자락을 꽉 쥐고 있던 노엘의 몸이 갑작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균형을 잡으려던 단단한 손은 그녀의 무릎을 움켜잡고 말았다.
의자에 걸터앉은 실비아와 그녀의 양쪽 무릎을 움켜잡은 노엘의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며 급히 뒤로 몸을 물리려는 노엘의 손등 위로 실비아의 손이 포개졌다.
실비아는 짐짓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노엘의 떨리는 초록색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관님 괜찮으세요? 넘어질 뻔하셨어요.”
실비아는 최대한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노엘의 양손이 무릎 위를 떠나지 못하도록 꾹 눌렀다. 빙의한 겉껍데기 자체가 원체 순진하고 청순하게 생겼기에 개수작 부리는 티가 나지 않아 좋았다.
맞닿은 손은 무척 뜨거웠다.
실비아가 앉은 채로 자연스럽게 다리를 벌리자 노엘의 몸이 눈에 띄게 꿈틀댔다. 허벅지 사이가 살짝 벌어지자 젖은 원피스 너머로 속옷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그녀의 무릎 위에 손을 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엘의 위치에선 더없이 잘 보일 터였다.
‘거렁뱅이 옷과 하얀 속옷이 세트라서 다행이군…. 하얀 옷이 원래 잘 보인단 말이지.’
그녀의 벌어진 다리 사이를 목도 한 노엘의 목울대가 꿀렁이며 움직였다. 무릎에 닿은 부드러운 손이 무척 뜨거웠다. 자극적인 상황에 실비아의 아래도 점점 뜨거워졌다.
‘지금 공략하면 안 되나? 우물가에서 당장 야외 플을 즐기고 싶다.’
현실이면 미친 생각이지만 게임 속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아무도 없겠다, 여기서 당장 노엘의 젖은 옷을 찢어 버리고 속옷을 내려 그대로 따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실비아는 데드엔딩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참았다. 아직 호감도나 신앙심이 턱없이 낮았다.
계속 그의 손등을 누르고 있으면 이상해 보일 듯해 실비아는 자연스럽게 손을 뒤로 물렸다. 무릎을 계속 잡고 있고 싶은 건지 손을 떼고 싶은 건지 모를 정도로 노엘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아, 죄송합니다. 후…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아하…. 괜찮아요.”
노엘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휘젓더니 다시 실비아의 젖은 옷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 손길 사이사이 실비아의 하얀 허벅지가 노출됐지만, 그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문 채 묵묵히 옷을 짜주었다.
실비아도 열심히 쥐어짜는 척 자신의 옷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실비아는 입꼬리를 위험하게 올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엘 님…. 저 너무 젖었어요…. 빨리 …하고 싶어요.”
“…네?”
실비아는 은근히 돌려 말하며 노엘을 짓궂게 놀렸다. 현실에서 이랬다간 잘못하면 바로 철창행이겠지만 여긴 남자를 공략해야 하는 19금 게임이니 이 정돈 괜찮겠지 싶었다. 실비아의 음담패설을 눈치채지 못한 그는 방금 뭘 들은 건가 싶어서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너무 재밌다.’
“…옷이 너무 젖었어요. 빨리 갈아입고 싶어요.”
“아… 후… 네. 근데 어쩌죠? 신도님께서 갈아입을 옷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손을 덜덜 떨면서도 노엘은 순진하게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려 애쓰며, 끝까지 순수하게 실비아의 젖은 옷의 물기를 다 짜주었다. 그가 그녀의 앞을 가리고 선 탓에 돌의자에 앉아 있는 실비아의 위로 그림자가 크게 졌다.
“흠…. 노엘 님 옷을 좀 빌릴 순 없을까요? 입고 내일 세탁해서 돌려드릴게요.”
노엘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젖은 옷을 입은 실비아를 이대로 집에 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집무실로 가실까요?”
“와! 노엘 님, 고마워요!”
실비아는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나 노엘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젖어서 착 달라붙어 있는 옷 덕분에 그녀의 봉긋한 가슴의 촉감이 노엘의 탄탄한 배에 노골적으로 비벼졌다. 몸이 맞닿자마자 노엘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노엘은 이성이랑 야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없어서 이런 쪽엔 면역력이 없었다. 거기다가 타고난 심성이 착한지라 유혹이 아닐까 의심은 해도 대놓고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해서 정색을 하지도 못했다.
‘적당히 시치미를 떼고 자극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이는군.’
그래서 실비아는 순진한 척하면서 노엘을 계속 자극할 수 있었다. 단시간에 음란한 쪽으로만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옷의 물기가 어느 정도 사라지자 노엘이 ‘그럼 절 따라오시죠.’라고 말하고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앞장서 갔다.
그를 따라가던 실비아가 짐짓 몸을 파르르 떨면서 노엘의 등에 딱 달라붙었다. 그가 흠칫 놀라면서 그런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젖은 옷으로 계속 밖에 있었더니 춥네요. 거기다가….”
실비아가 뒷말을 흐리며 신전 쪽을 가리켰다. 개방형으로 되어 밖에서도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의 복도는 기도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복도를 지나는 신도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제 옷이 너무 젖어서… 다른 분들이 볼까 봐 무서워요.”
“아….”
“노엘 님. 집무실로 갈 때까지만 저 좀 가려 주세요. 부탁해요.”
실비아는 이 흥미로운 상황을 우물가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즐거운 속마음을 숨긴 채 가여운 소동물처럼 떨면서 커다란 노엘의 등 뒤에 딱 달라붙자 그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비아를 뒤에 매단 채, 어색한 발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 발기가 되면 잘 걷기가 힘들지…. 노엘의 거기는 얼마나 클까?’
어색한 노엘의 발걸음에 실비아는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했다. 그녀의 미친 생각을 안다면 노엘은 놀라 자빠질 것이다. 그러나 겉으론 부끄러워하는 가여운 여자를 연기했기에 노엘은 흥분한 와중에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이사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그 사이에 모두 대강당 안으로 들어간 건지 복도는 한산했다.
실비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게임 속이고 그녀가 철면피라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복도에서 신관에게 개수작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노엘의 체면도 있고 말이다.
노엘의 옷을 붙든 채 조용히 복도를 걸어가자 실비아는 조금씩 심심해졌다. 처음엔 거칠게 내쉬던 노엘의 호흡도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신관, 진짜 자제력 하난 끝내준다.
‘뭐야, 재미없게시리…. 재밌게 만들어 볼까.’
그녀는 ‘추워….’라고 중얼거리며 노엘의 널따란 등을 꽉 끌어안았다. 실비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노엘이 움찔하고 놀라더니 붉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젖은 채로 있으려니 너무 추워요. 집무실이 꽤 먼가 봐요?”
“하아….”
말을 하면서 부드러운 가슴이 살짝 뭉개지도록 너른 등에 비비니 노엘의 안정적이던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다.
노엘은 다행히 그녀의 몸을 떼어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한창 갈피를 못 잡고 있을 것이었다.
실비아는 넓은 등짝을 껴안은 채 붉어진 노엘의 귀를 올려다보고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의 옷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슬쩍 앞으로 뻗어 단단한 배 위에 가져다 대자,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초콜릿 같은 복근이 느껴졌다.
‘복도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야. 이건 누가 봐도 개수작이니까.’
실비아의 갑작스러운 접촉에 숨을 헉- 하고 들이쉰 노엘이 잠시 일시 정지했다가 걸음을 빨리했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껴안고 있던 손을 푼 실비아는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뒤따라갔다. 노엘에겐 영겁 같던, 실비아에겐 찰나 같은 시간이 흐르고, 둘은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실비아는 아쉽지만 잠시 몸을 물리고 그의 표정을 관찰했다. 잘 익은 토마토같이 빨개진 얼굴이 봐줄 만했다. 양 볼과 이마, 그것도 모자라 목 아래까지 붉어져 있었다.
“후, 여기가 제 집무실입니다.”
앞머릴 거칠게 쓸어 넘긴 노엘이 실비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며 집무실 문을 열곤 그녀를 먼저 안에 들여보냈다.
집무실은 노엘의 깔끔하고 금욕적인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잡동사니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들만 배치되어 있어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노엘은 혼란스러운 듯 계속 앞머릴 쓸어넘기며 안절부절못하는 티를 냈다. 분명히 옷을 찾으러 왔던 것 같은데 노엘은 애꿎은 책상에 앉아 서랍들을 하나하나 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실비아는 슬슬 정말로 추워지려고 해서 혼자서 의미 없이 서랍을 뒤지다 못해 뒤집어엎고 있는 노엘을 불렀다.
“노엘 님, 옷은요? 저 진짜 추워요.”
“아아, 맞다. 잠시만요. 소파에 앉으셔도 됩니다. 젖지 않는 소재니까….”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며 서랍을 쾅- 하고 닫은 노엘은 어색한 몸짓으로 집무실 옆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노엘이 방으로 들어간 사이 실비아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음, 여기서 또 어떤 개수작을 하면 좋을까?’
다행히 웬일로 선택지가 계속 뜨지 않았다.
‘선택지가 뜨지 않는 한 데드엔딩은 안 나올지도.’
고민하던 그녀는 딱- 하고 손가락을 부딪쳤다. 음란함을 담당하는 뇌를 팽팽 굴렸더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뒤 노엘이 사라졌던 방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가 옷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레몬 빛 금발 머리는 왜인지 까치집이 되어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안에서 머리라도 쥐어뜯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