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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12화 (12/372)

12화

‘뭐지?’

실비아가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소라에 귀를 댄 듯 아련하게 울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맞다, 낚싯대!’

“세비스, 잠시만! 낚시 좀 하자.”

“우와, 낚싯대도 가지고 계세요?”

“응…. 뭔가 잡힐 것 같아.”

실비아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비루한 낚싯대>를 최대한 멀리 던져 넣고 정신을 집중했다. 옆에서 세비스도 기대하는 눈초리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짜잔! 효과음과 함께 낚싯대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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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이 슨 깡통

- 다른 대륙에서 흘러 온 쓸모없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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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만 더 해 보자.”

메시지가 그냥 떠오를 린 없을 텐데…. 실비아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곤 낚싯대를 다시 멀리 던져 넣었다. 곧 낚싯대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그녀는 힘껏 낚싯대를 끌어 올렸다. 이상한 덩어리와 함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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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물고기

- 죽은 지 좀 된 물고기. 비루한 낚싯대에 가끔 걸려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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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네….”

수상한 메시지가 뜬 걸 봐선 저 바닷가에서 분명히 좋은 걸 낚을 수 있을 듯했는데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만 올라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루한 낚싯대가 문제일까. 아이템 명에서 알 수 있는 하찮음….’

아무래도 장비 탓이 큰 듯했다. 비밀상점에 더 좋은 낚싯대가 있지 않을까? 왠지 엄청난 아이템을 낚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실비아는 세비스가 해 준 게살 샐러드를 먹고 깨끗하게 씻었다. 뒤이어 세비스가 씻는 사이에 그녀는 식탁 의자에 앉아 인벤토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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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이 든 킹크랩구이

- 인삼을 썰어 넣어 구운 킹크랩구이. 맛은 좀 그렇지만 몸에는 참 좋다.

체력 +20, 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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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박.’

속으로 ‘소환’을 외치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킹크랩구이가 접시에 세팅 된 채 나왔다. 인삼이 들어서 그런지 쓴 냄새가 풍겨왔지만, 능력치가 올라가는데 맛이 대수일까. 입에 넣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삼 특유의 쓴맛이 올라왔다.

‘으윽….’

코를 막고 킹크랩구이를 다 먹고 나니 확실히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능력치 창을 열어 보니 역시 체력과 힘이 20씩 올라가 있었다.

‘이대로면 조만간 비밀상점을 갈 수 있겠군.’

다음은 새로 획득한 스킬을 볼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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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기

- <망치 전사>의 기본 스킬.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몬스터들의 뚝배기를 더 빠르게 깰 수 있다. 망치를 소지하지 않고 맨손으로 사용할 시엔 상태 이상 <전의 상실>에 빠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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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상실>에 실비아는 주목했다. 기본 스킬치곤 꽤 괜찮았다. 몬스터와 싸우기 싫으면 이 스킬을 쓰면 될 듯했다.

마지막으로 능력치를 보니 보스 몬스터를 잡아 레벨이 2나 올라간 덕에 분배 포인트가 10이 생겨있었다. 상대적으로 민첩을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거 같다 느낀 실비아는 민첩에 10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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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레벨 10 망치 전사

가진 돈 : 250G

체력 : 100 힘 : 65 지력 : 10 민첩 : 20

화술 : 100

업보 : 10

신앙심 : 30

.

.

피로도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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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를 잘 퍼 주니까 좋네. 답답하지 않고.’

실비아는 그동안 했던 게임들과 비교하며 이 게임의 구조를 분석했다.

대충 돌아가는 구조를 보아하니 오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공략 캐릭터들을 공략해서 아이템, 스킬, 그리고 던전 입장권을 얻어야 한다. 메인 캐릭터들을 만나서 던전에 가야 스토리가 진행되고, 반대로 던전을 공략하고 알바를 하면서 점점 강해질수록 여러 동정 미남 공략이 가능하게 되는, 그런 순환 구조가 아닐까.

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인 오염 정화를 위해 세계수를 심는 일에도 동정 미남 공략은 필수고 말이다.

‘근데 업보는 뭐지? 분명히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텐데, 이벤트가 발생해야 알 수 있겠어.’

다음날도 던전 공략에 나선 두 사람은 해안 동굴 2, 3, 4, 5를 돌아다녔다.

초보용 던전이라 그런지 몬스터들의 공격력이 높지 않아 체력이 거의 닳지 않았다. 그들은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며 열심히 꽃게들을 깨부쉈다.

올라간 레벨 덕에 첫날보다 빠르게 공략을 마칠 수 있었다. 실비아의 속도에 맞춰 던전을 돌아다니던 세비스는 강해진 그녀의 힘에 놀라 기뻐하며 어깨춤을 추었다.

던전을 여러 개 깨부수고 나니 그녀의 레벨은 당연하게도 처음보단 느리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번 더 하고 좀 더 높은 단계의 던전으로 가야겠는데?’

레벨이 5가 올라 15가 되었고, 구슬은 큰 구슬 4개, 작은 구슬 600개를 얻었다. 아쉽게도 <인삼이 든 킹크랩구이>는 하나도 뜨지 않았다. 초보자를 위해 처음에만 떨어지는 아이템인 듯했다.

‘히든 상점 입장 조건이 체력 120 이상이었지.’

실비아는 분배 포인트 25 중에 20을 체력에 투자하고 나머지 5를 민첩에 투자했다. 이로써 드디어 체력 120, 히든 상점에 갈 수 있는 조건이 완수됐다.

‘후… 평생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없었다…. 돈 조금 더 모으면 바로 비밀상점으로 가야지.’

어깨가 빠개질 거 같아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획득한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던 세비스가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실비아 님, 신전 알바는 주 4일이라고 하셨죠? 내일도 던전을 공략할까요?”

갑작스러운 세비스의 물음에 실비아가 어깨를 주무르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미쳤나 봐…. 하루는 쉬어야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실비아는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그녀는 눈만 굴려 세비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귀를 쫑긋 세운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어….”

어색한 실비아의 대답에 세비스는 고개를 잠시 갸우뚱했다. 그러나 곧 구슬을 챙겨 해맑게 룰루랄라하며, 집을 향해 앞장서 걸어갔다. 쌩쌩한 그와 다르게 실비아는 야반도주했다가 잡혀 온 노비처럼 폐인 같은 몰골로 어기적어기적 뒤따라 걸었다. 여유롭게 옆을 지나가던 나비가 실비아의 망나니 같은 몰골을 보고는 멀리 도망갔다.

‘시발. 존나 힘들다….’

게임에 빙의한 지 4일째, 나태지옥 입주 예정인이었던 실비아의 정신은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기절한 듯 잠들어 있던 실비아의 몸을 누군가가 격렬하게 흔들었다.

‘뭐야, 누군데 아침부터 깨우고 난리….’

애써 그 손길을 무시하며 다시 잠에 들려고 하는데 그녀의 귀에 따뜻한 손이 닿는 게 느껴졌다.

“실비아 님! 일어나셔야죠!”

귓가에 손나팔을 모아 크게 외치는 세비스 덕에 실비아는 억지로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귓구멍을 때리는 큰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으억! 어…, 어. 일어나야지.”

손등으로 입을 닦고 멍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세비스가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악…. 개는 아침잠도 없는 거냐고…!’

세비스에 의해 억지로 일어난 그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세비스는 아주 신이 나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주인에게 산책을 가자고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보였다.

‘이건…. 이건 아냐. 쉬고 싶다, 격렬하게 쉬고 싶다고.’

현생에서의 실비아는 프리랜서였다. 그녀는 주3일 재택근무를 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만 돈을 벌고 나머지 날은 팽팽 놀았었다.

‘사후 나태지옥으로 갈 만큼 대충 살았었지.‘

그런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지만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할 수 있을 린 없었다. 거기다가 게임 빙의 4일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으니 하루는 쉴 만도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몸이 피곤한 건 아니었다. 게임시스템 때문인지 최소한의 수면시간만 채워도 피로도가 다 사라져 몸이 가뿐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신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 정신 개조가 그리 쉽게 됐다면 그녀가 나태지옥에 갈 일도 없었으리라. 격렬하게 쉬고 싶었던 그녀는 꾀병을 부리기로 했다.

실비아는 침대에서 일어서려는 척하다가 움찔하고 몸을 크게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여러 번 질렀다.

“익, 악, 윽, 아이고…!”

슬쩍 세비스의 눈치를 보니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더욱더 요란법석을 떨면서 침대 위에서 팝핀 댄스를 췄다. 팔을 어색하게 꺾어가며 악 소릴 내고 오버를 하자 세비스가 헉- 하고 놀라면서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실비아 님, 세상에…. 괜찮으세요? 오늘도 던전에 가려고 했는데…. 무리를 해서 근육이 놀랐나 봐요. 어쩌지…. 아! 또 마사지를 해 드릴까요? 몸이 개운해지면 던전에 갈 수 있을….”

맙소사, 아직도 던전을 가자고 하다니. 연기에 영혼이 덜 실렸나 보다.

기겁한 실비아는 세비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메소드 연기를 다시 시전 했다.

“나도 가고 싶지만… 몸이…. 윽, 악, 끄윽…. 허억, 허억….”

그녀는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척하다가 감전당한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고 기괴한 자세로 고꾸라졌다. 그리곤 헉헉대며 좀비처럼 기어가 침대 헤드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고장 난 인형처럼 목을 꺾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치 처참했다. 산송장 같은 그녀의 모습에 세비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우, 어우. 아니에요. 그냥 누워 계세요. 상태가 너무 심각하네요. 이 정도면 병원을 가야 하나….”

“아니… 야. 병원은 안 가도… 윽, 크흑…. 절대! 병원은 가고 싶지 않, 케엑, 아. 푹 자면 나을 것 같… 아.”

실비아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버퍼링 걸린 것처럼 저으며 캑캑대자 세비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휴, 정말 안 가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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