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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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술 100 달성. 뛰어난 전도실력으로 <길거리의 사냥꾼> 업적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달성으로 체력이 +10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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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사냥꾼이라니…. 뿌듯하긴 한데 어쩐지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체력을 10이나 주는 건 참 좋았다. 아무래도 초보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초반부 능력치 퍼주기가 아닐까? 한동안은 신전 알바에 더해 길거리 전도 알바도 함께 하며 화술을 마스터 해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지 피로도가 금방 차버려 오늘의 길거리 전도 알바는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았다.
피로도가 차서 그런지 실비아의 어깨가 천근만근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며 집으로 돌아오자 세비스가 문 앞에서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실비아 님, 알바 잘 하고 오셨어요?”
“응. 첫날부터 너무 열심히 했더니 피곤하네.”
“저녁밥 해 놨으니까 같이 먹어요. 다행히 내일은 쉬는 날이니 푹 쉬실 수 있어요.”
식탁에 가서 세비스가 차려놓은 밥을 먹으며 실비아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소지금이 250으로 불어나 있었다.
‘고작 250….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돈 벌어서 비밀상점도 가고 거렁뱅이 신세도 벗어난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돈 느는 속도가 너무 느리네. 어느 세월에 떼돈을 벌지?”
그녀가 혼잣말을 하며 관자놀이를 문지르자 세비스도 같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신전 알바는 4일간 한다고 하셨죠? 쉬는 날도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요. ”
“쉬는 날도… 돈을 벌 수가 있어?”
나태지옥에 갈 정도로 욜로로 살았던 그녀에게 내려진 벌일까. 쉬는 날도 일해야 된다니. 암울함에 실비아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니지, 안 하면 지옥에 떨어질 판인데 정신 차리자.’
어두워진 얼굴을 다시 정돈하고 실비아는 다시 눈을 반짝이려 노력했다.
“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돈이 있어야 먹고 살고 힘도 기를 텐데. 이대로는 생활비로도 모자라겠어요.”
“여기나 저기나 돈 없으면 서러운 건 똑같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은 저랑 같이 바깥으로 가서 돈을 벌도록 해요.”
“같이? 너도 나갈 수 있어?”
“실비아 님, 무슨 소리 하세요. 전 뭐 맨날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나요?”
“아, 그, 그렇지….”
게임 속 세계라서 세비스를 붙박이 NPC로 생각하던 그녀는 무안함에 말을 더듬었다.
그렇지, 얘도 사람이니까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근데 알바도 아니고 뭐로 돈 번단 거지? 아마도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 듯했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실비아는 깨끗이 씻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역시나 세비스는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찬 바닥에서 계속 자면 입 돌아갈 텐데.’
걱정이 된 실비아가 세비스를 나직이 불렀다.
“세비스, 바닥이 차지 않니?”
“저는 괜찮아요. 돌바닥에서도 많이 자 봤는 걸요…. 실비아 님, 잘 자요.”
“…그래….”
오늘도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는 세비스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빛났다.
‘개 수인이라서 그런가, 눈빛이 참 무섭네.’
세비스는 분명히 늑대 왕국에서 도망쳤다고 했는데 선입견이 참 무섭다고, 실비아는 그의 귀여운 얼굴 탓에 세비스를 여전히 개로 인식했다.
그녀는 이 망할 놈의 게임에 한동안은 헛된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 * *
아침을 알리는 참새 소리에 세비스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었다. 샤워가운을 걸치고 나와 보니 실비아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침대 위에서 잠꼬대를 하며 뒤척거리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좀 더 자게 내버려 둘까.’
촉촉한 머리 위에 수건을 얹고 주방으로 간 그는 모닝커피를 내려 식탁에 앉았다.
신탁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집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던 그는 왕국에서 도망쳐 나온 뒤 이 오두막에서 모시게 될 주인님을 기다렸다.
세비스는 실비아를 처음 보자마자 자신이 모셔야 할 주인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갈색 머리에 맑아 보이는 초록색 눈동자. 분홍빛 뺨을 가진 사랑스러운 외모의 실비아.
괴팍스러운 성미의 주인을 만날까 걱정했는데 늑대 수인인 자신을 보고 당황하거나 놀라지도 않았고 적응력도 무척 빨랐다. 거기다가 제가 걱정이 됐는지 침대 위에서 계속 같이 자자며 배려해 주기까지.
‘너무 착하셔서 탈이야. 내가 옆에서 잘 도와드려야지.’
세비스가 받은 신탁의 내용은 간단했다.
세계를 구원할 자를 옆에서 보필할 것.
‘구원’이란 단어에 평화롭던 시절엔 의문을 품었었으나 2년 전부터 대륙의 여러 지역이 오염 되기 시작하면서 그 의문은 풀렸다. 늑대 왕국의 마법사나 신관들이 오염의 원인을 찾으려 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도 곧 오염 되어 버렸지.’
세비스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성체가 아니기에 인간 기준으로는 다소 왜소한 남자의 외형이었다. 그래도 성인 남성 중에도 자신과 비슷한 키랑 덩치를 가진 남자들도 있는데.
‘흠, 미성년자냐고 물어보시다니.’
세비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삐죽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실비아의 어른 남자의 기준은 아마도 큰 키에 남자다움이 강하게 묻어나 보이는 얼굴인 듯했다.
성체가 아닌 탓도 있지만 특유의 동안형 외모가 그를 더욱 어려 보이게 했다. 험악하게 생긴 늑대 족들 사이에 있을 땐 이 어려 보이는 얼굴이 자랑이었는데 실비아 때문에 어쩐지 더 빨리 성체가 되고 싶어졌다.
늑대 족들은 성체가 되는 순간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웬만한 인간 남자보다 단단한 체격을 가지게 된다.
늑대 족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늑대 일족은 강한 힘은 원래대로 유지하되 성장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고원의 분지에서 왕국을 이뤄 다른 적들에게 위협받을 일이 없었던 검은 늑대 일족들은 전투를 많이 하지 않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성체가 되는 시기를 조절하면서 식량을 아끼는 걸 택했다. 성체가 되면 근육이 발달하기 때문에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식사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형질이 후손에게까지 내려와 지금은 식량이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성인의 나이가 되어도 성체가 되지 않았다.
그 특정한 계기라 함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아니면 반려자가 될 이를 만나 성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격렬한 감정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했기에 오랜 기간 평화로웠던 늑대 왕국은 성년이 되면 각성 의식을 가져 성체가 되곤 했다.
안타깝게도 오염 된 늑대 왕국을 급히 떠나오면서 세비스는 각성 의식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강한 계기가 필요한 건데…. 뭐 지금으로선 딱히 성체가 될 필요가 없으니.’
세비스는 생각에 빠져 멍하니 커피를 홀짝였다. 그때 침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놀라 침실로 뛰어가자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진 주인님이 보였다.
“실비아 님? 괜찮으세요?”
잘 자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진 충격으로 잠에서 깨어난 실비아는 눈을 찡그린 채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릎에 손을 짚은 채로 실비아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세비스는 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멱살을 당기자 당황할 틈도 없이 그녀의 위에 엎어졌다.
“읏…. 실비아 님?”
“…응?”
‘아침부터 웬 떡이야.’
실비아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을 뜨자마자 세비스의 얼굴과 맞닥트렸다. 샤워가운만 걸친 촉촉한 세비스를 가까이에서 보자 비주얼 쇼크를 받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올려다본 세비스의 모습은 치명적이었다. 샤워가운 사이로 뽀얗고 탄탄한 윗가슴이 언뜻 보였다.
‘어…? 얼굴만 보면 되게 귀여워 보이는데 몸은 의외로 탄탄하네.’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이 눈을 살짝 가려, 귀엽게만 느껴지던 얼굴이 퇴폐적으로 보이는 것은 덤이었다. 가까이서 보이는 윗입술이 더 도톰한 새빨간 입술은 놀랐는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세비스가 왜 내 몸 위에 엎어져 있지?
“세비스?”
그녀가 세비스를 부르자, 세비스가 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린 듯 얼른 몸을 뒤로 물렸다. 붉은 눈이 놀랐는지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는 그대로 손을 대 그를 바닥에다 쓰러트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혀를 깨물어 가며 가까스로 추태를 참았다.
‘제발 진정하자. 공략 캐릭터도 아닌데 나댔다간 죽을 수도 있어….’
애국가를 속으로 부르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내려다본 세비스의 흐트러진 모습이 무척 섹시했기 때문이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마른 듯 탄탄한 근육이 있는 몸이 여과 없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세비스는 놀란 듯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팔꿈치를 뒤로 짚은 채 상체만 일으킨 상태였다. 그 자세는 벌어진 가운 사이로 마른 듯 탄탄하고 뽀얀 몸을 드러나게 해 환상적인 서비스 컷을 연출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자신의 뺨을 힘껏 내려쳤다.
짝-!
‘이놈의 게임, 먹지도 못할 거를 계속 보여 주네. 정신 차리자.’
얼마 전 키스하다가 독에 중독되어 맞은 데드엔딩의 여파로 실비아는 약간의 조심성을 얻었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을 수습하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 친 뒤 세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벙찐 세비스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잠결에 잡아당긴 듯했다.
“미안, 잠이 덜 깨서…. 어서 일어나.”
“…괜찮아요. 실비아 님.”
세비스는 실비아의 손을 잠시 쳐다본 뒤 스스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그녀는 갈 곳 잃은 손을 조용히 뒤로 물렸다. 아쉬움에 실비아는 손을 잠시 쥐었다 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야한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아….’
누가 볼 새라 벌어진 샤워가운을 여미는 그의 손이 야무졌다. 그 행동이 너무 단호해 보여서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줌의 음란함이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그래…. 나라 잃고 도와주러 온 사람… 아니 개 수인한테 이게 무슨 망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