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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6화 (6/372)

6화

“넌 누굴 좋아해 본 적 있어?”

예상대로 이번엔 정상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뇨…. 제가 있던 늑대 왕국은 지금 사악한 기운으로 오염되어서 폐허가 되었는걸요. 저만 실비아 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빠져나왔어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지금의 저에겐 사치죠.”

“아, 미안….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잘 모르셨을 테니까. 왕국이 평화로웠다면 전 이미 성체가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럼 실비아 님을 더 잘 도울 수 있을 텐데요.”

그러게. 네가 성체였으면 널 이용해서 레벨 업을 했을 텐데 말이야.

실비아는 혀를 살짝 찼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오염을 피해 도망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성체가 못 되는 것도 있어요. 계기만 있다면 바로 성체가 될 수 있겠죠. 우선 저는 실비아 님을 돕는 것만 생각할래요. 실비아 님이 강해지셔서 늑대 왕국을 원래대로 돌려주실 거라 믿어요.”

성체가 되는 것이 날 돕는 거야. 실비아는 속마음을 감춘 채 꾹 속으로 눌러 담았다.

“아냐. 성체가 되는 것도 꼭 노력하도록 해. 그리고… 오염 된 늑대 왕국은 내가 원래대로 돌려줄게.”

“고마워요.”

세비스가 붉은 눈을 동그랗게 휘며 따뜻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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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던전 <오염 된 늑대 왕국>의 입장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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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던전이라…. 남신이 분명히 오염을 정화해 달라고 했었지. 하지만 쪼렙인 지금으로서는 중급 던전을 당장 갈 수는 없겠어.’

아니나 다를까, 인벤토리를 열어 보니 입장권의 색이 붉었다. 한눈에 봐도 건드리지 말라는 포스가 흘렀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식사를 하는 세비스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니. 그렇다면 세비스도 동정남일 가능성이 컸다. 자그마치 동정 수집가가 될 플레이어의 집사가 동정남이 아닌 건 말이 안 되니까.

세비스가 동정이라면 공략 캐릭터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세비스는 여타 미연시의 히든 공략 캐릭터가 아닐까? 아닌 척하다가 일정 부분을 충족하면 공략조건이 완수돼서 이벤트가 뜨는 거지….’

그럼 얘가 성체가 된다면 이런저런 걸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성체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끈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세비스가 몸을 뒤로 물리며 실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왜… 왜 그러시죠?”

“아… 아니야. 맛있다 이거. 고기 잘 구웠네.”

‘내 눈빛이 좀 그랬나 보네.’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대충 얼버무리고 식사를 마저 끝냈다.

설거지를 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자 어느새 잘 시간이 되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시스템을 불러와 휙휙 넘겨보니 사진첩에 데드엔딩을 맞았던 키스 장면과 세비스와 식사하는 장면, 토닥거리는 장면, 그리고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털보가 귓속말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었다.

‘후…. 주점 사장 같은 거 기록하지 말라고.’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입장권을 클릭하니 상세설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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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된 늑대 왕국의 입장권

- 중급 던전 오염 된 늑대 왕국의 입장권이다. 늑대 왕국은 지금 사악한 기운에 오염 되어 상당수의 늑대 족들이 이지를 잃어버린 상태. 그들은 자신을 구해 줄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 입장 가능 조건 : 레벨 80 이상. 늑대 수인 세비스와 동행할 시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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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80이면 한참 후에나 입장 가능하단 소리다. 아직은 신경 쓸 필요 없겠어.

밤이 되자 창문 너머로 귀뚜라미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선택지랑 상태 창이 뜨는 걸 뺀다면 시간의 흐름이나 샤워, 식사를 해야 하는 것 등이 정말 현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잠이 바로 오질 않아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고 있자니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있던 세비스가 뒤척거렸다.

<비루한 거렁뱅이>가 초기 설정이어서 그런지 침실과 조그만 부엌만으로 오두막집이 구성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침대도 하나. 집사가 잘 곳은 바닥뿐이었다.

좀 불편해 보이네….

“세비스, 침대에 같이 누워서 잘래?”

“…….”

“그… 바닥이 좀 불편해 보여서. 다른 뜻은 없어!”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실비아 님과 같이 잘 순 없죠.”

실비아가 불순한 생각을 품고 있단 걸 아는 걸까. 어둠 속에서 세비스의 눈이 차갑게 빛나는 듯했다.

그는 잠옷으로 파란색 물방울 파자마를 입은 상태였는데 상당히 귀여웠다. 그런데 그 귀여운 모습이 불을 끄고 나니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선 붉은 안광만 번뜩여서 살짝 무서웠다.

실비아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내 생각을 눈치챈 건 아니겠지?’

혹시나 성체가 되는 조건이 스킨십일까 싶어 진도를 좀 나가보려고 했더니 철벽 수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그래…. 잘 자”

“…잘 자요. 주인님.”

후- 하고 한숨을 내쉰 세비스가 그녀를 뒤로 한 채 돌아누웠다. 곧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변하는 걸 보니 금방 잠이 든 듯했다.

‘뭔 놈의 19금 게임이 이래.’

툴툴거리던 실비아도 은근히 피곤했는지 눈을 감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 * *

게임 세계는 오늘도 잘도 돌아간다.

게임 2일 차, 옷장을 뒤져봤지만 거렁뱅이 옷이 5벌 걸려 있어서 갈아입으나 마나였다.

‘아무리 내가 옷에 관심이 없다지만 누더기옷이 5벌…. 휴.’

그래도 위생상 실비아는 옷을 갈아입었다.

세비스가 역시나 아침밥을 차려 줬기에 든든하게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집을 나서려 문을 열자 세비스가 “주인님 힘내세요!” 하고 크게 외쳤다. 마치 가장이 된 거 같은 기분에 실비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래, 너도 같이 돈 벌면 참 좋을 텐데. 나 혼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히든 공략 캐릭터라는 것도 내 짐작이지, 쟨 그냥 NPC일 수도 있다.

게임 속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이동 같은 건 왜 없는 건지 새벽같이 집을 나와 직접 이정표를 보며 신전을 찾아야 했다. 이러다 지각하는 거 아닌가.

급하게 길을 걷던 실비아를 어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어이. 거렁뱅이.”

돌아보니 문신을 한 뚱땡이였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라면 일수 가방을 들고 금목걸이를 할 거 같은 이목구비의 뚱땡이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어. 거렁뱅이가 너 말고 또 있어? 여긴 지름길이야. 여길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야지.”

딱히 캐릭터 속성을 볼 필요도 없이 얼굴만 봐도 공략 캐릭터는 아닌 거 같았다. 동정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지만, 동정이면 더 곤란할 생김새였다.

그때 갑자기 삐빅-하며 레이더가 쓸모없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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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입니다. 상태 창을 열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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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쓸데없는 거나 보여주고 말야. <동정 레이더> OFF!!’

세비스에겐 반응하지 않던 <동정 레이더>가 쓸데없이 저 문신뚱땡이의 순결 여부를 알려 주는 바람에 그녀의 미간이 내 천 자로 찌푸려졌다.

“통행세라니?”

“5골드! 그게 싫으면 저 옆으로 돌아서 가시든가?”

와…. 일주일에 4번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5골드면 자그마치 왕복으로 40골드이다. 그냥 옆으로 돌아갈까?

그러나 출근 시간까지 10분이 채 남지 않았고 옆길은 신전의 뒷문으로 이어져 있는 듯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그때 실비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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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레벨이 낮아서 양아치를 물리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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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올라가면 얘를 두드려 팰 수 있는 걸까? 우선은 급하니 눈물을 머금고 5골드를 던져 주고 다시 길을 걷는데 등 뒤로 양아치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렁뱅이 주제에 지름길을 이용하고 말야….”

왠지 불가촉천민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에 실비아는 울컥하고 서러움이 올라왔다.

‘하…. 그런 거렁뱅이한테 돈 뜯는 너는 뭐고?’

그녀는 뚱땡이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우선 갈 길이 바빴기에 이를 악물고 걸었다.

레벨 업 하고 너는 두고 보자…. 어쩐지 두고 볼 인물 리스트가 점점 늘어나는 건 기분 탓이 아닐 듯했다.

지름길로 걷자 금방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동정 미남 신관이 있는 걸까. 뭔가, 미남이 있다고 생각하니 입구부터 향긋한 꽃내음이 감도는 듯했다.

드디어 레벨 업을 위한 첫걸음이다.

신전의 입구에 있는 가장 큰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신전 내부는 적막한 기운만 감돌았다.

‘여기엔 아무도 없네.’

실비아는 대강당 안을 한 바퀴 돌다가 복도를 지나쳐갔다. 복도 끝 은구슬로 엮인 주발을 걷자 탁 트인 뒷마당이 나타났다.

“크악….”

주발을 걷고 한걸음 내딛자마자 강렬하게 눈알을 강타하는 정체 모를 빛에 그녀는 손으로 눈 앞을 가리며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침 햇살이 너무 강렬했던 걸까?

‘이른 아침인데 왜 이렇게 밝지? 아니… 이건 미남의 자체발광!’

주발을 걷자 바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실비아는 입을 떡 벌리고 일시 정지했다.

아침이슬로 촉촉해져 있는 잔디밭 위에서 한 남자가 상체를 노출한 채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각자 자아를 가진 듯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근육들의 모습에 실비아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다.

“후우….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말 근육도 아니고… 제대로네….’

탄탄하게 잘 짜여있는 근육들이 남자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댔다. 저렇게 벗어 재끼고도 타질 않는 건지 피부가 하얬다. 새하얀 피부 위로 송골송골 맺힌 땀이 길이 제대로 난 근육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상큼한 레몬색 금발이 땀에 젖어 피부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진정시키려 손부채질을 하며 정원 입구에서 넋이 나간 채로 남자를 구경했다.

‘저 사람이 설마 신관? 참 좋은 신전이다….’

구경도 좋지만 이제 근무시간이 다 되어가 고용주를 불러야 했다. 가만 내버려 두면 시급이 날아갈 테니 말이다. 실비아는 조용히 남자를 불렀다.

“흠…. 저기….”

“아!”

실비아가 조용히 부르자 남자가 고개를 들고 실비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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