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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5화 (5/372)

5화

손을 내려 탄탄한 가슴을 살짝 훑어 내리자 남자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단단한 손이 움찔하면서 실비아의 뒷목을 부여잡는 순간, 삐-삐- 하는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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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이상 : 치명적인 독에 중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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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키스 좀 했다고 독에 중독되다니?

어쩐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입술을 떼고 뒤로 물러나자마자 극심한 통증이 배를 두드리더니 이내 입에서 왈칵 피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바닥에 꼬꾸라진 채 눈을 까뒤집었다.

“궤에엑….”

“저기, 이봐? 왜 이러는 거야….”

남자가 당황한 듯 실비아를 거세게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 * *

끔찍한 고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곧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암울한 새드엔딩에 어울리는 음악이 흐르고, 어둠 속에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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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렁뱅이>인 당신은 게임 시작 <1일> 만에 <갑작스러운 키스로 암흑세계의 후계자를 공략하다 독에 중독되어 사망> 엔딩을 맞았습니다. 남자의 입술을 강제로 취한 당신, 동정 미남은커녕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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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사라지고 난 뒤 섬뜩한 칼이 내려가는 효과음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찾아와 실비아는 잠시 정신을 놔버렸다.

눈을 뜨니 마지막 세이브 지점인 주점 앞이었다.

그녀는 마른세수를 하며 방금 전의 고통을 떠올렸다.

아, 뭐야. 게임이 뭐 이래? 19금 게임이면 그냥 대충 아무 곳에서나 떡 치게 해주지…. 키스하다가 죽는 게 뭐냐고.

게임 속이긴 하지만 배를 칼로 가르는 듯했던 고통이 너무 실감 났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 창이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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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레벨일 때의 무리한 공략은 데드엔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화술을 올려 선택지를 고급화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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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썅…. 뭐 이딴 게임이….

그래, 인생이 달린 게임인데 난이도가 쉬울 리는 없었다.

아직도 뱃속을 누군가 칼로 찌르는 듯 아린 느낌이 남아 있었다. 너무 섬뜩해서, 세이브가 가능해 진짜로 죽지는 않는단 건 알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후계자인지 뭔지 한동안은 피해 다녀야겠다. 레벨 업 했을 때 넌 두고 보자.

주점 근처 골목길을 서성이던 그녀는 다시 빨간 머리의 남자를 만났는데, 이번엔 갑자기 부딪히지 않았다.

“길 막지 말고 좀 비키지?”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인 채 빨간 머리가 그녈 가만히 바라봤다. 남자 때문에 한 번 죽어서 그런지 잘생긴 얼굴이 좀 재수 없게 보였다.

‘잘생겼지만 복어처럼 독을 품었지.’

그녀는 못마땅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며 그를 바라봤다.

“흠…. 너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거 같…”

“그럴 리가요? 지나가세요.”

남자는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훑으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젓곤 실비아를 지나쳐갔다.

으득. 실비아는 독을 품은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어차피 지금은 공략 불가니까 쟤한테 시간을 허비해 봤자 데드엔딩뿐이다.

나중에… 나중에 널 제대로 혼내 주겠다.

실비아는 이런저런 불순한 생각을 하며 훗날을 다짐했다.

골목길을 돌아 그가 사라지자 메뉴를 켜 혹시 있을지 모를 도움말을 찾아봤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게임 방법을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처음부터 너무 무작정 게임을 시작한 거 같아. 이게 게임이면 분명히 튜토리얼이 있을 텐데, 튜토리얼을 찾아보자.

그러나 이것저것 살펴봐도 튜토리얼, 도움말 이런 메뉴는 보이지가 않았다.

뭐야, 왜 튜토리얼이 없지? 노점 게임이라 그런가.

머리를 쥐어뜯은 그녀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세비스에게 물어보면 뭐라도 알지 않을까.

집에 도착해 보니 세비스는 한창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나갈 때는 좁고 후줄근하게 느껴졌던 오두막집이 야무진 세비스의 청소실력으로 아담하지만 깨끗한 집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살림 능력에 감탄하며 잠시 멍하니 있던 실비아는 정신을 번뜩 차리곤 세비스를 불렀다. 그녀는 무릎을 굽혀 걸레질을 하고 있는 세비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 게임, 튜토리얼 같은 건 없어?”

세비스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튜토리얼이 뭔가요?”

“아, 역시 모르는구나…. 휴.”

실비아는 낙담했다.

앞으로도 무작정 부딪치며 데드엔딩을 맞이해야 한단 말인가. 감각구현이 뛰어나서 진짜 죽었다 살아나는 기분인데!

절망하며 주저앉아 바닥을 한 번 쾅 치자 세비스가 ‘거긴 방금 닦은 곳이에요.’라고 하며 그녀를 만류했다.

‘남신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어.’

실비아가 갈색 머리를 쥐어뜯으며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세비스가 알바는 잘 구했냐며 물어 왔다.

“응, 신전 청소 알바랑 주점 알바를 구했어.”

“우와! 실비아 님 최고예요!”

박수 치며 좋아하던 세비스가 활짝 미소 지으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실비아 님!! 여기로 와 보세요.”

주저앉아 있던 그녀가 비척비척 일어나 주방 앞 조그만 식탁으로 가 보자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야채 스튜와 고기구이가 차려져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네.’

게임 속이지만 실제처럼 배가 고팠기에 그녀는 군침을 흘리며 식탁에 앉았다.

“이거 네가 한 거야?”

“네, 주인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얼른 먹어 보세요!”

세비스가 맞은편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실비아의 손만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 얼른 먹고 자길 칭찬해 주길 바라는 듯했다.

‘강아지 같아…. 좀 귀엽네.’

잠시 멍하니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세비스가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스튜를 떠서 호호 불더니 실비아의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받아먹어 보니 뭔가 고소하면서도 얼큰한 맛이 도는 게 뼈다귀해장국이랑 비슷한 맛이 났다.

술독으로 사망한 후에 해장도 못 하고 그대로 게임 속으로 들어왔었지. 이제야 제대로 해장하는 기분에 그녀의 속이 따뜻해졌다.

맛있다…. 맛있다고 입을 열어 말하려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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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맛있어….

2. 이걸 밥이라고 해와? 버럭 화를 내며 식탁을 뒤집어엎는다.

3. 에잉! 일할 맛 안 나네! 스튜 그릇을 들어 세비스의 얼굴에 끼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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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게 뭐람. 화술…, 화술을 빨리 올려야 해.

다행히 정상적인 선택지가 하나 있기에 그녀는 냉큼 첫 번째를 선택했다.

“맛있어….”

“맛있죠? 누가 한 건데요!”

눈앞의 남자는 먹어서 레벨 업을 할 순 없는 존재지만 집사 역할을 충실히 했다. 맛있는 것도 잘하고 청소도 하고.

아예 혈혈단신이었다면 이 게임 세계에서 정말 막막했을 텐데. 깔끔하게 청소된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나니 공략할 순 없지만 귀여운 세비스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실비아가 스푼과 포크를 들어 식사를 시작하자 세비스가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따뜻한 음식이 최고예요.”

그녀가 낙담하며 바닥을 치는 걸 보고 얼른 음식을 한 듯했다. 게임 속 인물이니 프로그래밍 된 대로 일을 한 걸까? 이런 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건가…? 뭐가 됐든 지금 당장은 감동이 밀려왔다.

본 지 하루밖에 안 된 저를 위해서 요리를 해 주다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집밥을 누가 해 준 적이 없었기에 항상 밖에서 사 먹었었다. 남자친구들도 다들 요리를 못 해서 배달음식이나 외식만 했는데…. 물론 그녀도 요리를 못 했기에 집밥이란 걸 먹어 본 지 몇 년이 됐다.

그런데 집밥 대접을 죽고 나서야 다시 받게 될 줄이야…. 먹을 것을 주는 건 가장 쉽게 호감을 사는 방법이라던가. 실비아의 세비스에 대한 호감도가 팍팍 올라갔다.

“고마워. 정말 맛있네.”

“내일부터 열심히 일 하셔야 되니까 많이 먹어 두세요.”

“그래…. 일… 해야지.”

돈을 벌어야 거렁뱅이를 탈출한다. 화술도 올려야 죽을 확률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레벨 업…. 레벨 업을 해서 힘을 키워야 던전을 공략하든지 할 텐데.

정말 할 일이 많았다.

내일은 우선 신전 알바를 갔다가 화술을 익힐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그녀는 결심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운 실비아는 자신에게 데드엔딩을 선사해 준 복어 같은 빨간 머리를 잠시 떠올렸다. 그의 몸 안에 독이 있었던 걸까? 그건 그 남자의 몸에서 느껴졌던 사악한 기운이랑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독 때문에 공략이 불가능할지라도 결국에는 곧 공략 가능해진다는 것.

혀를 집어넣었을 때 가녀리게 떨리던 외꺼풀 아래 아름다운 황금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정말 잘생겼고 아름답고 멋지고…. 입술도 촉촉하고 살짝 만져 본 가슴도 어찌나 탄탄한지 b컵은 될 듯하고… 분명히 거기도… 엄청 나겠지.’

지금은 독이 든 복어지만 야무지게 독을 제거하고 나면 맛난 요리가 될 것이다.

그녀는 어느새 입가에 고인 침을 티 안 나게 손으로 훔친 뒤 조그맣게 웃었다.

좀 더 열심히 게임을 하자.

내일 청소 알바를 할 신전에는 분명히… 또 잘생긴 공략 캐릭터가 있을 거야. 공략이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생각에 빠져 있자니 세비스가 말을 걸어왔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무슨 걱정 있으세요?”

걱정이라기보단 게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질문을 할 때마다 ‘그게 뭔가요?’란 대답만 하는 세비스 아니었던가.

아는 건 없지만 요리 잘하고 귀여운 세비스가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한 번만 더 희망을 가져 보기로 하고 궁금한 것 하나를 물어봤다.

“너도 공략 캐릭터니?”

“공략 캐릭터가 뭔가요?”

“아으!”

아니지…. 갸웃거리는 세비스를 보고 있자니 실비아는 그동안의 질문이 잘못됐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녀는 게임인 걸 인식하고 있는 플레이어지만 세비스는 이 세계의 인물. 게임용어를 알 리가 없다.

실비아는 그가 알아들을 만한 단어로 바꿔 다시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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