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왜?
기록 창을 불러오자 <죄 없는 가게 주인의 멱살을 잡아 업보 10 상승>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아니, 털보 때문에 내 귀가 더러워졌는데!’
그걸 떠나서 애초부터 제일 순한 선택지가 멱살 잡기였건만. 억울하다고!
그와 함께 띠링- 효과음이 들리더니 퀘스트가 성공했다는 알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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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동정 레이더> 획득! <비밀상점 위치 안내도> 획득!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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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는 인벤토리를 열어 <동정 레이더>를 당장 착용해 보았다. 안경처럼 생긴 그 아이템은 다행히 착용하자마자 스르륵 사라져서 외모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대로를 바라보자 남자가 지나갈 때마다 ‘동정입니다, 동정이 아닙니다.’라고 떴다.
‘쓸데없는 애들까지 판독 안 했으면 좋겠는데.’
정신없는 동정 판정에 정신이 사나워진 실비아는 OFF를 눌러 레이더를 껐다. 그 다음 눈앞에 뜬 인벤토리 창을 보며 획득한 <비밀상점 위치 안내도>를 손으로 선택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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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상점 위치 안내 : ‘비밀상점으로 간다!’라고 외치며 주점과 여관 사이 막다른 벽으로 달려간다.
주의 : 체력 120 이상일 때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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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벽으로 달려가라니. 거기다가 체력 120 이상일 때 사용하라니…. 뭔가 좀 찝찝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아이템 살 돈이 없으니 굳이 비밀상점에 갈 필욘 없었다. 실비아는 고개를 내젓곤 메시지 창을 껐다.
혹시 몰라서 실비아는 다시 시스템을 불러와 세이브를 했다.
그보다 업보가 많이 올라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업보라는 단어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는 아닌데 말이야…. 업보가 10 상승 한 거론 큰 영향을 안 받겠지만… 많이 오른다면 배드엔딩이 뜰 확률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생각에 빠진 실비아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다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
“윽!”
부딪힌 어깨를 쥐고 앞을 보자 자다가 갑자기 불을 켠 것처럼 눈앞이 번쩍 빛났다.
‘아쿠, 눈부셔.’
눈을 비비고 앞을 쳐다본 실비아는 남자의 얼굴을 보곤 놀라 숨을 헉 들이켰다.
‘엄청난 미모다.’
어쩐지 눈앞이 번쩍거린다 싶더니 형광등 백 개를 켜 놓은 듯 자체발광하는 미남이 얼굴을 찡그린 채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넘어져 있었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강렬한 붉은색 머리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안을 가진 미남자였다.
외꺼풀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색기가 좔좔 흘렀다.
‘얼굴만 봐도 절정에 이를 것 같은 생김새….’
작은 얼굴과는 달리 장신의 탄탄한 체격을 가진 그는 어깨를 부딪친 여파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실비아를 보곤 더욱 얼굴을 구겼다.
‘아, 맞다. <동정 레이더>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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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태에선 공략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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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상태 창이 뜨질 않고 공략 불가 메시지만 떠오르네.’
잠시 멈칫한 실비아는 곧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게임 같으니라고. 이런 메시지를 나한테 보여 주면 얘가 동정이라는 것과 공략 캐릭터라는 걸 동시에 알려 주는 셈이잖아.
실비아가 사악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미소 짓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린 채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위협적인 움직임에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어느새 슬금슬금 막다른 벽까지 몰아 붙여졌다.
쾅! 고전적 수법인 벽치기를 미남이 시전했다. 위협할 의도였겠지만 실비아는 잠시 깜짝 놀랐을 뿐 곧 황홀함을 느꼈다.
‘더 거칠게 다뤄 줬으면 좋겠다.’
자신보다 한참 큰 체격의 남자가 양팔로 가둔 채 앞을 가리자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뭐야? 사람을 쳤는데 사과도 안 하는 건가?”
“아, 죄송… 죄송합니다.”
남자는 턱을 치켜든 채 눈을 내리깔고 실비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로 살짝 떠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어쩐지 조그맣고 힘없는 동물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찝찝해졌다. 살짝 떨리고 있는 도톰한 분홍빛 입술로 시선을 내린 남자가 쯧-하고 혀를 한 번 찼다.
사실 실비아는 벽에 밀어 붙여진 것에 흥분해서 얼굴을 붉히고 몸을 떠는 거였지만 남자의 눈에는 무서워서 덜덜 떠는 것처럼 보였다.
“됐어.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한 번 털곤 물러섰다. 그리곤 미련 없이 뒤돌아 걸었다.
실비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싸가지 없기는. 그렇지만 잘생겨서 눈요기는 됐다.
저 싸가지가 게임의 공략 캐릭터 중 하나라니….
훗날 저 차가운 남자를 무릎 꿇려서 마음껏 괴롭힐 생각에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뭔가 서늘한 기운을 느낀 건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저나 공략 캐릭터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실비아는 군침을 흘리며 연결고리를 조금이라도 이어보고자 남자의 단단한 어깨를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화들짝 놀란 황금빛 눈동자가 그녀를 형형하게 노려보았다.
“뭐야?”
“저기….”
이름을 물어보려고 입을 열자 예고 없이 선택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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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수는 네가 더 없는걸.
2. 다짜고짜 입부터 맞추고 본다.
3. 빠른 속도로 뒤통수를 쳐 기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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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이상한 선택지는? 뭘 선택해도 그다지 좋은 전개가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활동성이 적어 보이는 1번이 나을까…. 휴….
실비아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재수는 네가 더 없는걸.”
“뭐? 하, 내가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건가?”
“누구… 신데요?”
“날 모른다고…? 모르면 됐다. 알 필요 없어.”
반듯한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남자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한쪽 입꼬릴 비스듬하게 올렸다.
지가 누군진 아느냐고 묻다가 알 필요 없다고 하다니…. 이름을 말해야 알지, 진짜 싸가지 없네.
뭐, 그래도 통성명 안 해도 잊지 못할 얼굴이긴 하다.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에 황금안, 거기다가 저 수려한 이목구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지.
‘응?’
그 때 실비아가 잠시 흠칫하고 몸을 굳혔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불길하면서 강한 기운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이런 기운을 실비아가 어떻게 느낄 수 있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게임 속 효과인 듯했다.
통성명도 거부하겠다, 공략 불가인 캐릭터한테 더 이상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무엇보다 이상한 선택지가 뜨는 상황에서 뭘 더 어쩔 것인가?
‘공략 캐릭터니까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뭐.’
“아 그러시군요. 그럼 전 이만….”
실비아가 남자를 피해 뒷걸음질 쳐 사라지려 하자 그가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
실비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자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꼬리만 들어 웃었다.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봐주려고 했더니만… 재수 없다고 했으니 정말 재수 없게 만들어 줄게.”
그의 말이 끝나자 삐빅, 소리가 나며 허공에 경고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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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합니다. 공략 불가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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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메시지를 보자마자 집사인 세비스가 ‘누구한테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렁뱅이’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냥 말 걸지 말 걸 그랬다….
화륵- 남자의 손 위로 불꽃이 생성됐다.
‘마법사였어?’
그 모습에 실비아의 낯빛이 파래졌다. 그 순간 선택지가 또 떠올랐다. 추가된 메시지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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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남자를 혼내주자!
1. 다짜고짜 입부터 맞추고 본다.
2. 남자의 옷을 찢어발겨 두툼한 가슴을 감상한다.
3. 빠른 속도로 뒤통수를 쳐 기절시키고 여관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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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냐? 이 상황에서 여관은 또 뭔데. 선택 안 하고 그냥 도망치면 안 되나?
애석하게도 그녀의 발은 본드로 붙여 놓은 듯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실비아가 선택하지 않고 멍하니 있자 10, 9, 8… 하면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누가 봐도 즉사 엔딩 루트잖아? 아오….’
황금 눈이 실비아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절망하던 그녀는 번뜩 생각의 전환을 했다.
아니지?! 설마 선택지가 하나같이 이렇다는 건, 그렇고 그런 짓을 시스템에 의해 바로 진입할 수 있단 소리가 아닐까?
공략 불가 캐릭터라곤 했지만… 혹시 모르지. 19금 게임은 원래 씬이 주목적이 아니던가. 게임을 하다 보면 뜬금없이 야한 상황으로 흘러가곤 하니까.
그녀가 말없이 눈만 데록데록 굴리자 남자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점점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게임 속 선택지라지만 그녀보다 체격이 한참 커 보이는 남자의 옷을 찢어발기거나 뒤통수를 쳐 기절시킨 뒤 여관방으로 데려가는 건 무리로 보였다.
‘레벨을 좀 올리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3개의 선택지 중 그나마 나아 보이는 게 입을 맞춘다는 선택지다. 사리사욕도 채울 겸 입을 맞춰야겠다.
판단을 마친 실비아는 대뜸 그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놀란 남자의 손에서 불꽃이 사그라졌다.
“뭐… 뭐하는….”
“착하지? 가만 있어.”
실비아는 당황해서 크게 떠진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그대로 들이댔다.
“읍?!”
그의 입술은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맞닿은 입술에서 시원한 박하 향기가 느껴졌다.
예상과 달리 완강한 반항은 없었다. 가볍게 비비다가 혀로 윗입술을 핥곤 이를 내어 입술을 살짝 깨물자 남자가 약하게 몸을 떨었다.
‘반항하지 않네? 혀를 넣어도 되려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캉한 혀가 헤엄치듯 들어갔다. 고르게 난 치열을 부드럽게 훑은 뒤 혓바닥을 톡톡 두드리자 가만히 있던 남자의 혀가 뒷걸음질 치듯 안으로 숨으려 했다.
‘첫 키스인 것 같은데.’
순종적으로 변한 남자를 벽에 밀어붙인 채 실비아는 키스를 이어갔다.
“흣….”
남자가 미약한 신음을 내자 실비아의 기술은 더 현란해졌다. 고개를 돌린 채 점막을 훑었다가 혀를 다시 한번 살며시 터치하자 부끄러운 듯 숨어 있던 혀가 슬며시 얽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