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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충동-15화 (15/25)

15화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선아 씨가 자고 있어서 내가 받았어요. 미안.”

“부동산이요…?”

“네. 계약자가 직접 가게를 보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언제까지 비워줄 수 있냐고 물어서 원하는 날짜에 가능하다고 했어요. 사람을 보낼게요. 선아 씨는 가게에 나가지 말아요.”

“아…. 하지만 아직 숍에 화분이 꽤 있어요.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가 살짝 고개를 젖혀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함이 느껴지던 눈빛이 일순 유순해지고, 그녀의 긴 머릴 쓸어넘겨 준 그가 가볍게 입술을 포개오며 윗입술을 빨아들였다.

“그런데 속옷 안 입었어요? 지금 내 허벅지에 닿은 부분, 굉장히 야하고 부드러운데…. 선 것 같아.”

양 뺨에 화륵 열이 올랐다.

“모, 못해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친 그녀가 고개를 사납게 저으며 엉덩이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느새 파자마를 내린 그가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를 꺼내곤 그녀의 음부를 넓게 벌렸다. 까치발을 든 선아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버티려 노력했지만, 목덜미를 깨무는 행위 한 번에 발끝에 힘이 풀렸다.

그녀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간 선단이 촘촘한 내부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채운다.

“흐응, 하…, 너무해….”

“아아, 난 너무 좋은데? 넣기만 했는데, 쌀 거 같아. 천천히 움직여 봐요.”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앞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들썩이는 피부에서 찰진 마찰음이 난다. 상처 난 엉덩이가 욱신거렸지만, 내부를 자극하는 쾌감이 더 컸다. 촉촉하게 젖은 음부는 마치 녹아내리기 직전의 젤리 같아 비벼지면 비벼질수록 말랑말랑한 살점에선 기이하고도 짜릿한 쾌감이 일었다.

그가 귀에 대고 사랑한다며 속삭였다. 거칠지도 가쁘지도 않게, 마치 항상 이곳에 틀어놓는 이름 모를 클래식 선율처럼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는 익숙한 절정을 선물했다.

***

[여기를 미술학원으로 쓴다나? 개인 작업실로 쓴다나? 어쨌든 내부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하니까, 화분이랑 집기 좀 빼줘요. 오늘 바로 계약한대요. 올 수 있죠? 오늘까지 해줘요.]

선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토스트를 씹는 이현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는 사람을 보내 화원을 정리하겠다며 못 박았지만, 각종 중요 서류를 비롯 차를 이용해 집으로 가져오려 했던 화분 몇 개가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알겠어요. 오늘까지 해결해드릴게요.”

[이따 봐요. 아유, 주인이 빨리 나타나서 다행이에요. 경기도 안 좋은데.]

“그러게요. 고생하셨어요.”

막 포크를 내려놓은 이현이 흠, 소릴 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커피를 병째 가져온 그녀가 그의 빈 컵을 채운다. 길게 늘어진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이현의 손가락이 감겼다. 향을 음미하듯 머리카락을 당긴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곤 고개를 젓는다.

“안돼요. 내가 사람을 보낼게요.”

“…저한테 사람을 붙여주세요. 힘든 일 안 할게요.”

“힘든 일도 힘든 일이지만,”

하던 말을 멈춘 이현의 표정에 어딘지 모를 적의가 묻어났다.

서경준이 그녀의 가게에서 꽃을 사 저에게 보낸 게 고작 지난주 일이다. 제가 밤새 그녀를 지켜보았던 그 날. 그녀는 가게를 정리했고 서경준은 그를 도발했다.

“또 다칠까 봐 그래요.”

결국, 서경준 때문이란 말은 꺼내지 못했다.

이현의 애틋한 말투에 선아는 살짝 고개 숙여 입가에 묻은 살구 잼을 핥았다.

“중요한 서류하고 작은 포트 몇 개만 챙겨올게요. 걱정 마요. 장미는 안 건드릴 테니까.”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기분이 좋아진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의 노랫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이 사라진다.

***

“화원으로 일할 사람 다섯을 보내라고 했으니, 끝나면 연락해줘요. 절대 일하지 말고, 가만히 서 있어요. 내 명령이야. 알았죠?”

데 로사 앞에 그의 차가 멈춰 섰다.

그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은 뒤에야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반쯤 마른 보도블록 위에서 가볍게 입 맞춰 키스해 준 그는 선아의 잔소리를 들은 뒤에야 차에 올라 회사로 출발했다.

아직 몸 상태는 별로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개운했다. 지난밤 그를 끌어안고 꿉꿉했던 과거를 모두 쏟아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상한 안도감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뒤엔 무엇도 두렵지 않은 것과도 같은 거였다.

선아는 화원 문을 열었다. 오래도록 환기하지 않아 시들시들해진 화초들이 그녀를 기다렸다. 한숨 쉰 그녀는 몇 개의 거래처에 연락해 혹여 화분을 받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아직 싱싱하고 괜찮은 화초 몇 개를 골라 이량 모직, 본부장 최이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아이들은 썰렁했던 그의 집무실에 활기를 줄 것이다. 서랍 깊숙하게 넣어둔 서류를 챙긴 그녀가 지난번 찾아낸 디엣 계약서를 쫙쫙 찢었다. 마음 같아선 불이라도 붙여버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 계속 품에 안고 있던 거였다.

수치의 증거. 조각조각 내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것을 휴지통에 담고 물을 부었다.

끈적하고 습한 공기를 가르고 문이 열렸다. 선아는 이현이 보내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익숙한 얼굴을 보며 그녀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비서님…?”

“안녕하세요.”

선아는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빈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네, 안녕하세요…. 그이는 지금 회사로 출발했는데요. 어쩐 일로….”

설마 이현이 보낸다는 사람 중 한 명일까?

여전히 표정이 없는 사빈은 다가오는 선아를 보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내밀었다.

“제가 이곳 계약자입니다. 오늘까지 비워주신다고 하셔서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아는 그녀가 내민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김사빈은 이현의 비서임과 동시에 묘하게 적의가 느껴지는 여자였다. 평범한 비서가 아닌 건 알고 있다. 그녀가 바로 명숙이 이현에게 말했던, 짝이 될 뻔한 여자라는 것도.

지난번 식사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선아는 훑어본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기에 미술학원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작업실이었나요? 어쨌든, 이현 씨의 비서님이시잖아요. 퇴사라도 하시는 거예요?”

작업대에 놓여있던 피 묻은 신문을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흘러내린 소매를 걷어 올렸다.

“퇴사라뇨. 당치않습니다.”

“이현 씨도 알아요?”

“아뇨. 아직 모르십니다. 그리고 제가 계약자이긴 하지만, 실제 사용하시는 분은 따로 계시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현 씨가 사람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금방 치워드릴게요. 아, 저기에 이름표 붙여놓은 화분 세 개는 이현 씨 집무실로 옮길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빗자루를 든 선아가 바닥을 쓸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흙먼지를 피해 물러나는 하이힐의 궤적을 따라 선아의 시선이 움직인다. 사빈은 작은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선아가 쓸어낸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사빈의 발끝을 더럽힌다. 발목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권태로운 손길. 짧게 혀를 찬 사빈이 이현의 이름이 붙여진 화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저 화분들을 본부장실에 보내실 건가요?”

“네. 그이 사무실에 가보니 너무 삭막한 것 같아서요.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랄 아이들로 보내드릴 거예요.”

“죄송합니다만, 이량 모직은 정해진 화원에서 화분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본부장실에 화분이 없는 이유는, 본부장님 지시 때문입니다. 화분이라면 지긋지긋하신 것 같던데…. 굳이 그러셔야겠습니까?”

바닥을 쓸던 선아의 행동이 멎었다.

상체를 세운 그녀가 사빈을 보며 험해진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태연히 시간을 확인한 사빈이 막 도착한 인부들의 기척을 느낀 듯 선아에게 걸어왔다.

“조용히 대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어요.”

“대화를 안 하면 사모님만 손해이실 텐데….”

“…제가요?”

“서경준 씨라고 아시나요?”

순간 뒷머리에 커다란 바늘이 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경준의 이름이 어째서 사빈에게서…? 동시에 문을 열고 인부들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진 숍 내부.

“최이현 본부장님이 보내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자자, 사모님은 커피라도 한잔하고 오십시오! 저희가 싹 치워두겠습니다. 하하.”

명함을 건넨 유쾌한 어투의 직원이 다른 사람들을 통솔하며 서두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빈이 창백해진 선아의 곁을 스치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커피, 드실까요?”

“그러죠.”

선아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 사빈은 자신을 향해 돌아선 선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 제 작업실이 있습니다. 커피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조용히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사모님을 위해서.”

선아의 얼굴에 경계심이 잔뜩 들러붙었다. 하지만 직면해야 했다. 김사빈이 제 앞에서 서경준의 이름을 꺼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이름을 꺼내 들었고, 이미 반응한 이상 뭐라도 해야 했다.

선아는 앞치마를 벗고 휴대전화와 손가방을 챙겨 사빈을 따랐다.

“대학 시절 그림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취미가 됐지만, 비서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꽤 많은 그림을 그렸고요. 저도 1층에 사모님의 화원이 있는 걸 보고 꽤 놀랐어요. 마주칠 일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도 놀랐네요. 비서님이 같은 건물에 계셨을 줄은요. 소름 끼치기도 하고.”

“본부장님이 드나드시는 걸 보고 알았습니다.”

“우리 그이랑은…. 원래 알던 사인가 보죠?”

7층에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렸다. 삼삼오오 모여 보습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선아는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됐다. 앞서가는 사빈이 멈춰선 곳은 명판도 달리지 않은 복도 끝 검은 철문 앞이었다.

“들어오세요.”

지문에 의해 열린 문 너머 깜깜한 어둠이 선아를 맞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온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에서 희미하게나마 전류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사빈의 말대로 열 평 남짓한 공간엔 꽤 많은 개수의 캔버스가 기대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쓸모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침대, 두 개의 이젤과 널브러진 물감. 그리고 크림색 서랍장이 중심이 된 공간은 어딘지 모르게 오싹했다.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 선아를 흘긋 돌아보며 사빈이 전면을 가렸던 커튼을 걷었다.

오래된 필름지 너머 희뿌연 햇살이 은은하게 밀려든다. 그제야 선아는 중앙에 놓인 테이블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 괜찮으시죠?”

“네.”

“서경준의 이름 하나에 반응해 이곳까지 따라오실 정도면, 뭐가 있긴 있나 보네요.”

포트에 물을 올린 사빈이 두 개의 컵을 꺼내 준비했다. 천장에 매달린 기이한 모양의 철제구조물을 보는 선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담담했던 가슴이 불편하게 뛰어댄다. 용도를 너무도 잘 아는 그것들이 이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천장을 비롯 벽을 장식한 쇠봉과 꽤 커다란 철장. 마치 큰 개를 가두었던 것 같은 크기의 우리에서 선아의 시선이 멎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짓씹는 그녀의 가슴이 크게 부풀다 가라앉았다.

“모르면 따라오지도 않았겠죠. 말해주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우리 그이와 무슨 사이인지…. 들어보죠. 비서님이 하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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