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쁜 충동-14화 (14/25)

14화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다섯이란 소리가 흐느끼듯 새어 나온다. 혼란과 번민으로 가득한 남자의 표정이 검은 비가 내리는 유리창에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들고 있던 채찍을 바닥에 내던진 뒤 곧장 그녀의 엉덩이를 벌려 한계까지 발기한 성기를 쑤걱하고 쑤셔 넣었다.

허전했던 내부에 가득 차오른 열기. 그는 삽입한 그대로 그녀의 한쪽 다리를 접어 테이블에 올렸다. 이현은 인정해야 했다. 선아를 처음 보며 아껴주고 싶었던 마음의 진실을.

세상 무엇보다 고아하고 청초하며 사랑스러운 여자가 제 아래 무릎 꿇고 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매달려주길 바란 마음을, 그녀를 길들이고 키워 제 방식에 물들이려 했던 본 내를.

결국, 성향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범하는 상상에 잠 못 들던 이중적인 모습에 이현은 이를 악다물었다.

이현은 선아의 엉덩이를 잡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맞은 자국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한번 시작된 움직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빠르게 박아대던 그가 한걸음 물러나며 성기를 빼냈다. 그리곤 재킷과 넥타이를 한 번에 벗어 바닥에 던진 뒤 신음 한 번 내지르지 않으며 상체를 웅크린 선아를 돌려 눕혔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양 뺨이 추위에 얼어버린 사람처럼 붉다. 가슴 앞에 모인 그녀의 손목을 머리 위로 고정한 그가 가느다란 목을 가볍게 조르며 허벅지를 벌려 다시금 파고든다. 귀두부터 차츰차츰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이현은 낮게 신음했다. 살과 살이 비벼질 만큼 깊숙하게 파고든 그가 상체를 숙이며 달뜬 호흡을 이어나가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타액이 뭉개진다. 그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그녀 안이 좁아졌다. 그가 허리를 부딪칠 때마다 테이블엔 애액이 흘러내렸다. 비명 같은 교성을 삼키며 그녀가 애원했다.

“안게 해줘요. 하아, 안고 싶어요.”

“안아.”

바싹 좁혀드는 내부를 느끼며 그가 허리를 깊숙하게 밀어 넣고 주름이 느껴지는 항문 주변에 액을 발랐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팔을 뻗어 그의 셔츠를 말아쥔 그녀가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저항한다.

“안돼, 거긴 싫어요!”

“싫으면 세이프 워드를 외쳐. 그럼 돼.”

“아, 안돼요…! 하지 마. 멈추지도 마! 아, 제발… 흐읏,”

“제대로 말해. 원하는 게 뭔지. 끝까지 가길 원하는 건지, 여기서 그만둘 거면 다신 내 앞에서 무릎 꿇지 마.”

“흣, 이현 씨!”

“주인님이겠지.”

그의 검지가 좁은 주름 사이로 서서히 파고든다. 선아는 그의 셔츠를 말아쥐고 허리를 들었다.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처럼 급박하게 생겨난 죄책감과 수치심이 밀려와 그녀의 모든 것을 산산이 부서트릴 것만 같았다.

두렵다.

무서웠다.

신체의 고통이 아닌, 변화한다는 두려움에 그녀는 이현의 입술에 키스하며 끊어질 듯한 소릴 냈다.

“비…, 비올라레.”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이현은 힘없이 벌어진 그녀의 입 안쪽 깊숙하게 혀를 밀어 넣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수갑이 채워진 그녀의 손을 들어 제 목덜미를 끌어안게 만들어 뜨겁게 달아오른 내부를 빠른 속도로 쑤셨다. 뜨거운 체온이 맞닿음과 동시에 기묘한 안도감에 힘이 풀린다.

“선아 씨, 하아…. 잘했어요.”

“하아, 이현 씨. 흐응,”

“미안해요, 선아 씨.”

“이현 씨…. 흑, 무, 무서웠어요….”

“울지 마요. 쉬이…. 내가 잘못 했어요. 울지 마. 뚝….”

참을 수 없는 신호와 함께 비릿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머무르며 그녀의 뺨과 이마, 그리고 입술에 자잘하게 입 맞추고 눈물을 핥았다.

이번 플레이로 명확해졌다. 선아는 서브미시브가 아니다. 그저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평범한 여자일 뿐. 그녀가 가진 피학성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나쁜 충동이었다.

그가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간 뒤에야, 그녀는 본 내를 내보였다. 서경준에 의해 본인의 성향을 착각했던 평범한 여자. 그녀는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를 뿐, 병적인 성향을 갖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더러웠어야 할 기분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현은 쓰게 웃으며 그녀의 입술을 다정하게 깨물었다.

“이제 알겠어요…?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아니에요. 난 고통스러웠어요. 선아 씨를 때리면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어요. 다신…. 내가 당신을 때리게 하지 말아요.”

입술을 맞붙인 채 손을 돌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었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끌어안는 그녀에게서 아주 달콤한 향기가 났다.

“뭐, 가끔 주인님이라 불러주면 좋지만요. 난 변태성욕자니까, 그런 소리 들으면 좋아요.”

짓궂게 웃는 그로 인해 경직됐던 공기가 단번에 깨졌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왼편으로 기울인 그녀가 통증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오므렸다. 이현은 그녀 안에서 빠져나와 곧장 선아를 품에 안고 침실을 향해 걸었다.

불 꺼진 거실과 복도를 지나 포근한 향기로 가득한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고, 거실로 다시 나가 구급함을 들고 온 이현의 표정이 까맣게 죽었다. 숫눈처럼 하얗던 피부에 핏기 오른 새빨간 상처. 힘없이 축 늘어진 그녀의 상처 난 피부에 연고를 바르는 손끝이 떨린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안겨왔다. 연연하게 웃는 그녀를 끌어안고 이현은 한참을 말없이 침묵했다. 모든 게 정상범위를 찾아간다. 그녀의 뺨에 입 맞춘 그가 한결 침착해진 호흡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말해줘요. 서경준과 어떻게 된 건지….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난 선아 씨의 남자예요. 알아야겠어요. 뭐든지, 다.”

***

아들을 낳고 싶었던 엄마는 갓 태어난 셋째 아이가 딸이란 소리에 미역국도 마다하고 곧장 공장으로 일을 나갔다고 했다.

1980년대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공장에 나가 함께 일을 했던 엄마는, 막내딸이 100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잔병치레 한번 없이, 단 한 번도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으며 성적 또한 우수했다. 체육이면 체육, 미술이면 미술. 각종 교내 대회의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고 선생님의 평판 또한 좋았다. 하지만 그녀의 어미는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넨 적이 없었다.

〈치워. 엄마 창피하게 굴지 말고.〉

아마 시에서 열렸던 글짓기 대회였던 것 같다. 집 앞 시장에서 만난 엄마에게 최우수상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힌 상장을 내밀었을 때 돌아온 건 짜증 가득한 거절이었다. 아이는 이후 무언가를 노력하려 하지 않았다. 평범해지려 노력했다.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았고 사랑받는 언니들의 그늘에 숨어들었다.

학창시절은 덕분에 조용히 넘어갔다. 딱히 귀염받지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지도 않았다. 아웃사이더 같은 태도 때문인지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떨어졌다.

그러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한 살 위 선배와 연애를 하게 됐다. 유일하게 흥미를 느꼈던 이탈리아어 동아리에서 그는 첫눈에 반했다며 그녀를 따라다녔고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는 평범한듯했다. 시작은 그 선배였지만, 끝은 그녀였다.

처음 받아보는 애정이나 다름없던 탓이었을까? 선배의 다정함과 끝도 없는 애정표현에 그녀의 마음은 열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었다.

첫 경험, 통증, 무감각에 가까운 성감. 이론으로 알던 희열 따윈 없었다. 그저 기계적이며 반복적인 행위 끝, 선배 혼자만이 기이한 표정으로 절정에 달했다.

참, 기막히고 별로인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식어버린 그는 그녀에게 미련을 심어준 채 잔인하게 사라졌다. 참 많이 힘들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

그것은 몹시도 시시한 연애의 끝. 그녀 스스로가 평범한 관계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시작이었다.

그녀는 취향에 없던 원예학과에 들어가 식물들에 사랑을 쏟아내고 정작 제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선배의 전시회 팸플릿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끌리듯 들어간 그곳에서 서경준을 만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표했다. 몹시도 적극적이며 신선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새로운 세상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빛과 어둠, 절정과 고통이 공존하는 그곳으로.

***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가 축 늘어져 제 안에서 빠져나가는 그를 느꼈다. 아침 해가 뜬 것 같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섹스를 했고, 그러다 절정에 달한 게 몇 번인지.

눈을 뜨고 싶었지만, 자꾸만 눈이 감겼다.

선아는 힘을 빼 안겨오는 이현을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뺨에 닿은 이현의 입술. 그가 이제 좀 쉴까? 라며 키득키득 웃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서로를 위한 체온, 숨소리, 손길.

이렇게 오랫동안 제 이야길 꺼내본 건 처음이었다. 엄마를 원망해 본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딱히 누군가를 원망해야 할 만큼 힘겨운 삶이 아니었기에, 그저 그녀에게 엄마란 존재의 가치가 미미했을 뿐이다.

〈선아 씨는 서브미시브가 아니에요. 그런 성향 같은 거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다신, 위험한 장난치자고 하지 마요.〉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선아는 이현의 말을 믿었다.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의 다리와 팔을 교차해 틈 없이 안겨있던 그녀가 눈을 뜬 건, 정오에 가까운 시간. 허전한 옆자리를 조용히 응시하던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슬리브리스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미한 커피 향이 주방에서 시작해 베란다로 이어졌다. 지난밤 채찍이 닿은 자리가 화끈거려 속옷을 입지 못했다. 슬리브리스의 얇은 원단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오싹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선아는 허벅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슬리브리스 아랫단을 잡아 내리며 베란다와 연결된 문을 열었다.

하나둘 키우기 시작한 화초가 우거진 베란다 차 탁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이현이 전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싱그럽게 자라난 블루 세이지를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던 그가 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휴대전화의 마이크 부분을 가린 그가 그녀에게 손짓했다.

“잘 잤어요? 이리와.”

이현은 파자마 차림에 가벼운 셔츠만 걸친 채였다. 오늘은 함께 있어 줄 거라는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그의 모습에 선아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품에 쏙 파고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 출국이십니다. 그리고 오후 회의는 참석해주셔야 합니다. 회장님 주최의 임원회의입니다.]

사무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여자의 음성은, 바로 어제 로비에서 만났던 이현의 비서였다. 이현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눈 앞머릴 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통화를 마친 그가 따뜻한 커피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베란다 탁자의 의자는 하나였다. 선아는 그와 함께 이곳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른 새벽, 화훼시장으로의 출근을 준비하며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했던 그녀만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 새벽 달빛을 감상하는. 그녀의 정성이 가득 담긴 화분마다 크고 작은 꽃송이가 꽃망울을 피워내는 그런 곳.

하나뿐인 의자에 꼭 끌어안고 앉아있으니, 의자를 하나만 가져다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먹여주는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단단한 가슴팍에 안겨있는 기분은, 마치 구름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은 그가 비가 그쳐 축축하게 번진 도심을 내려다보며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