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눈꽃은 검게 물든다.
“맥주 정도는 괜찮지 않아?"
너털웃음을 터트린 내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냐. 사고 나는 것보다 지금 좀 덜 마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보통 남녀가 술김에 잠자리를 갖는 것을 사고라고 하지, 술을 먹어서 거기가 안 서는 것은 사고가 아니지 않나....?
"괜찮을거야. 그냥 이거 한 캔 먹고 끝날 거 같은데 뭐.”
"...책임질 거야?"
뭐 어떻게 책임을 지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소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지만 그녀는 다시 내게 맥주캔을 쥐어주었다.
“너 만약 오늘 무슨 문제 생기면 내일이랑 모레도 너희 집 찾아올 거야."
말투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내용은 그러지 못했다.
피식 웃음을 지은 나는 나연이가 마시고 있던 맥주 캔을 집어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아~ 취한다~"
"야! 너 뭐해!"
나연이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된다.
취하는 중.”
나연이는 내가 한 입 만에 거의 다 마셔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나를 덮쳐왔다.
“너 진짜 죽을래?”
“아. 취할 때 흔들면 더 빨리 취한다는데..”
아직 치킨의 기름기가 손에 남아있어서 직접적으로 나를 만지지는 못한 나연이는 나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일어나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윽고 물소리고 들려왔고 손을 말끔하게 씻은 듯한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봤다.
최재혁."
"응?"
"일어나."
“나 아직 다 안 먹었는데?”
“내가 사온 거잖아. 식사는 일단 중단이야."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나는 순순히 뼈에서 손을 떼고는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가서 손 씻어."
“그건 좋은데 뭐하려고?”
어차피 치킨은 얼마 남아있지도 않았고 배도 충분히 찬 상태였다.
"...검사."
검사?"
“아. 제대로 되는지 검사해야할 거 아니야."
짜증이 뚝뚝 묻어나온다.
살짝 쫄아버린 나는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 알았어."
그녀의 말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야."
"응?"
“...내 입에 들어갈 거니까 깨끗하게 닦고 나와.”
순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나는 머리를 위아래로 까딱까딱하고는 문을 잠갔다.
솨아아
손올 비누로 박박 닦은 나는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맛있는 치킨 기껏 먹어 놓고 디저트로 이런 거를 입에 물겠다니.
바디워시를 쭈욱 짠 나는 내 성기와 하반신을 꼼꼼하게 닦았다.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나가려던 찰나.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입고 있던 팬티 다시 입어야하는 건가?
기껏 닦았는데 입던 옷 다시 입는 것이 맞나 싶었던 나는 혹시 모르니까 그냥 물어보고 행동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끼이익
빼꼼 얼굴만 밖으로 내밀어본다.
"...나연아."
나연이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먹고 있던 자리 정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하고 있었다.
“왜.”
“어... 그... 나 속옷 좀 가져다 줄 수 있나 싶어서."
잠시 내 말뜻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는지 대답을 않던 나연이는 싱크대 물을 껐다.
"그냥 나와."
“아. 근데 입고 있던 거 다시 입고 나기기에는...”
“그냥 그대로 나오면 되잖아."
매번 이진성이 되자고 자기 최면을 건 상태로만 그녀를 대했기에 그냥 내 부끄러운 부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얼굴에 후끈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어... 그런가?"
“설마 이제 와서 부끄럽다든지 뭐 그런 거 아니지?"
아니... 나는 좀 부끄러운데?
나만그런거야?
“나 잠시만!"
이 상태 그대로 대화를 더 했다가는 나연이가 싫어하는 자신감 없는 모습을 더 보여줄 것 같았던 나는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쾅 닫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전문 배우가 아니었다.
매번 나연이랑 관계를 가질 때도 충분히 그가 원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예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멘트가 적힌 메모장을 보기도 했고, 모범 답안인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정독하면서 거울 앞에서 표정 연기를 해보기도 했다.
허나 지금 상황은 파워 레인저인데 악당이 변신할 시간을 주지 않는 느낌이랄까.
되돌아보니 그 악당들은 무척 인내심도 많고 친절한 이들이 아니었나, 재평가가 시급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거울 앞에 섰다.
나는 이진성이다.
나는 이진성이다.
지금 눈을 감았다 뜨면 나는 열 명의 히로인들의 주인인 그 남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암컷들을 지배하기 위해.
그 순결했던 처녀들을 능욕하기 위해.
"후우우...."
떨림이 잦아들고 서늘한 감각이 밀려들자 하의뿐만 아니라 상의까지 모조리 다 벗어버린 내가 문을 벌컥 열었다.
"다 씻은거야?"
나연이가 태연하게 질문했으나 나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의 태도를 비꼬았다.
“어. 다 씻었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앉아있냐."
침대 위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나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우습냐."
살면서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정말 무례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말이 스스럼없이 홀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연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오. 죄송합니다.”
"머리 박아."
숨을 헙 들이 삼킨 나연이는 천천히 머리를 아리로 내리깔았다.
그녀의 시선이 더 이상 나를 향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잠깐 표정을 풀고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아프지만 않게 하면 되는 거야.
오른발을 들어 올린 내가 살포시 그녀의 머리 위에 발을 얹었다.
당연히 더럽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혹시 몰라서 다 닦고 나왔으니까.
어쩌면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날지도 몰랐다.
“너 아까 왜 닦고 오라고 했냐.”
“검사... 한다고..."
조금 전까지의 건방진 태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뭔데."
"죄송합니다."
“네가 뭔데 내 좆을 검사해."
발바닥으로 살살 그녀의 머리카락올 비볐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에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진성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언제나 이렇게 히로인들에게 치욕스러운 포즈를 시키고는 머리를 밟았다.
물론 나처럼 상냥하게 밟지는 않았다.
묘사에 따르면 그는 묵직한 하중을 그대로 실어 보냈다는 표현도 있었으니까.
"일어나."
발을 치워서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끔 해주자 나연이는 서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물론 여전히 무릎은 꿇은 상태였다.
“보지 검사를 해볼까 하는데.”
내가 눈치를 주듯 턱을 튕기자 나연이는 허겁지겁 옷을 벗어 내렸다.
수치스러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내 행태가 만족스러운지 충실하게 내 지시를 수행하고 있었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검사하기 좋게 벌리고 있어봐.”
알몸이 된 나연이는 이불 위로 올라가 M자 모양을 만들어 다리를 벌렸다.
가지런히 정리된 음모 밑으로 연분홍빛 아랫입술이 자태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소중한 부위를 소중하지 않게 대해야만 했다.
검지를 들어 그녀의 음부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벌리라면 허겁지겁 일어나서 벌릴 년이 왜 그렇게 예의 없게 구는지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야...”
나연이는 소름이 돋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지 달고 태어났으면 자지한테 봉사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거 아니야?"
밖에서 이야기했으면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 남았을 말은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되어있었다.
"네... 맞아요... 자지수납함인 제가 죄송합니다...”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연기가 늘어가는 건 나만 그런 것 같았다.
아닌가. 오히려 편해져서 더 표정 관리를 하지 않는 걸까.
“뭔 소리야. 그게. 누가 네 보지에 자지 넣어준다고 했어?"
촉촉한 액체가 손가락을 적시자 나는 그대로 중지 하나를 그녀 안쪽으로 쑤셔 넣었다.
찔그덕 소리와 함께 나은이의 입이 벌어졌다.
“보지도 보지 나름이지. 너 같은 건 박아줄 필요도 없어."
하우..."
나의 매도에 말대꾸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동공은 불안한 듯 떨리고 있었다.
마치 내게 '정말 그럴 건 아니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봐봐. 손가락이 이렇게 쑤경쑤경 들어가서야."
사실 말이 쑤겅쑤겅이지 나연이의 보지는 손가락을 두 개 집어넣자 꽈악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안쪽으로 내 물건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 내 자지는 나연이의 아무런 서포팅 없이도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하으... 하아... 죄송해요... 열심히... 조일 테니까....
"뭐라는거야. 애액이 싸지르는 년이..
그녀가 애액을 분출한 것은 오히려 이 말을 듣고 난 이후였다.
손가락만으로도 자극이 심했는지 나연이는 내 이불 위에 물자국을 홀려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운 걸까, 흥분해서일까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물들었다.
"...짐승 같은 년."
솔직히 방금은 내가 말해놓고도 좀 놀란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 건 연기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그걸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나연이의 눈 또한 땡그랗게 커져 있었다.
뭔가... 지금...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그녀가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허리를 숙인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우리 둘의 얼굴.
그녀의 턱을 내 쪽으로 당긴 내가 눈을 감았다.
이어지는 건 입술에서 느껴지는 말캉한 감촉.
"야... 야... 잠깐만... 너...!"
그녀의 어설픈 연기가 산산조각난다.
"뭐래. 암컷이."
그것이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첫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