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268화 (268/276)

<268화>눈꽃은 검게 물든다.

단추가 하나씩 풀어짐에 따라 점점 더 나연이의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나... 나연아. 여기 밖이기도 하고, 여기서 이러면..."

"...너도 읽었을 거 아니야."

주어가 무엇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겠지. 이건.

내 안의 사서가 참고자료의 흔적을 찾아 빠르게 달려간다.

이런 장면... 한강 텐트 씬 같은 거랑 비슷한 씬...

일반적인 호텔이나 집이 아니더라도 이진성은 조교를 멈추지 않았다.

밤중에 길거리를 속옷 없이 걷게 만든다던지 공중 화장실에서 돼지 소리를 흉내내게 한다던지...

누군가한테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역으로 쾌감을 두 배로 가중시킨다는 묘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소설 속 이야기인 거고.

지금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한테 걸렸다가는 답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는걸까.

나연이의 손이 내 손을 말캉한 과실로 이끈다.

"제가 준비한 후식... 별로신가요..?"

마치 첫날밤 새색시를 연상시키는 듯한 말투와 반응.

어스름하게 붉어진 볼에 내 아랫도리는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남자인데...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연이가 이렇게 나온다는데 아무런 신호가 오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한 거니까.

"만약 그렇다고 하신다면 저는...."

첫날밤인데 서방님한테 거절당한 처자 같은 리액션에 나는 진짜 골치가 아파왔다.

"아냐아냐. 좋아. 좋은데... 그거는 이제 집에 가서..."

"어떻게든 미루려고 하시는 걸 보니 역시 원치 않으시는 거였군요."

"아니. 나연아. 그게 아니라.”

"됐어요. 저도 이제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아...."

하아...

"...닥쳐."

결국 기어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너는.

몸을 일으켜 나연이를 바닥에 역으로 눕혀버린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지어지는 요염한 미소.

나에게 힘으로 제압되었음에도 그녀는 승자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패자인 나는 한없이 오만한 눈으로 그런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봐."

"저도 이제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아 떠나...."

-짝

왼쪽 가슴을 후려쳤다.

물론 멍이 들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힘조절은 당연히 했다.

최대한 소리만 요란하게 때려보고자 했다.

"...너 같은 변태년을 누가 진심으로 사랑해."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해.

역행하는 사고와 행동.

기묘한 느낌이었다.

"얻어맞는 거나 좋아하는 변태년이 어덜 사랑을 논해. 너는 그냥 앞으로도 내 변기로 살아. 평생 그렇게 좆이나 빨면서 살라고."

나쁜말에 이어서 또 나쁜말을 한다.

날카로운 비수가 될 말들을 퍼부어댈수록 나연이는 나를 사랑스럽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후식 준비했다고 했지?"

히끅

나연이가 딸꾹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나연이가 딸꾹질을 한다는 것은 그녀가 지금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녀를 충분하게 흥분시켜주고 있음을.

"껍데기도 제대로 안 까고 뭐해?"

내가 한심스럽다는 말투로 핀잔을 주자마자 나연이는 허겁지겁 블라우스를 벗어내렸다.

브라도 마찬가지였다.

남색 브라자가 텐트 바닥에 떨어져내리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한테 얻어맞아 실제로 복숭아 색이 되어버린 그녀의 가슴이었다.

...야했다.

진짜 야하기는 더럽게 야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까. 먹어줘야지. 내가 지금 가서 직접 먹으라. 이거야?"

히끅!

또다시 딸꾹질을 한 그녀는 무릎으로 서더니 자신의 가슴을 내 입쪽으로 가져다 댔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복숭아 열매.

나는 연기중이었음에도 침을 꿀꺽 삼켰다.

"마... 맛은 분명 좋을 거예요."

나연이는 노린 것인지 붉게 물든 쪽을 자신의 손으로 받쳐 내 입 앞까지 대령했다.

내가 시켜놓고 안 물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눈을 딱 감고 그녀의 유두를 살짝 깨물었다.

"흐읏...!"

아팠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였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묵묵하게 내가 할 일을 했다.

혀를 움직여 젖꼭지를 자극한다.

위로. 아래로.

물렁한 복숭아와 같은 그녀의 가슴을 나는 원없이 맛봐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 걸까.

정말 같은 사람의 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말캉함이었다.

"하아... 하아... 히끅...."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두 가슴을 열심히 괴롭혔다.

사실 애무를 잘하고 있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었다.

말은 모질게 하고 있었으나 내 행위는 마치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아이같다고도 느껴질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양쪽이 모두 고르게 침으로 범벅이 되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뒤로 밀쳐냈다.

"...맛은 괜찮으셨는지요."

귀까지 빨개진 나연이가 부끄럽다는 듯이 물었다.

"...나쁘지 않네."

솔직한 반응조차 허락되지 않는 나였다.

"그럼 저도 이제 후식이 먹고 싶은데..."

끈적한 욕망이 그녀의 말을 타고 전해진다.

그 탁한 눈동자에 담긴 것은 나의 바지춤.

흥분이 되기는 했으나 이런 행위를 계속 지속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솔직히 가슴을 저렇게 대놓고 10분 정도 빤 것도 충분히 무리수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이렇게 해볼까.

"누가 말해도 된다고 했어?"

"후식? 네가 나한테 뭘 요구할 처지가 된다고는 생각해?"

"나는 나한테 그딴 말대꾸나 하는 사람 필요없어."

"진짜 예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구나?"

컨셉 자체는 잘 유지하고 말한 것 같은데...

슬쩍 곁눈질로 나연이의 반응을 살핀 나는 급기야 웃음을 참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버렸다.

"아... 아우... 그... 그치만....

할 말이 있는 듯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나연이.

손으로는 자신의 치마를 꽉 쥔 나연이는 분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데 또 나한테 대놓고 면박을 줄 수는 없었는지 그녀는 빨리! 아. 진짜 빨리 좀!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됐어. 꼴리지도 않아."

좋아. 이 멘트 정도면 상황 종료에 충분하겠군.

무사히 이번 이벤트를 타개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야."

소름이 쫘악 돋는다.

본능적으로 내 안의 겁쟁이가 네라고 대답해버릴 뻔했지만 나는 전력을 다해 내 입을 봉하는데 성공했다.

"야. 최재혁."

그녀가 내 이름 세 글자를 부름으로써 끝났음을 직감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왜...?"

"그 말 진심이야?"

"어?"

"나 안 꼴린다는 말. 진짜냐고....

내가 어버버하며 아무런 대답을 못 하고 있자 나연이는 손을 말아쥐더니 내 가슴팍을 마구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야! 대답하라고! 나 안 꼴리냐고! 어? 내가 그렇게 안 꼴려?"

퍽퍽퍽퍽

여자애가 때리는 거라 막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난처한 마음이 더 컸다.

"나연아. 일단 옷이라도 입고 얘기하는 편이..."

"왜. 어차피 꼴리지도 않는다면서. 내 가슴 이렇게 흔들려도 아무 생각도 안 들 거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순간이었다.

"저기요."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도 나연이도 동작을 멈췄다.

...우리 부르는 건가?

"규정상 텐트 두 면 이상 개방하셔야합니다. 지금 바로 안 여시면 과태료 부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들리자마자 나연이는 바로 자신의 블라우스를 챙겨입기 시작했고 나는 시간을 끌고자 대화를 유도했다.

"아... 그게 혹시 어디에 적혀있나요?"

"공원 입구에도 붙어있고 텐트 전용 지정 구역 앞에도 설명되어있습니다. 바로 열어주세요."

아직 단추를 다 채운 것은 아니었지만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이 보이자 나는 바로 텐트 지퍼를 아래로 내렸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확인을 못했어갖고."

"네. 앞으로는 두 면 이상은 무조건 열어두세요. 또 이러시면 바로 경고 없이 벌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 그럴게요."

"네. 죄송합니다."

나연이도 좀 진정이 됐는지 내 옆에서 사과를 거들었다.

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가고 나서야 우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규정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또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식히라는 듯한 자연의 배려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는 뭘 어째야할 것 같은지 잘 모르겠는 나였다.

그렇게 가만히 강가를 바라보며 눈치만 보고 있기를 몇 분.

"야."

나연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응."

"아까 한 말은 잊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기억 삭제 레이저라도 되는 것처럼 나연이는 내게 잊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떤 말?"

"그냥 아까 좀전에 텐트에서 한 말 다."

민망했는지 나연이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자살하고 싶어."

어떡해...

확실히 나연이는 내가한 말 탓에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응원의 말.

뭔가 진짜로 힘이 나면서 그녀를 격려할 수 있는 말을 해주고팠던 나는 고민을 거듭해 결단을 내렸다.

"커흠... 흠...."

헛기침을 괜히 두어번 하고 호흡을 고른다.

좋아.

좋아하는 여자애 응원하는 말이잖아.

실제로 나쁜 말도 아니고, 진심도 함유되어 있는 말이잖아.

그냥 해버리자. 재혁아.

"나연아."

"...?"

시무룩한 얼굴이 나를 올려다본다.

"나 어제 꿈에서 너 존나 따먹었다?"

나연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