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 눈꽃은 검게 물든다.
* * *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이후 나는 어제와 같은 루틴으로 방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샤워를 해 두었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이 무척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는 오늘도 9시 정각에 내 방을 찾아주었고, 그는 한층 더 칼을 갈고 온 것인지 차가운 표정으로 내게 매도를 퍼부어댔다.
바로 화장실로 끌고 들어간 것은 내가 생각했던 전개 밖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비를 맞은 찜찜한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매도 내용과는 무관하게 별로일 것 같기는 했었다.
덕분에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에 등장하는 거품 봉사 씬 비스무리한 것도 해보고...
뭐. 솔직히 나 혼자 사는 자취방이다 보니까 엄청난 낭만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최재혁의 커다란 자지와 내 행위에 흥분해 움찔움찔 떨리는 허벅지 정도를 육안으로 보는 것은 충분히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선한 경험이기도 했다.
천천히 제대로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최재혁의 자지는 거짓말 안 하고 자그마한 몽둥이와도 비슷한 느낌이 났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못 빤다고 샤워기를 들고 그대로 물을 얼굴에 분사해버릴 줄은 몰랐으나 그런 의외인 구석도 나쁘지 않았다.
이진성은 봉사를 못한 여자애들은 그것 이상으로 가차 없었으니까.
몸에 바이브를 꽂아놓고 반나절동안 그대로 방치 안 해둔 것이 어디란 말인가.
화장실까지의 경험들은 진짜 다 좋았는데...
문제는 진짜 실전이라고 할 만한 그 다음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문제는 내 쪽에 있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 묘사와 동일하게 최재혁이 내 처녀를 앗아간 그 순간이었다.
분명 충분히 자위를 통해 야한 즙이 내 안쪽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꺄아아아앗!”
아팠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보면 그보다 황홀한 쾌락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있었는데 나는 아래가 쓸리는 것만 같은 저릿저릿할 정도의 통증만을 느낄 뿐이었다.
“재혁아...”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내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또다시 그 커다란 몽둥이를 내 안에서 휘두르려고 하고 있었다.
무리야...
진짜 무리라고...
저걸 한 번 더 당했다가는 혼절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정말 간절한 SOS와도 비슷한 느낌으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나... 너무 아프하아아앙...”
갑자기 참아보겠다는 생각이 사라지자 나는 그대로 눈물샘이 폭발해버렸다.
“아?”
최재혁의 날선 표정은 점점 누그러지더니 그는 이내 천천히 내 몸 안에서 자신의 물건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미 말라붙은 애액과 내가 처녀였음을 증명해주는 붉은색 핏자국들이 그의 물건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괘... 괜찮아...?”
역시 이 새끼 이진성이 아니었다며 낚였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의 따듯한 위로는 조금은 놀라버린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 같았다.
훌쩍
괜히 그가 미워 보여서 대답하고 싶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 쪽에 있어서 끝장을 못 본 거니까 쫓아낼 수도 없었다.
최재혁은 어설프게 두 팔을 벌리더니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러모로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최재혁한테도.
한겨울 작가한테도.
이렇게 아프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작가님.
수치스러워서 울음을 터트린 히로인은 있었어도 아파서 우는 히로인 따위 소설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내 내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최재혁은 슬그머니 내 몸에서 손을 뗐다.
“나연아.”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는 최재혁.
“...왜.”
“내 지갑 어딨어?”
성대한 첫 경험이 망했는데 지갑이나 찾고 있는 최재혁이 미웠다.
“저기. 책상 위에.”
두 팔을 모아 무릎을 끌어안은 내가 그에게 답해주었다.
최재혁은 몸을 일으켜 제 지갑을 확인하더니 속옷을 집어 들고는 다시 입으려 하는 듯 보였다.
누가 봐도 이곳을 떠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가지 마.”
화도 나고, 민망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 그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
그의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린다.
“가지 말라고. 최재혁.”
내가 살포시 내 옆자리 이불을 톡톡 두드리자 그는 속옷을 입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망설이더니 다시 강아지처럼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댕댕이.
커다란 댕댕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벽에 기대어 내 옆에 앉아있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었다.
“미안해.”
자신감 없는 사과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정말 강한 매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는 분명히 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이든 나는 그를 그런 맥락으로 초대를 해놓고 분위기를 망쳐버린 거였으니까.
사과를 하는 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닌가.
사실 얘도 어제 그러고 집에 가버렸으니까 이건 비긴 거 아닐까.
1대1이니까 정당방위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다.
“아. 아픈 건... 좀 어때...?”
최재혁의 물건이 들어왔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냥 따끔한 정도의 느낌이었다.
“...커.”
상태를 설명하는 것 대신 나는 그가 좋아할만한 다른 대답을 해주었다.
“네 거 너무 커.”
“그래...?”
분명 기죽지 말라고 한 소리였는데 최재혁의 표정은 한층 더 침울해 보였다.
아니. 근데 남자들 보통 거기 크다고 하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이진성은 크다고 하는 말에 무척이나 흡족해하는 것 같았는데...
“최재혁.”
“응...?”
“너는... 나 보면 무슨 생각 들어?”
이제까지는 그저 막연한 추측으로 그의 심리를 예상했더라면 이제는 좀 대화가 필요한 시점 같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는 최재혁.
뭔가 진지한 대화가 이어질 것 같은데 우리 둘 다 나체라는 사실은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좋아.”
참으로 심플한 답변이었다.
무슨 네 살짜리 아이한테 물어본 것 같은 것도 아닌데 최재혁은 담담한 얼굴로 나에 대한 감정을 단 한 단어로 정리했다.
“...좋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에 따라 어른답게 한 번 더 물어볼 뿐이었다.
“그럼 방금 전도 그렇게 하면서 좋았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냥 내가 그런 걸 좋아해서 억지로 한 거라고 한다면 나는 그를 그대로 내 인생에서 지울 생각이었다.
일생일대 단 한 번.
처녀를 그에게 준 것은 속이 쓰려도 많이 쓰릴 것 같았으나 내가 유혹한 거였으니까.
만약 그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이후는 피차 못할 짓이었다.
“...응. 좋았어.”
최재혁이 입을 우물거리더니 소심하게 답했다.
“더... 하고 싶었어...”
긍정의 표현.
아픔 속에 사그러들었던 마음 속의 불씨가 또다시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아. 뭔가 입 밖으로 내려니까 왜 이렇게 부끄럽지?
하지만 이걸 실제로 남자한테 말한다고 생각하니까 흥분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마저 할래?”
슬쩍 눈치를 보며 그에게 질문했는데 최재혁은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너무 커서 아프다면서.”
“그렇기는 한데...”
“그럼 안 할래.”
계속 망설이며 머뭇거리던 최재혁은 내가 아파하는 것만은 싫은 모양이었다.
“아니야. 재혁아.”
내가 그의 손을 붙잡고 내 가슴 위에 올렸다.
이윽고 커다래지는 그의 두 눈동자.
“나 괜찮아.”
이렇게 끝낸다는 건 그냥 내가 용납을 할 수 없었다.
“아까는 내가 자위만 해서 애액만 나왔던 거잖아. 내가 또 빨아줘서 침 묻히면 분명히 괜찮을 거야.”
꼭 그럴 거라는 보장 따위는 없었으나 나는 최재혁의 닫혀버린 마음을 열기 위해 최대한 타이르듯 이야기해 보았다.
“정말...?”
“그러니까 대신.”
그가 내게 해줘야할 배려는 이딴 게 아니었다.
“아까 전처럼 똑같이 해줘야 해.”
“네가 나한테 원래하려고 했던 것 그대로.”
“나한테 다시 해주는 거야.”
소심해진 그가 내 눈치를 보며 ‘괜찮아?’ 소리를 하는 섹스를 떠올린 나는 몸서리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반대쪽 손도 내 가슴을 주무르게끔 만든 나는 최대한 예쁜 웃음을 짓고자 노력했다.
내 노력의 성과는 그의 말이 아닌 신체에서 들어났으니...
축 쳐져있었던 그의 물건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면... 딱 하나만 약속해줘. 나연아.”
망설임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싸늘하게 굳어간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지?
그냥 표정만으로도 최재혁은 사람을 압도시킬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만약 정말 너무 아파서 못 하겠다 싶으면...”
아. 나름의 규칙을 정하자는 건가.
이건 나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걸로.”
근데 어째 규칙은 최재혁의 사심이 잔뜩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