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눈꽃은 검게 물든다.
* * *
이전까지의 행위가 비누거품을 이용한 장난에 불과했다면 여기서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본방이었다.
여기저기 하얀 바디워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나연이는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남심 폭격기였으니, 그런 그녀가 제대로 성기를 애무해주기 시작하자 나는 침음성을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이미 내 한쪽 손을 샤워기 봉을 꽉 붙잡고 있었다.
어제는 다소 강압적으로 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을 했다면 오늘은 좀 다른 양상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더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살펴보면 이진성의 조교에는 크게 두 가지 페이즈가 있었다.
첫 번째는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한없이 고압적인 태도로 행위를 강요하며 연습시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방법은 교육받은 내용을 스스로 반복하며 발전해나가는 ‘자습’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 입시 교육에서도 흔히 보이는 메커니즘을 이진성은 완벽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정립해 두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입시 커리큘럼’이 있었다면 이진성에게는 ‘명기 암컷 커리큘럼’이 있는 셈이었다.
그녀에게 알아서 잘 해보라고 방치를 해두니, 나연이는 내 자지를 살살살 조물딱거렸다.
뭔가 과감하게 침을 묻히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핏줄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고양이가 털뭉치를 처음 만져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줘서 귀여우면서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것만 같았다.
물론 실제로 짓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진성은 그렇게 웃어주지 않으니까.
뭔가 어설프게 애무를 하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린 나는 물을 다시 틀어 냅다 그녀의 얼굴에다 뿌려버렸다.
“꺄앗!”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대로 욕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버리는 나연이.
젖어버린 그녀의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누가 그따위로 하래.”
무척 만져줘서 흥분도 하고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게 맞았다.
“죄송합니다...”
물에 젖은 생쥐 같은 눈빛으로 나연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 이렇게 할 거면 오늘 나보고 왜 여기 오라고 했어.”
상체를 숙여 그녀의 턱을 위로 치켜올린다.
“똑바로 봉사도 할 줄 모르는 암컷년아.”
“죄송해여...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할게여...”
나연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이런 치욕스러운 꼴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다니...
남자인 내가 이 장면을 보면서 흥분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 가능했으나 여자인 나연이가 이런 걸 즐긴다는 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어나.”
엉덩이를 발등으로 툭툭 치자 나연이는 주섬주섬 일어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뭐 할 말 있어?”
“...다시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말을 하는 나연이의 얼굴은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최종 단계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참가자의 얼굴과 닮아있었다.
하마터면 나는 당연히 기회를 주겠다고 친절하게 수락할 뻔했다.
“좆도 똑바로 못 빠는 년이 말대꾸까지 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물론 그건 맞긴 한데...”
“한 번만 더 말대꾸 해봐.”
그녀를 확 밖으로 밀쳐 밖으로 내쫓아버린 나는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머지 비눗기가 남아있는 부분들을 물로 슥슥 닦아내는 중 내 안에서는 점점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 이게 맞냐.”
물소리에 묻힐 정도로 작게 읊조린 나는 두 손을 모아 세수를 한 번 했다.
솔직히 한 명의 남자로서 흥분이 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근데 중요한 건 이 모든 거사를 나연이의 취향에 맞춰 내가 끝까지 집도할 수 있느냐였다.
상당한 연습으로 이제 이진성스럽게 구는 것은 할 수 있는 것 같았으나 비단 말투나 행동뿐만 아니라 행위 차원에서도 걱정이 많이 되는 나였다.
섹스 경험 0번.
20살 남자애가 아직 동정인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소설 속 이진성은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라는 묘사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말만 뻔지르르하게 해놓고 막상 허리 흔드는 것은 허접하면 보나마나 나연이는 나를 또 한심하게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나도 첫 경험이니만큼 잘하고 싶은데...
암만 내가 아닌 척 연기를 하고 컨셉을 유지한다고 한들 첫경험이 안 소중한 건 아니었다.
나연이도 처음. 나도 처음인데...
갑자기 울상이 될 것 같았던 나는 그냥 빠르게 나가버리자는 결단을 내렸다.
나연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다가는 나연이가 열심히 세워준 내 자지가 그대로 수그러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기를 말끔하게 제거하고 나가자 나연이는 자신의 침대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연.”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녀는 대답 대신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너 진짜 처음 맞아?”
끄덕끄덕
긍정의 의미.
“처녀 주제에 이러는 거 진짜 개걸레 같다는 것 알고는 이러는 거지?”
화끈한 매도에 나연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답.”
나 같아도 대답을 하기에 뭐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진성은 여자 캐릭터들한테 고의적으로 대답을 시키는 악질 중 악질이었다.
“네. 맞아요. 저는 처녀 주제에 개...걸레...에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완성된 문장으로 내 말을 반복하는 나연이.
내 자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위아래로 한 번 껄떡거렸다.
“다리 벌려.”
“이 상태에서요?”
“어. 앉아있는 그 자세 그대로.”
나의 명령에 따라 나연이는 천천히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자란 음모 밑에 연분홍색 보지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앞으로 다가가 개인적인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었지만 나는 또다시 한 번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적셔놔야지 않겠어?”
내가 검지 끝으로 내 귀두를 톡톡 치자 나연이는 수긍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지와 검지를 자신의 아랫입술 위에 올려놓고는 내 눈치를 보는 그녀.
아무래도 내 앞에서 자위를 하는 것이 무척 쑥쓰러운 모양이었다.
“네가 덜 적시면 적실수록 더 아픈 거 알지?”
만약 우리가 정상적인 연인 관계로 첫날밤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정말 열심히 너의 몸 곳곳을 애무해주면서 너의 반응을 물었겠지.
적당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입을 맞추면서 바라보며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내 환상 속 이야기.
현실 속 나는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뜨거운 자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아... 흐응... 흐이이잇...!”
내가 이렇게 바라봐서 더 흥분이라도 되는 걸까.
나연이는 허리를 들썩이며 온몸으로 본인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보지에서는 질척한 액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야한 소리는 점점 더 볼륨을 키워가고 있었다.
“흐아... 나... 이제...”
이제 그만 넣어달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그녀.
“뭐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니까?”
사실 어느 정도 애액이 흘러나와야 삽입을 해도 되는지는 나도 몰랐다.
경력직이 아닌 것도 있기는 했는데 일단 나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까 이게 지금이 적기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 근데... 더 했다가는 진짜... 가... 가버릴 거 같아...”
원래는 존댓말을 해줬던 것 같은데 그녀는 흥분감에 컨셉을 상실했는지 어느덧 반말로 내 말에 대꾸했다.
“하아... 이런 경박한 보지년을 봤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 앞으로 다가간 나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손을 꽈악 붙잡았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우리 두 사람의 얼굴.
“한나연.”
“하아... 하아...”
조금은 흐릿해진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네 처녀. 그럼 잘 먹도록 할게.”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본다.
음흉한 양아치가 속마음으로 할 법한 대사를 입 밖으로 그녀의 귀에 꽂아 넣은 나는 내 귀두 끝을 그녀의 보지 바로 앞에 겨냥했다.
후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콘돔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한 나는 그저 사정만 밖에다 하자는 마인드로 두 팔을 침대 위에 얹었다.
가자. 최재혁.
이제 진짜 가는 거야.
흥건한 보짓물의 따듯한 온도감이 내 자지를 덥혀주고 있었다.
그래... 나연이도 원하는 거잖아.
내가 나쁜 짓 하는 게 아니라 나연이가 원하는 거니까. 이건.
이게 사랑이 아닐까.
그렇게 눈을 딱 감고 나는 소설 속 묘사 그대로 내 자지를 한 번에 나연이의 성기 안에 삽입을 하게 됐는데...
“꺄아아아앗!”
눈을 뜬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교태어린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을 것 같은 나연이가 아니었다.
마치 실제 강도가 집에 들어왔을 때와 흡사한 반응에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소설 고증 그대로 해야만...
자지를 거의 빼낼 듯이 쑤욱 뒤로 물러난 나는 그 다음에도 안쪽까지 한 번에 쑤셔넣을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재혁아...”
콧물을 먹은 목소리에 나는 애써 외면해왔던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나... 너무 아프하아아앙...”
나연이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