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하늘은 내 심경을 대변하는 걸까.
이른 아침.
잠을 설친 나는 울리는 천둥소리 에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몇 시야. 지금...
팔을 뻗어 침대 위를 더듬은 나는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06:52]
학교에 가기에는 아직 일러도 한참 이른 시간이었다.
“하아...”
다시 눈을 붙이려고 해봤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씻기로 마음먹었다.
-솨아아아
따듯한 물로 몸을 적실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며 노곤해지고는 했는
데 오늘은 이 것조차도 내 마음을 녹이 지는 못하는 듯 싶었다.
a
.할수있어.
99
상당히 힘없는 혼잣말.
어제의 할 수 있어와 오늘의 할 수 있어는 완벽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
었다.
나연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내게 필요했던 것이 저지를 용기였다면 오늘
내게 필요한 용기는 저지른 것을 수습할 용기였다.
실패의 대가는 참혹했다.
아... 1학년 1학기인데 휴학이라니...
엄 마한테는 뭐 라고 해 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냥 학교생활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고 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 말은 그
닥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 었다.
학교 즐겁고, 애들하고도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를 드린 지 1주일도 지나
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린 나는 냉장고를 열어 안을 살폈다.
여느 남자 자취생과 마찬가지로 휑한 냉장고 안쪽.
나는 시리얼을 먹기 위해 사놨던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하아...그냥학교나 일찍 가야겠다.”
그냥 가만히 이렇게 아무도 없는 방에 쭈구리고 있어봐야 더 울적해질 것
같았던 나는 대충 아무거나 챙겨 입고는 우산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빗소리는 안에서 들었을 때보다 두 배는 큰 것 같았다.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시간은 약 15분 정도.
비 가 오는 날이 면 버스를 타는 날도 있었지 만 오늘은 뭔 가 이 불쾌한 습기
가 나와 잘 어울린 다는 생 각이 들어 걸어 갔다.
그냥 온 세 상이 다 우울해 보였다.
체감상 나연이한테 처음으로 차였을 때보다 두 배는 더 우울한 것 같았다.
그냥 고백했을 때도 용기를 많이 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내 행동은 영
혼을 갈아 넣어서 용기를 짜냈기 때문이 었다.
...
텔레그램 최대 소설 공유방!...
드씨, 웹툰, 소설, 등등 10만개 이상의 파일이 존재!.........
인터넷 주소창에 따라치세요..
근데 진짜 얼토당토않게 실패하고 추하게 도망까지 갔으니 ...
그 와중에 지갑 놓고 온 엔딩 까지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추함의 극을 달리는구나.최재혁.
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어 깨와 신발이 눅눅하게 젖은 채로 학교에 도착한 나는 우산을 접 었다.
카페 가서 앉아 있다가 바로 과 사무실로 가서 휴학 신청한다고 하려 했는
데...
아. 나 지갑이 없구나.
돈이 없는 자를 환영해주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결국 꿓층에 있는 휴게 공간 비스무리한 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휴대폰으
로 보다 말았던 웹툰을 마저 보기 시 작했다.
전에는 재밌게 봤었던 거 같은 웹툰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뭔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재밌게 느껴 지지 않았다.
어찌저찌 1시간 남짓한 시간을 흘려보낸 이후 나는 뫫시 땡 치자마자 과사
에 노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안녕하세요.”
개 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그나마 얼굴이 익숙한 조교님께 나는 말을 걸었
다.
“저... 휴학 신청...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몇 학년...?”
“아.저 1학년이요.”
“지 도 교수님하고 상담은 받으셨나요?”
“아...상담을 받아야 하나요?”
그냥 가서 하고 나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를 포기하는 데도 절차가 필요한 모양이 었다.
“네. 본인 지도 교수님하고 면담을 하시고 오셔야해서 필요하시면 사무실
한 번 방문 하시고 오시면 처리해 드릴게요.”
...가서 뭐라하지. 나.
[좋아하는 동기를 강간하려다 실패하고 도망쳐 수치스러움을 이기지 못
하고 휴학하려 합니 다.]
정말 객관적인 사실들만 나열한 알찬 설명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이렇게 말할 엄두는도무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 지도교수는 과에서 한성깔 하는걸로 유명한교수님이셨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그 교수 강의는 피하라고 했을까.
근데 이렇게 말하면 한번에 ‘어.그렇구나.휴학하도록.’ 말해주실 것 같기
는 한데.
조교님께 지도 교수님의 번호와 이메 일. 사무실 번호를 받아온 나는 상담
신청을 위 한 상소문을 작성하기 시 작했다.
경우도 경우고, 해본 적도 없었는지라 이럴 때는 어떻게 문자를 보내야 하
는지 혼란스러웠다.
[안녕하세 요. 교수님. 1학년 최 재 혁 이 라고 합니 다. 휴학 신청하고 싶은데 ..
.]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아닌가? 다른 양식이 있나?
경영대 1층 매점 앞 테이블에 앉아 혼자 끙끙대며 상소문을 썼다 지웠다
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
뭐야.왜이렇게 어두워.
급격하게 드리운그림자.
뭔 가가 조명 빛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올리 자
“안녕?
99
익 숙한 향은 아니 었지 만 알고 있는 향기 였다.
아니.오히려 잊어버리는편이 더 이상한 일이었으리라.
그야... 그 냄새는 불과 어제 내 가 취 해 있었던 꽃향기 였으니 까.
“ .»• 아.”
언어를 잃어버린 몬스터마냥 내 입에서는 다소 얼빠진 소리가흘러나왔다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는 나연이.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도 따듯하게 나를 맞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었다.
“휴대폰 사용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 문자는 안봤나봐?”
등골을 타고 서늘한 느낌이 흘러내 린다.
“아아... 미안. 내가 경황이 좀 없었어서…”
횡 설수설 그 자체 였다.
사고회로가 정지해버린 느낌.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흐응〜 그래...?”
- 드르륵
옆에 있었던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착석한 나연이.
그녀의 손이 휴대폰을 쥐고 있던 내 손을 휘감는다.
“...어?”
갑작스러운스킨쉽에 면역이 전혀 없었던 나는순간 너무놀라서 손에 힘
이탁풀려버렸다.
이걸 노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압수해가는 나연이 .
내가 다시 돌려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나연이는 화면 속에 띄워져있던
문장을 빠르게 스캔했다.
내 휴학플랜을 알아차려버린 나연이의 눈매가 사납게 변한다.
“재혁아.”
“응?
99
“왜 휴학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도망가고 싶어.
진짜 도망가고 싶어.
“그... 그야...
99
내 가 대 답을 하려 던 찰나였다.
상체를 튼 나연이 가 자신의 손을 내 귀에 가져다댄다.
“그런 짓을 해놓고 나 몰라라 아무런 책임도 안 지고 휴학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
정곡을 찔린 나는 빙결 마법이라도 맞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정말로 여기서 휴학해버린다고 문제가해결될 것 같아? 정신 차려. 내 말
한번이면 너는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끝나. 알아?”
-꿀꺽
목구멍을 타고 침이 넘어간다.
설마 지금 이 대화를 누군가 듣고 있지는 않을까 동공이 빠르게 움직 였다.
그 말을 끝으로 내 귀를 놓아준 나연이는 바로 전에 협박을 한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미소를 지 어주었다.
“재혁아.”
“어...?”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학교 다니자.”
달콤한 목소리 가 혼란을 가중시 켰다.
나연이는 지금 내 가 학교를 다녔으면 한다는 소리 인가?
그녀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나한테 무엇을 바라고 있단 말인가.
“대답.”
내 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자 나연의 표정이 싸늘하
게 굳었다.
“아.응. 다닐게.”
인생을 끝내버린다는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그녀에게 저항할 수 있겠는
가.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위로 올라갔다.
“재 혁아.”
“으 99
O•
그냥 바로 본론을 말해줬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나연이는 자꾸 내 이름을 불
러서 나를 긴장하게끔 만들었다.
“나 아직도 좋아해?”
뭔가 영화에서 나올 법한 로맨틱한 대사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아니었다.
저 말을 하는 그녀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동시에 그녀의 웃는 얼
굴은 가슴이 절일 정도로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 었다.
저번에 고백도. 어제의 그 헤프닝도 모두.
다나연이를 좋아해서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그거 알아? 어제 그게 내 처음이었다는 거?”
처음. 그럼 어제 그게 나연이의 첫...
생각을 하면 할수록 미간이 일그러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어제 그러고 가버려서 좀 많이 곤란했거든. 에헤헤.”
나연이의 손이 내 허벅지를위에서 아래로쓸어내린다.
눈을 어 디 다둬 야할지 모르겠던 나는 애 써 가까워 지 는 그녀를 외 면하며
책상 위에다 시선을 고정했다.
“지갑. 두고 갔던데. 너.”
비 밀이 라도 되 는 것처 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나연이 .
지갑이라는 단어에 나는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어야만 했다.
어 찌 됐던 지 갑은 돌려 받아야만 하니 까.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꼭 필요한 물건들이 었다.
“오늘밤 뫫시. 다시 우리 집으로 찾아와.”
어젯밤 정확하게 내 가 그녀를 찾아간 시 간과 동일한 시 간이 었다.
“지갑 찾아가야지. 안그래?”
그녀의 말에 내가고개를 끄덕였다.
- 드르륵
나연이가의 자에서 일어났다.
이 대로 가는 건가 싶어 서 한숨 돌리 려고 했는데...
“오늘은 실수하면 안되는 거 알지?”
귓가에 속삭인 나연이가내 귀에 짧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