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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러레님!-247화 (247/276)

<247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건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극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으며, 평범한 일상 속 짧은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고생 각했다.

그리고 연애관에 있어서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는 내게 터닝 포인트 그 자

체.

그 전까지는 이상형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없었더라면 한겨울 작가님의

바이블 정주행을 끝낸 이제는 아니 었다.

강한 수컷에 서 지 배 당하고 싶은 욕구.

내 의사는 따위는 철저히 짓밟고 나를 망가트려주는 남자에게 나는 맹렬

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야... 내 주변 남자애들은 다 얘처럼...

“저기...점심 같이 이따 먹으러 갈래?”

“어.”

하아... 왜 만날 이런 애들만꼬이는 걸까.

내 옆에 있는최재혁은 내 이상형과 멀어도 너무나 먼 타입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는 남자가 수줍어하는 모습 같은 걸 귀여워하는 애들도 있

었지 만 나는 아니 었다.

객관적으로 못생긴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나름 수요가 있는 귀 염상에 가까운 얼굴이 기는 했으나 말을 더듬으면서

얼굴을 붉히는 행동 따위 이진성이 할 리가 없었다.

싸대기를 때려서 여자애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적은 있어도 저런 어

버버한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으리 라.

“그래 좥 그럼 이따 어디 식당으로 갈까? 법학관 식당이 맛있다는데.”

차인 주제에 저렇게 헤실헤실 웃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존심도 없나.

“몰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어차피 식사를 한 번 해야 된다면 후딱 먹고 치우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

이 들었다.

이 따 수아한테 라도 같이 가달라고 얘 기해 야지.

얘랑 둘이 얼굴을 마주보고 밥을 먹다가는 진지하게 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 작했다.

“여러분들 영어로 대화해야합니다? 자꾸 한국어 말소리가들리는데 ?”

마지못해 우리는 영어로 잠시 대화를 주고받았고 1시간 좀 넘는 수업은

내 게 는 영 겁과도 같은 시 간처 럼 느껴 졌다.

“수아야!”

“어. 나연아. 왜?”

“나 재혁이랑 밥 먹을 것 같은데 너도 같이 먹을래?”

제발... 제발 같이 가줘...

“뭐 먹는데?”

“학식 먹을것 같은데.”

“지금?”

“어.지금.”

뭔가말이 길어지는 것이 쎄한느낌이 들었다.

“아. 나 지금은 힘들 것 같은데 좥 나 과사 갔다가 바로 동아리 들러 야할 것

같아서.”

“아... 많이 바빠?”

“어. 그냥다른애들이랑 먹던지. 둘이 먹던지 해.”

아. 그럼 다혜한테라도 가봐야겠다 싶었지만 다혜는 어디를 그리 급히 갔

는지 이미 강의실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연아. 혹시 나랑둘이 먹는 거 불편해서...”

내 옆에 우두커니 서서 비맞은 강아지처럼 나를 쳐다보는최재혁.

“아냐아냐. 그냥 가자.”

뭘 또 미루냐. 그냥 눈 딱 감고 먹고 끝내면 되는 것을.

그냥후다닥한30분만에 먹고 나오면 되는거 아니겠냐고.

결국 최재혁이 선정한 법학관 식당으로 우리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학식...

사달라고 하지 말 걸 그랬나?

점점 더 창백해져가는 나연이의 얼굴에 나는괜히 미안한마음이 들었다.

아까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같이 먹을 거냐고 물어봤지만 거절당해버린

나연이는 진짜 마지못해 나랑 밥을 먹어주는 눈치였다.

“나 골랐어. 너도 와서 골라.”

나연이가주문을 먼저 하자 옆에 서있던 나는 3500원 잔치 국수를 먹겠다

고말했다.

“비싼 거 먹어도괜찮은데, 왜 그렇게 싼 거 먹어.”

나연이가 진짜로 괜찮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냐아냐. 나 이거 진짜로 먹고싶어서.”

막상 내준 것보다 비싼 것을 얻어먹는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불편해진

나였다.

“그래. 그럼 뭐.”

식권을 받아들고 음식을 받아 창가 쪽에 앉은 우리 두 사람.

그때 고백했던 때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은 처음인

것같았다.

...예쁘다.

진짜예쁘다는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포근한햇살이 그녀의 새하얀피부를 더 하얗게 보이게 해줬다.

학교 커뮤니티에 등판될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지닌 나연이는 볶음밥을

내 앞에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나뭐 묻었어?”

너무 빤히 쳐다본 것인지 내 시선을 의식한 듯한 나연이.

“아. 아냐. 잠깐 딴생각 하느라.”

“그래?”

그녀의 미모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불현 듯 [그녀를 감금했습니다]가 떠오른 나는 젓가락으로 그릇 안쪽 국

수를 못살게 굴었다.

“나연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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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기는 한데.”

“응.뭔데?,,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차이기 전에 이런 거 물어봤다면 이렇게까지 망설이지 않아도좋았을 텐

데.

질문을 들은 나연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자기 소신껏 행동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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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대 답이고, 충분히 매 력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 각했지 만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

적 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눈치 만 보고 있는 나는 아니 라는 소리 나 다름없

었으니까.

“응.우직한 사람이 좋더라고.”

그말을 끝으로 휴대폰을 들어 시 간을 확인한 나연이는 쟁 반을 정리 했다.

“나 일이 있어서 먼저 좀 일어날게.천천히 먹다가 가.”

“아. 응. 사줘서 고마워.”

“아냐아냐. 바래다준 거 갚은 건데 뭐. 또 보자.”

점점 더 멀어져가는 나연이의 뒷모습.

“왜 이렇게 국물이 쓰냐.”

방금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녀가 떠난 후 국물을 들이킨 나는 애

꿎은 학식을 욕했다.

식당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자 20살의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

이확느껴졌다.

싱그러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고, 이제는 반팔을 입은 학생들

도 제법 왔다갔다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상수리나무 앞 벤치에 걸터앉은 나는 잠시 집에 돌아가기 전에 쓰

라린 속을 달래고자 했다.

대학 가면 여자친구 생긴다면서요. 엄마.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왔건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는

나를 좋아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번 달에 생활비가 빠듯했던 이유는 나연이한테 잘 보인다고 이것저것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름 있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도 해봤고, 옷에 관심이 많은

친구한테 부탁해서 같이 쇼핑몰도 다녀왔던 나였다.

걔 가 이 정도면 무조건 받아줄 거라고 했는데...

패스는 무슨...

정말로지나친다는 의미의 패스가 되어버린 나였다.

똑딱이 버튼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

손가락 하나만 톡 건드리 면 좋아하는 마음이 꺼 지고, 다시 톡 올리 면 켜 지

는 그런 버튼이.

휴대폰을 꺼내든 나는 10년지기 절친 동네친구한테 문자를보내보았다.

[이경민 뭐하냐.]

[나 학교지. 왜.]

[오늘술 한잔가능?]

[가능은한데,뭔일 있음?]

[。。네 가 들으면 좋아 죽을 썰 풀어줄 테니까 술 한 번만 사주라.]

아마 나연이한테 고백했다 까인 이 야기를 들려준다면 녀석은 좋다고 놀

려대리라.

[오. 렚。? 뭐 있긴 한가보네.。거。거이따 너희 동네 근처에서 죊죊죊]

이럴 때 부르라고 있는 게 친구 아니겠는가.

된통 마시고 일어 나면 그 아이도 분명 잊을 수 있으리 라.

:k * *

“그래서. 뭔데 그러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꼬치 가게.

직 원 에 게 서 잔을 받아든 경 민이 가 맥주를 따라주었다.

“까였어.”

“뭐?

99

“까였다고.”

“아니. 다시말해봐.”

처음에는 진짜 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대답을 해주고자 했지만 이제는 아

니었다.

“아. 들어놓고 왜 또 말하라 그래.”

“아.근데 네 표정이 존나웃기기는함.”

경민이는 절친 아니랄까봐 괴로워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지하게 낄

낄거렸다.

“야.근데 걔 얼굴이나보자.뭔데 그렇게 난리를치면서 죽을상을하고있

냐.”

“…예쁘기는 진짜 예뻐.”

“알겠으니까 사진.”

메신저 창을 열어 나연이의 프로필을 보여주자 경민이는 눈이 휘둥그레졌

다.

“재 혁아.”

“응?

99

“시발. 주제를 알아라. 좀.”

“푸흐흡.”

경민의 반응이 뭔가 너무 웃겼던 나는 회초리를 맞고 있음에도 웃음을 참

지 못했다.

“아. 재혁 아. 이 건 아니 지. 야. 내가 진짜 어지 간해서는 네가 아깝다 해줄라

했는데, 이건아니잖아.”

“알겠다고. 이자식아.”

무안해진 내 가 잔을 들어 건배를 요청했다.

“아무튼 고백했는데 대차게 차였다.”

유리잔이 맞부딪히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야. 그 정도면 너 말고도 이미 대여섯은 갈렸겠다.”

“그 정돈가?”

예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연이한테 고백했다고 들은 남자는 씁학년 복학

생 선배 한 명 밖에 없었다.

“뭐.사진이랑실물이랑 똑같으면 그럴 거 같은데?”

“난실물이 더나은거 같은데...”

“그럼 게임 오바지. 걔는 너 고백하니까뭐라던데?”

“그냥 미안하다고...”

경민이 가 팔짱을 끼고는 혀를 끌끌 찼다.

“야.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내가 우리과 애 소개라도 해줄게. 걔는 접어라.”

“역시 그러는 편이 좋으려나...”

오늘 낮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보면 나와 나연이가 맺어질 가능성 같은

건 0에 수렴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다.

...우울하네.

위로를 해준답시고 해줬는데 내 표정이 영 나아지지 않자 경민이는 대화

의방향을틀었다.

“야.이미 망한거 같은데,그렇게까지 마음이 안접히거든그냥고백을 한

번 더 박아.”

“...똑같이 또?”

“아니. 이 바보 같은 놈아. 똑같이 하면 걔가 받아주겠냐?”

맞는 말이 기는 한데 ...

“그럼 뭐 어떡하라고.”

“네가말했잖아.걔 이상형 어떤 스타일인지 오늘 들어왔다면서.”

술잔을 비운 경민이가 크 소리를 냈다.

“그럼 딱 그 조건에 부합하는 맞춤형 인간이 돼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지금 경민이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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