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새 로운 메 시 지 가 도착했습니 다. -한나연]
휴대폰으로 계속 소설만 읽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뜬 알림에 정신이 확 드
는 것이 느껴졌다.
나... 나연이가 나한테 선톡을?
솔직히 내용이 야 별 것 없으리 라는 것을 예상은 했지 만 그럼 에도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연락이 왔는데 신경이 안쓰이는 게 이상한 거였다
•
[재혁아. 어제는 잘들어갔어?]
역시나 특별할 것 없는 안부 문자였지만 그럼에도 내 입 가에는 미소가 지
어 졌다.
그래도 어제 내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기 억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냥 잘 들어 갔다고 하면 끝날 대화이 기는 했지만 나는 몇 번이고 문자를
다시 수정했다.
[아. 나. 잘 들어갔지. 너는?]
무난하면서 자연스러운 거 같기는 한데 좀 성의 가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는괜찮아? 어제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던데.]
이건 차인 남자애 주제에 너무스윗하게 들이대는 것 같나...
[。。잘쉬었음.]
에이씨. 이건 더아닌 것같아.
결국 돌고 돌아 첫 번째를 채택한 나는 이게 맞지 생각하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바로 돌아온 답장.
[택시 탔다는데 그거 돈줄게. 얼마였어?]
...그래도 달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좥
마음 같아서는쿨하게 ‘아〜괜찮아괜찮아〜뭘 이런 거 갖고.에이〜’
이렇게 답장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전편 결제를 갈
겨버린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은행 어플에 접속했다.
어제 택시비로 나간돈은 7300원.
반으로 나누면 3600원 남짓.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3000원도 못 쓰는 애가 되버린 것 같았지만 나도
사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음... 근데 이럴 거면 차라리...”
잠시 고민을 거듭한 내 가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그거 얼마 나오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학식 한번 사줘.]
저렴한메뉴는 3300원짜리 이런 것도 있고 비싸봐야 5000원 안 넘어가니
1000원 정도는 인건비 라고 생 각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밥도 밥이지만 나연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기대
감을 품고 답장을 기다렸다.
근데 거절당하면 무안하기는 할 것 같았다.
줄곧 나연이와의 메신저 창만을 띄워놓고 있었는데 나연이는 내 문자를
읽고도 한동안 답이 없었다.
망한 건가싶어 사실 3600원이야 이렇게 보내려던 찰나.
[그래. 알았어. 어 제 는 고마웠어 J
뭔 가 떨 떠 름한 것 같은 느낌 이 기 는 했지 만 그래 도 나연 이는 내 제 안을 수
락해 주었다.
뭔 가 자꾸 기 뻐 하는 내 가 개 멍청 이 같이 느껴 졌지 만 나는 파블로프의 개
마냥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응! 학교에 서 보자!]
그 이후로 나연이는 내 문자에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뭐 나 같아도 할 말 없을 것 같은데. 뭐.
먹은 라면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낸 나는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지금 읽고 있는 세 번째 히로인 한희정 파트가 슬슬 끝날 기미가 보이자 나
는 다음 히로인인 유소연의 일러스트를 보기 위해 일러모음집란을 눌렀다.
아까 본 그림이었음에도 다시 아랫도리에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유소연은 검은색 생머리 에 아담한 체구를 갖고 있는 캐 릭 터 였는데 그 모
습은 어쩐지 나연이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더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
다.
얼른 읽 어보자는 생 각이 들어 시 작했는데 , 이번 에피소드 초반 도입부는
무척 이 나 정적 인 느낌 이 확 들었다.
[소연은 한 손으로 가볍 게 쥐는 것만으로도 으스러질 것 같은 낙엽과도 같
은 사람이었다.]
[새카만 검은 눈동자 안에는 총명함이 실려 있었고, 책을 어루만지는 손에
는 지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왔다.]
[아이들에게 또 책을 읽으러 오라며 사탕을 나눠주는 사서의 모습에 진성
은 저열한 웃음을 지 었다.]
[정말이지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 었다.]
야설이라고 하면 뭔가 [흐아아앙... 기분 좋아... 가버렷!] 이런 것만 있을 거
라고 생각했었는데 ...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였는지 나는 매 회차를 넘기면서 실감하고 있
었다.
잘 쓴다.
그냥 장르 자체를 떠 나서 글 자체를 잘 쓴다는 것이 확 느껴 졌다.
도대체 작가는 뭐 하는 사람인 걸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만 가능한 걸까 싶은 의문
도들었다.
처음에는 순전히 나연이의 취향이 무엇일까 알아보고자 읽기 시작했다면
지금 나는 오롯한 나의 의지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바뀐 점이 하나 있다면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휴대폰을 지금은 왼손에 쥐
고 있다는 점.
소연이 타락하는 과정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나는 내 오른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진성 오빠.”
[진성은 조교의 결과물이 완성되었음을 느끼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새하얀 팬티 위에 남은 얼룩덜룩한 물자국.]
[진성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소연은 아랫입으로 애액을 토
해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소연이.오빠의 명령.그대로수행하고 왔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밀쳐내고자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렸던 처녀
는 이 제 는 치 마를 뒤 집 어 까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저속한 여 자가 되 어버
렸다.]
[진성은 재미있다는 듯이 다리를 꼬고는 아양을 떨어대는 소연을 지켜만
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더 이상 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쾌락을 향한 욕망만이 남아있는 텅 빈 눈동자가, 진성은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생 각했다.]
[천천히 진성 앞으로 다가온 소연이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오빠. 약속하셨죠.”
[발그스름해진 볼이 그녀의 체온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착한 소연이한테 상을 주신다고.”
[소연의 치마가 그대로 바닥에 흘러내 렸다.]
뇌 가 저 릿저 릿해 지는 느낌 이 었다.
남자로 태어나서 야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겠지만
이런 류의 자극은 처음이 었다.
이진성 이 라는 캐 릭터는 진짜 둘도 없는 사이코패스임 이 확실했지 만 자꾸
읽다보면 주인공의 말이 옳다고생각하게 됐다.
참으로도 위 험한 소설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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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 • ”
뒷정리를 한 나는 두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근데 여기 남자라고는 이진성 한 명 밖에 안 나오는 것 같은데...
나연이는 도대체 이거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k * *
1학년 1학기 시간표는 고등학교 시간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조율해서 시 간표도 짜보고 그럴
것 같았지 만 아쉽 게 도 이 번 학기는 해 당 사항이 없었다.
전공 필수 개론들이 턱턱턱 빼도 박도 못하게 블록처럼 박혀 있었으며, 1
학년들은 무조건 이수해야만 하는 교양 수업들이 대거 포진되어있었던 탓이
었다.
아침 11시수업.
모두가 들어 야만 하는 필수 영 어 시 간이 었다.
“Good Morning everyone."
영 어 자체 가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 었지 만 굳이 라는 생 각이 자주 들기
는 했다.
대학교까지 와서는 좀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시자 어수선했던 공기는 바로 가라앉았다
.
“최재혁.”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있었건만최재혁의 이름이 들리자 나는 이제 슬슬
내 차례 가 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야그는최 씨의 끄트머리였고,나는한씨의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네.,,
저 멀리 앞쪽 자리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지 었다.
아... 쟤 가 밥 사달라고 해서 사준다고는 했는데...
따로둘이 먹기보다는 차라리 우르르 학식 먹으러 갈때 쟤도 있어서 내가
사주는 그림 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었다.
“한나연.”
“네.”
내 뒤에 두어명을 더 부르신 교수님은 앞으로의 수업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자. 여 러분들 중간고사 보느라고 정 말 수고들 했어요. 이제 남은 반학기
정도에는 파트너를 정해서 회화 위주로 수업을 해볼까 해요.”
교수님의 설명을 그렇게까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안 친한 애랑 계속 떠들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별로인 것
같기도했다.
“크게 이견이 없다면 학번 순으로 그냥 파트너를 짜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요?”
대 한민국 교육과정 특징 중 하나.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면 정적이 찾아온다는 점.
“오케이! 그럼 제가 지금부터 누가 누구랑 페 어가 될 것인지 불러드릴 테
니까 잘 기 억하세요.”
한씨인 내 차례 나오려면 멀었구나 싶어 잠시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잠
깐만...
바로 앞과 뒤 학번이랑 붙어먹는다고 한다면...
“최재혁.한나연. 이렇게 두사람파트너입니다.”
진짜왜이러세요.교수님.
아. 최재혁 너는 왜 하필 또 최씨인 거고.
등을 돌려 나를 찾는 것인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최재혁의 모습에 나
는 마른세수를 한 번 했다.
“여러분들. 잠깐 자리를 파트너끼리 앉을 수 있게 이동하도록 할게요.
혹시 못 들은 사람은 앞에 와서 다시 물어보세요.”
“아... 안녕?”
어색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지금 당장이 라도 강의 실을 뛰 쳐나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