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어김없이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나는 눈을 감은 채 팔을 뻗어 탁상을 더듬
었다.
“하아아암…”
일단 시계가 울려 잠에서 깨기는 했으나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
굳이 이렇게 일찍 일어날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휴대폰을 충전기에서 뽑아들자 단톡방에는 뜨거웠던 술자리의 잔재들이
남아있었다.
언제 찍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나는 단체 사진.
술에 취해서 바닥에 엎어져있는 동수의 사진.
카드로 결제를 한 애는 행여 돈을 못 받을까 공지로 얼마씩 누구한테 보내
라는 것을 올려둔 상태 였다.
“ 아...”
술값 32000원을 보내고 나니까 진짜로 남은 돈은 50000원 정도밖에
없었다.
사실 어 제 나 혼자였더 라면 슬슬 걸 어 가도 됐을 거리 였는데 …
나연이를 바래 다준다고 택시를 탄 나는 추가적으로 7000원 남짓을 써버
렸다.
할증이 붙는 시 간은 정 말이 지 가난한 나에 게 너무나 폭력적 인 금액 이 었
다.
그나저나나연이...
나도 술을 제법 마신 상태였지만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내가나연이네 집에...
후다닥 정 리 만 하고 나왔지 만 나연이 의 자취 방은 무척 이 나 깔끔한 인테
리어를 지향하는듯 싶었다.
내 방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아기자기한 스탠드 조명들이 맞았으며, 흰
색과 베 이 지 톤 위 주의 가구들은 인터 넷에 올라와있는 레 디 메 이 드 하우스
들을 연상시켰다.
[그녀 감금]
나연이의 다이어리 내용이 떠올랐던 나는 검색창에 나연이가 봤다던 그걸
입력해 보았다.
[성인 인증이 필요한검색결과물입니다.]
엥? 성인인증?
아니 . 뭐 . 나도 성 인이니까 인증하는 것 자체 야 별 어려움이 없었지 만 의 아
하기는 했다.
나연이가보다가 잤던 것이 성인물이라니.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자 액정 위에 펼쳐진 것은 이루 말할수 없이 외
설스러운 그림들이 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야짤.
그것도 지독하게 수위가 높은 야짤들이 검색창 상단에 노출되 었다.
나연이는 이... 이런 것들을 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 감금]이 도대체 뭔가 싶었던 나는 가장 상단에 있는 링크를
읽어보았다.
[성인 웹소설 모두모두 모여라! 노벨 월드!]
웹소설…? 아. 그러면 이건 야한 만화 같은게 아니라소설이란소리겠구나
•
워낙활자를 멀리 했던 나였기에 당연히 웹소설도 읽지 않는 나였다.
재 미 있는 이 야기 가 보고 싶으면 드라마나 웹툰 정도를 보고, 야한 게 보고
싶으면 그냥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야동을 가끔 보는 정도였다.
흠...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노벨 월드올해의 성인물수상작품.
-‘이 야설 굉장하다!’화제의 작품.
[작가: 한겨울]
[작품소개: 그녀들을 감금하는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명한 야설인 것은 확실했다.
무료보기는 단 嬖화까지 인 것 같았고 나머지는 결제를 해서 봐야하는 것
같은데...
일단소설을 읽어보기 전에 나는 일러스트 모음집이라는 작가의 공지를
들어가 보았다.
“흐미 • •• ”
오오... 이거 밖에서 틀었다가는 딱 사장 당하기 좋을 것 같은디...?
무슨 야짤이 근데 이렇게 고퀄이냐.
거의 게임 원화 급에 가까운 캐릭터들의 삽화가 무려 10장이나 담겨있었
다.
무릎을 꿇은 채 새하얀 액 체 범벅 이 되 어 있는 캐 릭 터 가 있는가 했으면 어
린이 장난감들 속에서 헐벗고 있는 캐릭터도 있었다.
이런 건 하나에 얼마쯤하는 걸까?
스크롤을 내리면서 하나씩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던 나는 가장 밑에 남겨
져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았다.
[언제나 너무 예브브게 그림 그려주신 HNE 작가님.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
합니다!]
아. 한 사람이 다 그린 거구나.
일단 그림은 압도적으로 남성들을 홀리는데 최 적화 되 어있음을 확인한
나는 뒤로가기를 눌러 이번에는 소설 1화를 눌러보았다.
[볕이 들지 않는 방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오...뭔가그냥 일반소설 같은느낌 같기도하고?
하지만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면 내릴수록 나는 그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
음을 알게 되 었다.
주인공...
이진성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치열한두뇌싸움에서 나올 법한 비상한 두뇌를 갖고 있다고 묘사된 이 남
성은 오로지 처녀인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모든 열과 성의를 다
하고 있었다.
첫 번째 타깃인 강수연 에피소드를 쭈욱 내려읽어가고 있는데 어느덧 나
는 무료분의 끝에 도달해버렸다.
[코인이 부족합니다.]
아. 돈 없는데.
내 머리 안쪽에서 치열한공방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니 ! 나연이 이상형을 알 수 있는 기회 라잖아! 이 거에 돈 쓰는 게 아까워
좥!’
실마리 를 찾은 탐정의 외 침 이 었다.
‘이 거 지 르면 한동안 구라 안치고 저 녁은 라면만 먹 어 야 되 는데,그냥 기 다
렸다가 다음달에 용돈이랑 알바비 들어오면 그때 보면 되는 거 아니야? 굳
이 그렇게 살아야해?’
그리고 이쪽은 깐깐하고 귀찮은 거 싫어하는 현실적인 경찰의 목소리.
결국 고민을 거듭한 나는 쿨하게 5000원어치만 질러서 보자고 타협을
보았다.
5000원 이면 그래도 50화는 더 볼 수 있으니까, 대충 어떤 내용인지, 이 이
진성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 었다.
...내 결정이 무척이나 멍청이 같은 결단임을 알게 되는 데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와...
99
미쳤다.
이건 미친 소설이었다.
그리고 더 소름이 돋는 건 이 한겨울이 라는 작가가 정신 나간 내용의 소설
을 미친 듯이 꼴리게 써 놓았다는 점이 었다.
5000원어치만보자고?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10명의 히로인 중 두 명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 아랫도리는 아프다못
해 터질 것 같았다.
다른 느낌의 여자 캐릭터들이 낗명이나 남아있다니...
두 번째 타깃인 스튜디 어스 지서윤의 조교가 한참 진행 중인 50화.
나는 결국 신념을 어기고 지갑을 열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보던 애 까지 는 마저 봐야 할 것 아니던 가.
딱 이 스튜디 어스 친구가 함락하는 것까지 만 보려고 했는데 일러스트 모
음집에 수록된 세 번째 히로인 일러를 보니까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냥 그
다음도 질렀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타협을 반복에 반복.
“…후. 라면 사러 가야겠다.”
내 안의 경찰관 친구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머저리 같은새끼.그러니까그냥 다음 달에 보래도.“
결국 열흘 식비로 30000원이 채 남지 않은 나는 울상을 짓고는 마트로 향
했다.
아.비상금쓰기 싫었는데...
이대로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지난번에 삼촌이 쥐어주신 50000원도 생
활비로 써 야할 느낌이 었다.
슬리퍼를 직직 끌고 마트에 간 나는 라면 嬖개짜리 봉지를두 개 샀다.
평소라면 계란이라도 샀을 테지만 허튼 곳에 돈을 쓴 결과는 참혹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허튼곳은 아니었다.
아마 배는 허기지 겠지만 아랫도리는 마를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이 었기
때문이었다.
“8200원입니다.”
아...! 8000원...!
살면서 이리도 8000원이 크게 느껴진 적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진짜 어지간하면 집에서만 밥 먹거나 학식만 먹어야지.
물도 아까워서 수돗물로 라면을 끓인 나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마저
쭉 정주행했다.
...근데 나연이가 이걸 읽고 있었다고?
…
“아... 머리 아파...”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 숙한 천장이 었다.
보아하니 나는 어떻게 집에는 제대로 온 것 같았다.
속이 뒤 집 어지는 것 같은 매스꺼 움.
헛구역질이 올라오자 나는 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가세수를 했다.
“어제... 어떻게 집에 들어왔더라...”
분명 꿓차까지 간 기억은 있는데,그 이후의 일들이 잘떠오르지 않았다.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확인해보자 단톡에는 N빵한 돈을 보내라는 문자만
남겨져 있고 딱히 택시비나 데려다준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아한테 물어나 볼까.
[여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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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주소창에 따라치세요...
[여보세요. 수아야. 난데.]
[어! 나연아! 어제 잘들어갔어?]
[뭐 어떻게 들어온 것 같기는 한데 누가 나 데려다줬어?]
[뭐야. 너 기억 안나? 최재혁이 너 택시 태워서 갔잖아.]
[...최재혁이?]
[응. 너랑 같은 동네 산다고 해 서 재 혁이가 너 데 려 다줬 어.]
[...그래?]
아니. 술자리에 사람이 10명이 넘어갔는데 하필 걔란 말인가.
하아... 아니지.
고생해서 데려다준 사람한테 이렇게 굴 필요는 없겠지.
[응. 걔한테 고맙다고 문자라도 하나 넣어놔. 어제 너 제대로 걷지도못하
는 거 낑낑대면서 데려가주던데.]
[아. 응알겠어. 고마워.]
[그랭. 너도해장잘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메신저 창을 열어 친구 목록을 쭈욱 내렸다.
아. 이래서 어제 쟤 왔을 때부터 쎄하기는 했는데.
내 가 차버 린 남자애 한테 선톡을 하는 일 이 란 무척 이 나 버 거 운 일 이 었다.
다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눈치 보이는데 따로이야기를 하다니...
[재혁아. 어제 잘들어갔어?]
정 말이 지 마지못해 보내는 안부 인사는 최 악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