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20살의 봄.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낭만으로 물든 계 절을 꿈꾸고는 한다.
그리고나도.
꿈을 꾸고 있는 이들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벚꽃이 만개한 가로등 아래에서 나는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다.
“나연아.”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몇 번이고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나연이 앞에 서니까 내 목소리가
벌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응?”
이렇게 떨고 있는 나와 달리 무심한 말투.
나연이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상상조차 못하고 있는지 가만히
휴대폰 스크롤만 내 리고 있었다.
“조... 좋아해!”
눈을 딱 감고 남자답게 마음을 고백했다.
한 눈에 반했다.
영화 같은 사랑을 믿지 않았지만 처음 나연이를 마주한 순간 나는 이것이
바로 사랑임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의 첫사랑으로 꼽는 검정 생머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
너무나도 가녀려 보이는 목선.
나연이는 그냥 옆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을 터질 듯 뛰게
만들었다.
나연이가 제발 이 고백을 받아줬으면 하는데...
쿵쾅쿵쾅 심 장이 달리 기를 한 것 마냥 미 친 듯이 떨 렸다.
휴대폰을 슥 내려놓고는 나를 올려다보는 나연이.
짙은 갈색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춰보였다.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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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봄날이었다.
:k * *
“야! 재혁아!”
동수의 부름에 강의 중 졸고 있었던 나는 번뜩 눈이 떠졌다.
“아...! 어 • •• ”
“수업 끝났어. 가자!”
뭔 가 잠깐 존 것 같았으나 동기 들은 어느덧 일어 나서 강의 실을 탈출하고
있었다.
“오늘 중간고사 끝난 기념으로 동기들 파티 한다는데 너도 갈래 ?”
“파티?”
“그 왜. 예진이네 애들 있잖아. 걔 네랑 우혁이랑 이렇게 해서 학교 앞 포차
간다는데.”
“아... 그러면 나는 그냥 안 갈래.”
지 난달 지 나치게 돈을 써버 렸던 탓에 나는 마음 편히 파티에 갈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왜.같이 마시자.오늘나연이도온다는데?”
나연이의 이름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연이는 왜 온데?”
“그 누구더 라. 수아가 꼬셨다는데.”
“그래? 그럼나도갈게.”
“와. 새끼 내 가 놀자니까 안 놀고, 나연이 온다니까 바로 튀 어가는 것 봐라.
”
이미 한 차례 차였다는 것을 모르는 동수가 섭섭하다는 듯 내 등짝을 때렸
다.
“야이씨...그런거아니야.”
“아무튼. 그러면 이따 태성 포차로 7시까지 고고!”
“응.이따 보자.”
먼저 강의실을 떠난동수.
나는 가방을 정리하고는 경영대 건물 1층으로 향했다.
“아... 간다고 하지 말 걸 그랬나?”
[남은 잔액: 96500원]
10만원도 채 남아있지 않았으나 나는 열흘이나 이 돈으로 더 생활을 이
어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연이 가 온다는데 내 가 그걸 안 갈 수가 있을까.
비록 비참하다는 말조차 우스울 정도로 건조하게 차이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연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이 게 헛된 희 망이 라는 것 정도야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어디 그렇게 쉽게 껐다켰다할수있는 것이
던가.
“후우... 오늘 술값 얼마나오려나.”
제발 꿓만원 이상은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돈도 아까웠던 나는 도서관에 한구석에 자
리 를 잡고는 교양 과제 를 손봤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자, 나는 가방을 챙기고는 학교 앞 번화가쪽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술자리가 열리는 태성 포차 앞.
나는 머리를 정돈하고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비록 아무도 내 겉모습에 관심 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야! 재혁이 왔다!”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동기들이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최재혁! 여기! 여기!”
“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나연이는... 나연이는 어딨지...?
나연이가온다고 해서 참석한건데...
“나연아! 재혁이 왔다!”
모임의 주선자였던 수아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내 첫사랑 나연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딱 달라붙는 청바지 .
살짝 가슴골이 보일 듯 말듯한 흰색 오프 숄더.
수아의 부름에 나연이가 내 쪽을 슥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다소 의 외 라는 듯한 눈빛.
마치 ‘차였는데 잘도 여기에 왔네?’ 같은 눈빛으로 나연이는 나를 바라
보았다.
“아.응.”
어색 한 웃음을 지으며 머 리를 긁자 그녀는 나를 지 나쳐 저와 반대 편 테 이
블인 수아 옆에 착석했다.
“자아〜 그러면 중간고사 끝난 기 념으로 다들 잔 들어 이 이 잇!”
동수가 소주잔을 들고 번쩍 일어나자 모두의 잔에 소주가 가득 담겼다.
“고생들 했어!!”
“아〜 오늘은 마시 다 뒤지는 거 야〜 그냥〜”
“아. 너 깝치 다가 취해서 우리 집에서 잔다고 하지 나 마.”
그리하여 시작된 술자리.
나는 나연 이 가 앉아있는 테 이블 쪽에 라도 가까이 가고 싶 었지 만 좀처 럼
내게 기회는허락되지 않았다.
“야.재혁아.왜 이렇게 말이 없냐? 취함?”
“아냐. 그런거.”
“아. 맞다. 이 새 끼 존나 웃긴 거 뭔 지 암?”
취 기 가 올라온 듯한 동수가 내 어깨 위 에 손을 얹었다.
“이 새끼 오늘 안 오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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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씨! 하지마!”
본능적으로 동수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내가 그의
입을 틀어먹었다.
“왜. 너 리얼루 나연이 좋아함? 이 새끼 과민 반응하는 거 존나수상한데?”
“야. 나연아. 얘가 너 좋아한댄다.”
자기들끼리는 재밌어서 낄낄거리는 동기들이 었지만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울상이 될 것만 같았다.
아니. 개새끼들아.
나 진짜로 차였다니 까?
제발 지금 만큼은 나연이 가 다른 여 자애들과 떠들고 있기를 바랐지 만 이
번에도신은내 편이 아니었다.
벌레라도 본 듯한 얼굴.
나연이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내 이 미 지 가 나락이 가는 소리 가 여 기 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술이나 먹자!”
결국 이 런 되도 않는 몰아가기 주제를 넘 길 수 있는 것은 술.
친구들의 잔이 넘치도록 소주를 따른 나는 오늘 처음으로 먼저 건배를 소
리쳤다.
“자〜 짠〜”
괜히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나는쓰디쓴 소주를 한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여〜 최재혁이〜 잘 마시는구마이 〜”
“나도 모르겠다〜 마시자〜”
없는 돈 쥐어짜서 온 자리인데 술이라도 열심히 마시고 가자 생각이
들었던 나는 그 이후로부터 주는 대로 쭉쭉 술을 받아마셨다.
새벽 1시.
정신없이 술집을 옮겨 다니며 꿓차까지 거행한우리는 이제 슬슬 파하는 분
위기가 되었다.
“재혁아. 너 집어디라고했지?”
“나 대한동쪽.”
“야.그럼 나연이좀 데려다줄래?”
정신이 멀쩡한 편은 아니 었지만 나연이의 이름이 불리자 나는 두 눈을 번
쩍 떴다.
“왜? 나연이집 그쪽이야?”
“어. 나연이 그쪽에서 자취하는데, 네가좀 바래다주라.”
“아. 나안 취해따공...”
누가 보더 라도 혀 가 잔뜩 꼬인 발음.
나연이는 도무지 집에 혼자 갈 수 있는 상태 가 아닌 것 같았다.
“얘가보다시피 이런 상태라서...너 괜찮겠어?”
“나? 나진짜멀쩡해. 나연이랑택시 타고 가면 될 것 같은데?”
“아. 진짜 다행이다. 자. 여기 이거 나연이 가방.”
졸지 에 나는 나연 이의 가방까지 메고 나연 이를 부축하게 되 었다.
“그럼 나는지연이랑 가야될 것 같아서 잘좀부탁할게.재혁아.”
“아.응. 조심히들어가.”
“에씨... 나징짜... 안취행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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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는 않았다면서 내 팔뚝을 지지대 삼아 서있는 나연이의 모습은 슬
프게도 너무나 귀 여워보였다.
“혼자걸을수는 있겠어?”
“어 ! 당연하징 !”
자신 있게 소리친 것 치고 그녀는 세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
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파.”
“기다려봐.그냥택시 부를테니까.우리 저기 큰길까지만가보자.”
자연스럽게 내게 기대어 앞으로 나아가는 나연이.
물론 그녀에게 있어 나는 전못대와 다를 것 없는 존재였겠지만 내 가슴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대한동가주세요. 기사님.”
나란히 앉게 된 우리 두 사람.
차이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이 기회이니 하고 살갑게 말이라도 걸었을 텐데
•
뭔 가 내 가 먼저 말을 것도 뭐했던 나는 멍하니 창밖만 내 다보았다.
야아...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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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등을 툭툭 치는 나연이.
“왜?,,
“네 가 그릉다고 너 조아할 꺼 같냥?”
취객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싶은데...
뭔가 이쪽이 나연이의 본심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괜히 슬퍼졌다.
“내가뭐했는데.”
“이릏게 막잘해주고오...데려다주며어언 내가너 조아할꺼 같냐규우...”
“그냥너 취해서 데려다주는 거잖아.뭐 말을그렇게 하고그래.”
“프흐
T 厂 ''흐 ••“ 안아어
안 후아 I ••“ 안아언
안 후아 O ••“ ”
마지못해 웃으면서 넘어가준다는 듯한 태도.
어느덧 나연이의 집 근처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나는 집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만 보고 집에 들어 가려고 했다.
나연이가 살고 있던 곳은 우리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빌라 건물이었다.
“여기야?”
씁층 복도 안쪽으로 들어서 자 나연이 가 잠금장치를 열고는 비 밀번호를 눌
렀다.
“ 야... 고맙따...”
“어. 그래. 잘자라.”
할 일을 다했으니 퇴 장하기 위해 몸을 돌린 그 순간이 었다.
“꺄아앙!”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들려오는비명소리.
뒤를 돌아보자 나연이는 현관에 발이라도 걸렸는지 엎어져 있었다.
“나연아. 괜찮아?”
본래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나 이 건 불가항력 이 었다.
신발을 벗고 안쪽에 들어가 나연이를 일으켜 세우자 그녀의 눈에는 눈물
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아파아...”
“하아... 잠깐 실례 좀 할게.
나연이의 팔을 붙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려고 했으나 역시 술 먹은 몸
은 두 배로 무거워진 탓인지 나 또한 살짝 뒤로 비틀거려버렸다.
나연 이는 본능적으로 무언 가를 잡고자 팔을 휘 적 였고 그녀의 손은 자신
의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우수수 떨어트려버렸다.
“나연아. 일단 눕자.”
어찌 됐던 침대 위에만 골인시 키자는 마인드였던 나는 그녀를 반쯤 던지
다시피 이불위에 착륙시키는데 성공했고, 그냥바닥에 쏟아진 물건들만 간
단하게 정리하고 가려고 했다.
떨어진 것은 필기구들과 노트 두 권 정도.
다시 컵에다 팬들을 꽂아넣고 노트를 치우려고 했는데...
[정말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는 것일까?]
펼쳐져있던 페이지에 적힌 첫 번째 문장.
[고백을 한 사람이 몇인데, 그를 닮은 사람은 어째 하나도 없는 걸까.]
[진짜 남자복 없다는 소리는 나한테 딱인 것 같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이 결코 신사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만 나는 나연이의 다이 어리로 추정되는 노트를 손에서 뗄 수 없었다.
그나저 나 그라니... 그가 누굴까?
[아아... 진짜 나타만 나준다면 그냥 바로 해버릴텐데...]
뭘 해버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연이의 이상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
을 것만 같았던 나는 그 페 이지에 적힌 마지막 줄을 읽 었다.
[오늘도 그녀 감금이나 보다 자야겠다.]
그녀... 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