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231화 > 그 쌍둥이는 사랑을 한다.
“할아버지!”
현관문이 열리자세호가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유! 어서들들어와라.”
민호는 주차를 하고 온다고 해서 따로 오고 나은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올라와있었다.
“이 서방은 어디갔어?”
“지금주차중이에요.”
“먼 길 오느라고생 많았다.”
처음 민호를 집에 데려왔을 당시에도 흰머리가 제법 있으신 부모님이셨지
만 10년이지난지금.
두분은 완벽한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가만 있어봐. 애들 과일이라도 깎아줘 야지.”
“아니에요. 엄마. 내가 할게.”
“아유〜 됐다. 내가 애들 왔는데 그 정도도 못 해줄까.”
만류하는 나은의 말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손주들을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소파에 앉은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인자한 얼굴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직 장에 서 은퇴 한 이후 낙이 라고는 커 가는 손주들을 보는 것밖에 없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으며, 이렇게 민호
부부가 한 번씩 집 에 데 려올 때마다 노부부는 무척 이 나 고마움을 느꼈다.
-띠로리로리
벨이 울리자 나은이 일어나서 남편을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아.”
“어이〜 이 서방〜”
남편과 아빠는 이제는 제법 죽이 잘 맞는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장인어른. 제 가 요즘 좀 뜸했지요?”
“아냐아냐. 일도 바쁠텐데. 뭘.”
아직도 아빠는 남편이 쓴 소설을 한 번도 읽 어보지 못하셨다.
남편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의 봄.
나은은 부모님 께 민호가 소설 작가로 활동하게 되 었음을 공개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역시 가장큰 이유가 있다면 남편의 직장을 언
제까지고 숨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앞으로한식구로서 10년 20년을함께하게 될 것인데, 아예 말을 안하는
것은 말도 안 됐을 뿐더러 부모님 께도 예의 가 아니 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보여드릴 수는 없으니 필명은 절대로
비밀로 하기로 민호와 합의했었다.
“에이. 뭐 제가바쁠 게 있나요.”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소파 앞에 앉은 민호가 대 답했다.
“나은이가요즘자네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던데.”
민호가 와이프 쪽으로 무슨 소리냐는 듯 시선을 돌리자, 나은은 알아서 잘
하라는 듯이 고개 를 끄덕 였다.
“최근에 좀 깨달음을 얻은 바가 있어서 말이지요.”
“아직도 배움을 추구하다니 대 단하구만.”
장모님이 과일을 가져다주시고 나서야 껄끄러운 재택 근무 근황 토크는
넘어갔다.
“오늘자고 가지는 않는거지?”
내 심 하루 묵고 갔으면 하는 할아버 지의 마음이 었지 만 그것을 칼같이 틀
어막은 건 나은이 었다.
“내일 애들도 다학원 보내야하고, 오빠도 일하기는 해야해서요.”
“아니. 애들을 뭐 벌써부터 그렇게 학원을보내고그러니.”
아이들을 위하는 듯이 말은 했지만 사실 조금 더 오래 손주들을 보고 싶다
는 욕심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공부는 아니에요. 세호는축구 가고, 세화는 미술 가야하거든요.”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하나 정도는 배우게
해도 좋다는 것이 나은의 생각이었다.
가만히 어 른들의 이 야기를 들으며 할머 니 가 잘라주신 참외 를 우물우물
씹어먹는 아이들.
“세호야. 너는 야구보다 축구가 좋더냐?”
아직까지도 열렬한 야구팬이었던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아쉬움을 담아
물었다.
“네!”
그래도 매번 캐치볼도 해주니 야구도 재밌다 정도는 대답해줄 줄 알았는
데, 세호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바로 철벽을 쳐버렸다.
“이 할아버지는 야구가 더 재밌던데, 세호는 축구가왜 더 좋니?”
“음... 야구는뭔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요?”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루종일 헥헥거리며 달리는 것을 선호하는 세호에게 야구의 규칙은 다
소 루즈하다고 느껴 졌다.
“허허허. 그렇구나.”
그렇다고 10살 먹은 아이한테 따지고 들 생각은 전혀 없는 할아버지 였다.
그의 눈에는 그저 아가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엽게만보일 뿐이었다.
“세화. 너는 미술을 그렇게 잘한다고?”
“잘하는 건아닌데, 좋아해요.”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세화가쑥스러운듯 할머니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니 ? 어렸을 적 너희 엄마도 그렇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더라고.”
“정말요?”
세화는 어디 가서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 었다.
못 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림도 잘그리고, 밥도 맛있게 잘 해주고, 목소리도 좋았다.
그런데 예쁘기까지 하다니!
“그럼〜 네 엄마공부도 안하고 그림 그린 적도 많을 걸?”
할머 니 가 딸의 치 부를 드러 내 자 나은은 웃으며 어 린 시 절을 떠 올렸다.
“에 이. 그래도 할건다 하고 그렸어요.”
“나은이 너 교과서에 공주님 그림 잔뜩 그려놨다가 걸렸던 거 생각 안 나
니?”
세화는 빙글빙글 웃으며 엄마의 흑역사를 경청했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 된다면 ‘할머니가 엄
마도 그랬다고 했는데!’를 시 전할 수 있으리 라.
“세호. 할아버지랑 이제 슬슬 야구하러 가야지.”
할아버지 댁에 오면 해야하는 정규 코스가 언급되자세호는 벌떡 바닥에
서 일어났다.
“네 ! 캐치볼 할아버지이!”
“이세호. 아빠가그 말쓰지 말라고했지.”
예의 없어 보인다고하지 말라고 말을 해도 또 저러네. 저거.
민호가 바로 세호를 꾸짖자 할아버지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매번 캐치볼 하면 내가 캐치볼 할아버지지 뭐. 가자. 세호야.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이 라도 하나 사먹고 오자.”
“당신. 세호 것만 사오지 말고 세화랑 애들 것도 사와요.”
두사람이 집을 나서자훅 데시벨이 낮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오빠. 우리 몇 시쯤에 갈까요?”
“몰라. 당신이 정해. 너무늦게만 안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럼한 嬖시쯤어때요?”
“그렇게 해. 그럼.”
오래 머물렀다가는 또 부모님이 부랴부랴 식사를 준비하실까 마음이
쓰였던 나은이 었다.
“얘.요즘 나연이랑도 연락하고 지내니?”
“1달 전쯤에 하긴 했어요,”
“그러니? 나연이 얘는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는 거니.”
“바쁜가 보죠. 뭐.”
전업 주부로 집에만 있는 나은과 달리 나연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 각했다.
생각해보니 나연이도 어느덧 서른이 넘어가는구나.
얼마 전까지 20대였던 동생이 이제는 30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에 나은은
속이 쓰라렸다.
왜 냐하면 그녀 가 30이 넘 어 간다는 것은 곧 나은이 마흔이 머 지 않았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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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제 내 나이도...”
할머니의 눈에는 자신을 눈앞에 두고 나이에 대해 푸념하는 나은이 우스
워 보일 뿐이었다.
“허이고. 얘는 마흔도 안된게 무슨 나이 타령이니. 조금만 더 먹어봐. 이제
너도 갱년기 온다.”
“그만해요. 괜히 우울해지니까.”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는 세화.
“갱년기가뭐에요?”
“우리 세화는 아직은 몰라도 괜찮아.”
...아직 어린 딸이 굳이 알필요는 없는 내용이라고 나은은 생각했다.
…
“냐냐냐냐〜 냐냐냔냐냐〜”
월요일 아침 이 기다려지 기 쉽 지 않았지만 소녀에게 있어 주말은 얼른 지
나갔으면 하는 시간이 었다.
“수진아. 옷다 입었니?”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수진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무려 15분이나끝낸 수진의 모습에 수진 엄마는 질문을 참지 못
했다.
“우리 수진이 오늘 학교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없는데요!”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옷 다 입었어.”
학교에 일찍 간다고 한들 세호를 미리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 만 그냥 기분이 라는 게 .
어쩌면 등교를 하다 학교 입구에서 세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싶은 것이 소녀의 망상이었다.
오늘의 의상은 핑크색 원피스.
밝은 계열인 색깔도, 바지가 아닌 치마인 점도 모두 완벽했다.
“그냥요!”
제 방을 나와 거실로 나온 수진은 엄마가 차려준 아침식사를 가볍게 해치
웠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렴〜”
엄마의 배웅을 받은 수진은 아파트를 벗어나 토끼처럼 경쾌한 발걸음으
로 비 탈길을 내 려갔다.
그렇게 정문 앞에 도달할 쯤이었다.
저 멀리 멈춰선 검정색 SUV 차량에서 하차하는두 명의 쌍둥이.
세호를 발견한 수진은 세화가 옆에 있었음에도 바로 그 옆에 딱 달라붙어
있고 싶은 욕망이 피 어올랐다.
동시에 세화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아침 저렇게 세호랑단둘이 학교에 올수있다니.
가족의 특권인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부러운 것은 부러운 거였다.
인사를 할까 말까 머뭇거리던 수진은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 수진아!”
수진을 발견한 세호는 손을 번쩍 들어 그녀를 향해 흔들었다.
“세호야!”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다니.
소녀는 오늘은 무척 이 나 운이 좋은 날이 라고 생 각했다.
[나도네가제일 좋아.]
세호의 음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수진은 역시 자신은 T을 받을 자
격이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