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229화 > 그 쌍둥이는 사랑을 한다.
“엄마!”
어 영부영 오후 수업 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세 호.
세호는 조금은 성난 얼굴로 나은을 찾았다.
“왜.세호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학교에 다녀온 아들을 맞이해주었지만 아들은 무언
가 화가 난 모양이 었다.
“왜 비밀 안 지켰어요?”
“무슨 비밀?
5,
“...거북이요.”
“거북이?”
“엄마가 거북이 얘기 수진이 아줌마한테 얘기해줬죠!”
이 건 또 무슨 소리 인 가 싶 었지 만 나은은 일 단 아들을 소파 위 에 앉히 고는
진정시 키고자 했다.
“세호야. 거북이 이 야기 라는 게 혹시 어제 말해준 알 낳는 숫자 이 야기하
는거니?”
“으 99
O•
“근데 엄마는 수진이 아줌마 만난 적도 없고 전화번호도 모르는 걸 ?”
자신의 예측이 엇나가자 세호는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나은을 바라보
았다.
“그럼 수진이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는데...!”
“세호야.일단무슨일인지 엄마한테 이야기해줄수있을까?”
불안한 예감이 든 나은이 아들에게 질문하자 세호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
다.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자신에게 매정하게 구는 수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부분에서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를 이해하
지 못하는 세호였다.
“엄마. 있잖아요... 내가 원래 수진이랑 엄청 친했는데…
99
아이의 눈에서 본 어른은 대단한 존재.
결국 제 스스로 답을 유추해내지 못한 세호는 엄마한테 SOS를 요청했다.
“오늘 학교에서 수진이가 내 인사도 안 받아주고, 옷도 내가 말해준 대로
안 입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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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도 이 상한 문장이 었다.
토라진 여자아이 가 인사를 무시 할 수는 있다고 생 각했지 만 옷을 원하는
대로 안 입어주다니.
이 게 도대체 무슨 이 야기란 말인가.
“조금만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래? 우리 세호? 옷을 원하는 대로 안 입어
주다니?”
보다 더 솔직한 이 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아이를 다그치 기보다는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한 나은.
나은은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세호의 말을 유도했다.
“내가요 수진이한테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말해줬거든요?”
“으 99
O•
“그리고 어떤 머리스타일이 잘 어울리지는 지도 알려주고요?”
“으 99
O•
여 기 까지 는 수진 이 라는 아이 가 세 호의 말을 참고해 서 입고 다녔다고 하
면 그다지 문제가될 내용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중요한 건 그 다음 문장.
“그래서 제 말을 잘 들어줄 때마다 스티커를 줬어요.”
“…스티커?”
“엄마한테도 준 그거 숫자 있잖아요.”
“그건 그냥 한 번에 선물로 준 게 아니 었니 ?”
그냥 좋아하는 여자애 한테 선물을 준 거라고 생 각했던 나은의 이 마에서
는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 렸다.
“아니요? 잘한 게 있어야 선물을 주죠.”
“그럼 수진이가 세호 네 말을 들어줄 때마다 하나씩 준 거고?”
“네! 수진이도 받을 때마다 좋아하더라고요.”
대충 견적이 나온 나은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그럼 정리를 해보자면 세호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때마다 수진이한테
스티커를준거네?”
“네! 근데 이제 꿓밖에 안남기는했어요.”
“3?”
“아. 잘할 때마다 숫자를 하나씩 올려서 줬거든요.”
세호랑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은은 현기증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거를 뭘 어디서 어떻게 해줘야하는 걸까.
훈육이 절실한순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가쉽게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행동을 교정해주는 것은 무척 어려워 보였다.
세호가 억지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수진이라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세호
의 뜻을 따랐다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줘 야 하기는 하는데...
“하아... 아니. 잠깐만.”
그래도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나은의 머 릿속에 서 의 문점 이 하나 스쳐 지 나갔다.
만약 세호가 또래 여자아이를 스티커라는 매체를 통해 조교하려고 들었
다면 왜 수진이 라는 아이는 오늘 학교에 서 세호를 무시했단 말인 가.
이미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판단했지만 그걸 넘어선 사고를 아들이 친
것이 분명했다.
“세호야.수진이가오늘부터 너를 무시했다고?”
“네.어제까지는 분명 좋았는데...”
강아지도 보여주고, 같이 떡볶이도 먹고.
심지어 수진이네 아줌마도 다음에 또 놀러 와도 좋다고 하셨다.
“세호야. 엄마가수진이랑화해하게 도와줄 테니까. 어제 있었던 일 자세
하게 하나하나 말해주겠니 ?”
“근데 어제 말한 게 거의 다인데요?”
강아지 구경, 집 구경, 떡볶이 먹기, 그 다음에 만화를 봤어 야 하는데 그건
못했고.
“아니 아니. 수진이랑 했던 대화가 중요한 것 같아서.”
아마 높은 확률로 대 화에 서 갈등이 발생 했을 것 같다고 유추한 나은은 아
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음... 엄마한테 안해준이야기... 뭐가 있을까...음...”
잠시 고민을 하던 세호가 조금은 불안한 눈초리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이거는근데 진짜별 이야기 아니기는 한데요.”
“응.”
“수진이가 거북이의 비밀 알려주기 전에 장난으로 비밀이라고 얘기해준
게 있거든요?”
“뭔데?,,
“수진이가저를 좋아한데요.”
“ 맙소사...
여보.
진짜좆같이 눈치 없는 건 당신을 닮은 것 같네요.
어 린 아들 앞이 었기 에 비 속어를 뱉지는 못했지 만 나은은 속으로는 비 명
을 내질렀다.
“그... 그래서. 너 뭐라고 대답했니. 세호야.”
“음... 그런 거 말고 진짜 대단한 비밀을 알려 달라고요?”
나은은 진지하게 수진 엄마한테 사죄의 선물로 무엇을 줘 야하나 고민하
기 시작했다.
…
수진은 난생 처음으로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세호가 좋은데 세호가 미웠다.
어떻게 자신의 고백에 포리 같다고 할수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있어 포리는 가족일수도 있었지만 세호에게 포리는 그냥 처음
보는 강아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 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세호가 추천해준 옷들은 하나도 안 입고 학교에 가버렸
다.
심지어 세호와의 약속을 어겼고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세호와 남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수진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은데 그 어느 것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세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가자 조금은 상처받은 듯한 눈빛으로 자신
을 바라보던 그.
괘씸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얼굴을 떠올리니까 너무 심했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있던 수진이 필통을 열자뚜껑 안쪽에는 여태 모아온 스티커
들이 쭈르륵 상패처럼 붙어 있었다.
10부터 4까지 일렬로 나열되 어 있는 숫자들.
하나하나 열심히 노력해서 모은 것들이었다.
세호가 밉 다면 당연히 이 것도 다 떼어버 려 야 하는 건데...
“수진아.밥먹으러 가자.”
짝꿍인 미연이 수진을 부르자 수진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분명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 세호를 잊을 수 있
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말이야. 우리 아빠가〜”
까르르 웃음소리 가 들려오는 급식 실 안.
아이 들은 뭐 가 그렇게 재 미 있는지 밥도 깨작깨작 먹으면서 떠 들고 있었
다.
“아.너무 웃기다.”
“그렇지? 내 동생도 엄청 좋아했다?”
잠시 나마 세호의 생 각이 나지 않자 기분이 좋아진 수진은 애들과 함께 교
실로 올라갔다.
세 호가 있는 3반을 지 나쳐 4반으로 들어 가려고 하는 그 순간이 었다.
...수진아!”
익숙한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춘다.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아 고개를 돌리 지는 않고 제 자리 에 우뚝 서 있자 옆
에 있던 친구들이 수진을 불렀다.
“수진아. 쟤가 너부르는데?”
“뭐야.저거 이세호잖아?수진이 너 이세호랑친해?”
수진이 아무말 없이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근데 왜 대답 안 해줘 ?”
“백수진!”
세호가 멈춰선 수진을 향해 달려왔다.
“...왜.”
결국코앞까지 다가온 세호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수진.
세호는 한 번 주변을 스윽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잠깐만이야기 좀할수 있어?”
“해.”
그렇게 오래 대화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수진의 마음속에 생긴 상처는 깊었으며,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는 여전히
애정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서 말고다른데서 해도괜찮을까?”
수진은 자신의 친구들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
개를 끄덕였다.
소년과 소녀 가 도착한 곳은 언제 나 그들이 밀회 를 가졌던 장소.
옥상 밑 계 단이 었다.
“수진아.”
“으 99
O•
“내가 미안했어.”
“뭐 가미 안한데.”
그냥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저러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든 수진이 세호에
게 물었다.
솔직히 그게 못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세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를 했어야 했다.
“네 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해줬는데 내 가 너무 휙 지 나갔나봐.”
알긴 아네.
하지 만 아는 것만으로 수진의 마음을 녹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진이 팔짱을 끼고는 세호에 게 물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해주려고.”
세호가 한 걸음 더 수진을 향해 다가갔다.
“나도네가제일 좋아. 수진아.”
꽁꽁 얼어있던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