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211화 > 그 쌍둥이는 사랑을 한다.
나은은 아이 들의 학교 모임 에 참석할 때마다 포승줄에 끌려 가는 노비의
기분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 시달리고는 했다.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긴장의 땀방울.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지만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만 하는 자리는
지독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세호 엄마.”
“...네?”
딱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
나은은 오늘도 결코 어 머니 모임 이 쉽 지 않을 거 라는 것을 한 번에 직 감할
수 있었다.
“세호가 우리 딸애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고는 있나요?”
- 꿀꺽
분명 초등학교 어 머 니 모임 이 기는 했지 만 나은은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압
도적으로 어린 축에 속했다.
26살에 출산을 한그녀는 아이가 10살임에도 서른여섯.
마흔이 넘 어 가는 애 엄 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 자리 에 서 그녀는 당
연 막내 자리를 차지할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뭐... 뭐라고 했나요? 우리 세호가?”
울지 못해 마지못해 짓는 어색한웃음.
“우리 애가 자기를 왜 이렇게 못나게 낳아줬냐고 하면서 집에 와서 우는
데 얼마나마음이 아프던지...”
나은은 이 마를 탁 치고 싶은 심 경 이 었지 만 지 금은 당장 사죄 를 하는 것 이
먼저였다.
“어휴... 정연이 어머님 너무죄송해요.우리 세호가그렇게 심성이 못된 애
가아닌데...”
“못되 기는 뭐 가 아니에요! 지금 당한 게 정연이 한 명인 줄 알아요?”
이 미 지 난 모임 때 한 바탕 난리를 피운 지윤 엄 마였다.
“지윤이 어머님.그건 그때 잘해결한 걸로...”
“세호 때문에 지윤이 겨우 10살 된 아이가 매일같이 어른 되면 성형하겠
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는데 내가 기분이 풀리겠어요?”
하지만 이 자리가 일방적으로 나은에게 모든 비난의 세례를 날리기 위한
자리 라고 함은 그건 또 아니 었다.
“세화 엄마. 이거 받아요.”
상처 받은 마음을 보듬어주려 하려는 걸까.
지훈 엄마는 나은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작은 꾸러미를 건넸다.
“이게 뭐에요?”
“이거.우리 친정에서 보내준 과자인데 세화 엄마생각나서 가져왔지.”
“아...뭐 이런걸다.”
지훈 엄마는 교태 어린 눈웃음을 짓더니 나은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그러니까 세화한테 우리 지훈이 괜찮은애라고말좀 잘해줘.응?”
“아... 그럼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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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불에 지져졌다 찬물을 뒤 집어쓰기를 반복하자 나은은 진이 쭈욱 빠
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 그럼다음에 또뵐게요〜”
지옥과도 같은 한 시 간이 지 나자 나은은 힘 없는 걸음걸이 로 한숨을 푹 내
쉬었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이 어졌다.
[여보세요.]
[어. 여보. 끝났어?]
근심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 민호의 모습에 나은은 진지하게 다음부터
는 학부모회 에 민호를 보내버 릴까 싶은 충동에 휩 싸였다.
[이제 집에서 출발하면 될 거 같아요.]
[오케이.]
[...빨리 와요.]
[응응. 알았어.]
약 15분 정도를 학교 앞에서 기다리자 민호의 검은색 SUV 차량이 나은
앞에 멈춰 섰다.
-타악
나은이 탑승하자마자 바로 출발한 차량 안.
라디오에서는 대학생 때나 들었던 추억의 팝송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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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왜 그래.”
“말도 마요. 나 진짜요즘 세호 때문에 골치 아파죽겠으니까.”
“내가 혼쭐을 내줄까?”
민호가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자 나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그 소리만 몇 달 간 몇 번째인 줄 알아요?”
“내 가 진심으로 혼내 면 세 호도 꼼짝 못 할 걸 ?”
민호가 거울로 슬쩍 시선을 옮겨 나은의 눈치를 살피자 나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에요. 아빠가 손 나가면 진짜 안 좋다는 기사 같이 읽 었잖아요.”
“나는 말 안 들으면 우리 아빠한테 쥐어 터졌는데.”
“요즘은 그런 시대도 아니고요.”
주차장에 차량을 집 어넣고 집 안으로 들어오자 작은 발소리가 현관 쪽에
서 들려왔다.
“다녀오셨어요!”
이세화.
나은을 닮아 단아한 외모의 소녀는 명랑한 목소리로 부모에게 인사했다.
“응.엄마 왔다.”
나은은 그래도 세화가 세호 같은 성 격 이 아니 라 정 말 다행 이 라는 생 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두 아이가 모두 세호 같은 아이였더라면 나은은 진지하게 정신과 약을 먹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호!”
나은의 외침에 씁층에서 탁탁탁탁 작은 발소리 가 집 안에 울려퍼졌다.
“엄마! 왔어?”
“너 이리 내려와봐. 이세호.”
세호는 엄마가 학부모 모임에 다녀오는 날이 싫었다.
또 이상한 아줌마들한테 한 소리 듣고 와서 자신한테 화풀이 하는 날이 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여기 앉아봐.”
세 화와 민호는 슬며시 눈을 맞추더 니 슬그머 니 함께 안방으로 들어 갔다.
제 법 흔히 있는 일이 었기 에 이제 두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숙지
하고 있었다.
그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베스트.
괜히 옆에 있어봐야 불똥만 튈뿐이 었다.
소파위에 털썩 앉은 세호는 성난 얼굴의 나은을 마주해야만했다.
“이세호.”
“...왜요.”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는 존댓말을 하는 것이 덜 혼난다는 것을 깨달은 세
호는 입술을 삐쭉 내 밀고는 바닥을 내 려다보았다.
“너 또 같은 반 여 자애들한테 얼굴 갖고 뭐 라고 한 거니.”
a
...아니오.”
“거짓말하면 못쓰는데.”
나은이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세호를 지켜보자 세호는 눈알을 이리저
리 굴렸다.
“아... 근데 걔네가 먼저 물어봤단 말이야.”
“그럼 그냥 예쁘다고 해줘. 왜 다른 친구들 기분 상하게 나쁜 말을 하는 거
니.응? 아빠도 만날 엄마 예쁘다고해주잖니.”
최대한 어르고 달래서 세호의 버릇을 고치고 싶은 나은이 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고 싶지는 않았다.
“... 엄마는 진짜로 예쁘니까.”
세호의 말에는 거짓이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나은은 실제로 다른 아줌마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생 각했다.
아직 여색을 탐하고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나
이 였지 만 세호는 엄 마보다 예쁜 아줌마를 본 적 이 없었다.
“아무튼. 세호야. 앞으로는 자기 어떻게 생각 하냐고 하면 차라리 그냥 모
르겠다고 해. 응?”
“…거짓말 하는 건 나쁜 거라고 했잖아요.”
선의의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 이리도 어려웠던가.
나은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약 20분간 세호를 앉혀놓고 매너와
예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반면 민호와 세화가 들어간 안방 안쪽은 서먹한 분위 기가 감도는 거실과
는 180도다른풍경이었다.
침대 위 에 걸터앉은 민호와 그의 무릎 위 에 앉은 세화.
두 사람의 얼굴에는웃음꽃이 만개해 있었다.
“우리 세화 이번에도쪽지 시험 100점 맞은 거야?”
“응! 내가누구 딸인데.”
민호는 점점 더 커가는세화를 볼수록 그녀의 사춘기가 다가온다는 사실
에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아빠. 짜증나.]
[아빠.왜자꾸 내방들어오는데.]
[아. 왜수염 비비는데. 하지 말라고.]
아내 가 앞으로 그렇게 지 낼 시 간도 이 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때마다
민호의 억장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슬픔에 빠지고는 했다.
“세화야. 아빠 좋아?”
“응. 아빠가 최고지!”
작은 다리를 데롱데롱 흔드는 세화가 귀여워서 미쳐버릴것 같았던 민호
는 세화의 볼에다 마구 뽀뽀를 했다.
“어우. 진짜 너무 귀엽다. 우리 딸.”
“에헤헤.”
방실방실 웃는 세화.
두 사람이 사이좋은 부녀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한숨을 푹 내쉰 나은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오빠. 나 이제 씻으려고요.”
“어.그래그래. 세화야. 이제 가서 놀아.”
“응!,,
세화가 쪼르르 문 밖으로 나가자 나은이는 마른세수를 하며 민호의 품에
안겼다.
“나요즘 생각하는 거 있어요.”
“뭔데.,,
“오빠가 좀만 더 잘 생겼으면 지금 세호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
까.”
“글세... 저렇게 안 잘생겨봐서 모르겠네.”
아비는 누리지 못하는 존잘의 삶을 아들이라도 누리는 것은 긍정적이라
생각했지만 저런 식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니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
복잡미묘한 심경이었다.
“나 진짜 이 거 모임 한 번 나갈 때마다 늙어요. 늙어.”
“그래도 예뻐.”
민호가 나은의 이마에 쪽 입술을 맞추자 나은은 그대로 민호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었다.
“후... 진짜쉽지 않네요.”
…
엄마한테 혼이 잔뜩 난 세호는 여전히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
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면서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예쁘다고 해주다니.
어 린 나이 였음에도 엄마의 말이 앞뒤 가 다르다는 것쯤은 이 해하는 그였
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여자애들 조심하라고.”
세호는 괜히 방문 앞에서 자신의 신경을 긁는 세화가 아니꼬왔다.
“…내가엄마한테 지훈이 얘기 해줘?”
세호는 세화가 얼마나 여우 같이 간사한 아이인줄 알고 있었다.
엄 마도 아빠도 모르는 오직 쌍둥이 인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녀의 본모습.
“어차피 지훈이는 자기가 아니라고 할 텐데. 거짓말쟁이 낙인 한 번 더 찍
히기 싫으면 하지 말지?”
“너...”
세호와 세화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거기까지 하지?”
세호의 손이 세화의 어깨 바로위 벽을 내리치자세화가헤픈 웃음을 지었
다.
“그러니까 네 가 나한테 안되는 거야.”
부모는 원 래 자식 을 모르는 법 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