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209.아이들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 우리는 어느덧 우리가 직접 설계한 집에 입주해
신혼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직접 설계한 집을 하나씩 우리의 취향대로 꾸며나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
었으며, 이 시 간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따듯함이 깃들어있다고 생 각했다.
새하얀 눈발이 몹시도 흩날리는 겨울날이었다.
“오빠! 오빠!”
화장실 안쪽에 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 침 에 나는 후다닥 일 어 나 아내 에 게
로 달려갔다.
“어! 왜!”
“나 양수 나오는 것 같은데...”
슬슬 출산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사전에 고지 받았던 나는 일단 나은이 가
전에 출산일 당일을 위해 구비해뒀던 옷가지들을 빠르게 들고 왔다.
“나 이거 닦고 정리하고 바로 나갈 테니까 오빠 밖에서 차 대기하고 있어
요. 알겠죠?”
“어! 혹시 또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전화 주고. 그럼 나 기 다리고 있을
게!”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재빨리 외투를 걸치고 양말을 신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 운전을 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걱 정 이 되 면서도 겁 낼 때가 아니 라는 것을 인지 한 나는 사전에 이 야기 했
던 매뉴얼 그대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아내가 출산을 할 것 같아서 그런데요...]
전화를 해서 바로 분만센터를 찾아갈 수 있게끔 조치를 해둔 나는 나은이
가 나오기만을 기 다렸다.
출산을 하게 되는 건 나은인데 왜 이렇게 내가 다떨고그러는 걸까.
든든하게 옆자리를 지켜줘야 하는 건 난데 말이지.
정신을 다잡기 위해 마른세수를 몇 번 반복하자 주황색 스웨터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나온 나은이 가 차에 올라탔다.
털컥
“후우... 가죠. 병원에는 전화 해놨죠?”
“응. 바로 분만실로 오라네. 아프지는 않고?”
“아직은...? 괜찮은 거 같은데요? 양수가좀 나온 것만 제외하고는 아직은
별로?”
“다행이다. 야.”
차에서부터 괴로워하면 어쩌나 싶던 나는 한숨 돌리고는 내가 낼 수 있는
속도 한에서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까지의 거리는 일반적으로 30분 정도 걸렸지만오늘은 20분 컷을 하
는데 성공한 나는 우산을 펼쳐 나은이 옆에 섰다.
“춥다. 얼른들어가자.”
“뭐에요. 오빠 눈 오는 날 원래 우산 잘 안 쓰지 않아요?”
“너 추울까봐 그러는 거지. 내 가 눈 피하지고 쓰겠니.”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나은이의 손을 붙잡은 나는 병원 안쪽
으로 들어섰다.
“산모분 이쪽으로 오실게요〜”
역시 미리 연락을 해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거 앞에서 접수니 뭐니 했으면 또 한 세월이었을 것 같은데.
간호사 분은 바로 나은이 를 검사를 위 해 데 려 가셨으며 나는 초조한 마음
으로 의 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제발건강해야 할텐데...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나은이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출산을 위한 개
인 병실이었다.
“뭐라셔? 나은아?”
“저 양수만 먼저 터졌고자궁문은 아직이라고하네요.”
“뭐 문제 있거나그런 건 하나도 없고?”
“다행이도요.”
이후 나은이는 출산의 아픔을 덜어주는 무통주사를 맞게 되 었고 그렇게
우리는 출산을 위 한 시 간을 갖게 되 었다.
씁시간 경과.
“아직도 안 아파?”
“으음... 아프다기 보다는 배 가 꿀렁꿀렁 한 느낌 ?”
남자인 나로서는 공감을 해주려고 해도 해줄 수 없는 소리 였지만 그래도
나는 무지성 공감을 하고자 노력했다.
“나도 그거 잘 알거든. 그거 군대에서 우유.”
“꼭 이런 날까지 군대 얘기해야해요?”
왜 저렇게 군대 이야기만하면 싫어하는건지.
그렇게 많이 한 편도 아니 라고 생 각하는데.
“아무튼 딱 몇 시간만 고생해줘. 여보.”
그녀의 손을 꼬옥 잡자 나은이는 싱그러운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나 찡그리 면 좀 못 생 길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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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예쁜 모습들은 아가들이 보여주겠지.”
“그럼 오늘만좀 못생겨져야겠네요.”
1시간 정도 지나자 나은이의 입가에서는 더 이상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
다.
“...많이 아파?”
“이 세상고통이 아닌데요?”
인상을 한껏 찌푸린 나은이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우와... 오빠... 진짜 오빠도 이 거 해봐야 되 는데...”
“마음 같아서는대신 아파주고 싶지.”
쓴웃음을 지은 나는 진심을 담아 아내에게 말을 전했다.
나은이 대신 내가 아플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할 수 있으리라.
“으으읍...!”
“나은아. 아파도 숨쉬어. 숨쉬어야 해.”
호흡이 끊이지 않아야 건강한 출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들은 나는 어떻
게든 옆에서 그녀의 순산을 돕기 위해 애썼다.
“자.산모분 호흡하시고〜”
간호사님도 옆에서 열심히 나은이를 위해 응원과 행동지침을 반복해주셨
다.
처 음에 는 무척 이 나 괴 로워 하더 니 무통 주사를 추가로 맞을 때 마다 나은
이의 얼굴은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이제 산모분분만실로 이동하실게요.”
“엥? 벌써요?”
나은이는 마치 준비 가 안 됐다는 듯한 반응이 었다.
“네.지금 이쪽에 휠체어에 앉으실게요〜”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은이와 나는 잠시 얼을 타다가 그녀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나은아. 잘할수 있어! 파이팅!”
“어... 오빠? 저... 다녀... 올게요…?”
그렇게 얼마나 그녀를 기다렸을까.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들었던 나는 분만실 앞을 계속 서성였는데 자동문
을 열고 나오신 간호사 분은...
“너무 건강한 아드님 이시 네요〜”
아들.
너무나도 자그마한 내 아들이 우렁차게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 아...”
뭐라고 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내 뇌를 지배할 뿐
이었다.
“엄마... 애엄마는괜찮나요?”
“네! 지금 따님도 순조롭게 출산중이시니, 곧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살짝 먼저 태어난 아들놈이 내 옆을 스쳐지나간 후 나는 흐뭇한 웃
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놈 참 머리숱도 많네.
나중에 탈모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아들의 얼굴과 울음소리를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 이고 있던 중이 었다.
또다시 열리는 자동문.
“오래 기다리셨죠! 따님이세요〜”
딸아이라서 그런 걸까.
조금 전 아들의 울음소리 가 장군감 같았다면 딸의 울음소리 는 상대 적으
로 작은 편이었다.
“너무 건 강하고 예쁘게 잘 태 어났네요〜 조금만 기 다리 시 면 아내 분 만나
러 가실 수 있도록 안내드릴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간호사님 이 그렇게 딸까지 호송해 가자 나는 혼자 행복한 웃음을 지 었다.
“진짜고생했다. 한나은.”
얼른 내 아내님을 만나러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k * *
“오빠.”
“응?
99
“취소요.
“뭐가.”
“축구단 만들겠다는 말 취 소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나은이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나 이거두 번은 못할듯.”
“둘씩이나 낳느라 고생했어.”
그녀의 손을 붙잡자 나은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애들 봤어요?”
“그럼 봤지.”
“나도 얼른 보고싶은데.”
“예뻐. 너 닮았어.”
내 가 안심하라는 듯 나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나은이는 두 눈을 감았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어머님하고 아버님한테 전화는 드렸어요?”
“그럼. 장인어른이랑장모님한테까지 다드렸지.”
집안의 어른분들께도 당연히 이 경사를 알려야만했다.
“이름그럼 오늘 보내주시겠네요?”
“ 아마? 99
몇 달 전부터 기가 막힌 작명소를 알고 있다며 이름을 받아 오시겠다던
우리 아빠였다.
아내님은 너무 이상한 이름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나도 뭐 무조건 이거다 싶은 이름은 없었기에 뜻이나 사주팔자에 좋은 이름
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 었다.
“아드님이랑 따님이세요〜”
간호사 두 분이 차례로 들어와서 나은이의 품에 아이들을 안겨주었다.
“와...”
피로감에 생기가사라져가던 나은이의 두눈이 반짝였다.
“어떡해.오빠. 이거 봐요.우리...우리 아들이랑딸이래요!”
“난 아까 미 리 만나서 구면이라고?”
“세상에... 우와... 너무... 너무 예쁘다…”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나은이 의 볼을 타고 흘러 내 렸다.
“너무고생 많았어. 여보.”
“아흐으... 진짜...”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음보가 터진 나은이는 아이들과 공명하듯이 울음소
리를 냈다.
“오빠...”
“으 99
O•
“얘네 이름 아직도 답장 없으세요?”
“잠시만.”
청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인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꿓건]
[읽지 않은메시지 12건]
모조리 엄마 아빠인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한가 보구만.
잠금을 해제해 화면을 열자 아빠는 이름의 풀이와 사주까지 상세히 적어
서 휴대폰으로 보내두신 상태셨다.
어! 왔다!
“뭔데요? 예쁜 이름이에요?”
“아... 어 • •• ”
어머니. 아버지.
정녕 이 이름이 가장 축복받은 이름이 맞는 것이옵니까.
“남자아이 는 이 세호. 여 자아이는 이 세화라고 하시 는데 맘에 들어 ?”
“응! 둘다 좋아요.”
“세화야! 세호야!”
사랑스럽 다는 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에 나는 그저 그 장면
을 바라만 볼 뿐이 었다.
...근데 이 작명소불법 업소라거나돌팔이 이런 건 아니겠지?
부디 그 꿈이 개꿈이었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