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197.꿈
우당탕탕이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몇 주라고 생 각했다.
세상에 결혼식이라는 것은 이리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라고는 나는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견례 이후로 그냥 일사천리로 일이 휙휙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건만 세
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뭐 하나만만한 절차가 없었으며, 돈이 들지 않는구석이 없었다.
다돈이었다. 돈.
뭐 하나 제대로 하려면 돈이 안 드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차마 아깝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든 절차를 검수함에 있어 나은이가 너무 열심히 해준 탓이었
다.
“오케이...일단오빠.저 밀실에 가서 한복가져와봐요.”
결혼식 본식 하루 전.
나은이는 꼼곰하게 메모해둔 리스트를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로맨스 판타지물 속 집사라도 된 것 마냥 옆에서 서 있다 물
떠오라면 물 떠오고, 물건을 가져오라면 물건을 가져왔다.
“한복 한 번만 지금 입 어볼래요?”
“근데 나은아. 지금 입 는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차라리 안 구
겨지게 하는 편...”
찌릿.
따끔한 시선에 나는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서 방에서 보자기를 가져와풀
었다.
“방에서 들어가서 입고 오는 편이 좋을까요? 아가씨?”
“아뇨.그냥여기서 벗어요.이미 볼꼴못볼꼴다본사인데 뭘 이제 와서.”
나은이는 다시 수첩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펜을 꼬옥 쥐 었다.
별 수 없이 바지를 벗은 나는 그냥 티셔츠는 입은 상태로 한복을 입기 시작
했다.
정말 어렸을 적 이래로 이걸 다시 입어본 것은 결혼준비를 하면서가 처음
인 것 같았다.
진짜 이 거 고를 때도 고역 이 었는데...
나은이는 나를 무슨 장난감 옷 입히기 마냥 수 십 차례는 피팅룸을 들락거
리게 만들었다.
“입었습니다. 마님.”
고개를 든 나은이는 검지를 빙글빙글 돌렸다.
아니. 진짜 나 무슨 따까리 냐고.
정녕 남편을 이렇게 취급해도 괜찮은 것이냐. 한나은.
하지 만 나는 수치스러 움에 저 항하기 보다는 그저 그녀 가 시 키 는 대 로 몸
을 빙그르 돌렸다.
“좋네요. 역시 그날 잘고른 것 같아요. 다시 잘 정리해서 넣어주세요.”
야... 어차피 내가 이럴 줄 알고 열어보지 말자고 한 거잖아.
속으로 한껏 궁시렁 거린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최대한 원래 접혀져 있던
그대로 모양을 내고자 노력했다.
“오빠. 내 일 아침 차량도 다 예약된 거죠?”
“응.우리 탈 거도 미리 예약해놨고,손님용셔틀도좀 전에 확인했어.”
“오빠는 몇 시까지 오래요?”
“나는 시작두 시간 전. 너는?”
“나는 嬖시간 전에는 오라고 하네요.”
나은이는 기운이 빠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 었다.
“메 이크업 예쁘게 해야죠. 그래야 다들 좋아할 테니까.”
“난 생 얼도 예쁘다고 생 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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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쳐 보이는 나은이의 등을 껴안은 내가그녀 옆에다 얼굴을 부볐
다.
“그래도 오빠한테도 당일은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은 걸요.”
내 여자친구는내일 내 아내가된다.
이 런 사람이 나와 평생을 함께하게 될 반려 가 되 다니 .
사랑과 감사를 담아 나은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 나는 어깨를 살살 주물러
주었다.
“자〜 마님〜 다음으로는 또 뭐를 준비하면 될까요.”
“축의금 담을 가방그때 사온 거 꺼내줘요.”
“네〜 금방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쫄래쫄래 들어가서 가방을 들고 온 이후에도 계속 나은이 옆을 지키
며 그녀의 최종 확인을 도와주었다.
“이제 끝. 진짜 끝.”
나은이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자기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트렸다.
“고생 많았어.”
“아우... 진짜 나 결혼 두 번은 못할 거 같아요.”
“뭐 야. 너 나랑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두 번 할 생각이라도 한 거 야?”
내가매섭게 지적하자 나은이는 피식 웃으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요.두번 할 거면 이렇게 열심히 안했지.”
나은이 옆에 나란히 몸을 기댄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은아.”
“네?,,
“우리 내일이면 진짜부부다?”
“그렇죠?”
“난왜이렇게 잘 안믿겨지냐.”
내가 실감이 안 난다는 식으로 말을 건네자 나은이는 내 볼을 쭈욱 잡아당
겼다.
“아빠가 되는 건 잘 납득이 되고요?”
“그건 뭔가 이제 좀 익숙해졌어.”
솔직히 나은이 임신 사실을 알아차렸던 그 당시에는 매일매일이 멘붕의
향연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편이 된다는 사실이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고해야 할까.
“그래요? 특이하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나은이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으 99
O•
“고마워요.”
“갑자기?”
원래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극도로 꺼려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
에도 장난인 가 싶 었다.
“그냥... 뭔가... 다... 고마운 거 알아요?”
조금은 목이 메여오는 것 같은 목소리에 나는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었다.
야. 한나은. 너 왜 울어.”
“아씨... 몰라요... 나도... 그냥 뭔가... 오빠가 너무 잘해주니까... 다 도와주
고해서...”
내 입 장에서는 진짜 너무 당연하게 해 야 할 일을 했다고 생 각했는데.
하물며 총대를 메고 모든 일을 선두에서 지휘한 것은 나은이 였다.
각종 예약과 식장준비, 어른들한테 인사돌리는 것까지 나은이 손을 안
탄것이 없어서 고생은 나은이가훨씬 더 많이 했다고생각했는데...
“울지 마. 내일 얼굴부으면 어쩌려고그래.”
나는 허허 웃음을 지으며 나은이의 등을 토닥여줬다.
“아. 진짜울면 안되는데. 이씨.”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은이는 계속 코를 훌쩍 였다.
자그마한 손이 내 티셔츠를 못살게 굴었다.
“오빠.”
“응?,,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요.”
“내가복 받은 놈이지. 뭘네가고마워해.”
“그래도 고마워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끝내 다 털어놓지 않은 나은이는 그 자세 그
대로 내 품에 안겨 잠을 청했다.
이미 피로가 한계치까지 몰려왔던 우리는 그렇게 결혼식 당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
“이세호. 너 꿓반에 수진이한테는또왜 그랬니.”
“뭘 왜 그래.”
세호라는 남자아이는 몹시도 퉁명스러운 얼굴로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
어린아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세호의 얼굴에는 광이 난다고 할 정도의 잘
생김이 묻어있었다.
“왜 또 그렇게 못되게 말했냐고.”
“아니.그럼 못생긴 애를못생겼다고 하지 뭐라고 그래.”
게 임 기를 손에서 내 려놓은 세호는 한심하다는 투로 자신을 닮은 여자아
이에게 대꾸했다.
나은이를 똑 닮은 이목구비와 은은한 갈색 머리 카락이 나은이의 어릴 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 이세화.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뭐가.”
“내가모를 줄 알아? 너 엄마 없는데서만 아빠한테 귀여운 척 하는 거?”
“딸이 아빠한테 애교좀 부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불만인 거니?”
세화는 가소롭다는 듯이 세호의 말을 비 꼬았다.
“아니.그게 문제가 아니지. 너 그렇게 몰래 졸라서 모은스티커들 엄마가
알면 무조건 혼낼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빠가 나 예쁘다고 사주신 거야.”
“그렇게까지 콧소리 내면서 공주님인 척 하면 어떤 아빠든 사줄 수밖에 없
으시겠지.”
“이세호.”
세화의 말에는 가시 가 돋혀 있었지 만 세호는 물러 나지 않았다.
“뭐.이세화.”
“너. 그런 식으로 굴다가또 엄마 참관수업 때 망신 줄 생각인 거야?”
“그 얘 기가 지금 여기서 왜 나오는데.”
“너 지금 차버린 여자애 가 몇 명인 줄 알기나 해?”
세호라는아이는이미 어린 나 이임에도여성편력이 화려했는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너는 어제 네가깍두기 몇 개 집어먹었는지 기억하고사니?”
“네가 그러고 다니는 건 상관없어. 근데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한테 미안
해하잖아.”
“하... 진짜 짜증나게 구네.”
세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양손을 허리에 얹고 있었던 세화 앞에 섰다.
“야.이세화.”
“왜.”
“내가전에도 이야기했었던 거 같은데.”
세호의 손이 세화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난 못생긴 여자애들한테는 관심 없다고.”
“…거절할 때 조금만 착하게 말하라는 거 잖아.”
“걔 네 마음대로 고백한 건데 왜 내 가 미 안하다고 해 야 되는데.”
“다른 사람 입장도 고려해 야한다고 엄 마아빠가 알려 주셨잖아.”
세호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세화의 턱 끝에 도달했다.
쪽.
손에 힘을 주자 세화의 상체가 세호 쪽으로 쏠렸다.
이어지는 짧은 입맞춤.
“내가하지 말랬지.”
“가족끼리는 원래 해도 되는 거라고 하셨잖아. 엄마아빠가.”
세호가 비릿한 웃음을 짓자 세화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그를 노려보았
다.
“적어도 너나 엄마 정도 예뻐야 나도 상대를 해줄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말한세호는그대로몸을 휙 틀어 다시 게임기에 손을 얹었다.
"쓸데없이 잘 생기기만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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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좀 일어나요! 이제!”
“오우... 야...”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요. 결혼식 당일 아침인데. 어디 아파요?”
나는 조금 전까지 내 가 꾼 것이 꿈이 라 정 말 다행 이 라는 생 각이 들었다.
“아... 꿈을 좀 꿨어서...”
“무슨 꿈이었는데요?”
나는 대답 대신 봉긋 솟아오른 나은이의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그냥... 그렇게 좋은 꿈은 아니었어.”
얘들아...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