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184.메스
“메스”
손을 말끔히 씻고 수술에 들어가는 의사 마냥 두 팔을 들어올려 칼을 달라
는 신호를 줬는데 오빠는 멀뚱멀뚱 뒤 에서 나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뭔 소리야. 너 암컷이라고?”
“아니 오빠. 눈치껏 해요. 눈치껏. 알잘딱 몰라요?”
변태 아니랄까봐 암컷이 라고 말하는 것 좀 봐.
“몰라.그래서 뭐달라는건데.”
“칼이 요. 이거 일단 좀 썰어야할 것 같아서.”
다행이도 고기에 한약향이 깊게 남아있지는 않아서 겉부분만 좀
도려내면 괜찮지 않을까싶던 나였다.
아버 님 과 어 머 님 의 만류에 도 불구하고 내 가 요리 를 대 접 해드리 겠다며 주
방을 빌려달라고 한 상황.
실패하면 개쪽을 당할 것이 뻔했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요리를 완성해야
만했다.
한약향이 나는 돼지고기를 뭘로 갱생시켜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
단을 내렸다.
“동파육을 해야겠어요.”
“동파육? 너 그런 거도 할 줄 알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오빠.
“네.집에 청경채 있나봐줄래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빠는 뒤에서 부스럭 거리며 냉장고를 뒤졌다.
“없어.대신이거 뭐냐. 보쌈용 쌈은 있는데 ?”
“그럼 오빠가 슈퍼 가서 좀 사와 줘요.”
“…그냥 있는 거로 만드는 방법은 없냐?”
“어 머님한테 나 망신 주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요.”
다녀오겠습니다:
엄 마 소리 에 군기 가 바짝 든 오빠는 바로 주섬주섬 지 갑을 챙 겼다.
“크기는? 큰 거? 작은 거?”
“대충 이만한 사이즈에 담겨 있는 걸로 사와요.”
손짓으로 크기를 알려준 나는 한숨을 푹 내쉬 었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그래도 알아서 잘 사오겠지.
칼질하는 거 아니 면 잘 해오잖아요. 당신.
한약향이 진동하는 냄비를 일단 말끔히 닦아낸 나는 손등으로 땀을 닦아
냈다.
어후스 아버님도 진짜...
이걸 어떻게 여섯 병 다넣으실 생각을 했지.
...이제 진짜 기나긴 수술을 시작할 때였다.
…
“이야...이건 굉장한걸?”
“그러게요... 나은 씨. 이거 다 직접 만든 거예요?”
이것이 정녕 집에서 나올 수 있는 음식인가 싶은 비쥬얼에 부모님과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맛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한번 잡숴들보세요.”
겸손.
과한 겸손이었다.
냄 새부터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저 소스에 수육 고기를조졌는데 이게 어떻게 맛이 없냐고.
“그럼 잘 먹겠습니다.”
나와 나은이 가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신경 쓰이신 걸까.
아빠는 먼저 크게 고기 한 점과 청경채를 옮겨가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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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이의 목에는 한 줄기 땀을 흘러내렸다.
계속 불 앞에 오랜 시간 서있어서 더웠던 모양이었다.
아닌가. 긴장해서 그런건가.
“오우. 이거... 아주...”
음식을 맛본 아빠는 말 대신 젓가락으로 엄마한테 얼른 먹어보라는 시늉
을 했다.
“잘 먹을게요. 나은 씨.”
아빠의 반응이 그저 그녀를 위한 호들갑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엄
마의 반응이 말해줄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에 비하면 많이 차분한 사람이 었으니까.
식 사를 시 작하지도 못한 나은이 는 엄 마가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으음〜 나은 씨. 요리 정말 잘하네요? 평소에 해먹기에는 생소한 요리 일
것같은데.”
엄 마의 탄성 이 흘러 나오고 나서 야 웃음을 짓는 내 여 자친구.
“하아... 입맛에 맞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아니. 이거 입맛에 맞고 아니고, 그냥식당 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민호
야. 네 와이프 식당차려줄생각은 없고?”
아빠는 다시 크게 한 입을 하시며 연신 감탄을 내뱉으셨다.
“없어요.”
와이프가 매일 가게 나가있으면 섹스는 언제 하라고요.
“오빠도 먹어봐요.”
고기 한 점을 내 앞접시에 얹어준 나은이는 내 반응까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아 보였다.
근데 이거 답정너인데.
걸레를 빨아서 만든 소스라고 해도 맛있다고 해줄 생각이었다.
내 기를 한껏 살려준 그녀를 위해 이 정도도 못 해줄까.
“엉.너도 먹어라.”
나은이도 얼른 먹으라는 의미에서 고기를 입에 집 어넣은 나는 진지하게
식당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사람.
방구석에서 야짤을 그릴 게 아니라 요리 경연 프로라도 나가야되는 거 아
닌가?
어쩌 면 나는 야설로 세 계 적 인 요리사가 될 여자를 야짤을 그리는 암컷으
로 타락시켜 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살 처자가 레시피 안 보고 양념게장부터 동파육을 할 수 있는 건 절대
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예상대로 존나 맛있었다.
“맛있어요?”
“사먹는거보다 나은데?”
본능적으로 ‘너보다’라고 말하려던 나는 엄마아빠의 시선을 의식해 바로
방향을 틀었다.
“하... 혹시 맛 이상할까봐 엄청 걱정했는데 다들 좋아해주셔서 다행 이 네
요.”
“정말 맛있어요. 우리 민호 밥은 안 굶겠네요.”
“그럼요. 나은이가 얼마나 매 일 잘 해주는데...”
아...?
동거한 거...
말을 안한 거... 같은데...?
하얗게 질린 나은이의 얼굴.
의 아하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
“…나은 씨가 매 일 요리를 해준다고?”
“아... 아니... 그... 자주 해줬거든요. 연애 하면서. 우리 집에 반찬도 해다 주
고그래서. 많이 먹었어요.”
“아하하〜 아이〜 오빠〜 그렇게 말하면 어머님 오해하시잖아〜”
한톤더 높아진 나은이의 목소리.
더 수상해 보이니까 이제 그만해. 한나은.
잘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내 여자친구는 발연기 같이 오바를 하며 말
을 이어나갔다.
“오빠가 매일 배달만 시켜먹는 거 너무 신경 쓰여서 제가 자주 반찬도 해
다 주고 그랬거든요〜”
“그러니?”
약간은 미 심 쩍 은 표정 이 셨지 만 그래 도 부모님 은 다시 식 사를 재 개 하셨다
•
어우. 시발.
동거한다고 무심결에 말했다가는 나은이는 모르겠고, 나는 목도로 10대
는 더 맞았을 것 같았다.
걔 가 누군 줄 알고, 네 돈으로 마련한 집에 외간 여자를 들여서 어쩌고저
쩌고.
벌써 어지럽네.
“어후... 잘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자 어느덧 식사는 끝나갔다.
“나은 씨.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간다고 했죠?”
“네. 내일 아침 버스편 예매해두고왔어요.”
“민호 너도 나은 씨랑 같이 가고?”
“나은이 혼자보내기 그래서 저도 같이 가려고요.”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는데 너무 일찍 가는 것 같아 아쉬워하시는 눈치
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독립.
새로운 가정을 차리게 될 예 정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독립 이라고 할 수 있
었다.
“그래... 그럼 일단 좀 쉬고들 있고, 이따 다시 상견례 날짜랑 결혼식에 대
해 얘 기 를 좀 하자꾸나. 오래 말을 하나보니 까 우리 도 진 이 다 빠지 네.”
듣는 우리도 지치는데 엄마 아빠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네.”
“나은아.그러면 내방가있자.”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자 나은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설거지 도와드리고 가야죠. 뭔 소리에요.”
“아녀아녀. 설거지는 우리가 할게. 임산부가 음식도 해줬는데 설거지까지
시켜서야쓰나.”
아빠는 거의 반쯤 떠밀다시피 나와 나은이를 내 방으로 밀어 넣으셨다.
아빠가 문을 닫고 나가신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나은이를 끌어 안아주
었다.
“고생했어:
“…힘들긴 하네요.”
보통 이 럴 때면 장난스럽게 ‘나도 알아요.’ 이 런 소리 나 했을 나은이 였지
만 오늘의 나은이는 진짜로 녹초가 된 것처럼 보였다.
“좀 쉬어.”
“그러려고요.”
침대에 털썩 드러누운 나은이.
바로 옆에 걸터앉은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아...힘들다...”
“참 대 단해 . 그 지옥에 서 나온 냄 새를 풍기 던 수육을 살려 내 다니.”
“나 진짜 신의 그 자체 였다니까요.”
본인 요리 매드무비라도 리플레이하려는 건지 나은이는 손을 휘적이며 칼
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후...그래도동거하는 거 안걸려서 다행이다.”
“오빠.솔직히 그때 저 진짜좆됐다고 생각한 거 알죠.”
“응. 너 눈으로 나한테 쌍욕하던데 ?”
“오오... 역시 남편 될 사람 아니랄까봐한눈에 알아보셨군요.”
서로를 이리도 잘 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내용이 쌍욕이 맞았다는 점에서 슬퍼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어찌 넘겼으면 된 거 아니겠냐고.”
괜히 심술이 나서 나은이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나은이는 쿡쿡 거리며 나
를 밀쳐냈다.
“아〜 하지 마요〜”
“누가남편한데 쌍욕하래.”
“그럼 앞으로 섹스할 때 나한테도 욕 안 할 거예요?”
순정 만화에 서 튀 어 나올 듯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네가 싫다고 하면?”
나은이가 싫다고 하는데 무리하게 내 취향이랍시고 쌍욕을 퍼부을 생각
은 없었다.
“내가 원한다고 하면요?”
이 어지는 반문에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살포시 나은이의 배 위에 두손을 얹었다.
“…뭐해요?”
“애기귀 막는중.”
“정말이지… 또... 와이프한테... 얼마나 심한 말을 하려고...!”
상처 입은 비련의 여주인공표정 하지 마. 한나은.
그녀의 가식적인 표정 이면에 있는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상체를숙이자점점 더 나은이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내 입이 멈춘곳은그녀의 귓구멍.
“너는 앞으로도평생 욕받이 겸 좆물받이 될 준비해. 씹보지년아.”
나지막이 속삭이자 나은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헤으응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