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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러레님!-183화 (183/276)

<183화 >#183.수술

“뭐 사왔어요?”

“고기 사왔다.”

비닐봉투에서 식료품을 하나둘씩 꺼내는 아빠.

나도 옆에서 돕겠답시고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은이도 옆에서 도우려고 했지만 그녀를 제지한 건 나보다 먼저 선수를

친 아빠였다.

“나은 씨는 가서 쉬고 있어요. 애도 있는데 뭘 이런 걸 할라그래요.”

“맞아. 나은아. 너그냥 쉬어. 내 가 아빠 도와드릴게.”

“그래도...”

그때였다.

“나은 씨는 잠깐 나랑 따로 이 야기 좀 하죠.”

안방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신 엄마에 의해 나은이는 그대로 연행되었다.

둘이 무슨 이 야기를 할까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은이 니까 어련히 잘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보다는 요령이 있는 애니까.

냉장고 정리를 얼추 끝내자 아빠는 바로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하셨다.

“뭐야. 엄마가 안해요?”

“네 엄마가나은 씨랑얘기하신다잖냐.”

“그럼 밥을 아빠가하는 거예요?”

“어차피 고기 먹을 건데 그 정도 준비는 내가 해줄 수 있지. 민호 너도 손 닦

고이리 와라.”

아빠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옆에 섰다.

“거기 파채좀 썰어봐라.”

“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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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소질이 없었지만 이런 단순 노가다 정도야.

건축학과에서도 질리도록 한 것이 칼질이 었다.

물론 좀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말없이 서걱서걱 파를 썰자 아빠는 담담한 목소리로 사과를 건네셨다.

“…좀 전에는 때려서 미안했다.”

“에이. 아니에요. 맞을만했죠. 뭘.”

내 아들이 그랬다고 해도 가만히는 안 뒀을 것 같은데.

엄격한 우리 아빠가 그 정도 선에서 끝난 거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만 하

는나였다.

“...나은 씨말이야.”

“네.,,

“예쁘더라.”

아빠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솔직히 네가그렇게 예쁜 아이를데려올 거라는 기대는 살면서 해본적이

없는데 말이지.”

“아니. 아들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게 그렇잖냐. 네 평소하고 다니는행실도그렇고, 여태 여자애 한 명 안

나본 것도 감안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신기하다는 거지.”

대충 모쏠 아다 쉐끼 였다는 말을 길게 하시는 아버 지.

“확실히... 운이 좀 좋기는 했죠.”

우연으로 시 작한 관계 인 것은 맞았으니 까.

내가 한겨울이 아니었다면.

나은이가 HNE 가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 마냥 서로의 정체를 모르고 남으로 살

아갔으리라.

“물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알겠지만, 예의도 바른 것 같고.”

조금 전 험악한 분위기와 달리 아빠는 나은이에 대한 이런저런 감상들을

늘어놓으셨다.

“맞아요. 어른들한테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내가칭찬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한걸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애를 갑자기 임신은 시켜가지고! 이 새끼야!”

“아빠! 칼! 우리 칼은 놓고 얘기해요!”

목도는 내 가 어 떻 게 그러 려 니 했지 만 그건 좀 진짜 무섭 단 말이 에요.

고기에서는 잘라내다가 묻은 기름들이 식칼 끝에서 바닥에 뚝뚝 떨어졌

다.

“아... 미안하다... 아. 근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올라오는 걸 어떡하

니.”

어우... 이 분조장...

아빠의 분노조절장애 같은 면모는 언제 보더라도 예측을 할 수 없었다.

마치 폭발 시 기 를 알 수 없는 화산 같은 느낌 이 랄까.

어렸을 적부터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는데.

“아빠. 나도 애아빠될 예정이에요...조금만소중히 다뤄주세요...”

“그러게... 나도 할아버지구나... 곧...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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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허탈한 듯이 웃으시더니 마저 고기를 준비하셨다.

“민호야. 내가스물아홉 때 너희 엄마랑 결혼했거든.”

“네.”

“그니까 너를 가진 게 서른 살이란 말이지?”

“네.,,

추억에 잠기신 듯한 아빠의 표정.

“아직 도 기 억 나네 . 대 학을 나오고 딱 취 직 을 했는데 나온 게 너 였단 말이

지.”

그로부터 아빠는 내 가 귀 에 박히도록 들은 엄 마와의 결혼 이 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하셨다.

다 아는 내용이 었다.

어쩌다 아빠가 엄마한테 반했고, 어떻게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 나갔는지.

어떻게 결혼을 하시고 나를 갖게 되었는지.

하지 만 어째서 일까.

오늘만큼은 지 루하다고 생 각했던 그 이 야기 들을 나는 한 귀 로 듣고 한 귀

로 흘릴 수가 없었다.

어머님과의 독대는또다시 내 손에 땀을쥐게 했다.

오빠의 방으로 추정되 어 보이는 방 안쪽으로 들어온 나는 어머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나은씨.”

“네...”

“왜 그렇게 위축되어있어요.”

어머님한테 쫄아서요.

아직까지도 냉정한 어머님의 말씀들은 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런거.”

“물론 편하기 어려운 자리인 거 나도 알지만, 그래도 또 필요한 이야기들

은 주고 받아야하니까 몇 가지 좀 물어볼게요.”

“네네.”

긴장의 끈을 한 치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었다.

“일단나은 씨 가족 관계에 대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네요.”

호구 조사.

오빠도우리 집에서 내리 당했던 것이기에 나도 별반 다를 것 없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 부모님 두분다 계시고, 여동생 한 명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 분들이세요?”

“아버지는 저희 동네에서 가게 운영하시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세

요.”

“동생은대학생이고요?”

“아. 네.올해 입학했습니다.”

어머님이 동생의 입시 결과를 물어보시자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

다.

나나 오빠보다 좋은 학교 갔으니 까.

언니가 네 덕을 보기도 하는구나. 나연아.

“그렇군요. 나은 씨 우리 민호랑 같은 학년 맞죠?”

“네.”

“지금은 휴학했다고 했으니 앞으로 학교는 어떻 게 할 생 각이 에요?”

딙월에 임신했으니 ... 10개월 후면 출산은 씁월 무렵 이구나...

“휴학을 1년 더할생각입니다.”

내 몸도 몸이었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이를 돌봐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오빠 졸업하는 거 기다리고 그 다음 해에 복학하려고요.”

아직 오빠랑 제대로 상의는 못했지 만 이 게 최 선인 듯 싶었다.

“졸업 이후에는취직을 할생각은 있어요?”

“어... 아마 프리랜서로 일할 것 같아요.”

“프리랜서요?”

“그... 제 가 건축 일은 아니 지 만 따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어서요.”

“음...그래요?”

잘 모르겠다는 표정.

그저 제 발 그린 그림 을 보여 달라는 말만 안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었다.

“나은 씨. 나는 솔직히 우리 민호가혼자 집에서 유일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 었으면 하는 바람이 에요.”

“물론 민호 녀석이 어찌저찌 10억이라는큰돈을 모은건 사실이지만그돈

은 만약 두 사람이 집을 매매한다고 하면 한 번에 사라질 돈이에요. 서울 기

준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고요.”

서울 집값...

어머님의 현실적인 발언들에 나는침이 꿀꺽 넘어갔다.

지금은 현재 계약을 해놓은 집이 있었기에 아직은이사할계획이 없는우

리였다.

하지 만 이사는 필연적 이 기는 했다.

창도 하나 없는 방을 끼고 그 좁은 집에서 세 명이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너무 우리 아들한테만 경제력을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적어도 아드님의 일러스트 비용은 제가 백 단위 이상으로 아껴드리도록

할게요. 어머님.

“그리고우리 민호...”

뭔 가 하실 말씀이 남으신 것 같은 그 순간이 었다.

“엄마!”

벌컥 문을 여는 오빠.

아니. 이 사람아 노크나 좀 하고 들어오라고 하려고 했지 만 뒤 에 서 느껴 지

는 심상치 않은 냄새에 나는 지금이 비상사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님도 바로 눈치 채셨는지 말을 멈추시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아니. 당신 뭐하는 거예요!”

“이 거 사온 걸로 수육 좀 해줄라 했지.”

맹세 컨대 이 건 내 가 아는 수육 냄새 랑은 거리 가 멀어도 아득히 먼 냄새 였

다.

부엌으로 뛰 어가신 어머님을 나는 쫄래쫄래 뒤 따라갔다.

코를 찌르는 듯한 한약향.

나는 무슨 한의 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 었다.

“…지금저거 몇 개를 집어넣은 거예요?”

“한... 閌병? 집에 있는 거 다 넣었는데.”

사고의 현장은 말 그대로 대참사.

그와중에 삐뚤빼뚤 썰어놓은 파채를 보니 열이 받는다고해야하나.

그냥 칼질 해놓은 것만 봐도 오빠가 한 것이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냥재료손질만하지.왜 멀쩡한고기를 저렇게 만들어요.”

“당신 나은 씨랑 얘기한대서 미리 해놓으려 했지.”

“할거면 잘좀하지 누가이걸 閌병씩이나 넣어요!”

아버님 이 냄비 안에 집 어넣으신 건 소화제로 자주 약국에서 판매되는 鵒화

탕.

자주 고기 잡내를 잡기 위해 쓰인다고는 하지만 이건 투머치임이 확실했

다.

“어휴! 얼른 다시 꺼내요.”

어머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우왕좌왕하는 아버님과 오빠.

나는 지금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바로 점수를 딸 기회 임을 확신했다.

또 한나은 하면 요리를 빼놓을 수 없지.

“어머님! 제가할게요!”

진짜. 이민호.

당신은 나한테 감사해 야 한다니 까.

그렇게 나는 뜬금없게도 시댁에 처음 와서 망가져버린 수육 수술에 들어

가게 되었다.

...물론오빠가 거지 같이 썰어둔파채도 내가다시 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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