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180. 사랑의 대
“...이건 어때요?”
“예쁜데?”
“아... 진짜 그런 성의 없는 대답 말고요.”
조금이라도 어머님 취향에 맞게 옷을 입고 가고 싶었는데, 이놈의 남자친
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예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예쁜 걸 예쁘다하지 뭐 어떡해.”
“그러니까 오빠 보기 좋은 거 말고, 어머님이 좋아하실 거 같은 거 좀 알려
달라니까요.”
“우리 엄마도대충 나랑비슷하지 않을까?”
아들내 미 키 워 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자주 듣고는 했는데 …
뭔가 오빠의 어머님이 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빠. 어머님 좋아하시는 음식은 알아요?”
“우리 엄마는다좋아해.”
...세상에나.
나는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그냥 내가 알아서 단정하게 입고 갈게요. 오빠 나가 있어요.”
“아니 .반응 뭔데? 진짜라니 까?”
“알겠으니까 나가요.”
오빠의 등을 떠 밀어 침실 밖으로 내보낸 나는 그나마 내가 괜찮다고 생각
했던 후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성숙하게 보이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풋풋한 대학생처럼 보이는 편이 좋을까.
어느 쪽이든 장단이 있는 구조였다.
어려 보이게 입을 경우, 이렇게 어린 애를 임신시켰냐며 화를 내실 것 같고,
조금은 나이 들어보이게 입는다면 어린 애가 나이들어 보이게 하고 다닌다
며 핀잔을 주실 것 같았다.
그래도 오빠가 그나마 준 힌트라고는 청초한 느낌을 좋아하신다고 하시
니까.
흰색 바탕에 연분홍색 무늬 가 수놓인 원피스를 집은 나는 이걸로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거울을 앞에 서서 한 바퀴 돌아본 나는 그래도 그냥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
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머님 아버님의 취향이야 내가직접 보고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가방을 챙기고 있는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노트북은 왜들고 가요?”
“신작 써야지.”
“거기까지 가서 신작을써요?”
“...한 푼이라도 빨리 더 벌어야 되는 것 같아서.”
물론 내 가 하지 말란 짓으로 번 돈이 기는 했지 만 10억 씩 이 나 벌어놓고
저런 소리를 하다니...
현재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도부모님 오랜만에 뵈는 건데 그냥 같이 가족하고 시간보내요.”
“아냐아냐. 너희 가족처럼 그렇게 우리는서로에게 관심이 많지는 않거든.
”
“오빠만 관심 없는 거 아녜요?”
“아들만 있는 집에서 네 가 안 살아봐서 그래.”
충전기까지 잘 챙긴 것을 확인한 오빠는 가방을 등에 들쳐메고는 현관으
로 향했다.
“너 짐은?”
“잠시만요.”
어제 준비해둔 배낭을 가져온 나는 다른 한손에는 아버님 어머님을 위한
선물을 손에 쥐었다.
“선물은 나주고.”
“대신 이따가 도착해서는 내가들게 해줘요.”
“그럼. 네 돈으로 산 건데, 내가 산 것처럼 굴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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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빠가 우리 엄마한테 해준 거에 비하면 금액은 부족할지 몰라도, 나
름 성심성의껏 고른 선물이었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기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잠깐 시간
이 남아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초코 먹을 건데 너는...”
“저는 딸기요.”
아무런 생 각 없이 녹차라고 말할 뻔했네 .
우리 아가는 왜 이렇게 녹차를 싫어하는 걸까.
“딸기랑 초코하나요.”
딸기 아이스크림을 내게 줄 것처럼 굴던 오빠는 내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왜 먹어요!”
“아니. 야. 내 가 사준 건데 한입 정도는 괜찮지 않냐?”
“오빠. 아빠가돼서 지금 애기가 먹고 싶다는음식 뺏어먹은 거예요? 벌써
부터 그러면 우리 아기는...”
진짜로 딸기 향이 코끝을 간질이 자마자 입 에 군침 이 돌았던 나는 오빠의
행동에 살짝 기분이 나빴다.
“야... 야... 부족하면 더 사줄게. 뭘 화를 내고 그래.”
“화안 냈어요.”
“임신만 아니었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텐데.”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나는 숟가락을 입 안에 집 어넣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딸기향.
이거에 이렇게도 행복감을 느끼는 걸 보면 아마 우리 아가는 여자아이지
않을까?
“오빠.”
“엉.,,
“오빠는지금제 배에 있는 아기가 남자애였으면 좋겠어요, 여자애였으면
좋겠어요?”
“성별은 크게 신경 안쓰기는하는데, 음... 그러게나...”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던 오빠는 이 내 고개를 끄덕 였다.
“이왕이면 남자애로 하자.”
“엥.왜요?”
“뭔가 목욕탕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저는 혼자 들어가라고요?”
뭐 야. 자기는 아들이 랑 둘이 하하호호 놀고, 나는 혼자 있다 오라는 건가.
“그럼 딸도 하나 더 낳으면 되는 거지.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해. 한나은.”
“둘째도 아들이면요?”
“10명 낳으면 한명쯤은딸이 있겠지.”
언제나 아이들을 잔뜩 낳는다고 선포한 오빠였지만 실제로 임신을 한 번
해보니 그렇게 많이 낳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경제적인 이유나 아이들에 늘어남에 따라 올라가는 피로도도 있기는 했
지 만, 그런 거 아니고도 그냥 지금 당장 섹 스를 못한다는 거 만으로도 나는
스트레 스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 이 었다.
10명 낳는다고 하면 10년 동안 섹스를 조심하며 살아야한다는 소리 아닌
가.
섹스도 얼마 못하고 애만 낳다가 할머니 되는 거는 내 쪽에서 사양이었다.
오빠랑 오래 오래 아이 들 몰래 떡 치고 싶은 바람이 었다.
“그럼 깔끔하게 남자애 하나 여자애 하나로 하죠.”
“뭐야. 끝이야?”
“일단 얘부터 낳고 생 각하자고요.”
내 가 손을 배 위 에 얹자 오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얼추 기 차 출발 시 간이 가까워 지 자 승강장으로 내 려간 우리는 자리를 찾
아 앉았다.
“와. 저 기차진짜오랜만에 타봐요.”
“나는 집 내려갈 때마다타서 말이지.”
“얼마나걸려요?”
“1시간 반정도.”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리자 열차는 천천히 움직이 기 시작했고 나는
창가에 딱 달라붙어 서 밖을 내 다보았다.
“얼마만에 집 내려가는 거라고했죠?”
“그때 설날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으니까 대충 세 달?”
“갈때 되기는 했네요.”
“딱 閌개월에 한번이 좋은 것 같은데 말이지.”
“에이. 너무길다. 그건.”
“가족은 오랜만에 볼수록 반가운 법이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랑도 결혼하면 가끔볼 생각이에요?”
“뭔 소리야. 너는 와이프니까 다르지.”
“오. 와이프는 자주 봐도 좋다?”
“당연한소리를 하고 그러냐.”
왼쪽 허벅지에 슬며시 손을 올리는 오빠.
“매 일 따먹어 줘 야지. 우리 나은이.”
“오빠...”
사람이 없는 한적한 열차였다면 좆이라도 빨아줬을 텐데 말이지.
애석하게도 오늘 열차는 사람이 좀 많은 듯 싶었다.
…
기 차를 타고 내 리 자 보이는 익숙한 광경 .
나은이는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마냥 내 팔뚝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어디로 가요?”
“이리로 쭉 나가서 버스 한 번 타야해.”
“오래가요?”
“그닥. 한 15분이면 가.”
나은이의 손을 붙잡고 버스에 탄 나는 이제야 슬슬 엄마 아빠의 반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암만그래도 나은이한테 뭐라 하시지는 않겠지.
차라리 패도 나만패시겠지.
근데 중요한 것은 진짜로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 작했다는 점이
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절대로 말을 잘 해줬을 것 같지 가 않은데 … 흠...
“오빠. 나 화장 이상한데 없죠?”
립밤을 바른 후 입을 뻐끔거리던 나은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예뻐.”
“그건 나도 알고요. 이상한 데 없냐고요.”
남자한테 백날 화장이 어쩌구저쩌구 해봐라.
알아듣는 놈이 얼마나 있나.
“몰라. 예쁘면 된거지.”
“으휴〜 정말...”
손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본 나은이는 마지막으로 눈썹을 슥슥 그리더니
화장을 끝냈다.
“이제 내리자.”
“네.,,
날씨가 썩 좋은 것이 맞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파트에요?”
“응. 閌층.”
“뭔가애매한층수네요.”
“뭐가애매한데.”
“엘리베이터 정전 됐을 때 느끼는 곤란함을 기준으로?”
실제로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던 나는 수긍한다는 의 미로 고개를 끄덕 였다.
“못 올라갈 레벨은 아니기는 해.”
“그러니까요.”
별 것 아닌 대화를 나누자 어느덧 우리는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엘 리 베 이 터를 타자 느껴 지 는 중압감.
집에 가는게 이렇게 골 아픈 일이었나.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들려오는 발소리.
이윽고 잠금장치가 열렸고 엄마가문을 열어주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나은이 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드리 자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 셨다.
“어서오렴.”
평소에 집에 돌아왔을 때와는확연히 다른 반응.
쎄하다. 쎄해.
“이름이 뭐니?”
“한나은이라고 합니다.”
“그래. 나은아. 너는 잠시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고, 민호 너는 잠깐 안방으
로들어와라.”
“나? 나만요?”
“응.너만.”
단호한 엄 마에 말에 나는 소파에 서 일어 났고 나은이 는 불안하다는 눈초
리로 연행되는 나를 지켜보았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 가자 내 가 마주하게 된 건 우리 아빠.
명상을 하는 것처럼 가부좌를 틀고 계시던 아버지의 허벅지 위에는 목검
이 올려져 있었다.
“여보. 민호 왔어요.”
“애 엄마는?”
“지금 거실에 왔어요.”
“그래...그렇단말이지...그럼 오래 기다리게 할수는없겠구나.”
무슨 다짐 이 라도 한 듯이 자리에 서 일어난 아빠.
아버지가 내게 건넨 첫 마디는...
“엎드려. 이민호.”
...진짜로요?
...저 스물일곱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