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178.시댁
“전화 누구였어?”
“아.나연이요.”
나연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녀가우리 집에 머물렀다 간 것도 이제 한 달이 더 넘어가고 있었다.
“너 임신한 거 말했어?”
“아뇨? 내가 직접 말은 안 했는데, 엄 마가 다 얘기했나 봐요.”
“그래서 뭐래?”
이제 진짜처제가되겠구나. 나연이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나연이와의 첫만남은 잊지 못할 것 같기는 했다.
갑자기 그때의 민망함이 몰려오자 나는 두 손을 모아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더럽혀진 나도 사랑해주는 나은이한테 무한 충성해야할 일이었다.
“어...뭔가놀란거 같더라고요.근데 그렇다고딱히 막소리를 지른다던지
충격에 벌벌 떤다던지 그런 건 없고.”
“다행이네.”
나연이가 만약 나 같은 놈한테 언니를 줄 수 없다며 난리를 피웠다면 이 결
혼은 정말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그야 언니가 이상한 남자 만나서 이상해졌다라고 하면 장인어른 장모님
께 반박할 거리가 없기 때문에.
고추를 덜렁거리며 대문을 열어주는 남자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근데 걔 벌써 입학 이후에 고백 네 번이나받은 거 있죠.”
“오오...그래서지금은 연애 중?”
“아뇨? 마음에 드는 사람 없대요.”
“하긴 나연이 정도외모면눈에 안찰수도있지.”
내 가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이 자 나은이 는 눈을 게 슴츠레 하게 떴
다.
“저도한고백 받았거든요. 1학년 때는.”
내가 나연이 예쁘다고 칭찬하자 나은이는 자기도 칭찬이 마려운 모양이
었다.
만날 예쁘다 예쁘다 해주는데도 부족한 걸까.
“다행이다.그때 내가너한테 관심 없어서.”
“엥.왜요?”
“내가 너한테 그때 차였으면 너한테 라카 빌리러 갈 엄두도 못 났을 테니
까.”
나은이의 외모에 눈이 멀어 고백을 박았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에 얘랑 이
러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차인 여자애한테 손 싹싹 비비면서 빌려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 었다.
“한겨울입니다. 하고 명함 딱줬으면 그 자리에서 아랫배 하트 하고 혓바
닥내밀었을 텐데 말이죠.”
내 위에 올라탄 나은이는 배꼽 아래쯤에 손을 얹더니 복종의 하트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명함같은게 있을 리가 있냐.”
나은이의 포즈에 존나 꼴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명함이 있다면 어떤
형태 일까 상상해봤는데 웃기 기는 했다.
[노벨 월드소속 야설 작가: 한겨울]
뭔 가 한국어로 야설이 들어 있으니 별로인 것 같기도.
[PRO YASSUL CREATOR: WINTER]
야설이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서 야설 그냥 영어로 쓰자 생각했는데 이게
더 나은 것 같았다.
“왜요. 하나 만들어 줄까요?”
내 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나은이는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주겠
다는 듯이 내 게 물었다.
“아니 . 딱히 . 너 말고는 내 가 야설 작가인 거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데 ?”
“왜 내가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썼다고 말을못해요!”
그걸 어디서 누구한테 말을 하고 다녀! 이년아!
“그러다가 너 같은 암컷이 복종의 하트 만들면서 나 따라오면 어떡하려고.
”
말잘했다. 한나은.
이럼어쩔건데.
“오빠가헤벌쭉 하면서 넘어가면 나 이혼할 거임.”
“오. 요즘 웹소설 이혼이 트렌드던데.”
항상 이혼 후에는 끝내주는 미녀가 따라오는 것이 국룰이 었다.
“현실하고 반대되는 판타지가 함유돼서 인기가 있는 거겠죠.”
상당한 통찰력.
이런 거를 말할 때마다 느끼는 거기는 하지만, 나은이는 진짜로 나보다 소
설 쓰는데 재주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빠. 이제 슬슬 어머님 아버님한테 연락 넣어놔야 하는 거 아
니에요?”
내 무릎 위에 앉은 나은이가 묻자 나도 드디어 숙제를 할 시간이 다가왔음
을 통감했다.
이런기분이었구나... 한나은...
막상 휴대폰을 딱 꺼내서 엄마두 글자를 보니 머리가 띵해지는 것이 느껴
졌다.
고멘. 엄마.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나 지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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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비켜줄까요? 혹시 듣는 거 불편하면?”
“음...아니야.너 여기 있어라.나그냥나가서 산책 한바퀴 하고올게.”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 언성이 높아지거나 나은이가
들으면 곤란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요.”
휴대 폰과 지 갑을 챙 기고 슬리 퍼 에 발을 집 어넣자 나은이 의 목소리 가 침
실에서 큰 목소리로 들려왔다.
“올 때 딸기 좀요!”
“오냐.
99
아가가 먹고 싶다면 산삼이 라도 사다줄 생 각이 있었다.
원래부터 돈 때문에 쪼들린다 이런 건 거의 없었지만코인 덕에 확늘어난
자산은 내 금전감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10억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빌라를 나서서 늘 가던 공원 의 자에 앉은 나는 짧은 심호흡을 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은 연결음이 이어지고...
[여보세요.]
[어. 민호야.]
[어. 엄마. 별일 없지?]
[그럼 별일 없지. 너는 잘지내고?]
저요? 저야 잘지내기는 하죠.
이제부터 할 말이 문제지.
[아. 그럼.]
[근데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전화를 다하고그러니.]
뭔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굉장한 불효자 같잖아. 엄마.
원래대로라면 이 말을 실제로 내뱉어야 정상이었지만 오늘은 실제로
불효를 범할 예 정 이 었기 에 나는 꾹 참고는 준비한 말을 이 어나갔다.
[내일이나 모레쯤에 본가 내려가려고.]
[왜왜. 무슨일 생겼어?]
[응.]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보통 일은 아닐 거 같은데...]
역시 엄마는 내 목소리만으로 바로 내 상태를 알아보실 수 있었다.
지구 상에서 나은이와 더불어 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여성이셨다.
[...여자친구가 임신했어.]
이야〜 간결하고 좋다〜
주어와서술어.
딱 두 개의 문장성분만으로 이렇게 쉽게 전달이 되다니.
간단한 단어와는 달리 그 안에는 비 정상적으로 많은 무게 가 담겨 있었다.
[...민호 네가 여자친구를 임신시켰다고?]
네.메챠쿠챠질내사정을 100번 정도하니까 1프로의 확률을뚫고생기더
라고요. 어머니.
무려 상위 1퍼 아이랍니다.
[네.]
잠시 아무런 대답이 없는 엄마.
[...미쳤구나.]
엄마의 살벌한 목소리에 나는 척추가 쭈욱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쳤구나. 네가. 이민호.]
[아니 . 엄마 나 저기 여자친구네 부모님한테도 말 잘 해놨어. 너무 그러지 .]
[내가 언제 너를 그렇게 책임 없는 애로 키웠어!]
진심이 담긴 불호령에 나는 잠시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
다.
아우.귀 아파.
[내가 언제 너보고공부를 잘하라했어? 내가 언제 너한테 뭐 효도하라
했니 ! 어른이 됐으면 어른답게 만 행동하라 했잖아!]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엄마는 그렇게 화가 많으신 분이 아니셨다.
원래 온화하신 분이시 기도 하고,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잔소
리도 잘 안 하시는 분이셨다.
그렇기에 엄마의 이런 반응에 나는솔직히 많이 놀라고 있는중이었다.
[아직 너도 네 여 자친구도 대 학 졸업도 못 했을 거 아니 니 . 집도 없고 직 장
도 없으면서 뭐 가 어쩌고 저째?]
[아니 아니. 엄 마. 들어 봐. 내가 말은 안 했는데 .』
아들이 야설로 대기업 직원 부럽지 않게 돈도 많이 벌었고요.
이번에 코인해서 10억을 벌었다니까요?
[듣기는 뭘 들어! 너 당장 내일 집에 내려올준비해 여자친구 걔도 데려오
고. 이제 끊어. 나 네 아빠랑 전화해야겠으니까.]
오우. 시발.
아빠한테 도 내 가 말하려 했는데.
이미 끊어진 통화화면을 내려다본 나는 이번 여정도 쉽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 면 나은이네보다 어려울지도...
화를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는 건 원래 두 배로 무서운 법이었다.
…
오빠가 집에 나간 뒤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해둔 임신 출산 육아서를 펼쳐
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로 나는 엄마가될 준비를 해야만했다.
몸에 좋은 음식 이 있다면 그거 위주로 챙 겨 먹을 생 각이 었고, 운동도 그런
헬스보다는 요가나 필라테 스 위 주로 해 야 하지 않을까 싶 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일은 일단은 주문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많고 결혼식 준비를 하게 된다면 바빠질 것이 뻔
했다.
솔직히 내 가 모아둔 돈이 그렇게 까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 었지 만 그렇
다고 몸을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당장 급한 일들을 해결하고 난 후에 천천히 오빠 거라도 작업을 해
야지.
오랜만에 오빠 야설 이외에 텍스트를집중해서 읽으려니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싶었던 찰나.
삐삐삐삐.
오빠가 돌아오는 소리 가 들려왔다.
“왔어요?”
의 자에서 일어나 오빠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
이사람왜이래.
무슨 귀신을 보고 온 것 마냥 하얗게 질린 오빠는 내게 딸기 상자를 내밀
었다.
“어.응.
99
“통화는 잘하고 왔어요?”
심부름보다는 통화를 하고 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식 탁 의 자에 몸을 기 댄 오빠는 한숨을 푹 내쉬 었다.
“모르겠네 • •• ”
“왜요. 어머님 화나셨어요?”
“아. 절대로 너한테 막그러거나 그런 건 아니기는 한데...”
말꼬리를 흐리는 오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확실한 듯 싶었다.
“나좀 좆됐을지도?”
상식이 이리도위협적인 칼날이 될 줄우리는 이 당시 상상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