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177.한정판
“그럼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 다.”
첫날 여기에 도착해 했던 인사와 마찬가지로 나는 상체를 폴더 접듯이 숙
였다.
영겁과도 같은 씁박 꿓일이었다.
아마내 인생에서 가장긴 씁박 꿓일이 아니었을까...
거짓말 안하고 눈을 뜨고 깨어있는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장모님과 장인어
른 눈치를 보느라 진이 쭉쭉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허하다는 말이 도대체 뭔가 싶었는데 딱그 말이 지금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조심히들들어가고. 나은이 너 몸 정말로조심해야한다. 엄마가 어
제 말한 거 꼭 기억해. 알겠지?”
“응응. 알았어요. 나도 이제 엄마될 거니까... 나혼자서도 열심히 알아보고
하려고요.”
“그래. 민호씨네 부모님한테도예의바르게 잘하고. 아마 우리만큼이나
놀라셨을텐데.”
우리 부모님 걱정까지 해주시는 장모님.
나은이의 따듯한 성품은 어머님을 닮아 그런 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
다.
“당연하죠. 나 어른들한테 잘하는 건 알잖아요.”
“당연히 알지〜 알아서 다〜 잘하는딸내미인 줄 알았는데 애가생겨서 올
줄 알고나 있었겠니.”
여 전히 그 사실은 골치 가 아프셨는지 장모님 은 이 마 위 에 손을 얹으셨다.
“자네...이거 받게나.”
안방에 들어가셔서 한동안 안 나오시던 장인어른은 작은 비닐봉투를 하
나 내게 건네셨다.
“감사합니다.근데 이게...”
뭐지? 옷 같은데?
“독슈리 구단 경기 보러 갔을 때 운좋게 얻게 된 싸인 티셔츠라네.”
내 가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셔츠를 스캔하자 장인어른은 내 어깨를 한 손
으로 꽈악 붙잡으셨다.
“...그래도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빈손으로 보내서야쓰겠나.”
솔직한 감상으로는 빈손으로 보내주시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만...
오랜 기간 응원하셨다는 것을 들은 만큼 분명 소중한 물건일 것이 분명했
다.
이 래 서 야 이 거 입고 응원 이 라도 가야할 것 같은데...
나 돈 내고 지 는 거 보러 가야 하는 건 가.
“감사히 받도록하겠습니다.”
내 가 웃음을 지 으며 봉투를 받아들자 장인어 른은 고개 를 끄덕 이 시 더 니
이 제 가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 조심히들 가고. 나은이는 조만간 앞으로 결혼이라든지 어떻게 준
비할지 고민되 거나 상의 할 게 있으면 언제든 바로바로 전화하렴 .”
“그럼요. 오빠네 부모님 만나고 나서 바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려무나... 그럼 마지막으로 민호 씨.”
“네!”
당찬 목소리 로 대 답을 드리 자 장모님 께서는 내 손을 꼬옥 붙잡으셨다.
“어련히 잘해주리라믿지만우리 나은이한테 잘해줘요.”
“물론이죠. 제가 공주님 모시듯이 언제까지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 오글거리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나가요.”
나은이는 내 멘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현관문 밖으로 밀어냈다.
“그럼 또 뵙 겠습니다〜”
“연락할게요〜”
예비 처갓집을 벗어난 나는 가방에 장인어른이 챙겨주신 티셔츠를 잘 집
어넣었다.
“그래도 어떻게 잘된 것 같다.그치?”
역으로 돌아가는 길.
뿌듯한 얼굴로 나은이를 바라보자 나은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갈 길 먼 건 알죠?”
남아 있는 이벤트들은 한가득이 기는 했다.
당연히 우리 가족 측에도 소식을 전해 야했고, 이후에는 언제 식을 올려 야
하는지, 내년 복학은 어떻게 되는지 등.
상의할 내용들이 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어머님이랑 아버님 나 그렇게까지 싫어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더라.”
만약 이번 방문 때 이미지가 나락을 갔다면 우리의 결혼은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 었다.
“...10억이다한거죠.뭘.”
“야. 그 10억을 만든 게 바로 나잖아. 그니까 내가 다 한 거 지.”
능청스럽게 나은이의 말을 받아넘기자 그녀는 두 볼을 부풀렸다.
“짜증나요.”
“왜.”
“뭔 가 오빠 갈수록 카사노바 같이 말함.”
“네가 허구한 날 억까하니까 나도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진화한
거랄까.”
“그냥 앞으로 내 앞에서 말고 밖에서는 말을 하고 다니지 마요.”
“야.만날 집에만틀어박혀 있는데 내가밖에서 말할일이 뭐가 있겠냐.”
“몰라요. 아무튼 하지 말라면 하지 마요.”
묘하게 집착이 늘어가는 것 같은 나은이의 모습이 왜 이렇게 흥분되는 걸
까.
성욕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 점점 더 나은이를 좀먹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내
성욕을 더 자극시켰다.
그 추적한 감정이 예뻐 보이는 것이 아마 내가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나은아.”
그늘이 진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자 나는 예고 없이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
다.
“네? 왜요?”
“나누구한테 뺏길까봐 겁나?”
노골적 인 질문이 악질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만 그럼 에도 듣고 싶은 것
은 남자의 어쩔 수 없는본능인 것 같았다.
“...아뇨. 겁 안나는데요?”
생각보다솔직하지못한데?
“근데 왜 밖에서 떠들지 말라고 해?”
“오빠. 내가 정확하게 설명해 줄게요.”
내 품에서 벗어난 나은이는 오히려 역으로 확 팔을 뻗으며 벽치기 자세를
취했다.
“오빠는 오빠보다 약한 사람한테 맞을까봐 무서워요?”
“그건 아니지.”
그렇게 팔 높이 들고 있으면 팔 안 아프니 좥
상당한 키 차이로 인해 나은이의 팔은 거의 벌을 서듯이 위로 올라가 있었
다.
“저도 딱 그런 거 라고요. 다른 여 자애 들은 저한테 상대 가 안 된 다니 까요
?”
그런 귀 여운 얼굴을 하고 적수가 없다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나은이.
“알았어. 알았어. 이제 버스 타러 가자. 늦겠다.”
“그러니 까 딴 여자가 말 걸면 그냥 무시 하라고요. 예 ?”
결론은 질투난다는 거잖아. 한나은.
뭐 라고 하면 이 이 야기 가 종결될 까 고민하던 나는 그녀를 위 한 극약처방
을 떠올렸다.
“…너도 알잖아. 나처녀 아니면 안따먹는 거.”
작은 목소리 로 그녀의 귓 가에 속삭이 자 나은이 는 그제 야 좀 조용해 지 나
싶었는데...
“지금 저 중고 됐다고 버린다는 소리에요…?”
나은이의 이목구비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니. 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
“그래서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엔딩도그따구로 내려고한 거죠?”
“어...?”
아닌데? 그냥지나가는 여자애들은 처녀인지 아닌지 내가모르니까관심
없다고하려던 건데...
나은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회로가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감히 예상
할수 없었다.
“역시 오빠는 나한테 감금당하는게 맞는 것 같네요. 집에 가서 목줄 채울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어디 뉴스 기사에 [예비 남편 빛 하나 들지 않는 골방에서 사망해] 이런 거
나오는거 아니냐.
이놈의 입이 방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발적인 임산부 나은이는 좀 꼴린
다는 생각이 든 나였다.
:k * *
[여보세요]
[언니]
[어. 나연아. 왜?]
[..왜 나한테는 말 안해줘?]
내가나연이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함은...
말투로 미루어보아 엄마가 내 임신 사실을 나연이한테 먼저 이야기한 모
양이었다.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하고 너한테도 하려고 했지.]
[언니 진짜로 임신한 거야...?]
[응.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잠시 아무런 말이 없는 나연이.
[애아빠는 민호오빠고?]
[얘는〜 내 가 설마 그 사이 에 다른 사람이 라도 만났다고 생 각한 거니 ?]
물론 확인 차원에서 물어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얼어붙은 분위 기를 풀
어보고자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그렇...구나...]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언니 입으로 설명 듣고싶었기도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싶어서 겸사겸
사.]
나연이 또한 많이 복잡한 심경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야 입 장만 바꿔 보면 간단한 일이 었으니까.
나연이가 어느 날 대뜸 임신해서 결혼할 거라고 한다면 나도 얼탱이가
없었으리라.
[엄마 아빠한테는 이 야기 잘 해놨고, 아마 내 일 오빠네 부모님 뵈러 갈 거
같아.]
[언니 처음가보는거야?]
[응.좋으신 분들이라고는 하는데 역시 긴장을 안할수는 없네.]
혹시나 나를 안 좋아해주시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도 솔직히 없다고 하
면 그건 거짓말이 었다.
[아니야... 언니 보고 싫어할부모님들이 어딨겠어.]
[말이라도 고맙네. 나연이 너는 학교 이제 중간고사 기간이려나?]
내 생일이 지났다는 건 곧시험 기간도그리 멀지 않았다는소리였다.
[응. 이제 얼마 안남아서 슬슬공부 집중해 보려고.]
[그래도 1학년 1학기 정도는 적당히 해도별 일 안생기니까 많이 놀아둬.]
나중에 논다고 날뛰는 것보다는 저학년 때 그냥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 각
하는 나였다.
[안그래도 요즘 술 많이 마셔서 살좀 찐 거 같기도 하고.]
[남자애들은안치근덕대고?]
[말도 마. 나 지금 벌써 4명이나 차버 린 거 있지.]
이 야. 한나연. 역시 나 닮아서 고백 무더기로 받기는 하는구나.
뭔 가 스무 살 때의 내 가 떠 올라 입 가에 미 소가 지 어졌다.
[맘에 드는 애가 그렇게 없었어?]
[몰라. 괜찮은 사람은 하나 없고 답장해주기 귀찮아 죽겠어. 그냥.]
[그래도혹시 아니.그중에 괜찮은사람있었을지.]
[그건 아닐 듯.]
[사람 일 모른다.]
나도오빠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몰랐으니까.
[아. 맞다. 언니 끊기 전에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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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그... 언니네 집에 있던 책 있잖아.그... 언니 꺼...]
책...?
잠시 나연이가 집에 머물렀던 기억을 되짚은 나는 이내 그녀가 무슨 책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아... 그거. 응.]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 이 야기겠구나. 이건.
근데 그걸 나연이 가 갑자기 왜 언급하는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혹시 그 책이제 더는 안팔아?]
차마 나는 그 책은 15만원짜리 펀딩으로만 구매할 수 있는 작가 싸인본
에디션이라고 대답해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