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167.물물교환
아... 짐도 많은데 딸기까지 사가야 하네.
하지만 나한테 보고 싶다며 전화를 건 여자친구의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
었다.
마트... 아직 열었으려나.
뫫시 언저리니까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7000원입니다.”
빠르게 딸기를 한 팩 사서 봉투에 담은 나는 집으로 향했다.
제 발 현관 앞에 서 나은이 가 대 기 타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지 간하면 선물을 오늘 주기보다는 내 일 한 번에 꽃이랑 같이 주고 싶었
다.
무슨 오마카세 코스도 아니고 선물이 하나씩 시 간차로 나오는 것도 웃기
니까.
삐삐삐삐
비밀번호를 치고 집으로 들어가자 다행이 나은이는 마중을 나오는 것 같
지는 않았다.
슬그머니 서랍장 안쪽 우산꽂이 옆에 선물 봉투를 숨겨둔 나는 신발을 벗
었다.
“나은아. 나왔다.”
“...이리 와요.”
침실 안쪽에서 들려오는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 가자 나를 기 다리고 있던 건 조금은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의
여자친구였다.
“무슨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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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리 봐도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딸기... 사왔는데. 지금 먹을래?”
“응.지금 줘요.”
“알았어. 잠깐만. 일단 내손 먼저 닦고.”
배낭을 컴퓨터 의자 위에 내려놓은 뒤 화장실에 들어가 말끔하게 손을 닦
은 나는 딸기 포장을 뜯었다.
흐으음... 근데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
이 유를 좀처 럼 짐 작할 수가 없었다.
딱히 내가 뭘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은데.
흐으으음...
소득 없는 고민을 반복하자 어느덧 딸기는 모두 깨끗하게 씻어져 있었다.
꼭지 부분을 제거하고 딸기를 한움큼 접시 위에 얹어서 들어가자 나은이
는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해야지.”
장난이 라도 치 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접시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 자 나
은이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빨리 줘요.”
“주세요〜 하라니까〜”
“나 지금 그럴 기분아니에요.”
대놓고 정색을 하자 무안해진 나는 그대로 그녀에게 접시를 넘겨주었다.
“아니... 뭔데 그래. 정말로 무슨일 생긴 거야?”
“내일말해줄게요.”
“너 설마내일 만우절이라고빌드업 짜는 거냐?”
그러네. 이 사람 생일이라고 나한테 어마무시한구라치려고 일부러 이러
는건가.
“아! 좀! 아니라고요.그런 거.”
연 기 라고 하기 에 는 지 나치 게 생 생 한 목소리 에 무안해진 나는 포크로 딸
기를하나찍어 입에 넣었다.
“알았어... 미안해...”
“아니에요. 오빠. 내가 미안해요... 나 좀... 지금 예민해서...”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리라 생각했지만 확인차 질문을 던진 나는 나은이의 반응에 점점 더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음... 반은 맞는거 같아요.”
맞으면 맞는 거지. 반은 맞는 건 또뭐람.
“그리고 그건 내일 알려줄 거고?”
“네.내일이면 알수 있을거예요.”
“아니. 오늘은 모르고 내 일 알 수 있는 건 뭔데.”
무슨 수수께끼 질문 같았다.
[3월의 마지막 날에는 알수 없지만 딙월 1일에는 알 수 있는 것을 맞혀보
시오.]
“...딸기 고마워요.”
내 말을 무시 한 나은이 는 배 가 고프기 라도 했는지 순식 간에 접 시를 비 웠
다.
“...배고팠어?”
“ 아뇨.”
“근데 왜이렇게 잘먹어?”
“저는 좀 잘 먹으면 안 되 나요?”
까칠해.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야.
나 네 생일 선물도 열심히 준비했단 말이야...
괜히 내 처지가불상하게 느껴지는 나였다.
“아냐아냐. 잘 먹으면 좋지 뭘. 그릇 줘. 갖다놓을게.”
“…고마워요.”
하지만 곧 있으면 12시 일 텐데, 첫 생 일을 잘 챙 겨주고 싶었던 나는 지금
당장그녀의 성질을긁어 싸울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 샤워 좀 하고 올게.”
“알았어요.”
계속 어딘가 불안한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나은이.
내 일 말해준다니 까 반나절 만 참아보자고 생 각한 나는 그대 로 샤워 를 하
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으음... 오늘 자정에 섹스 하려나?
생일맞이 섹스를 할 것 같기도 하고, 안할 것 같기도 하고.
지금분위기 봐서는좆을 놀릴 타이밍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평소 행실을 놓고 보면 그 어떤 때보다 내 허리가 열심히 운동을 해
야 하는 날이 기도 했다.
모르겠다.
여자란 여전히 내게는 미지의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은이는 더 알 수 없는 구석 이 있는 여 자였다.
결국 어찌 됐든 깔끔하게 씻고 나가는 것이 현명하겠다 싶었던 나는 바디
워시로 구석구석 여기저기 닦고는 잠옷을 챙겨 입었다.
“ 한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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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바로 옆에 눕자 나은이는 쥐고 있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왜요.”
“내일 네 생일인데 왜 이렇게 기분안좋아.”
“기분 안좋은거아니에요.”
“내가 선물 이상한 거 사왔을까봐 그래?”
“솔직히 그건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그 말하니까뭔가 그랬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야. 내가 어지간해서는 기대하라는 말 안하는데, 이번에는 기대해도 좋
다.”
내 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나은이는 그제야
살짝 미소를 보여줬다.
“또 어디서 돈낭비 하고서 자랑하려고하는 거 아니죠?”
“야.낭비라니. 네 선물이야.”
“선물도 너무 과하면 낭비 라고들 하잖아요.”
내 쪽으로 몸을 기댄 나은이는 두 눈을 감았다.
“오빠야.”
“왜.”
“내가 결혼하자면 할거예요?”
“갑자기?”
뜬금없는 나은이의 말에 잠시 대답을 망설였지만 그것도 잠시.
“하면하지.”
“뭐에요. 그시큰둥한대답은.”
“아니, 근데 대학졸업도못했는데 결혼은뭔 결혼이냐.”
“그렇긴 해요.”
팔을 들어 내 허리를 끌어안은 나은이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왜. 나랑 결혼하고 싶어서 지금 이러는 거야?”
조금은 장난 섞인 어조로 그녀를 끌어안아주자 나은이는 고개를 빼꼼 들
어올렸다.
“...몰라요.”
“왜 생 일 선물로 프러포즈 해주랴?”
분명 웃자고 한 소리 였지 만 나은이 는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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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라면 해주나요?”
“너 하는 거 봐서.”
…
생일날 밤에는 꼭 진득한 섹스를 해야겠다 싶어서 기대를 했던 때가 있었
다.
진짜 발정난 짐승들 마냥 진득한 교미를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뱃속에 있
을 수도 있다는 생 각에 나는 차마 오빠한테 목을 조르며 좆을 박아달라고
부탁할수 없었다.
근데 이 사람 어디를 간 거야.
생일날아침.
“오빠?”
눈을 비비며 침실을 나왔음에도 오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식탁위에 남겨진 메모 하나.
삐뚤빼뚤한 글씨.
[미역국재료 사러 감]
진짜...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국을 끓이 겠다고.
하지만 내 입꼬리가 씰룩거린다는 사실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오빠한테 고마운 건 고마운 거 였지 만 오늘 아침.
나에게는 해야만하는 일이 있었다.
임신테스트기와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 나는 그대로 설명서에 적
힌 절차대로 검사를 시 작했다.
이렇게 묻힌 다음에...
결과가 나오는 건 嬖분에서 15분 사이…
떨리는 마음으로 식탁의자에 앉은 나는 테스트기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
다.
:k * *
나은이 아직 안 일어났겠지?
혹시 일어 날까봐 메모를 남겨둔 나는 내 가 생 각해도 참 좋은 변명거리 라
고생 각했다.
꽃집에서 꽃을 찾아오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찰나, 미역국이 떠올랐던
나는 재료를 사러 다녀오겠다는 핑계가 떠올랐다.
물론 일이 늘기는 했지만 아니 나도 인터넷 보고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근본 모를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유명 블로거의 레시피를 메모장에 복사한 나는 우선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
“미 역이랑... 소고기랑... 육수팩은어딨지?”
시 판용 사골 육수팩 넣으면 꿀맛이 라는 글을 본 나는 정신없이 매 장을 헤
맸다.
결국 점원 분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모두 장만한 나는 꽃집으로 향했다.
“이민호 씨. 맞으시죠?”
“네.맞습니다.”
“색감마음에 드세요?”
붉은색과 연분홍색 을 메 인으로 가져 간 꽃다발에 서는 은은한 향기 가 코
를 간질였다.
“네.너무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직원의 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인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진짜 예쁘다.
나은이 가 보면 분명 좋아하리 라.
계단을 타고 집 앞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입력한 나는 현관 앞에서 감춰둔
명품 가방 봉투를 꺼 냈다.
자... 한나은 딱대 라.
“...왔어요?”
자고 있을 줄 알았던 내 여자친구는 이미 일어 났는지 식 탁 의 자에 앉아 있
었다.
“뭐야.왜 안자.”
“그냥눈이 떠져서요.”
“그래?,,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간 나는 그녀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생일축하해. 한나은.”
“고마워요. 오빠.”
두 손으로 꽃다발을 안아든 나은이는 진심으로 사랑스럽다는 눈초리로
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이건대망의 선물.”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내밀자 나은이는 내용물을 확인하기도 전
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왜 이렇게 비싼 거 사와요. 이거 딱 봐도 백만
원은 넘어 보이는데.”
야야. 백만 원이라 하지 마. 나 섭섭해질라 그래.
“안 비싸.”
“아니. 거짓말도그럴싸하게 해야지 속아주죠. 이름부터 망했는데요?”
“열어나 봐.”
꽃다발을 내려놓고 봉투 안을 확인한 나은이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
왔다.
“와 • •• ”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을 보니 내 입가에는 흡족한웃음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데. 어떤데.”
대충 칭찬하라는 소리를 연발한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아 진짜... 이런 거 안해줘도되는데...”
“그냥 팬아트 값이 라고 생 각하라고. 이 거.”
“이러면 유료 외주작이 잖아요.”
“뭐 어때. 제값내고 사온 거라생각하면 마음 편하잖아.”
“…고마워요.”
활짝 웃는 나은이.
“근데 나도 오빠한테 줄 거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