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154.팬아트
20대에 들어선 이래 가장 찬란한 꿓월이 시작되 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가 있었는데, 첫째는 내 가 휴학생 이 라는 점 이고, 둘째
는 나은이 가 내 여 자친구라는 점 이 었다.
“3월 꿓일이네요.”
달력을 바라보던 나은이 가 친절하게 오늘이 월요일임을 알려주었다.
“응. 애들 지금쯤학기 시작했겠네.”
개백수두 사람.
사실 경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했으나 우리 두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는 백
수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 었다.
딱히 어디로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 패턴을 정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 었다.
“어후...졸업 전시 생각만해도 어질어질 하네요.”
컴퓨터 의자에 기댄 나은이는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책상위에 있던 과
자 포장지 를 뜯었다.
“너는 이번에 시다 안뛰냐?”
본래 휴학을 하게 되면 주변 친구들에게서 졸업 전시를 도와달라며 러브
콜이 오는 것이 국룰.
“음...뭐...부르는사람있으면 가는 거고.근데 어지간하면 안불렀으면 좋
겠네요.”
나은이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바닥 위 에 과자를 한 움큼 얹어주
었다.
“오빠는요?”
“나? 나는 당연히 휘민이 도와주러 가야지.”
내 년을 생 각한다면 나는 내 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을 꺼 내 야만 했다.
휘민좌의 3D 그래픽 다루는 능력은 상급 중에서도 최상급.
그의 도움만 있다면 미래의 내 가 처 리해 야만 하는 급한 불은 분명 끌 수
있을것이었다.
“하긴 오빠 친구라고는 학교에 휘 민 오빠 밖에 없잖아요.”
“어설프게 두루두루 친해봐야 시다해줄 사람만 늘잖니.”
인간관계에 대해 디스를 먹다니.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할 말은 있었다.
“휘민 오빠한테 잘해요.”
“너는 친구 없잖아.”
나은이의 오른쪽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본래 위치로 돌아갔다.
“오빠는 내가 친구 많았으면 좋겠어요?”
“있으면 있는거지.”
“그럼 내가다른 오빠들이랑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술 먹어도 상관없겠네
요?”
아니. 이사람아.
스테 이지를 넘겨도 몇 단계를 넘기는 거야.
친구가 있다 - 근데 남자인 친구가 있다. - 근데 몰려다닌다. - 근데 술도
마신다.
자그마치 네 단계를 스킵한 거라고. 당신.
“그러 기만해. 비 밀번호 바꿀 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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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딴남자 집에서 자버릴지도?”
“ 야!”
결국 화를 이 기 지 못한 내 가 그녀에 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발작버튼을 건드린 것이 재밌었는지 나은이는 키득거리며 의자에서 일
어 났다.
“그러니까 오빠.”
나은이 가 내 목에 두 팔을 둘러 나를 끌어 안았다.
“나한테 집착해줘요:
“...이미하고 있어.”
“에 이. 진짜 집착하는 사람은 친구 없으면 좋아한다고요.”
“난너 친구 없어서 좋아.”
참으로 애새끼 같은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
다.
내 집착을 원하는 나은이라...
“좀 전까지는 친구가 있으면 있는 거지〜 이런 소리나 했으면서.”
내 말투를 흉내 내는 그녀는 귀 여우면서도 머리통을 한대 쥐어박고 싶었
다.
“나연이는 학교 잘 갔으려나.”
“알아서 잘했겠죠.”
막상 잘 챙 겨주는 주제에 이럴 때 보면 무심한 척 하는 나은이.
“그래서 너 운동은 언제 등록할건데.”
나은이의 거짓말에 넘어가 등록한 피티 회원권은 아직도 만료가 되지 않
은상태였다.
“…하기 싫은데.”
“같이하기로 했잖아.”
바쁜 일정 다 끝나면 같이 하기로 했으면서 그녀는 이리저리 도망치며 하
기 싫다는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감히 나 한겨울을 그런 지옥 같은 헬스장에 처박아두고 자기는 집에서 하
하호호 야설이 나 읽 으려고 그래 좥
“오늘 네 이름으로 등록해 놓는다.”
“아〜〜진짜 왜그래요〜”
앙탈을 부리 는 나은이 .
“너도 너무 안움직여서 건강해질 필요가 있어 보여.”
“저는충분히 건강해요.”
“가면인바디가 말해주겠지.”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거든.
결국 내 아집을 이기지 못한그녀는 이따 같이 가겠다며 고집을 꺾 었다.
“나유진 일러는 이제 다끝났지?”
“네.마무리 터치만하면 끝이에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마지막 히로인.
나유진 에피소드는 어느덧 마지막 화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연이 가 집을 떠 난 이후 폭풍과 같은 속도로 작업을 달린 나은이는 나유
진의 일러를 정말 빠른 속도로 마감해 주었다.
최소화되어 있던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클릭하자, 역시나 HNE 작가님 특
유의 깔끔한 여캐 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개꼴.”
내 가 딱 한 마디하자 나은이는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저좀 치죠.”
“응. 너 잘 친다. 야.”
나은이는 어린이집에서 했던 플레이가 기억에 남았는지 그걸 응용해서 표
지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화면 속 나유진에게 입혀진 복장은 모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연상 시
키는 소품들.
새하얀 나신 위 에는 붉은색 가죽 멜빵이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를 가려주
고 있었으며 그녀의 머리 위에는 노란색 사이즈가 맞지 않는 자그마한모자
가 얹어져 있었다.
완벽히 타락한유진은 그모든 플레이에 완벽하게 이입할수 있었으며, 그
녀의 행복해하는 표정은 나은이의 일러스트에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이제 마지막한장남았네.”
a
..그러게요.
99
글 한겨울. 그림 HNE의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는 이제 정말로 마지막
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근데 아직도 너무 아쉬워요... 더 써주면 안되나?”
이미 몇 번이고 왜 여기서 멈추는지 이야기해줬으나, 나은이는 아직도 미
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도 이제 차기작 써야지. 이러다가 몇몇 애들은 등장도 못해서 독자들이
이름도 까먹겠다.”
히로인이 많은 소설의 어쩔 수 없는 구조이기는 했다.
남성 한명이 여러 명의 여성과관계를맺게 되는 경우 당연히 몇몇은 비중
을챙겨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미 히로인이 10명이 넘어선 지금.
[그녀 감금]은 과포화 상태였다.
솔직히 한희정이나 주민지 같은 경우에는 작가인 나조차도 언제 마지막
으로 분량을 챙 겨줬는지 기 억도 나지 않았다.
“근데 차기작은왜 순애물 써요.”
“내가쓰고 싶어서 쓴다. 왜.”
“그럼 오빠만 믿고 매 일매일 정자를 아껴놨던 남자 독자들은 어떡 하라는
거예요.”
“…몰라. 내 가 걔 네 사정관리까지 해줘 야 할 의무는 없잖아.”
세상은 넓고 야설은 많았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가 대히트작인 것은 인정하지만, 언젠가 내가 세운
기록을 아득히 뛰어넘을 초인이 나타나리라 나는그리 믿고 있었다.
물론 나은이 가 내 옆에서 살아 숨을 쉬고 있는 한 그걸 보면서 혼자 뺄 확
률은 극히 드물기는 했지만 말이다.
“순애물 쓰면 근데 그게 분량이 나와요?”
“몇 화짜리 소설이냐고물어보는 거야?”
“그렇잖아요. 오빠가 어떻게 쓸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주인공은 1명이
라는 소리잖아요.”
“그렇지.”
“그럼 보통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1명을 기준으로 삼으면 길어봐야 40화
아니에요?”
기적의 계산법에 나는 잠시 바보 같은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고만 있었다.
“…순애물이라고 했잖아.”
“어차피 그것도 결과적으로는 남자가 여자 따먹기 위한 노력을 담은 내용
아닌가요.”
어... 어...
뭔가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애는 그런 게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로맨스가 이성을 따먹기 위한 과정으로 치부하는 것은 살짝
어 지 러운 발상이 라고 해 야 하나.
“아무튼 200화 이 상은 쓸 거 야.”
“물릴 것 같은데... 한 명만물고 빨고 하면...”
“알아서 할게.”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나은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럼 나 실직자되는 거 아니에요.”
“한 명만 다른 옷으로 주구장창 그려주면 괜찮잖아. 그리고 너 굳이 내 소
설 일러만 안 그려줘도 괜찮다니까.”
나야 한 그림 작가한테 삽화 전체를 부탁해도 상관없겠지만, 일러스트레
이터는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아야만 생계가 유지 가능하리라.
“…제가 다른 남자들에게 엉망진창으로 명령 당하는 게 좋으신가요?”
“돈을 준다면 어쩔 수 없지.”
누군가 여 기 만 딱 잘라서 영상 클립 으로 만든다면 나는 영 락없는 개 새 끼
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취 업 장려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힝... 뭔가 차기작 노잼일 것 같아.”
침 실로 들어 간 나은이는 그대 로 이불로 다이 빙 해 베 개 에 얼굴을 묻었다.
“너 자꾸 시 작도 안 했는데 초치는 소리 할래.”
“가서 내 딸감이나써요. 이제 단체 씬 나온다면서요.”
“너도마지막일러 그리러 가. 그러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나은이를 안아든 나는 헬스장에서 단련한 어깨 근
육으로 그녀를 다시 컴퓨터 의자위로 복귀 시켰다.
잠시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던 나은이 가 나를 올려 다보았다.
“오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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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나돈안 받을게요.”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의 완결 기념 히로인 전원이 나온 단체 일러스트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야. 이거 정가로 치면 얼마짜리인데 이걸 안 받아. 암만 커플이라고 하지
만 이건 확실히 하자.”
같은 시 간이 라고 하면 수백 만 원은 벌었을 나은이 였다.
그녀의 그런 노동을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날로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으응으응,,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나은이는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이건 팬아트”